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가이드'로 변해야

2013. 3. 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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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제는 교과 디베이트다]

▶①대한민국은 '새 교육 탐색 중'② 교육혁명, '교과 디베이트'가 답이다.③ 디베이트 코치, 이런 자질을 키워라.

클릭 한번이면 모든 정보 얻는 시대…주입식 교육은 낡은 방식토의·토론식 수업하면 학생들 스스로 '지식 다루는 법' 알게 돼

지금은 21세기. 2012년 한 해 동안 새로 창출된 정보량이 유사 이래 쌓아온 정보량을 넘어서고 있는 시대, 정보화의 시대다. 산업화 시대에 맞춰진 교육 시스템도 이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학교 교육이 시대를 호흡하는 '살아있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3회에 걸친 시리즈를 싣는다.

"낟, 낫, 낮, 낯, 낱, 났, 낳 : 이 음절들은 끝소리에 올 때 무슨 음으로 바뀌는가?"

이 문제로 지난 2월23일 서울 동교동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세미나실은 시끄러웠다. 중·고 교사가 대다수인 약 60명의 수강생은 6개 모둠으로 나뉘었고, 모둠 안에서 이 답이 '낫'이라는 파와 '낟'이라는 파로 갈려 논쟁했다. 한 교사가 '꽃 위'를 발음해보라고 했다. '꼬쉬'가 아니라 '꼬뒤'로 발음되는 것을 보면 끝소리는 'ㄲㅗㄷ'으로 바뀜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들 이를 수긍했다. 수강생들은 자음 음절들이 끝소리에 올 때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이 된다는 것과 이를 '음절의 끝소리 법칙'이라고 한다는 것도 스스로 찾았다.

'학생 활동 중심의 토의·토론식 수업' 제하의 이 강연에서 수강생들은 강연 연사로 나선 김미향 교사(대구 구암고등학교)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법을 연구하여 서로 가르치고 발표했다. 강연은 '유행가 가사에 나타나는 문법 규칙 검토하기' 등의 실습 위주로 진행됐고 김 교사는 설명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서울 숭실고등학교에서 토론 동아리를 3년째 지도하고 있는 박찬호 교사는 "문법 수업도 토의·토론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며 "교사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발음의 예를 가지고 학생들이 스스로 문법 규칙을 세우도록 하는 방식이 맘에 든다"고 했다. 그는 "올해부터 숭실고에서 운영될 '토론 교실'에서 '화법과 작문', '독서와 문법' 과목을 토론 수업으로 할 생각인데, 어제·오늘 이틀간의 수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은 지금 '(학생이 주체가 되는) 토의-토론식 교육 탐색 중'이다. 위의 강연은 지난 1월21~22일 현직 교사 등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내가 한 토론 수업 나누기'(<토론의 전사> 저자인 유동걸 영동일고 교사 기획, 진행) 강연의 후속 기획이었다. 2월25~26일에는 전남 보성군 벌교고등학교에서 전남 지역 초중고 교사 130명을 대상으로 황연성 서울 예일초등학교 교사의 '교과토론 지도사 2급 과정' 강연(한국디베이트연구원, 한국독서능력개발원 공동 주최)이 있었다.

학생들의 토론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지난해 12월29일 명덕외고에서는 휘문고·현대고·대일고·진명여고 등 10여개교가 연합한 연합 토론 동아리 에스브이디티(SVDT) 토론회에 70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지방자치단체들도 토론 수업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2011~2014 서울 교육 발전 계획'에 따르면 독서·토론·논술 수업의 비중은 2013년 25%, 2014년 30% 이상으로 확대된다.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화성시는 지난해 '토론식 수업 연구 용역'을 발주했고, 올해도 이를 추진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교육 공약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교육 만들기'도 토론식 수업을 지향하고 있다.

사교육에서도 토론, 디베이트가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이 '디베이트'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공무원 승진 시험, 공공기관 입사 시험들도 토론·논술로 바뀌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전사회적인 창의력 교육, 토론·논술 교육이 열기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토론 교육은 아직 정착되지 않고 있다. 공교육은 여전히 주입식 교육이 관성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학교 교사들의 토론 교육에 대한 이해 부족, 토론 수업을 이끄는 노하우의 미비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내가 한 토론 수업 나누기'에 참가한 한 교사는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토론 수업을 했다가 창피만 당했다"고 토로했다.

내신과 수능 성적 등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토의-토론에 학생들이 쉽게 나서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춘천여고의 황석범 교사는 "토론 수업이 단지 재미있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며 "실제 교과 내용이나 성적과 연관이 없으면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 인근에 위치한 ㅎ고등학교의 한 학생은 "우리 학교 학부모들은 성적에 대한 관심이 너무 뜨거워서, 토론 수업은 말도 못 꺼낸다"며 "토의나 디베이트는 수능시험이 끝난 다음에나 겨우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의 선택 우선순위는 수학·영어·국어 순이다. 내신 및 수능 위주로 선발하는 입시제도 때문에 교과목 성적은 '발등의 불'이고 토의·토론은 '먼 산의 불'이다. 이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한번 시켜볼 만한 교양" 정도로 치부된다. 그나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즌에는 내신 공부에 밀려서 수업이 중단된다.

그러나 학생이 주체가 되어 진행되는 토론식 수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서 클릭 하나로 접근 가능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교사가 지식 전달식으로 교육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지식, '메타 지식'이다. 학생들은 교사가 먹여주는 지식을 꾸역꾸역 먹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가 갖고 놀아야 한다. 교사의 역할은 '가르치는 것'에서 '지도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선생님은 교사가 아니라 가이드·멘토·코치 등으로 불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수업이 학교에서 가능할 수 있을까? 토의·토론·디베이트를 교과와 연결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디베이트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는 교과와 유리된 '교양' 혹은 '게임'에 불과했다. 디베이트가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혹은 교사로부터 진짜 주목을 받으려면 그것이 교과 과정과 연결되고 성적과 연결돼야 한다.

사실은 현재의 교과과정에도 토론이나 디베이트는 들어 있다. 예컨대 고등학교 사회·윤리·법과정치·국어 과목 교과서들 중에는 토의·토론을 중심으로 꾸며진 것들이 많은데 이를 살려서 수업시간에 토론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론식 수업을 위한 교과과정의 재구성, 교재 재정비, 그에 따른 수업 방식의 개발 등이 필요하다. 방과후 수업의 경우, 토론 수업이 인기가 많기 때문에 우선 방과후 수업을 중심으로 디베이트 수업을 정착시키는 것도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김왕근 한국디베이트연구원 이사 slb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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