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 대학로에 가객으로 돌아오는 김광석

2013. 3. 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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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열 기자의 사진으로 본 세상]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리허설 현장

[미디어오늘 이치열 기자]

정말, 그 어느 해보다 길고, 추웠고, 힘들었던 겨울이 지나 가고 있다. 봄바람이 불어 온다. 그 바람을 타고 오는 15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 아트센터 K 네모극장에서 가객 고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첫 어쿠스틱 뮤지컬 <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의 막이 오른다기에, 지난 8일 맹연습이 진행 중인 공연장을 찾았다.

김광석하면 떠오르는 계절은 가을, 겨울인데 왠 봄? 이 뮤지컬은 이미 같은 제목으로 지난해 11월 30일부터 1월 6일까지 대구의 한 소극장에서 초연을 했고 3천명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대구는 김광석의 고향이고 1월 6일은 33세로 생을 마친 그의 기일이다. 그 여세를 몰아 그가 생전에 전설적인 1,000회 공연을 이뤄낸 제 2의 고향 대학로를 찾아온 것이다. 수십억의 예산으로 기획되는 대형 뮤지컬들의 틈바구니에서, 공연기획자의 결혼자금을 포함한 4천 만원으로 시작했다는 작은 뮤지컬. 그것은 TV출연을 멀리 한 채, 기타 하나 메고 전국을 돌며 천회 라이브공연을 이뤄낸 김광석의 노래 인생만큼이나 무모하지만,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은 뮤지컬계의 < 건축학개론 > 이 될 수 있을까?

대구 공연의 소식을 한 페친의 소개로 알게 됐고, 꼭 가겠노라 약속했지만 못 가봐 마음에 걸리던 차에 들려온 서울 공연 소식은 반가웠다. 또 3년 전 봄 서울 조계사에서 열렸던 '4대강 반대 서울선원 개원식'에서 맑고 힘있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가수 '박창근'이 부르는 김광석의 노래가 궁금했다. 그는 이 뮤지컬에서 주인공 '이풍세'역으로 더블캐스팅 됐다.

혜화동 가톨릭 청년회관 뒤쪽에 자리 잡은 아트센터 K 네모극장 4층 어둑한 공연장에는 오후 2시 연습에 참여하려는 배우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 어쿠스틱 뮤지컬 <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의 전 출연진은 총 23곡의 모든 노래를 직접 노래, 연주한다. 오후 2시 연습은 악기 연주로 시작된다. 무대는 라이브 공연을 여는 작은 콘서트장처럼 꾸며지고 고 김광석 씨의 대표곡들이 거의 편곡없이 스토리에 어우러져 연주, 노래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공연이 코앞에 다가온 요즘, 성악 전공자인 지혜연 씨(왼쪽. 26. 주인공 선영 역)는 젬베 연주 실력을 가다듬는데 신경이 곤두섰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김광석의 노래 '일어나'의 악보. 배우들이 대사를 통해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형기획사의 보이밴드 캐스팅에 응한 풍세에게 연인 선영은 묻는다. "김광석 같은 가수가 되겠다며?" 보이밴드에 실패하고 아르바이트로 라이브카페에서 활동중인 풍세를 몇 년 만에 길에서 만난 대학 선배가 말한다. "좋겠다.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잖아."

대구 공연때 서울에서 수능 끝내자마자 KTX타고 내려왔다는 한 여고생은 '십대 감수성에 이 뮤지컬이 맞느냐?'는 연출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단다. "우리는 뭐 안 힘든가요? 노래가 너무 와 닿아요." 그 학생은 보고 나서 조금이라도 후회되면 자신이 표값, 기차삯 다 내주겠다고 장담하며 친구 여러명을 데리고 며칠 후에 다시 공연을 보러 내려왔단다. 다행히 공연 후에 친구들에게 돈을 돌려줄 일은 없었다고.

이치열 기자 truth710@

▲ 대본을 쓰고 직접 제작에 나선 이금구 씨는, 음색과 살아온 인생역정이 고 김광석 씨와 너무 닮았다고 느낀 가수 박창근 씨(가운데. 42)를 5년 전 처음 만나 출연을 설득했다고. 박 씨는 주인공 풍세역과 함께, 연기자들 전체의 연주를 지도, 감독하는 악장 역할을 함께 맡았다. "김광석 선배는 나와 고향도 같고, 포크락하는 후배들에게 귀감이었고, 참가객으로 좋아했기에 평론가들에게 모창, 이미테이션 등의 비평을 들을 것에 대해 두렵기도 했지만, 선배가 어떻게 그렇게 노래하게 됐을까를 집요하게 생각하며 연습하고 있다." 그의 노래 인생에 이번 공연은 큰 도전이자 모험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뮤지컬 <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은 15년 전 대학시절 고 김광석 씨 같은 가수가 꿈이었던 주인공 이풍세가 만들었던 대학 동아리 밴드 < 블루 드래곤즈 > 의 멤버들이 다시 뭉쳐 콘서트를 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15년 간 풍세는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타고, 사랑을 하고, 군대에 가고, 어머니의 지병으로 인해 돈을 벌기 위해 대형기획사에 스카웃 되었다가 실패를 맛보고 실연을 겪는다. 다시 만난 선영의 권유로 옛 친구들과 무대에 서며 잃어버렸던 꿈을 되살려 낸다. 그닥 새롭지 않아 보이는 스토리는 이 뮤지컬이 가감없는 김광석의 노래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듯. 풍세가 겪는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연주되고, 관객들은 노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게 된다. 연출가는 '그것이 바로 광석이 형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뮤지컬 < 울지마 톤즈 > , < 화려한 휴가 > 등의 주연으로 잘 알려진 배우 최승열 씨가 주인공 풍세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그와 동료들이 김광석의 '나무' 전주를 연주하는 걸 듣고 있자니,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김광석 매니아였던 그는 숭실대 실용음악과 입시때 '사랑했지만'을 기타치면서 불러 합격한 기억을 얘기했다. 그는 10년 전 데뷔때부터 '김광석'의 노래로 만들어진 뮤지컬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뤘다. 대구 공연에서 김광석 씨의 팬들로부터 틀린 가사를 지적 받았을 때 창피했다고. 평소 너무 즐겨부르던 그의 노래였는데 습관처럼 잘못 알고 있던 가사들이 있었던 거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대구공연에서는 김광석 씨가 생전에 쓰던 기타 '마틴 M36'과 '오베이션 레전드 1717'이 김광석의 형 김광복 씨의 도움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서울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김광석 씨가 그 기타를 샀던 낙원상가에서 수리를 했지만 17년 간의 세월에 제 소리를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극중 주인공 풍세(오른쪽)는 독백한다. "김광석은 소주다. 내가 기쁠 때도 곁에 있고 내가 힘들 때, 우울할 때도 늘 위로가 되는 친구같은..." 이어 선영은 말한다. "김광석은... 여름날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땀 흘리며 낮잠 자는 아이의 목 사이를 스쳐지나가는 바람. 산들바람. "

이치열 기자 truth710@

▲ 연습중에 팬이 보낸 닭강정 두 박스가 속초에서 배달됐다. 대구 공연에서부터 생긴 팬들의 후원과 격려는 배우, 제작진들의 피로를 날려주는 청량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96년 1월 6일 김광석의 갑작스런 죽음은,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의 감성 깊은 곳에 그에 대한 뭔지 모를 부채의식을 갖게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휴식 시간, 가수 박창근 씨가 놓아둔 블루스 하프 하모니카. 김광석 씨도 생전에 이와 같은 C, G 키의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를 즐겨 썼다고 한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최승열과 호흡을 맞추는 선영 역의 안수빈(26. 왼쪽) 씨는 첫 공연을 앞두고 극중 풍세를 향한 선영의 감정에 깊이 몰입해 가는 중이다. 영화 < 건축학개론 > , < 써니 > , < 클래식 > 등을 보는 것은 그 시절의 감성을 읽는데 좋은 재료가 됐고, 김광석 노래를 잘 듣는 것만으로 극을 이해하는데 큰 힘이 됐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나이 보다 성숙한 배우로서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극장이 문을 닫는 밤 10시까지 연습은 계속된다. 평소 온화한 편인 김재한 연출가(가운데)는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에게 칭찬보다는 개선해야 할 점을 주문한다. 많은 여건이 어려웠던 대구 초연에서는 관객들이 그 부족함을 메꿔주는 놀라운 경험을 했지만 이젠 연극과 공연의 메카 대학로다. 연출가는 말한다. "맘마미아도 6년간 다듬어서 완성됐고, 우리도 10년 내다보고 합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어쿠스틱 뮤지컬 < 바람이 불어오는 곳 > 은 죽은 주인공에게 바치는 추모콘서트 형식이었던 대구 공연의 대본을 과감히 바꿔, 주인공 이풍세가 15년 전 밴드 친구들과 함께 김광석의 노래로 다시 공연을 하면서 잃어버렸던 꿈을 찾아가는 밝은 분위기의 결말을 갖는다. '우울한 내 성격의 8할은 광석이 형 책임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제작진이 준비한 힐링이다. 김재한 연출가는 다시 강조한다. "사람들은 요즘 몸과 마음을 치유하러 숲에 갑니다. 그들은 숲에 가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앉아서 쉬다 옵니다. 김광석을 알고, 그의 노래를 통해 분주히 떠나 보내왔던 자신의 인생을 비춰 보고 싶은, 있는 그대로의 김광석을 추억하고 싶은 분들은 꼭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공연은 3월 15일부터 5월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 K 네모극장에서 열린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http://www.facebook.com/baramcome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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