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늦지 않았음을

2013. 3. 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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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병원을 찾아갔는데, 의사가 말합니다.

"늦었습니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한테 의사의 이 말만큼 끔찍한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말 뒤에 '왜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몰랐습니까?'라는 말을 덧붙이면 설상가상이 됩니다.

'늦었습니다'라는 말은 학원가에서도 '유용하게' 끔찍한 말이 됩니다. 아이의 교육상담을 위해 찾았다가 "늦었습니다!"라는 '진단'을 받은 학부모의 심정은 천길 낭떠러지로 마구 떨어지는 듯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선행학습으로 몇년치 공부를 벌써 다 해놓았는데 그동안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무얼하다 여기에 왔느냐'는 핀잔을 듣게 됩니다. 이날 밤에는 남편까지 들볶이게 됩니다.

이번 호에 실리는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의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에는 이런 유사한 사례가 담겨 있습니다. 최근 제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한 탓에 최효찬 연구소장의 이야기가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모두 '늦었습니다!'라는 진단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한비자〉 유로(喩老)편에 이를 반추해볼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조(趙)나라의 양주가 말 부리는 법을 왕자기에게 배웠습니다. 마침내 양주는 왕자기와 경주를 하게 됐습니다. 양주는 세 번 말을 바꾸었으나 세 번 다 뒤떨어졌습니다. 양주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나에게 말 부리는 법을 다 가르쳤다고 했는데, 아직 다 가르쳐주지 않은 것 같네."

왕자기가 대답했습니다. "방법은 이미 다 가르쳐 드렸는데 말 부리는 법이 잘못되었습니다. 무릇 말을 모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말의 몸이 수레에 차분하게 안정되는 것입니다. 또 부리는 사람의 마음이 말과 잘 맞아야 합니다. 이런 연후에 빨리 달리게 하여 멀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뒤떨어지면 저를 따라붙으려 하고 신을 앞서면 저에게 따라 잡히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대저 누가 멀리 가나 경쟁할 적에는 앞서지 않으면 뒤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든 뒤떨어지든 마음이 모두 신에게 와 있으니 군주께서는 도대체 어떻게 말과 맞출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군주께서 신에게 뒤떨어지는 까닭입니다."

말을 빨리 몰려면 말과 마음을 맞춰야 하는데 상대방과의 경쟁에 몰두하다보면 말을 빨리 몰 수 없다는 것이 왕자기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교육환경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공부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맞춰 자신의 실력을 늘리는 것입니다. 경쟁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뒤떨어지면 어떻게 따라붙을까 걱정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을 때는 따라잡히지 않을까 걱정하면 공부 자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에 이렇게 정답이 나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성적보다 인생을 어떻게 행복하게 사느냐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말과 마음을 맞춰야 하는데, 다른 경쟁자를 신경쓰지 않았습니까? 자녀가 자신의 공부를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수업 진도에 신경쓰지 않았습니까?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의 제목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늦지 않았음을'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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