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기 무분별 거래 "누간가 나를 감시하고있다"

김형원 기자 2013. 2. 28.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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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통해.. 불륜 뒷조사 하거나 원한관계 등 범죄에 악용

"지금 (추적) 차량 출발합니다. 따라붙겠습니다."

'불륜 현장을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심부름업체 직원은 업체 대표 이모(여·50)씨에게 이런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냈다. 업체 직원은 4~5일 동안 서울 송파구, 강동구 등지에서 의뢰인이 지목한 차량을 쫓았다. 미행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엄지손가락 크기의 위치추적기. 이것을 사람이나 차량에 부착하면, 인터넷 사이트에서 1~5분 간격으로 동선(動線)을 파악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처럼 지도 위에 차량의 움직임이 뜬다.

27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2011년 1월부터 작년 8월까지 130여명으로부터 배우자 불륜 등 뒷조사를 해달라고 의뢰받고, 남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미행한 혐의로 심부름센터 대표 이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불법적으로 사용되는 줄 알면서도 위치추적기를 사서 아내에게 전달한 남편 최모(55·법률사무소 사무장)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그는 아내로부터 불법 수집된 정보를 전달받아, 심부름센터를 찾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이혼 소송 준비까지 해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인터넷 등에서 위치추적기가 무분별하게 팔리면서, 범죄에 악용(惡用)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행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추적 대상자의 동의 없이 개인의 위치정보를 수집·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도 안산에 사무실을 차린 이 심부름업체는 모두 4대의 위치추적기를 구비, 배우자 뒷조사 등을 해주며 2011년부터 약 1년 동안 3억원을 벌어들였다. 심부름업체 직원은 인적이 뜸한 새벽 시간대 추격을 요청받은 차량의 트렁크 밑바닥에 위치추적기를 붙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일 조직폭력단 '거북이파' 조직원인 곽모(25)씨는 위치정보서비스로 가출소녀를 감시하면서 성매매를 강요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지난 21일에는 사망 사건 발생 시 경찰과 함께 현장에 출동하는 검안 의사의 차량 뒤 범퍼에 위치추적기를 몰래 부착한 장의업자 김모(42)씨가 구속됐다. 그는 "다른 장의업자보다 먼저 시신을 확보하기 위해서 몰래 위치추적기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작년에는 위치추적기를 단 자신의 제네시스 차량을 중고로 팔고, 이후 인천시 남구 학익동 주차장에서 복제키로 팔았던 차량을 다시 훔친 김모(34)씨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위치추적기 거래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불법적 위치추적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점이다. 한 위치추적기 판매업자는 "미아 방지나 등산용 등 합법적인 이유로 위치추적기를 구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구매를 원하는 고객 대부분이 '이놈, 저놈'하며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추적 대상자와 원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3시쯤 본지 기자가 "바람피우는 아내를 쫓고 싶다"면서 18만원 상당의 미아방지용 위치추적기 구매를 시도했다. 판매업자는 "위치 추적을 받는 사람이 누군지 적고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는 절차가 있지만, 그냥 고객님이 자신에게 위치 추적을 걸어놓는다고 서명하고 쓰면 된다"며 "들키더라도 몰래 남의 차량에 부착할 경우 위치정보보호법에 걸리긴 하는데, 벌금형 정도"라고 말했다.

위치추적기 판매업체들은 대부분 "사람 추적, 외도 문제 해결하는 위치추적기!" "남편·아내 추적하는 기계 ○○" "자석으로 부착해 남편에게 들킬 필요없이 확실히 외도 장소를 파악할 수 있다"고 광고하면서 불법사용을 조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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