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은근발랄]열정이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은 아니다

김류미 | 어크로스 편집자 2013. 5. 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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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미우라 시온 지음 | 은행나무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김원 지음 | 이매진

많은 자기계발서들은 언제나 '멈추지 않고 달릴 것'을 이야기한다.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지고, 그래서 열정이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라고 말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다가오는 힘이 되는 메시지란 이런 긍정성의 강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에 가도, 선배를 만나도, 멘토의 조언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간절히 원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들어 있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물질적인 욕망 또한 '꿈'이라는 말로 미화시키듯 말이다.

한편에서는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할 만큼 내가 원하는 일인지 찾지 못했다'는 고민을 토로하는 10대와 20대를 만난다. 당연한 일이다. 오로지 입시 경쟁과 스펙 경쟁만 남은 한국 사회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무슨 수로 알아낸단 말인가? 경험해보지 못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결과가 '안정적인 대기업 직장인'에 모두가 '올인'하는 사회다. 그것이 가장 위험부담이 적은 '꿈'을 이루는 방식이므로. '꿈'이 대기업 취직인 사회라니, 넘쳐나는 자기계발서 제목들이 민망해진다.

< 배를 엮다 > 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종이만 먹는 돈벌레'라는 말을 들으면서 15년 동안 사전을 만들어온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다. 주인공 마지메는 잘하는 일 하나 없어 보이고, 어리보기이지만 그 점이 사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묵묵한 끈기와 정리력'이라고 여겨진 덕에 영업부에서 사전부로 스카우트된다.

그러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회사에서 배치한 정규 인력은 한 명. 전임자와 감수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13년 만에 추가된 팀원과 기어이 사전을 완성시키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소한 결핍이 있고,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사전을 만드는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마지메를 도와 사전을 완성시킨 기시베와 니시오카는 주인공 마지메를 보며 무엇인가에 빠져드는 '열정'을 갖지 못한 자신들을 탓한다. 하지만 일상의 '평범함'을 따뜻하면서도 의미있게 그려내는 데 탁월한 일본 작가 미우라 시온은 '열정이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명을 받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하나의 '사전'을 위해 인생의 시간들을 바치는 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그 자신들의 꿈이 되고 열정이 되는 것이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라는 말처럼, 이들은 사전을 만들며 자신들의 서투른 말로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사실 다소 엉뚱하게도, 내가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 중 하나는 <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1980년대 대학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 > 이다. 학생운동이 몰락해가던 때에 대학에 입학해 내가 맞은 대학 분위기를 궁금해하다 보니 이 책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1980년대 대학생으로 앞장서 운동을 했던 이들의 증언을 통해 '80년대라는 집단기억'을 보여주고, 시대의 '광기'와 '트라우마'를 복기하는 작업을 펼친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가 왜 지금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나는 그것이 너무 궁금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책'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일을 선택했다. 책 읽는 것 외에 잘할 줄 아는 게 없는 서투른 책벌레들의 소통 방식이라 할 수 있을까? 편집자는 책을 통해 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각기 소소한 일상과 잊혀진 시간을 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너무나 뜨거운 내면을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

나는 여전히 책은 그렇게 더 많은 소소함과 잊혀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열정이 꼭 가슴 뛸 만큼 화려한 것은 아니므로.

< 김류미 | 어크로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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