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광풍에 '잃어버린 마을' 영남동엔 적막만
멈춰선 유적지 복원·정비, 정부지원 끊겨 '요원'
(서귀포=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곧게 자란 왕대나무 숲, 화전갈이 계단식 밭, 물이 마르지 않은 옛 우물터….
제주4·3사건 65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오전 서귀포시 대천동 '잃어버린 마을' 영남동에서는 아픈 삶의 흔적들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옛 탐라대에서 제2산록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3∼4km로 가면 비탈지고 구불구불한 영남동으로 흐르는 길이 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재잘거리는 새 소리가 적막을 깬다. 마을 앞에는 고근산이 솟아 있고 남쪽 먼 곳에는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강정마을과 서귀포해안이 한눈에 펼쳐진다.
영남동은 1800년대 중반부터 사람들이 모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생활이 어려웠던 제주도 내 각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기 시작했던 곳이다. 한 때는 50가구가 넘게 거주하기도 했다.
마을 안에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 표지석에는 '주민들은 감자와 메밀, 콩 등을 주식으로 삼았고 목축을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영남동이 본적인 이상진(70)씨는 "어릴 때 감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 먹던 일, 밤을 주어다가 삶아 먹었던 추억 등은 여전히 생생하다"고 말했다.
영남동은 제주의 근대사와도 얽혀 있다. 주민 6명이 1918년 법정사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25세인 김두삼씨가 후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기도 했다. 또 마을 일부 주민이 1901년 이재수가 이끄는 난 등 여러 항쟁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남동도 산간지역마다 몰아친 4·3의 피바람을 피해가진 못했다. 4·3 당시인 1948년 11월 20일 50여명의 주민들이 희생되고 마을이 모두 불에 타 잿더미가 됐다. 남은 주민들도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다. 이렇게 설촌 100년의 영남동은 잃어버린 마을이 돼버렸다. 현재는 1966년 육지부에서 이주해 온 농민 가족만 살고 있다. 4·3의 광풍이 지난 이후 사람들이 이주해 오는가 싶더니 지금은 가옥 수채만 부서진 채 남아 을씨년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개발의 바람을 타고 영남동의 땅들은 외지인에게 넘어갔기도 했다. 마을로 진입하는 곳에는 휴양펜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여 채에 달하는 이 펜션은 공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를 반복하며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반면 마을의 생활사를 담은 유적인 우물터 등에는 아무런 사람의 흔적이 없다. 지금도 물은 흐르고 있지만 사람의 손질이 없어 이곳이 우물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이 훼손됐다. 또 마을 한편에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였을 뿐 그 외에는 이곳이 4·3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기 어려울 정도다.
제주도는 2007년 제주4·3유적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146억원을 투입해 4·3 관련 유적지 597곳 중 19곳을 정비, 4·3 교육현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 대상에 영남동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북촌 너븐숭이와 섯알오름 학살터, 낙선동 4·3성 등 3곳만 추진된 뒤 중단됐다.
지난 2010년부터 유적지 정비를 위한 국고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남동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적지에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흔적이 훼손돼 사라지고 있다.
강남규 제주4·3연구소 이사는 "역사적, 생활사적 의미를 담은 제주 4·3의 원초적 유산을 보여주고 다가설 수 있게 유적지의 원형을 복원·정비해 평화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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