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에 걸린 아들..'그래도 사랑합니다'

박용하 기자 2013. 2. 1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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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요? 다른 곳에 못가죠. 큰집 며느리가 의사인데 어떤 눈으로 보겠어요. 또 우리 아이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막 할텐데… 이젠 두렵기도 해요"

지난 6일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한 음식점에는 정신질환자 가족들의 모임 '서울심지회' 회원 7명이 모였다. 이 모임은 망상장애·조현병(정신분열증) 등 '정신병적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 부모들이 3년전 모여 만든 단체다. 현재 6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해있다.

이들은 한달에 한번씩 모여 환자 부모로서 겪는 애환을 털어놓고, 치료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한다. 설 연휴를 나흘 앞둔 이날 기자가 들어본 이들의 사연은 더욱 절절했다.

기자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는 '서울 심지회' 회원들 | 안종재 인턴기자 ■ 우리 가족의 인생이 바뀌었던, 그때 그 순간= "조현증은 뇌의 병이에요. 생각과 감정이 동시에 들어가 혼란·망상·환청 등을 일으키죠.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고, 여린 사람인데 죄인 취급하곤 하죠. 가족들도 처음엔 감당하기 힘들구요"

20년째 조현증을 앓고 있는 동생을 둔 김연희씨(53·가명)가 운을 뗐다. 연희씨 동생의 병은 중학교 3학년때 시작됐다. 당시 동생은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학력차이가 나 안좋다'는 이유로 교사와 어머니가 둘을 떨어뜨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동생을 왕따시켰다. 동생은 그 뒤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목고를 들어갔으나 언젠가부터 "사람대하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

가족은 처음에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은 얼굴이 하얗게 된 채 집에 들어와 "경찰이 날 쫓고있어. 사람들이 날 위협해"라며 횡설수설했다. 그때부터 동생은 정신병원을 오가야 했다. 요즘 그는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TV로 시간을 보낸다. TV에 연예인이 출연하면 누나에게 "쟤가 날 비난하지? 누나도 들어 봐"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면 난리가 난다. 누나는 그런 그를 인정해줘야 한다.

사연이 특별한 이는 연희씨 뿐만이 아니다. 김정수씨(68·가명)는 19년째 조현증을 앓는 아들을 뒀다. 그의 아들은 26살이 되던 해 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다. 1년 정도 동거하다 헤어졌는데 그 뒤로 정신병이 시작됐다. 아들은 밤에 잠을 안자고 문틈을 내다보며 "누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한번은 사촌형이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훈계를 하자, 아들은 사촌형 목을 칼로 찌르기도 했다. 다행히 스쳐서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의 병보다 그를 괴롭힌 건, 아들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정신을 안차려서 그렇다"며 아들을 윽박지르고, 정수씨에겐 "당신이 자식교육을 잘못했다"라며 꾸짖었다. 부부간에는 싸움이 잦아졌다. 정수씨는 한때 우울증에 걸려 아이랑 함께 죽으려고도 했다. 아들은 울부짖으며 말했다. "엄마 나 정신차릴게, 엄마 마음 고치세요". 정수씨는 다시 아이를 품에 안아줘야 했다.

환자의 '담배'를 위해 돈을 대는 가족들 ="처음에 입원비로 500만원쯤 들었어요. 상담치료를 받으려면 1시간에 20~30만원을 줘야하는데, 한달이면 100만원에 육박해요. 나중에는 부담돼서 상담도 못 받죠"

김미자씨(가명·51)는 조현증을 앓는 아들을 치료하며 가계가 '휘청'였다. 급할 때 부르는 응급차도 '돈'이었다. 일반 응급환자들은 무료로 119 등을 부를 수 있지만, 정신질환자들은 응급환자이송단(129)를 불러야 한다. 129는 당초 보건복지부에서 무료로 운영했으나 최근에는 사설로 전환했다. 한 번 이용하는데 20만원 이상이 든다.

연희씨도 동생과 20여년을 같이 살며 치료비 명목으로 한달 100만원 이상이 들었다. 돈도 돈이거니와 가족으로부터 이해받는것도 일이었다. 연희씨는 "남편도 이해를 많이 해주고, 우리 자녀들도 내가 동생에 할애하는 시간을 이해해줘서 견딜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연희씨의 동생은 최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며 누나와 떨어져 살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연희씨는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다. 동생은 매달 48만원을 받지만 대부분은 임대료와 전기세로 쓴다. 나머지 비용은 연희씨가 대줘야 한다. 특히 동생의 '담뱃값'이 많이 나간다. 담배의 니코틴 성분은 정신질환자의 환청과 약물 부작용을 줄여줘 정신질환자들의 '허용된' 낙이다. 연희씨의 동생도 하루에 4갑까지 핀다.

'패밀리링크'가 제공하는 가족용 교재. 환자와의 소통방법을 다루고 있다.가족으로서 치료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정보를 얻기 힘든 것도 문제다. '심지회' 회장 조성금씨(61)는 "현재 정신질환자 가족을 위한 협회가 있긴 하지만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유용한 정보를 얻긴 쉽지 않다"며 "결국 우리 가족들끼리라도 정보를 알려주자 하는 마음에 강사를 하고, 모임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심지회 회원들 대부분은 WHO가 주관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Family Link)'에 강사로 등록돼 있다. 이 프로젝트는 가족 중에서 교육자를 양성, 환자를 실질적으로 보살피게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교육에 참여한 부모들은 정신질환자와의 소통 방법 등을 배운다. "~하지 마라"라는 표현 대신, "난 네가 ~하는게 싫단다" 등과 같은 1인칭 표현법을 쓰는 것도 이 중 하나다.

■ "아이의 과거는 잊고 다시 태어났다 생각해야"

= 노력한 끝에 '빛을 본' 이들도 있다. 성금씨가 대표적이다. 성금씨의 딸도 조현증을 앓았다. 한 때는 식음을 전폐하며 죽으려던 순간도 있었다. 병원에서조차 "시설에 맡기고 손을 떼라"고 했다. 그는 딸을 병원에 입원시킨 뒤 한동안 가지 않았다. 몇달있다 가보니 딸은 미이라처럼 깡마르고 흉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엄마가 날 버렸구나'라고 생각하며 망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가 공부하다 그렇게됐으니, 내 욕심 때문이었던 거예요. 그 때부터 딸과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비행기도 타보고 호텔도 가보고, 좋은 음식도 먹어보고… 때로는 시장, 가난한 동네도 가보며 재미있게 해줬어요. 아낌없이 해줬죠. 37년간 딸을 위해 헌신했어요"

성금씨는 특히 딸에게 따뜻한 햇볕을 많이 쬐게했다.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햇볕을 쬐며 종종 안아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딸이 말했다. "엄마가 진짜 나를 사랑하는구나?". 성금씨는 그 순간을 딸의 회복이 시작된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부터 딸의 상태는 빠르게 좋아졌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재활했다.

성금씨는 아이를 편하게 해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아이랑 똑같은 눈높이에서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며 "아이가 한때 전교 1등을 했다고 그때로 돌아가야한다 생각하면 안된다. 과거는 잊고 이제 새로 태어나서 삶을 하나씩 엮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희씨도 조현증에 걸린 동생의 말을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3시간, 그 이상이 걸리든 얘기하는대로 다 들었다. 동생은 TV를 통해 들리는 환청과 망상을 누나에게 얘기했고, 누나는 그 망상을 인정하고 대화했다. 그때부터 동생은 자신의 망상을 자연스레 표현하며 "병원에 입원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전엔 자기 문제에만 집중하던 동생이 누나에게 TV뉴스 얘기를 꺼내는 등 변하기 시작했다. 연희씨는 "힘들 때는 날마다 있지만 조절력이 예전보다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 "모임이 없어지는 날이 좋은 날" =

"조현병은 약만 잘먹으면 회복될 수 있는 병이에요. 하지만 회복된다는 것도 모르고, 사춘기라 생각하죠.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통해 편견을 해소해야 해요. 치료에 희망을 줘야 돼요"

이날 모인 심지회 회원들은 하나같이 '정신병적 장애'에 대한 편견 타파가 급선무라 말했다. 신선미씨(64·가명)는 "가족들이 말하기도 힘들고, 드러내지 않으니 이런 모임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고, 다른 사람이랑 얘기도 못하고, 아이도 가족들도 병을 인정하려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복지의 미비점도 지적했다. 김미자씨는 "구마다 정신병원 센터가 있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환자모임이 있는 걸로 아는데, 이곳에 대한 정보를 누구 하나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센터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은 일주일에 2번 활동을 시켜주고, 1번은 집에 방문해 상담하지만 많은 도움이 안 된다"라며 "복지사가 1인당 400~500명 관리한다더라. 애들의 증상이 다르고 병도 다른데 묶어서 같이 관리하니 효과가 없다. 무료로 상담해 줄 수 있는 전문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회장인 조성금씨는 '모니터링단'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심지회같은 가족 모임에선 각 구마다 있는 정신질환 관련 시설의 소식을 알 수 있다"라며 "특정 시설에서 문제가 있다면 바로 알 수 있기에 시설이든 병원이든 평가표를 작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모니터링이 이뤄지면 다른 환자 가족들은 이를 참고해 안좋은 곳을 가려내고, 치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희씨는 "환자들이 20~30만원 인생으로 떨어져 자괴감에 괴로워하면 안 된다"라며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일자리도 늘리고, 돈을 번다고 해서 기초생활수급액을 깎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연봉 3000만원을 받는 성공사례도 있 듯, 부모 어깨에 달라 붙은 듯한 '의존성'을 줄이고, 환자들이 독립적인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하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희씨의 말에 한 회원은 "이런 것이(사회재활) 잘 되면 우리 모임은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이 없어지는 날이 좋은 날인가" 물었다. 또다른 회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아이들도 사회와 어울리는 날이 와야죠, 사회로 들어와야죠".

정신질환에 걸린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뷰티풀마인드'의 한 장면

<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안종재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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