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그땐, 훌쩍 가버린 김광석도 나도 미웠었죠"

강수진 기자 2013. 5. 1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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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솔로 2집 낸 동물원 원년 멤버 김창기

포크 그룹 동물원의 원년 멤버 김창기(50)는 의사다. 그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김창기 소아정신과의원'이란 병원을 운영하다가 몇 해 전 '생각과 마음의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정신과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그랬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도곡동 병원에서 만난 김창기는 흰머리가 언뜻 보일 뿐, 선한 생김새며, 검은색 뿔테 안경 차림이 예전 그대로였다. 김창기는 포크 그룹 동물원의 주축 멤버로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혜화동' '널 사랑하겠어' 등 동물원의 여러 히트곡을 쓰고 불렀다. 김광석의 인기곡 '그 날들',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도 그가 작곡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풍경화가 걸린 복도 끝 검사실 바로 옆방이 김창기의 진료실이다. 최근 발매된 솔로 2집 < 내 머리 속의 가시 > 작업 일부가 이 공간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병원 문을 열기 전인 새벽녘, 그리고 환자가 없는 시간 틈틈이 솔로 2집 < 내 머리 속의 가시 > 수록곡을 매만졌다.

1988년 3월 동물원 멤버들이 공연 직전 찍은 기념 사진이다. 김창기는 솔로 2집을 내면서 이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왼쪽부터 최형규, 박기영, 김광석, 유준열, 박경찬, 김창기, 이성우. 푸른곰팡이 제공

김창기가 앨범을 낸 것은 "1999년 개원한 뒤 손님이 없어 만들었다"던 솔로 1집 < 하강의 미학 > (2000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 어느 날 딸(하영·12)이 문득 묻더라고요. '아빠 왜 요즘엔 노래 안 만들어?' 하고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빠의 히트곡이 자주 선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딸아이가 모를 리 없다. "정말, 그동안 왜 음반을 내지 않았습니까?" 같은 질문을 재차하자, 김창기는 미국 야구선수 이야기를 꺼냈다.

"투수 스티브 블래스는 경기장에만 서면 포수에게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은퇴를 했지요. 사람들은 그걸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불러요. 저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노래를 던지지 못했으니 이 증후군을 십수년 앓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동물원을 탈퇴한 뒤 듀오 '창고'로 1997년에 냈던 음반, 그리고 1999년 발표했던 솔로 1집 모두를 사람들이 잘 받아주지 않았어요. 앨범 낸다는 게 차츰 두려웠죠."

딸의 권유로 지난해 9월부터 다시 곡을 쓰기 시작했다. '김창기의 악보에 쓴 일기'라는 블로그도 개설했다. 생각나는 글과 가사, 그리고 휘갈겨 쓴 악보를 일기처럼 올리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채근했다. 4마디, 8마디짜리 노래만 만들다가 어느 순간부터 16마디 노래가 터져 나왔다. 100여개의 노래가 쌓여갔다.

앨범 < 내 머리 속의 가시 > 엔 그중 10개의 노래를 추려 담았다. 타이틀곡은 '광석이에게'다. 야속한 친구, 고 김광석에게 하는 이야기를 노래로 불렀다. 두 사람은 대학 내내 뭉쳐 다니다가 함께 포크 그룹 동물원을 결성했다. 형제나 다름없었다.

'단골집 이모가 제발 싸움은 밖에 나가 하라고 하기에/ 우린 밖으로 뛰쳐나가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고함쳤지/ (중략) 네가 날 떠났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 너를 미워하고 또 날 미워해야 했어/ 왜 내게 말할 수 없었니?/ 그렇게 날 믿지 못했니?'

노래 한 곡이 만감을 담을 수 있다. 화를 내다가 자책하고, 떠난 그를 또 끔찍하게 그리워한다. 정신의학을 전문으로 공부하던 김창기에게 동료의 떠남은 특히 더 뼈아팠다.

"앨범을 다시 낸다는 게 두려웠죠. 딸의 권유로 앨범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 겸 가수인 김창기가 16일 오후 서울 도곡동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13년 만에 나온 자신의 앨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그 자리를 나가지 못했어요. 전임의 과정도 있었고, 나갈 형편도 안됐고…. 그러더니 광석이가 훌쩍 가버렸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저도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친구 팔아먹는다는 소릴 듣기 싫어 타이틀곡으로 하지 않으려 했는데…."

김창기는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노래로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치유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13년 만에 나온 앨범에서 '동물원의 김창기'를 선뜻 떠올릴 순 없다. 추억을 노래하던 소년성과 서정성 대신, 상실의 감정이 자리를 잡는다. 김창기는 이 편차에 대해 "예전의 나를 복제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달라진 건 한두 개가 아니다. 요즘 방식으로 편곡했다. '원해'란 노래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사이키델릭 록 스타일이고, '난 살아있어'는 끈끈한 블루스다. 드럼을 두드려대는 포크록 사운드의 '지혜와 용기'에서는 '우라질'이란 욕설이 등장한다. '머리를 달고 다니지만 말고 한번은 사용해보라고' 하며 야단을 친다. 이별 뒤 느끼는 패배감과 서글픔, 극복이 용이하지 않은 데서 비롯한 공허함도 노래한다.

자발적인 변화를 두고 김창기는 "포크 뮤지션 닐영이 통기타를 버리고 전자기타를 갑자기 들고나온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할 만큼 했으니 이번에는 착한 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면서 "현재의 음악 방식 위에 오늘날 유용한 감성을 올리려 했다"고 말했다.

올해가 동물원 데뷔 25주년이다. 배영길, 박기영, 유준열 등 다른 동물원 멤버들은 최근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물원 7집 이후 김창기는 팀 활동에 동행하지 않았다.

"각자의 삶이 원하는 것도 달랐고, 충돌도 있었습니다. 자주 연락하고 술잔도 기울입니다. 20주년 때 만나서 함께 공연을 하려고 했는데, 제가 따라가는 게 벅차더라고요. 더 연습도 해야 했고요. 제게 동물원은 이런 겁니다. 숨어 있다가 갑자기 다시 확 올라오는 바이러스 같은 거요."

딸의 반응을 물어야 했다. " '왜 노래 10개가 다 비슷하냐'고 그러던데…."

"아이들은 대체로 '시크'하지 않냐?"고 거들었더니 김창기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 뒤 환하게 웃었다.

<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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