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윤 기자의 쉘위게임]-'신컨'과 '발컨'

박재윤 2013. 3. 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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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새벽 김연아의 2013 세계피겨선수권 쇼트프로그램 연기를 보았다. 2년만의 메이저대회 복귀무대라 혹시 떨려서 실수는 하지 않을까 조금은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지만, 역시 김연아는 이번에도 떨지 않았다. 그런 담대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선천적으로 강심장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실력은 오랜 숙련에 의해 쌓인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은 그래서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꼭 뿌린 만큼 거둬지지는 않는 다는 것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뿌려도 거둬가는 양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라. 공부를 많이 한 순서대로 성적이 나오던가? 이른바 재능(공부는 지능)이라는 영역의 문제다(성공은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이뤄진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다 성공한 사람들이다. 재능의 덕을 1%만 봤다고 하는 것은 재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요, 겸손이다).

아무튼 그래서 필자는 어린 나이에 이미 '공부는 노력 아닌 재능이 좌우 한다'고 깨닫고 적당히 꾸중 듣지 않을 만큼만 하는 묘를 터득했다. 어디 공부뿐이랴? 그림 그리기도, 달리기도, 노래 부르기도 모두 다 재능이 지배하는 구역인 것을 진작부터 깨달았다.

그런데, 그 당시 필자가 재능의 영역으로 인정하지 않은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게임이다. 전자오락실에서 생소한 게임은 동전 한 개를 넣고 10분도 못 넘기지만, 거듭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 동전 한 개로 꽤 오래 즐길 수가 있었다. 아케이드는 장애물이나 돌발 이벤트에 당할 때마다 기억을 했다가 다음 도전 때 피해 넘어가면 되는 거였고, 비행슈팅은 날아오는 총알이나 미사일의 패턴이 하면 할수록 눈에 익어 점점 잘 피하게 됐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게임은 가장 많이 한 사람이 가장 잘한다"는 거였다.

한때 전자오락실에선 '스트리트파이터2' 초고수가 자리에 한번 앉으면 건너편 기기에 앉은 상대를 계속 갈아치우면서 남의 동전으로 공짜 게임을 즐기는 대결(PVP)의 풍경이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도 '그간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부었으면 저렇게 잘할까'하고 생각했지, 고작 조이스틱 한 개에 버튼 6개 누르는데 재능의 차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그런 생각은 동전을 넣지 않고 즐기는 PC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판이었음이 드러났다. 친구와 똑같이 시작하고 거의 같은 시간을 할애하는 데도 현격한 실력의 차이가 나는 걸 발견하게 됐다. 게임도 재능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발컨'이라는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어도 '신컨'(神의 컨트롤)과 '발컨'(발로 하는 컨트롤)은 따로 있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새로 나오는 게임들은 점점 난이도가 높아졌고, 엔딩을 보지 못하는 게임이 쌓여갔다. '쉬움' 스테이지로도 일주일째 엔딩을 못보고 제자리에서 맴도는데, 친구가 '어려움' 난이도로 이틀 만에 최강 보스를 깼다고 자랑하면 굴욕감마저 들었다.

3편까지 나온 '둠'(DOOM)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 때였다. 1인칭 슈팅에 3D 화면이 익숙하지 않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그런데,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결말은 꼭 봐야 직성이 풀리겠는 거다. 엔딩을 볼 실력은 안되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대신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사실을 한 가지 주워듣게 됐다. 바로 '치트키'였다. '둠'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추억의 치트키. 'Ctrl + Shift + ~ (숫자키 1번 왼쪽)'을 누르면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어진다.

투명인간이 되어 적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고, 무기란 무기는 죄다 갖추고 총알도 무한리필 된다. 미로 같은 길 찾아다니기 힘들면 아예 벽을 뚫고 가면 된다. 가장 막강한 치트키는 바로 '무적'이다. 영어로 god을 입력하는 순간 게임 속에서 나는 신의 컨트롤을 넘어 글자 그대로 신(神)이 된다. 그렇게 무적이 되어 신나게 적들을 쓸어버리면서 최종 보스를 물리치고 '둠3'의 엔딩을 보는 순간 뒤에서 보고 있던 '신컨'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 내뱉는다. "재밌냐?"

세상은 컨트롤이 지배하고 사람들은 컨트롤에 열광한다. 김연아 뿐 아니라 류현진, 박지성도 말하자면 컨트롤의 제왕들이다. 스포츠 뿐만이 아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생업에 종사하는 별별 분야의 고수들이 '신컨'을 자랑한다. 수타면을 뽑는 것도, 미용 가위를 다루는 것도 컨트롤이니 말이다. '스타킹' 같은 프로에 나와서 생업과는 관계없는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들도 나름 '신컨'들이다.

게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신컨'들이 주름잡는 세계다. e스포츠 스타들의 신기(神技)는 아예 넘볼 수도 없거니와 아프리카TV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개인방송을 하는 bj들만 봐도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MMORPG는 '발컨'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아주 높다. 팀(파티)을 이뤄 대전을 치를 때 '신컨'은 '발컨'이 당연히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리그 오브 레전드'가 가장 고민하는 건전한 게임문화 조성 문제도 결국은 '신컨'과 '발컨'의 갈등이 원인 아닌가. 카카오 게임하기 플랫폼의 비교적 단순한 게임들도 은근히 '신컨'과 '발컨'의 위화감을 조성한다. '윈드러너'도 '다함께 차차차'도 컨트롤 능력을 가지고 친구들을 등수에 따라 한 줄로 세운다(물론 이런 게임들은 '발컨'이 '신컨'을 누를 수도 있다. 발끈하면 돈으로 누르면 되니까).

게임을 잘하고 못하는 것을 얘깃거리 삼는다는 것은 사실 어찌 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세상에 널린 게임 중에는 얼마든지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고, 고도의 컨트롤이 필요하지 않은 게임도 많기 때문이다. 다만, 게임의 추세가 MMORPG나 SNG 등과 같이 점점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즐기는 쪽으로 나아가는 데다 게이머를 레벨의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게임이 많아져 컨트롤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소지가 있어 하는 얘기다. 게임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것인데, 스트레스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박재윤 기자 parkjy@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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