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앞트임 성형, 시베리아人의 흔적 없애는 셈

이영완 산업부 차장 2013. 1. 30.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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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날씨가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하루 만에 기온이 10도씩 뚝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겨울도 언젠가는 지나가겠거니 하고 참기엔 너무 심한 추위였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모두 말 그대로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우리나라가 이럴진대 동토(凍土)의 땅인 시베리아는 오죽할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추위를 견뎌낼까.

시베리아는 1월 평균기온이 섭씨 영하 25도이다. 지구 육지 면적의 거의 10%를 차지하면서도 거주 인구는 세계 인구의 0.5%에 그치는 것도 혹한(酷寒) 탓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유전학자들은 시베리아인에게는 추위를 견디게 하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러시아 과학자들과 함께 시베리아에 사는 10개 부족 200명의 DNA 시료를 채취해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했다.

최근 국제학회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세 가지 유전자가 시베리아인을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었다. 먼저 'PRKG1'이란 유전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왕성하게 작동했다. 이 유전자는 민무늬근의 수축에 관여한다. 즉 추워지면 나도 몰래 몸이 떨려 열을 내게 하는 유전자다. 민무늬근은 근육 중에 가로무늬가 없는 종류로 쉽게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시베리아인은 몸을 가장 효율적으로 떨 수 있게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근육을 움직이려면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이번 분석에서 시베리아인의 주식(主食)인 육류나 유제품에 많은 지방을 분해하는 'ENPP7'이란 유전자도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꼽힌 유전자는 'UCP1'이다. 2010년 미국 시카고대 연구진도 시베리아 2개 부족에서 이 유전자가 다른 사람보다 활발하게 작동한다고 밝혀냈다. UCP1 유전자는 몸에 비축된 지방을 근육 떨림을 거치지 않고 바로 열로 바꾼다. 비유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아궁이에서 데운 물을 받아서 그 속에 몸을 담가 추위를 잊는다면, 시베리아인들은 바로 아궁이 앞에 앉아 몸을 덥히는 것이다. 중간 유통이 없으니 열 소비가 훨씬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이 유전자들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혹한에서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수만년 동안 이들의 자손이 계속 번창하면서 지금처럼 시베리아인 모두의 특징적인 유전자가 됐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시베리아인과 같은 북방계 아시아인으로 분류된다. 2010년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는 시베리아의 몽골 부족인 부랴트(Buryat) 민족의 유전자를 분석해 서구에서는 거의 발병하지 않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에게는 흔한 녹내장 유전자군(群)을 발견했다. 시베리아에서 한반도와 일본으로 DNA가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시베리아의 혹한을 이겨냈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북방계 아시아인은 백인이나 흑인, 남방계 동남아시아인과 비교하면 손가락이 짧고 뭉툭하다. 동물학의 '알렌의 법칙'에 따르면 추운 곳에 사는 동물일수록 귀나 코·꼬리·다리 등 신체의 돌출 부분이 작고 둥글어지는 경향이 있다. 표면적이 작을수록 체온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북극여우의 귀가 몸집보다 아주 작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사막여우는 귀가 토끼처럼 크다. 귀에는 혈관이 많다. 사막여우의 큰 귀는 열을 발산해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 아프리카 코끼리의 귀가 조상인 시베리아 매머드보다 훨씬 크고 넓은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의 작은 눈에도 시베리아인의 표지가 온전히 남아 있다. 양미간 쪽으로 내려와 있는 윗눈꺼풀의 연장 부분, 즉 '몽골주름'이다. 동아시아인의 특징으로 북미(北美) 인디언에게서도 발견된다. 요즘 성형외과에서 유행하는 앞트임 수술은 몽골주름을 제거해 눈을 커 보이게 하는 것이다.

진화연구자들은 안구(眼球)가 외부와 접촉하는 면을 줄이기 위해 몽골주름이 발달했다고 설명한다. 겨울 벌판을 걸으면 눈이 먼저 아리다. 안구에는 늘 습기가 있어 촉촉하다. 몽골주름은 찬 바람에 안구의 습기가 얼지 않도록 막아주는 바람막이인 셈이다.

우리가 추위에 강하다는 사실은 6·25전쟁에서도 입증됐다. 1951년 1·4후퇴 당시 많은 미군이 기록적인 한파에 동상(凍傷)으로 고생했다. 상대적으로 한국군은 동상에 강했다. 미군 의료진은 동상에 대한 인종별 차이를 알기 위해 신체 말단의 모세혈관 맥박 수를 쟀다. 황인종이 가장 높고, 그 뒤로 백인·흑인 순이었다. 추위에 노출되면 모세혈관이 수축과 확장을 반복해 따뜻한 피를 몸 구석구석에 공급한다. 이런 '루이스 맥동(脈動)'은 북방계 아시아인에서 두드러지며, 유럽인은 불규칙하고, 아프리카인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 중서부 애리조나 사막 지대에 사는 인디언 피마(Pima) 부족은 3만년 전 빙하기 말기에 베링해를 넘어온 시베리아인의 후손이다. 피마족이 애리조나 보호구역에 정착하고 나서 90%가 비만에 걸렸다고 한다. 인구 절반은 당뇨병까지 앓았다. 매머드를 잡던 시베리아인처럼 순록과 들소 사냥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이 보호구역에 갇혀 운동 부족과 과식으로 몸이 망가진 것이다. 춥다고 웅크리기만 하면 시베리아인의 후예로 건강하게 살긴 틀린 일이다.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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