[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아베노믹스, '부러진 화살' 되나

2013. 5. 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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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아베노믹스

'아베노믹스'의 여파로 최근 일본 국채 금리(수익률)가 오르면서 '일본 국채발(發)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인해 일본 정부부채가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팽창, 일본 재정이 파탄에 이른다는 시나리오다. - 5월28일 한국경제신문

☞세계경제가 좀체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미국 유럽 영국 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돈을 무차별적으로 살포하고 있는데도 경제는 무기력하다. 이는 선진국들의 물가가 6개월 연속 하락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4개 회원국의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1.7%로 2011년 3분기 이후 18개월 연속 하락했다. 1971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장 기간이다. 돈을 풀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계나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줄이면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글로벌 경제에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침체 속의 물가 하락)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취약한 세계경제에 또 다른 잠재적 '태풍의 눈'이 등장했으니 바로 일본의 아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베노믹스다. 아베노믹스는 △중앙은행(일본은행)이 돈을 엄청나게 풀고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며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세 개의 화살'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침체돼 있던 경기를 살려보자는 게 핵심이다.

올초 아베노믹스가 본격 시동을 걸면서 일본 경제는 오랜 만에 회색이 도는 듯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 기업들에 생기가 돌고 증시도 큰 폭으로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아베노믹스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일본이 세계경제의 또 다른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도쿄 증시의 닛케이225지수는 지난달 23일 7.3% 폭락한 데 이어 27일에도 3.21% 급락했다. 이처럼 주가가 폭락한 것은 일본 증시가 그동안 많이 올라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이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판 것도 한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안감을 꼽을 수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을 늘리면 단기적으론 엔 약세, 금리 인하로 연결되지만 실물경제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물가 상승·금리 급등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실제로 엔저에도 일본의 무역수지는 좀처럼 개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의 4월 무역수지는 8800억엔 적자로 4월 적자로는 사상 최대다. '엔화 약세→수출 증가→무역수지 개선→경기 회복'이라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셈이다. 소비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발행한 채권(국채)의 금리는 급등했다. 일본 국채 금리(10년물 기준)는 일본은행이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한 지난 4월 초 사상 최저치인 연 0.315%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한 달여 동안 계속 올라 지난달 23일 1년여 만에 처음으로 1%를 돌파했고, 27일에도 0.825%의 높은 수준을 보였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국가부채가 세계 최대 규모인 일본 정부엔 막대한 부담이다. 일본 정부가 진 빛은 지난 3월 말 현재 991조6000억엔(약 1경1020조원)이다. GDP(국내총생산)의 200%를 넘는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이자 등 부채 상환에 쓰는 돈은 연간 22조엔 정도로 예산의 24%를 차지한다. 내년에는 이 비용이 23조8000억~23조9000억엔(약 265조~26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채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정부의 이자비용은 연 1조엔이 불어난다.

일본 국채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일본 정부가 헤지펀드들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로이터통신의 칼럼니스트 제임스 새프트는 "일본 국채 가격이 계속 급락하면 헤지펀드들이 대거 공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은행이 국채를 지키기 위해 세계 헤지펀드들과 사투를 벌여야 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헤지펀드들은 누구보다 돈냄새를 잘 맡아 국제금융계에선 '늑대 무리'로 불린다. 이들은 국채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국채를 대거 공매도한다. 공매도가 대거 쏟아지면 해당 채권의 가격은 급락(채권 금리는 급등)할 수밖에 없다.

일본 국채 금리의 상승은 은행들의 재무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국채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대형 시중은행들의 자본은 10%, 지방은행들은 20%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일본으로선 악몽 같은 일이다. 물론 낙관적 견해도 존재한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일본의 국채 금리가 아직 1%도 안 되며, 금리 상승은 일본 재정의 파탄 우려가 아니라 낙관적 전망을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어찌됐든 한국으로선 아베노믹스의 파탄 가능성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해 놓는 게 필요하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하면 세계경제 침체가 가속화돼 우리 수출이 큰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일본 금융사들이 한국에 빌려준 돈을 한꺼번에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이 출렁이고 우리 금융사나 기업들의 유동성이 경색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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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안갚고 버티면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

빚 탕감과 모럴 해저드

정부가 여러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동시에 가동하면서 올해 최대 100만여명이빚을탕감받거나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혜택을 보게 됐다. 서민을 도우려는 취지는 좋지만 자칫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5월25일 연합뉴스

☞사정이 딱한 개인의 빚을 정부가 대신 갚아주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올해 국민행복기금, 자산관리공사(캠코), 신용회복위원회, 민간 금융회사 등을 통해 채무조정을 해줄 사람은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4월 시작한 국민행복기금은 한 달 만에 11만명이 신청했다. 연말까지는 50만명이 채무탕감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대출 등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했다가 연체한 사람들에게도 기금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국민행복기금 수혜자가 올해 7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당시 10억원 이하의 기업대출에 연대보증을 선 11만명의 빚을 70%까지 탕감해주는 지원방안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과 개인워크아웃 수혜자가 올해만 3만2000명 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 신청자는 연말까지 7만~8만명에 이르고, 채무자의 빚을 줄여주는 '희망모아' 프로그램 수혜자도 수만명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회사들이 하우스 푸어를 구제하기 위해 자체 프리워크아웃과 경매유예제도를 활성화하면 2만2000가구 정도가 혜택을 보게 된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서민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대신 갚아줄 것'이란 잘못된 생각이 사회적으로 뿌리 내리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각종 빚 탕감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주택담보대출 집단대출의 장기 연체율은 2011년 3월 0.91%에서 올 3월 1.92%까지 치솟았다. 일부 소비자단체는 외환위기 때 연대보증 채무자뿐 아니라 2003년 신용카드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피해를 본 사람도 구제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채 탕감은 성실하게 빚을 갚아 나가는 채무자나 아예 빚을 쓸 기회도 없는 극빈층을 역차별하는 측면도 있다. 또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은행과 공기업에 돌아가고 결국 국민 혈세로 막아야 한다. 정부는 수혜 후보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차단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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