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리 북유럽80일]'성실DNA' 덴마크 입양한인들

신동립 2013. 2. 1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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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 53 >

오르후스에서 오덴세로 이동하는 아침. 숙소인 시티슬립인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갈만한 거리이긴 하나 무거운 짐과 함께는 무리라 올때처럼 택시를 탈 생각으로 리셉션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저가 숙소에 머무르면서 가까운 거리도 1박 숙박비보다 비싼 택시를 타는 것이 좀 우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돈을 아낄 목적도 좀 있었지만, 호스텔을 선택한 것은 공동숙소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려한 의도였으니까. 택시는 시간 맞춰 도착했는데 운전기사는 동양인이다. 여기서는 좀 작아보일 수 있으나 보통 체구에 웃는 얼굴을 한 인상이 무척 밝고 좋은 젊은이다.

그를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여기서 동양인 보기 힘든데 반갑다, 어디서 왔냐" 물었더니 "당신은 일본인이냐"고 한다. 그래서 "난 한국서 왔다"고 하니 "나도" 하기에 반가워 나도 모르게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그럼 한국말로 얘기하죠" 했더니, 영어로 "난 한국어는 할 줄 모른다. 입양됐다"고 밝힌다. 솔직히 입양인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 같은 것이 있었기에 친구가 되고 싶을 만큼 굉장히 유쾌해보이는 이 청년이 입양인이라고 하자, 잠시 당황했다.

자신의 부모, 자신이 온 연원을 알 수 없이 그저 이국땅에 강제이식된 이들에게는 블랙홀 같은 것을 안고사는 듯한 고통이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천성일지 아니면 좋은 환경이나 교육의 힘일지, 햇살처럼 좋은 에너지를 마구 뿜어내는 이 청년을 통해 편견을 싹 지울 수 있었다. "난 저널리스트인데, 명함 줄테니까 혹시 나중에 필요하게 되면 연락달라" 했더니 "안그래도 명함을 달라고 할 참이었다"며 경력이 얼마나 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얘기하면 내 나이가 대충 들통날테지만 십몇년 됐어"하고 알려줬다. 그의 이름을 물었는데 "너에겐 너무 어려울 걸" 한다. 정말 그렇다. 발음부터 너무 낯설어 자꾸 물어보기도 뭣하다. 사실 덴마크어는 유난히 발음하기 힘든 독특하고 강한 고유의 악센트를 가져서 이웃나라들에서는 덴마크어 발음을 놓고 종종 개그나 유머 소재로 삼는다.

본래 계획은 오덴세행 기차를 타기 전에 역사에 있는 우체국에서 일부 짐을 한국으로 부칠 예정이어서 우체국 앞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웬일! 우체국이 오전 10시나 돼야 문을 여는 것이다. 아무리 노동시간이 적은 나라라고 하지만 우체국같은 국가기간사업에서 사용자의 편의는 전혀 고려 않는건가, 기가 막혀온다. 문이 잠긴 우체국 앞에서 황당해하는 나를 보더니 입양인 운전기사가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자기가 대신 부쳐주던지 도와주고 싶다고 나선다.

그래서 많은 짐을 보내야하기에 오덴세로 가서 처리하겠다며 "어떻게 우체국이 이렇게 늦게 문을 열 수 있니" 하니까 "한국에서는 일찍들 문을 열겠지" 하는데, 왠지 그의 어조에서 막연한 그리움같은 것이 묻어난다. 덴마크인들이 참 친절하다는 것은 며칠 경험으로도 충분히 알았지만 그의 싹싹한 배려가 심히 고맙다.

오전 9시28분 출발하는 오덴세행 덴마크 국철(DSB) 좌석을 예약하면서 오덴세역에도 우체국이 있는지 혹시 아냐고 물으니 아마도 근처에 있을거라고 알려준다. 내가 탄 인터시티(도시간 빈발특급열차)는 좌석 예약을 하면 짐을 올려놓는 철제 보드에 장착된 작은 모니터에 목적지가 전산입력돼 붉은 글자로 표시되는 신기한 시스템이다.

예약직원이 가격은 같으니 보통좌석과 사일런스 좌석(휴대폰 통화 등이 금지된 조용한 좌석) 중 선택하라고 해서 좀 조용히 가볼까해서 사일런스 좌석을 선택했는데, 4명이 마주보는 가족석 맞은편 좌석에 젊은 연인이 타면서 조용함과는 거리가 멀게 됐다. 입장부터 소란스럽다. 어찌저찌 자리를 교환해 나란히 앉게 된 젊은 남녀는 열렬히 사랑에 빠져있어 주변 사람은 보이지 않나보다. 손을 꼭 붙잡다 못해 여자가 남자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서로 쓰다듬고 입을 쪽쪽 맞추고 뭐라뭐라 사랑을 속삭이고 아주 좋아 죽는다.

근데 문제는 다리는 꼬고 앉은 여자가 남자에게 기대 몸을 연신 비틀어대면서 한쪽 다리로 내 다리를 계속 툭툭 차는 것이다. 새빨간 슬리브리스 원피스에 걸맞는 플랫폼 샌들을 신고 있어 두터운 바닥때문에 자신은 내 다리를 계속 걷어차고 있다는 것을 못느끼나보다. 참다못해 "좀 조심할래, 내 다릴 계속 차자나" 했더니 별로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발을 치운다. 할리우드 스타 벤 애플렉을 닮은 미남과 좀 많이 그을린 피부에 쇼트컷트가 잘 어울리는 미녀, 젊은 선남선녀의 요란한 애정행각이 묘한 부러움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주변에 앉은 노부인들은 각자 뜨개질을 하거나 하면서 본 척도 않는다. 이게 사생활 존중이라는 건지. 요즘 한국에서도 공공장소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 않고 애정표시를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모습에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통로쪽 자리라 창밖을 내다보기에도 힘들고 시선을 둘 곳이 영 마땅치 않아 여행안내서에서 다음 기착지인 오덴세 페이지를 찾아 열심히 읽어보고 있는데, 이 아가씨가 갑자기 한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남자친구에게 "이 글자 봐, 너무 예쁘다"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사랑에 빠져있으니 뭔들 아름답지 않으랴. 그래서 "이건 한국에서 쓰는 과학적인 글자야"하면서 이름을 물어 그녀의 이름을 한글로 포스트잇에 써서 줬다. 그녀의 이름은 '미아'. 객차 안에서는 속도가 영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와이파이도 이용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해봤더니 오르후스 시티슬립인의 리셉션에서 일하는 붉은머리 청년에게서 이메일이 와있다. 내가 빨래하다가 꽃무늬 손수건 두장을 두고 간 것을 발견했으니 찾으러오라는 내용이다. "이미 오르후스는 떠나는 열차 안에 있다"고 답장을 보내는 수밖에.

◇'천재' 안데르센의 종이오리기 예술솜씨

오덴세는 덴마크 제2도시 오르후스가 있는 유틀란드 반도와 수도 코펜하겐이 있는 셸란섬 사이 푸넨섬에 있는 제3도시다. '동화의 아버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으로, 작은 시골 마을을 상상했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소도시로 발전했다.

오덴세 역 도착은 오전 11시5분. 오덴세에서는 1박2일 머무를 예정으로 단호스텔(덴마크 유스호스텔) 오덴세시티를 예약했는데 기차역 바로 옆, 굉장히 편리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이 호스텔을 광고하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벽면에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건물이 역사에 바로 붙어있긴 하지만 통해있진 않아 역사 밖으로 나가 입구를 찾아야한다. 체크인을 하기엔 이른 시간이라 리셉션 옆 창고에 짐을 맡겨 놓고 집으로 부칠 짐을 들고 우체국을 찾아 나섰다.

역사 반대편 출구쪽 철도박물관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해서 어림짐작으로 계단을 내려가다가 마침 거슬러 올라오는 여자에게 우체국 위치를 물었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는데, 그 뒤에 오는 남자가 "아, 우체국!" 하며 창밖에 보이는 건물을 가르키며 알려준다. 푸른눈을 빛내며 환하게 웃으며 가는데 역시나 벤 애플렉 스타일로 잘 생겼다. 벤 애플렉이 물론 덴마크 혈통은 아니지만, 덴마크 남자들이 친절하고 인물이 좋은 것은 인정해야겠다.

우체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허리 높이의 창구 아래쪽을 파서 무거운 짐이나 가방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선반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편의적 인테리어 아이디어는 적극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여행기를 쓰려다보니 현지에서 구한 안내책자 등의 자료들이 버리지 못했고 점점 늘어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웬만한 것은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자료화를 했는데도 그렇다.

게다가 날씨는 지나치게 더워져 나중일은 생각도 않고 어떻게든 짐을 줄여야겠다는 마음에 간절기 방수재킷과 후드재킷까지 싸서 보냈다. 거의 6kg 가까이 되는 짐을 덜어내니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다. 기분좋게 역사 안의 식당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신기한 것은 한국의 '델리만쥬'가 여기까지 진출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머리 요리사 캐릭터가 옥수수 모양의 작은 크림 케이크를 들고 있는 광고판이 여기도 똑같이 붙어있다.

과연 이 케이크가 덴마크인들의 입맛에도 맞을까, 슬쩍 들여다보니 델리만쥬는 안보이고 샌드위치만 주로 테이크아웃해간다. 나는 좌석이 널찍한 선셋블러바드 가게로 들어가 연어 샌드위치를 하나 시켜 먹었다. 반바지를 입은 10대 소녀 둘이 들어오더니 내 옆자리에 빈 음료수통과 영수증을 놓아 자리를 맡아놓고 샌드위치를 받으러 갔는데, 한 뚱뚱한 젊은 여자가 들어오더니 이것들을 치우고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가 앉는다.

좁은 탁자사이를 지나는데 대충 걸쳐입은 바지가 질질 흘러내리며 엉덩이골 사이에 털난 것까지 다 보인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데 아마 한국에서의 나였더라면 당장 먹던 것을 내려놨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먹고 힘내서 제한된 시간내에 다시 못볼지도 모르는 것들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한다. 꾸역꾸역 다 먹고 걸어서 시청사에 있는 관광안내소까지 걸어갔다.

도시는 현대적인 건물로 채워져가고 아스팔트대로가 뚫려져있지만 옛모습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듯, 골목골목 들어가보면 포석이 깔린 길과 천정이 낮고 장미덩쿨이 벽을 따라 자라는 예쁜 옛날식 집들이 동화속 마을처럼 잘 보존돼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오르후스에 관광안내소가 없어진 것에 다소 충격을 받았기에, 이곳 관광안내소의 친절한 환대가 더할 나위없이 반갑다. 주요 명소에 번호를 매겨 입장료와 개장시간까지 간단한 표로 만든 팸플릿까지 자료들도 충실하다.

상세한 안내를 받고 나오는데 보니 일본인 여직원도 있다. 걸어오는 도중 중국인 가족이 놀러온 것도 봤는데, 안데르센을 보러 아시아에서도 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나보다. 하긴 일본은 '빨간머리 앤', '닐스의 신기한 모험' 같은 유명 서양동화를 줄줄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만큼 서구 아동문학에 열광적이니까. 아마 안데르센 동화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도 서구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일본 책을 중역한 것이었을 테다.

안내소를 나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안데르센 아동기 생가. 안데르센이 2살부터 꿈을 찾아 코펜하겐으로 떠났던 14살까지 살았던 곳으로 7,8월에는 오전10시~오후4시 개장한다.(입장료 30크로네) 안데르센이 자서전에 묘사해놓은대로 고증해 다시 꾸며놓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키는 중년부인은 방문객 한사람 한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데, 벽에 걸려있는 그림까지 안데르센이 살았던 시기(1805~1875)의 것을 구해 복원했다고 한다.

안데르센이 종이오리기 예술에도 천재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종이를 접어 오려 예쁜 문양이나 갖가지 모양을 대칭으로 만드는 방법인데, 안데르센이 무척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로 만든 소박한 가구들과 생활용품, 구두수선 도구들, 나막신까지 가난한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던 안데르센의 어린시절의 삶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입구쪽 가까운 방은 오덴세의 옛 풍경과 풍속을 담은 스케치와 그림과 옛 사진, 자료들을 옹기종기 입체적으로 늘어놓아 안데르센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 안내문은 주로 안데르센의 자서전 '내인생의 동화'에서 따온 구절들을 인쇄해 붙여놓았는데 세계5대 자서전에 들어가는 만큼 진솔한 구절들이 마음을 울린다. 액자에 넣어 전시해놓은 그의 친필원고도 볼 수 있다.

인근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성 크누크 교회가 있는데, 안데르센이 견신례를 받고 변성기가 오기전까지 성가대 활동을 했던 곳이라도 해서 들어가보았다. 희게 칠한 회벽에 금박 성물들로 장식돼있는 것은 여느 덴마크의 오래된 교회와 같은데, 1086년 오덴세에서 암살당한 크누트 왕을 기리는 교회로 그의 유해가 유리관안에 놓여져 그대로 전시돼있는 것이 흥미롭다.

◇어린이들의 안데르센 캐릭터 퍼레이드 쇼

더위를 식힐겸 시청 앞 광장시장 아이스크림 차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고 안데르센박물관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박물관 앞 잔디밭에 꾸며놓은 미니궁전에서 여름철 마다 오후3시에 안데르센 퍼레이드 쇼가 무료로 펼쳐진다. 잔디밭에는 벌써부터 부모와 함께온 아이들이 그득히 자리를 잡고 있다. 24분간 24명의 안데르센 동화 속 캐릭터가 나온다. 가장 먼저 안데르센을 상징하는 높은 검은색 중절모를 쓴 안데르센 캐릭터가 나와서 뭔가 설명을 하며 시작되는 쇼인데 물론 덴마크어라 알아듣을 순 없다.

그러나 쇼는 대개 음악에 맞춰 캐릭터들이 등장해 모션을 보여주는 형식이기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벌거벗은 임금님과 사기꾼 재단사들, '양치기 소녀와 굴뚝청소부'에 나오는 중국인 인형부터 갖가지 인형들, 장난감병정, 성냥팔이 소녀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화 속 캐릭터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대개 어린이들이 분장을 했다. 바로 옆 연못에는 인어공주로 분한 여자아이가 초록색 가발과 인어꼬리를 달고 물속 바위위에 앉아있다. 금발의 어린아이들이 분장한 모습이 귀여워 눈을 뗄 수가 없다. 쇼가 끝나면 캐릭터로 분장한 배우들이 직접 무대 아래로 내려와 쇼 사진이 인쇄된 엽서를 팔며 아이들과 함께 사진도 찍어준다.

쇼가 끝나고 안데르센 박물관인줄 알고 들어간 곳은 바로 박물관 옆에 붙어있는 퓌르토이에트 어린이문화센터다. 재밌는 것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 95크로네로 입장료가 같다. 주로 아이들이 즐기기 위한 시설이어서 그런가보다. 날씨가 무척 더운데다가 현지학교들이 방학에 들어갔고 관광객들은 여기까지 잘 오지 않는지 직원도 한명뿐이고 한산하다. 안내 팸플릿을 좀 달라고 했다니 그나마 영어로 된 것은 다 떨어졌다며 일본어로 된 것을 내민다.

2층건물에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다락방이 있는 크지 않은 규모지만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잘 갖춰놔서 꼼꼼히 살펴보게 됐다. 1층에는 조그만 원형극장과 아이들이 직접 타볼 수 있는 선박 모형, 구름다리 등이 갖춰져 있고 경사로를 따라올라가면 나오는 2층에는 아이들이 시장 등을 간접체험해볼 수 있는 세트들, 안데르센에 나오는 캐릭터로 분해볼 수 있는 분장실,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미술실 등이 갖춰져 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낮12시와 오후2시에 아이들이 캐릭터로 분장해 연극도 하고 놀 수 있도록 자신이 지도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구석진 공간을 좋아하기 마련인데, 틈새에 동굴처럼 벽을 판 좌석이 있는가하면 천정을 유리로 만든 좁은 다락방에는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고정 나무판의자를 배치해놨다. 이곳과 박물관 모두 오후5시면 문을 닫아 서둘러야하는데, 박물관은 내일 짬을 내 들러볼까 하다가 막상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들어가보기로 했다.

1908년 안데르센 탄생 103주년을 맞아 개관했고, 2005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했다는 박물관의 외관은 유리로 멋들어지게 지어졌다. 외부의 푸른 정원과 연못이 그대로 내다보이는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한다. 입장료는 75크로네, 17세이하 어린이는 무료다. 덴마크는 며칠째 평균기온 보다 훨씬 높은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표를 파는 남자직원은 불쾌지수가 높은 날씨에 취약한지 상당히 짜증스러워한다.

솔직히 나도 무척 지쳐있던 차라 그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폐관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도입부는 주로 안데르센의 일생에 대한 전시다. 당시 평균키보다 25㎝는 컸던 185㎝에 달하는 키, 쑥 들어간 눈과 큰 코 등 못생긴 외모에 대한 묘사와 간암으로 숨질 때까지 평생 치통에 시달렸다는 얘기 등 위인에 대해 마냥 신격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전시관 하나는 안데르센이 직접 종이를 가위로 오려만든 종이예술과 스케치 등을 전시해놨는데 글쓰기에서 뿐만 아니라 조형적 능력도 천재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된 안데르센 동화를 모아놓은 도서관도 있는데, 아마도 지구 구석구석까지 안데르센의 동화가 전파되지 않은 곳이 없을 듯싶다. 족히 만 권은 될듯한 책들 중 한글로된 안데르센 동화집들도 책장 한칸을 차지하고 있다. 중심부에 있는 높은 돔 천정을 한 멋들어진 메모리얼홀을 지나면 한 귀퉁이에 안데르센이 태어난 집이 보존돼있다.

이 박물관의 구조가 좀 신기한 것이 안데르센의 생가의 외벽과 그대로 이어지게 지어 생가가 박물관 내 한 전시관처럼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여행안내서에 따르면 안데르센은 이곳에서 태어난 것을 부정했다고 하는데, 관광안내소에 이에 대해 물어봤더니 "안데르센이 성공한 다음에 고향에 왔을 때 이곳이 너무 누추해서 부인하게 된 것"이라는 대답이다. 박물관에도 1867년 오덴세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후 신문기사에 이 집에 생가로 소개되자 안데르센이 부인한 것은 신생아 30%가 사생아로 태어나는 빈민가와 연루되는 것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또 안데르센이 유독 그의 집안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그가 자신의 가계에 대해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가난, 간음, 정신병, 알코올중독 등으로 얼룩진 가계가 명성에 해가 되리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랬기 때문인지 여행을 준비할 때 찾아본 관련 사이트에는 안데르센이 왕자였다는 황당한 주장도 있다.

역사학자 엔스 외르겐센(Jens Jørgensen)이 '안데르센의 진짜 동화'라는 책에서 안데르센이 국왕 크리스티안 8세와 롤위거 백작부인 사이의 사생아일수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안데르센이 명성을 얻은 후 아말린부르크궁에서 거주했던 일 왕실의 특별한 비호를 받았던 일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안데르센에 관련한 필름을 볼 수 있는 작은 상영관과 지하에는 안데르센에 대한 궁금한 것들을 상세히 풀어놓은 전시관도 있지만, 폐관시간이 다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이 크지만 나도 상당히 지쳤다. 날은 더운데 레고랜드에 갔다가 벌에 쏘인 듯한 부위는 퉁퉁 부어올라 가렵다 못해 통증까지 야기한다. 오덴세는 시청 주변에 주요시설들이 몰려있어, 근처 대형약국에 가서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을 하나 사고 기운을 좀 내야할 것 같아서 스테이크 한덩이를 사먹으러 갔다. 시청앞 광장시장이 내다보이는 A HEREFORD BEEFSTOUW라는 전문점인데 여행하는 동안 이렇게 입맛에 맞고 만족스러운 스테이크를 먹은 일은 전무후무했다. 일단 쇠접시를 달구어 먹는 동안 내내 고기가 식지 않는데다가 버터를 풍부하게 사용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호스텔로 돌아와 배정받은 2층 방으로 올라갔다. 작은 방 양쪽벽에 침대 2개씩을 고정해놓은 4인실이다. 자리는 바꿔줄 수 없다며 1번 침대를 이용하라고 해서 2층 침대로 간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는데 천정이 높은 만큼 웬만한 한국여자 키높이가 될만해 아찔하다. 나름 좁은 공간을 활용하느라 접이식 의자를 벽걸이에 걸어놓은 것이 눈에 띈다. 주황색으로 칠해놓은 벽과 작은 관엽화분이 걸려있는 창이 깔끔하고 세련된데, 창밖을 내다보니 옆 건물은 철도국 직원들의 숙소인가 보다. 제복을 입은 이들이 내내 들락날락한다.

역사 옆에 붙어있어 이동이 쉬운 것은 장점이나, 기차가 지나가는 덜컹대는 소리를 견뎌야한다는 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마침 방을 같이 쓸 여자 2명이 들어왔는데 반갑게도 20대 한국처자들이다. 이들은 이날 인터시티를 타고 레고랜드에 다녀왔다고 한다. 빌룬에는 기차역이 없으므로 인근 도시에서 내려 코치버스로 갈아탔어야했을 것이다.

나는 배도 그득차고 샤워를 하고 나니 좀 기운이 나서 오후9시 부터 한시간동안 진행된다는 야경꾼 투어에 나가보기로 했다. 16세기 오덴세의 밤을 지키던 야경꾼으로 분한 가이드가 역사보존지구로 지정된 안데르센 박물관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거리의 유래와 안데르센의 실화 등을 들려주는 행사다. 1991년 시작돼 6월25일부터 8월31일 사이에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진행되며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17세기 지어진 목조건물에 입주한 Den gamle Kro라는 유명한 레스토랑 앞에 모여 출발한다는데 백야의 영향권이라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늦은 시간, 걸음걸이가 처진 탓인지 출발시간을 놓치고 레스토랑도 찾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인근 래디슨블루 H C 안데르센 호텔로 들어가 물어보기로 했다. 리셉션에는 뚱뚱한 몸집의 동양인 처녀 혼자 근무중인데 앞 선 손님을 친절히 도와주고 있다. 대개 고급호텔 리셉션니스트들이 친절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유난히 야무지게 일처리를 하는 듯이 보였다. 묻지는 않았지만 한국 입양인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덴마크에서 덴마크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동양계 직장인이라면 뻔하지 않는가.

물론 덴마크령 그린란드에도 황인종 원주민이 살고 있어 그들이 본토로 온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그녀가 한국계라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한인이 입양된 수로 따지면 미국이 1위라지만 각각 1만명 정도씩 입양된 덴마크와 스웨덴은 워낙 인구수가 적어 인구대비 한인 입양인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민간단체를 통해 입양돼 정확한 수도 파악이 안된다는데 부끄러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다.

한국이 입양인들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만 한국인의 '성실 DNA'가 그녀에게도 흐르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미안해하면서 이 야경꾼 투어를 놓쳤다고 하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더니 "이 주변을 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나가서 돌아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녀 말대로 주변 거리를 걷다보니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골목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 꼬리를 따라가보니 푸른색 야경꾼 제복을 입은 흰 머리의 남자가 원맨쇼를 벌이고 있다. 인근 레스토랑에 들어가 포도주 한잔을 얻어 마시며 상황극을 펼치기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결정적으로 덴마크어만을 사용한다는 것.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재미가 없다. 할 수 없이 기념사진 몇 장만 찍고 너털너털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 2012년 7월27일 오르후스에서 오덴세로 >

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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