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Tour]함양 히스토리 투어..상림과 연꽃지, 그리고 최치원
함양을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곳은 지리산 끝자락에 있는 다섯 마을,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가운데 한 마을이다. 다섯 마을은 지리산 덕을 보기도 하지만, 그 위엄과 명성에 눌려, 지리산 말고는 특별한 여행지가 없는 밋밋한 도시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들 독립적이고 탁월한 올 거리들을 몇 가지 씩갖고 있다. 함양은 단연코 연꽃지다.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고도 남을 함양의 상림공원 연꽃지를 여행했다.


진짜 백성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정치인 최치원
연꽃을 보러 떠난 여행이다. 연꽃 하면 불교를 떠올리지만, 사실 대중 종교로서의 불교 역사보다 연꽃의 역사가 더 깊고 길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또 어떠랴. 돌고 도는 세상에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이라고 규정하는 따위 또한 규정하기 좋아하는 설익은 인간의 못난 습성일 뿐. 고운 자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연꽃이 보고싶다면 어디든 '연못'으로 향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굳이 함양을 선택한 것은 '상림'이라는 곳이 1000년 전에 인공으로 조림된 숲이고 연못 또한 그 즈음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다는 판타스틱한 스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000년 동안 그 모습 그대로를 지닌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신라 시대 때 풍수해를 겪는 백성들을 구제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인공 숲과 못을 만든 이야기의 현장이 바로 함양의 '상림'인데, 꼭 한 번 가볼만 하지 않을까? 백성의 삶을 생각한 관리는 신라 최고의 석학이자 정치가 가운데 한 사람인 최치원이었다. 그는 유교와 불교와 도교 등 당시 종교가 갖고 있던 장점들을 모두 모아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천재'다. 그러나 출신이 6두품이라 신라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최치원 가문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당시 6두품들 사이에서는 당나라 유학이 유행했었는데, 신분제도에 막혀 출세할 길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뛰어넘기 위한 방편이었다. 최치원도 12살에 당나라로 건너가 18세에 빈공과에 장원 급제, 출세의 물꼬를 트는 데 성공했다. 빈공과란 당나라로 유학 온 외국인들의 관직 진출을 위한 시험으로, 여기에 합격하면 당나라 관료가 될 수 있음은 물론 고국에 돌아가도 그 실력을 인정받는 엘리트 코스의 출발이었다.
당나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최치원의 최대 업적은 '토황소격문'을 써서 농민 반란의 '황소의 난'을 진압한 일이다. 당시 '관역순관'이라는 직책에 있었던 그는 난을 일으킨 '황소'를 어르고 달래고 겁박하는 글을 써서 황소에게 보냄은 물론 황소가 장악한 모든 지역에 뿌렸는데, 그 문장이 기가막혀 민심을 돌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곧 귀국했고 당 희종은 신라로 돌아가는 최치원 손에 신라 왕에게 내리는 조서를 쥐어주었다. 귀국 후 헌강왕의 절대적 신뢰를 받던 최치원은 개혁의 꿈을 차근차근 이루려 했으나 다음해 왕이 덜컥 죽어버리는 바람에 상황이 나빠지고 말았다. 예상했던 대로 개혁을 반대하던 기득권 귀족들의 음모로 최치원은 중앙 정치 무대에서 밀려나 지방 태수(군수)로 전전하다 결국 쓸쓸하게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태수 시절 최치원은 한직으로 밀려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을 진정 위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했는데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함양군의 '상림'이다. 천령군(지금의 함양군) 태수 시절, 그는 풍수해로 고통받던 백성들을 위해 치산치수 정책을 수립, 방풍림인 '상림'을 조성, 숲과 연못을 만들었다. 함양의 상림은 그의 꿈이 담긴 족적 가운데 한 곳이고, 그곳에서 만나는 숲과 연꽃은 보통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그것들과는 또 다른 울림을 주는 특별한 여행지다.
이런 역사적 가치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상림은 함양 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힌다. 이곳은 40여 종의 낙엽관목 등 120여 종의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다. 봄은 신록, 여름은 녹음, 가을은 단풍, 겨울은 설경으로, 상림은 사계절 내내 절정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여름철에 상림에 들어가 돗자리 깔고 누우면 신선이라도 된 것 같은 여유를 느낄 수도 있다. 숲속에 조성되어 있는 오솔길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대화와 사랑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소박한 자태에서 뿜어내는 우주의 에너지, 연꽃

상림 연꽃지는 공원 한쪽에 1만여 평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300여 종의 연꽃과 수련, 수생식물이 어우러져 말없이 공생하는 모습이, 도시인의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연꽃의 꽃말은 고고함, 우아함, 절제된 사랑 등이다. 또한 환경을 핑계대지 않는 주체적 삶, 선악을 단박에 구별해 낼 줄 아는 지혜, 주변을 깨끗이 만들어주는 고결한 인품, 누구에게나 친절한 인자함, 주변을 늘 정리 정돈하는 청결한 일상,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마음과 호방한 인정, 좋은 일이 생기면 꼭 이웃과 함께 하는 넉넉한 마음 등 이상적인 삶에 비유되곤 한다. 연꽃은 진흙바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흙탕물에서 성장하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고고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은 연꽃이 지닌 강력한 정화 능력 때문이다. 더러운 세상에 뿌리를 두고도 그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니 더욱 그 자치가 빛나는 게 아닐까? 연꽃지를 뒤덮고 있는 연꽃의 종류는 대략 네 가지 정도. 백련과 분홍련이 가장 많고 홍련과 황련의 매혹적인 모습도 눈에 띈다. 백련은 연꽃 가운데 꽃이 가장 크고 꽃잎도 넓어서 눈에 잘 띈다. 대표적인 연꽃인 백련은 그 수명이 천 년을 산다는 거북이나 학을 능가한다. 2000년 된 씨앗이 발아하는 경우도 있다. 신라시대 때 조성된 상림 연꽃지가 오늘날까지 이어진 데에는 다 그런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350여 미터로 조성된 탐방로에는 열대수련, 한대수련, 고나상련, 수생 식물들이 가득하다. 멸종 위기종에서 다시 번식 중인 '가시연', 고운 노란색 꽃이 꼭 한 송이씩 피었다 지고 또 다시 피었다 지는 '개연', 솜털같은 톱니가 예쁜 '어리연', 낮에 피었다 해가 저물면 오그라들어 '자오련(子午蓮)'으로도 불리는 '수련' 등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연꽃들이다. 그밖에 중일우의련, 비연춘영, 소무비, 급변옥 등 이름도 시적인 연꽃들과 물양귀비, 물아카시아, 무늬창포, 부레옥잠, 좀개구리밥 등 수많은 수생식물 등도 연못지에서 관찰되는 자연의 모습들이다.
상림을 다 돌았다면 함양 계곡으로 발길을 돌릴 것을 권한다. 함양은 영남권 정자 문화의 보고라 알려진 만큼 빼어난 정취의 정자들이 있다. 화림동계곡의 농월정에서 시작해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으로 이어지는 정자에 들르면 나 자신이 풍류에 젖어 있는 선비가 된 것과 같은 감흥에 젖어들 수 있다.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으로 연결되는 선비문화는 화림풍류로 일컬어져 함양8경 중 제4경에 들어간다. 선비들은 정자에 앉아 기암을 돌아 흐르는 낭랑한 물소리를 들으며 시문을 주고받았을 터. 연암 박지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용추계곡도 꼭 들려야 할 향기로운 역사 현장이다. 1780년 사신의 일행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청에서 배운 신문명들이 만이 소개되고 있는데, '물레방아' 역시 박지원에 의해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되었다. 그는 실제로 물레방아를 설치, 실용화하는데 성공한 관료이기도 하다. 그 한반도 최초의 물레방아가 바로 이곳 용추계곡에 자리잡았고 당시의 물레방아는 사라졌지만 후대에 의해 '연암물레방아'로 재탄생,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연잎밥으로 상림 연꽃지 여행의 방점을 찍다

녹말 덩어리 연근은 날로 씹어 먹거나 즙을 내서 먹기도 하며, 약재로도 활용된다. 무기질과 리놀레산, 식이섬유 등이 풍부해 피부를 건강하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다. 이에 질세라 연잎도 그 효능을 뽐낸다. 연잎의 효능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흰머리를 검어지게 한다는 것. 게다가 더위를 풀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효능까지 더한다. 연잎밥의 시초는 먼 여행길을 떠나는 사람의 도시락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연잎이 갖고있는 천연방부성분을 선조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해서,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는 사람의 주먹밥은 꼭 연잎밥에 싸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현대에 들어 사찰 음식으로 진화했고, 이제 웰빙 음식의 대표 선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연잎은 곡물과 찰떡 궁합을 이룬다. 요리를 하는 동안 연잎이 곡류 자체의 수분을 유지시켜 주면서 맛을 한층 더 순하고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에 더욱 좋은 밥맛을 내는 것이다.
연잎밥은 연잎 향을 밥 안에 넣어 먹지만 연잎 수제비는 연잎을 직접 먹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잘 씻은 연잎을 바짝 말려서 절구에 빻는다. 분쇄기로 갈아도 되지만 절구에 넣어 손으로 빻는 것이 제맛이다. 간 것은 체에 걸러 거친 입자는 다시 빻는다. 그래도 거친 입자는 연잎차로 끓여 마시고 고운 가루는 밀가루와 섞어 수제비 반죽을 한다. 연잎을 넣은 반죽은 쫀득쫀득하게 찰기가 있어 일반 밀가루 수제비 반죽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상림 초입에 있는 연잎밥 전문식당 '옥연가'(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1033-8, 055-963-0107)는 백연밥상, 연근전, 고동무침, 연근조림을 포함하여 들깻가루로 무친 갖가지 나물 등 반찬이 정갈하면서도 풍성한 상차림으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직접 만든 천연 조미료만으로 맛을 내 음식이 담백하고 많이 먹어도 느끼하지가 않다. 백연냉면, 백연도토리묵, 백연송아지갈비찜, 백연오리불고기, 백연오리전골, 백연오리훈제 등 이 집의 모든 메뉴에는 백연이 들어간다.
'하늘바람'(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5-2, 055-962-8700)은 원래 전통차를 파는 카페인데, 점심 특선으로 개발한 '연잎수제비'가 히트를 치면서 지금은 예약을 하지 않고는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유명 맛집이 되었다. 이 집의 연잎수제비는 연뿌리와 들깨를 갈아 국물맛을 내고 연잎가루를 섞어 반죽해 끓인 수제비다. 반죽에만 연꽃향이 있는 게 아니고 국물까지 연뿌리로 향을 더해 향이 훨씬 진하다. 연잎수제비를 파는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다른 시각에도 주문할 수는 있으나 꼭 전화 예약을 해야 한다.
함양 잠자리
지리산리조트
함양에서 지리산 방면 초입에 있어 집으로 함양을 거쳐 지리산 여행을 하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다. 리조트 앞으로 흐르는 이 엄천강에서 래프팅을 즐길 수도 있다. 가까이에 법화산과 법화사가 있어 마음을 다스리는 사찰기행을 할 수 있다. 민물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고, 라이브 카페와 캠프장도 별도로 있어 이용객의 선택의 폭이 넓다.
주소 경남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762 문의 055-963-5763 www.jirisanresort.com하늘산방 펜션

황석산이 품고 있는 이 펜션에는 용추사에서 떠들어대는 새소리까지 들려와 낭만적 운치를 더한다.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며 통나무로 지은 깔끔한 멋도 한몫하는 곳이다. 각 데크마다 바비큐 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족구나 축구 등 각종 구기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운동장이 있다. 부지 자체가 넓어서 펜션 주변을 빙 둘러 걷는 것으로도 자연 산책로로써 손색이 없다. 또 가까이 용추계곡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주변에 용추자연휴양림, 연암물레방아공원 등도 있다.
주소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722 문의 055-963-1579 www.skysanbang.com상림공원 교통편승용차 88올림픽고속도로 함양 IC - 본백삼거리 우회전 - 함양군청 - 함양3교 사거리 우회전 - 고운교 앞 우회전 - 상림공원 주차장 대중교통 함양시외버스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백전, 대안, 신촌, 중기 행 농어촌버스, 아주택배정류장 하차, 걸어서 상림공원까지 이동. 소요시간 약 30분.
상림공원
주소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1047-1, 문의 055-960-5756 [글 이영근 사진 이영근, 박명화, 함양군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79호(13.05.2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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