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감 경험이 '7번방의 선물' 배경.. 절대 낙담하지 마세요"

하경헌 기자 2013. 3. 2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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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6만 관객 동원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 김황성씨

"절망하지 마세요. 저도 아무리 사채업자들이 집에 온다고 해도 잠은 잘 잤습니다."

이환경 감독이 연출한 류승룡 주연의 영화 < 7번방의 선물 > 이 25일까지 관객 1266만명을 넘어섰다. 이 영화는 역대 한국영화 관객수 3위에 올랐으며 코미디 중에서는 첫 1000만 관객의 영화가 됐다. 하지만 '교도소에 딸을 들여와 재소자와 만나게 한다'는 독특한 설정이 실제 구치소 수감 경력이 있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두 번의 수감 생활, 노숙자 생활 등 시련을 겪으며 결국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시나리오 작가 김황성씨(45·사진)다.

김씨는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 말 잘나가던 광고 대행사의 카피라이터였다. 월 6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았고 여러 광고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만큼 전도유망했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IMF 외환위기는 그를 길거리에 내몰았다.

"갑자기 직장을 잃고 집에 있던 돈을 긁어모아 비디오 대여점을 차렸지만 친했던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있었지만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었죠. 결국 몰래 집을 나와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 당시 천호동에 살던 그는 집 앞으로 지나던 561번 버스를 무작정 탔다. 종점은 청량리였다. 4월 아직 겨울의 냉기가 거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때였지만 이틀 동안 노숙자 생활도 했다.

"봄이지만 밤은 너무 춥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길에서 주무셨는데 여기 머물렀다가는 이 분위기에 젖을 것 같아, 주머니에 있던 십 몇만원의 돈으로 고시원 방을 구했습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옆방에 살던 청년이 매일 5만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아무 생각 없이 우체국에 가서 물건을 등기로 부쳐주던 그는 나중에 그 물건이 불법 음란물이 담긴 동영상 CD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장남인 김씨는 결혼을 앞둔 여동생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에 경찰에 쫓기면서도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결국 1999년 아버지에게 사정을 털어놓은 후 경찰에 자수했다. 그렇게 입감하게 된 것이 구치소 '7번방'이었다. 1~3번 방은 독방, 4·5번방은 폭력·살인, 6번방은 마약, 7번방은 경제사범 방이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PC방 사업도 했는데 결국 또 망해버렸어요. 사업 실패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결국 막다른 길에 내몰린 심정으로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어요. 아는 동생 집에 있다가 '교회에 나가보라'는 권유에 길동에 있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죠."

그는 교회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신의 삶을 옮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글은 A4용지 20장 분량이 되기도 했다. 1년 동안 100편의 글을 올렸는데 이 글을 당시 배우였던 김씨의 동생과 매니저도 보게 됐다. 그 매니저가 현재 < 7번방의 선물 > 제작사인 화인웍스 김상은 이사다.

"시나리오 작가 일을 권유받았어요. 일을 시작했지만 5년은 힘들었죠. 하지만 지난해부터 일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경제사정도 나아졌습니다. 이제는 작품당 억대 고료를 받는 대우까지 받게 됐어요."

그는 비슷한 처지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다 보면 언젠가는 볕은 든다는 생각이다. 그는 현재 tvN 드라마 집필에 들어갔으며 영화를 포함, 3~4작품의 스케줄이 밀려 있다.

"작가는 영화의 첫 스태프입니다. 1000만 영화의 작가가 됐다고 다들 치켜세워 주지만 전 이제 내리막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도 많이 쓰고 싶습니다."

<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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