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 K-패션을 말하다] <1> 이랜드, 대영제국의 신화를 잇는다

2013. 5. 2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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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33세 청년집단 이랜드 그룹(회장 박성수)이 초고속으로 재계를 질주하고 있다. 1980년에 창업한 이랜드는 1986년 법인으로 전환한지 27년인 현재 27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총액 5조 5천억 원 규모의 재계순위 49위로 등극했다, 검토 중인 건설 부문 인수 후면 재계 30위권 진입도 멀지 않았다.

패션, 유통, 외식, 레저, 건설 등 다양한 사업영역을 가진 이랜드의 성장동력은 패션, 그 중에서도 성공확률이 매우 낮은 중국 내 패션비즈니스가 이랜드의 글로벌 브랜드 제국 건설에 주춧돌 역할을 공고히 하고 있다.

중국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사업가들 대부분은 중국 마켓을 흔히들 '장밋빛 늪'이라고 표현한다. 장미의 아름다움과 향기에 이끌려서 결국 늪으로 빠져들고 죽게 된다는 비유다.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FnC, 신세계인터내셔날, SK네트웍스 등 재벌그룹 산하 계열 패션기업들이 번번히 실패한 중국 패션마켓에서 이랜드의 거침없는 행보는 부러움 그 자체다.

1980년에 창업한 이랜드는 교복 자율화의 시기에 편승하며 젊은 층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1994년 중국 생산지사 설립을 통해 중국에 발을 디딘 이랜드는 1996년 이랜드, 2001년 스코필드, 2003년 이랜드 키즈를 현지 런칭하는 등 총 30개의 브랜드를 운영해오며 지난 10년간 연평균 60%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중국 내 이랜드의 패션 부문 매출은 총 2조 1,000억 원 규모다.

최초의 패션 프랜차이즈 잉글랜드

이랜드 그룹의 모태 브랜드 잉글랜드는 백화점과 재래시장의 틈새를 교묘하게 공략했다. 교복을 벗어 던진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이지 캐주얼 시장을 개척해 중저가 패션시장인 블루오션을 일구어낸 것이다.

당시 이대 앞 상점들 또한 대다수가 무채색 계열의 편한 저가 옷을 팔며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 상태였다. 잉글랜드는 패션에 관한 관심과 욕구는 크지만, 아직 서울이 익숙지 않은 지방 출신 기숙사 여학생들을 공략했다. 원색의 화려한 색상과 눈에 띄는 커다란 알파벳 문양, 실용적인 캐주얼 복장 등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색적인 패션 스타일에 사람들은 "미국식 옷을 판다"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잉글랜드가 성공했다는 소문이 난 이후 전국에서 분점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 1986년 잉글랜드는 이랜드로 이름을 바꾸고 적극적인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가맹점을 확대해 나갔다. 패션업계 최초의 프랜차이즈 시스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며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

1986년 90개 가맹점의 65억 원이던 매출액이 1993년에는 2,000개의 가맹점, 5,400억 원을 달성했다. 이러한 성장은 계속 이어져 1994년 '2001 아울렛'을 시작으로 유통업, 건설, 호텔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위기에서는 과감하게 대처하라

1997년 IMF를 맞아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이랜드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회사 전체 인원의 50%에 해당하는 약 2천여 명을 감원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했다. 52개의 브랜드 중 핵심 브랜드만을 남기고 유사계열사의 합병 및 퇴출 등 과감한 정리를 단행했다. 또한 외자 유치를 통해 부채비율을 축소하고 신자유주의적 경쟁시스템을 도입했다. 사업부 단위로 매달 목표에 의한 평가 및 성과 관리를 강화하는 등 많은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한편 이랜드를 모델로 삼은 새로운 패션 업체들이 무수히 쏟아졌다. 국내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하면서 중저가 시장을 타깃으로 잡고 있던 이랜드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랜드는 여러 브랜드를 선보이며 대처했지만 한계를 보였다. 브랜드의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한 이후 이랜드는 제3국의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랜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중국을 선택했다.

중국 현지화 전략을 통한 이리엔의 탄생

이랜드의 중국 현지화 전략은 무모할 만큼 철저했다.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우선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고 중국인을 존중해야 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은 관련 서적을 100여 권 이상 읽고 6개월간 기차를 타고 200여 개의 도시를 직접 조사했다.

중국은 하나의 국가지만 광활한 영토에 56개 민족이 모여 사는 만큼 각각의 지역마다 차이를 가지고 있다. 지역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차별화를 가져야 할지 파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조사는 지금도 신입사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100% 직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이랜드 중국 법인은 백화점 입점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자금이 넉넉하지 않을 때도 꾸준히 고급화된 매장 리뉴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 중국 고객들의 소비성향과 친밀도를 위해 중국 문화의 특성을 활용, 매장의 로고 색상을 빨간색으로 적용했다. 이랜드와 비슷한 발음의 중국 사명으로 '옷을 생각한다'는 의미인 '이리엔'을 사용하여 대중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이랜드는 중국 상류층을 겨냥한 캐주얼 중심의 고급 브랜드의 가치와 백화점 유통망 확보라는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됐다.

현지화 성공의 이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실천 기업'

"중국에서 거둔 이익은 중국 사회에 환원해 중국 시장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이랜드는 이를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기업의 진정성을 드러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2년 호흡기 증후군인 '사스(SARS)'가 발병하였을 때에도 불안감으로 철수한 많은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중국에 남아 더욱 중국 투자와 진출에 집중했다.

정직한 납세와 고용의 증대, 순이익의 10% 사회 환원이라는 3대 중국 사업의 경영원칙을 진정성 있게 보여줌으로써 이랜드와 중국, 중국인이 상생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모색해 나간다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 최초로 중국 내 사회 공헌 분야에서 권위 있는 '중화자선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최근에는 중국 사업의 성공을 통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 투자를 강화하고 중국 사업 확장에 원활한 자금 공급을 위해 홍콩 증권시장 상장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홍콩 증시는 기업규모, 재무건전성, 성장성 등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상장 승인을 받을 수 있는데 이랜드는 홍콩 증시 기업공개(IPO) 대해 "기업 공개는 중국 패션 쪽만 할 생각이고 예상 금액으로 4~5조 원 정도로 잡고 있으며, 현재 홍콩 증시가 좋지 않아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패션 외 사업에서도 다각화, 전 방위로 뻗어가는 사업 영역

이랜드그룹은 지주사인 이랜드월드와 함께 이랜드리테일 이랜드 건설 등 국내 27개 계열사와, 상해 이랜드 패션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홍콩 베트남 등 해외에 55개 계열사를 갖추고 있다. 패션 유통 건설 조경 레저 외식 영화 교육 등 의(衣), 식(食), 주(住), 휴(休), 미(美), 락(樂) 전 방위로 사업영역을 뻗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토종 패밀리 레스토랑 애슐리와 고급 커피 전문점 카페루고를 비롯해 외식업과 호텔 등 레저 사업에 적극 진출을 하며 의복뿐만 아닌 패션 라이프로 기업 이미지를 확장 해 나가고 있다.

중국 내 M & A에서 성공한 계림호텔 인수를 시작으로 향후 자체 브랜드 강화, 글로벌 브랜드 M & A 및 전략적 제휴, SPA 등 각각의 부분별 축들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2016년까지 중국 내 대도시의 핵심 상권을 중심으로 애슐리 매장 200개, 카페루고 매장 1,000개를 오픈하여 연 매출 3조 원을 달성하고 레저 부분 역시 총 10개의 호텔 체인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처럼 패션 외 사업에서도 두각을 보이며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 애월읍에 100만㎡(약 30만 평) 규모의 대형 복합타운을 2017년까지 건설해 한류 공연장으로 오픈하고 이어 2022년까지 국제컨벤션센터와 콘도로 확장해 간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를 포석에 둔 이랜드 그룹의 고객을 제주로 다시 불러 모으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이랜드의 계속되는 도전, 향후 미래는? '토털 글로벌 브랜드'

최근 이랜드USA홀딩스가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컴포트화 전문기업 오츠 슈즈(OTZ Shoes Inc)를 100억 원에 인수했다. 올해 4월 말 K-Swiss 인수를 마무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를 위해 5월20일 90%의 지분을 확보하며 오츠를 이랜드의 자회사에 편입시킨 것이다.

오츠는 미국 내 500개의 판매망을 두고 있으며, 중국, 일본, 스칸디니비아, 중동 등 세계 23개국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슈즈메이커다.

이랜드 박성경 부회장은 언론을 통해 2016년 중국 내 매출 10조 원 달성, 현지인 고용 10만 명을 목표로 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중국 진출 한국 패션업체 1위를 고수하며 현재 중국에서 운영 중인 18개의 브랜드를 60개로 늘리는 한편 백화점 중심 직영매장도 2만 개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또한 인도와 베트남, 중국을 삼각형으로 잇는 '패션 트라이앵글'을 계획하고 이를 구축하기 위하여 인도 3위의 의류 직물제조사 무드라 라이프스타일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중국뿐만 아니라 2020년까지 인도와 베트남 시장에서 각각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 세계 10위의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랜드는 단순히 의복 중심의 기업이 아닌 토털 글로벌 브랜드로 가는 시발점에 서 있다. 중국 진출을 기회로 삼아 시장을 개척하고 입지를 굳혀 중국 내에서 영향력 있는 한국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자국내 패션 전문 기업으로서 디자인력과 상품력에 대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2012년과 2013년을 그룹 전체의 체제 정비 기간으로 새로운 다짐을 하는 이랜드는 이제 안식년의 휴가를 마치고 제3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을 시작한 이랜드. 해외 진출을 요하는 많은 국내 패션 기업의 귀감이 되고 있는 만큼 이랜드가 전세계 패션 신화의 한 획을 긋는 명실상부한 패션 기업이 되길 기대해본다.(작성: 홍지혜 기자, 김가현 기자 / 사진출처 : 이랜드 홈페이지, 오츠 슈즈 홈페이지, bntnews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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