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리 북유럽80일]2천년전 그 남자, 범죄피해자?

박영주 2013. 1. 27. 13: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덴마크=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 51 >

맑게 갠 기분 좋은 아침이다. 어제 알아놓은 대로 시청앞 18번 버스 정거장 부스까지 걸어갔다. 젊은 청소부가 급수가 되는 작은 차를 홀로 몰고와 부스를 청소중이다. 부스 벽면에는 프레데릭 덴마크 왕세자의 사진이 표지에 실린 잡지를 광고하는 대형광고판이 붙어있다.

버스티켓은 버스를 타고 안에 비치돼있는 자동판매기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버스기사에게는 구입할 수 없는데, 이곳에서는 버스기사는 운전에만 집중하라는 의도인지 버스기사에게 가욋일로 업무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인지 궁금해진다.

'모에스고르 박물관'이라는 전광판을 붙이고 나타난 18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오르후스가 얼마나 녹지대가 풍부한 도시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버스는 공원으로만 이뤄져있는 지대를 한참 지나 30여분만에 모에스고르 선사박물관 근처 주차장 앞에서 나를 내려준다. 주차장 인근에는 새건물 공사가 한창인데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니 9월2일부로 현 박물관은 문을 닫고 2014년 새건물에서 재개장한단다.

숲길을 따라걸어가니 나오는 박물관은 옛 영주의 저택을 고고학·민속학 박물관으로 개조한 곳이다. 너른 공터에 낮은 건물들이 쭉 둘러 서있다. 입구 직원에게 물어보니 근 2년간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확인해준다. 이 금발여성은 오르후스에 관광안내소가 없어진 것이 맞다면서, 돌아갈 때 타야하는 버스와 버스시간표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여기에 와서야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갖가지 오르후스 관련 관광안내문들을 발견할 수 있다니 답답하고 아쉽다.

60년전통의 오르후스 가이드라는 조직에서는 6월18일~9월7일 시티워크 가이드를 진행하는데 매일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다르고 오르후스 시청사와 시청타워 가이드투어도 이 기간 매일 2시에 있다는 걸 알게됐다. 따로 직원이 없더라도 시내에 이런 안내문만이라도 비치해놓은 사무소 하나 남겨두지 않은 이유가 진정 궁금하다.

모에스고르 박물관이 잠정적으로 문을 닫기 전에 올 수 있게된 것이 큰 행운으로 느껴진다. '그로우발레만'이라는 석탄층에 보존된 2000년전 인간의 유체가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통 영어로 '보그(bog, 늪지)맨'이라고 불리는 유체는 머리카락, 수염, 손톱, 피부 주름 하나까지 생생히 남아있을 정도로 부패하지 않고 잘 보존돼 처음 발견됐을 때는 현대 범죄 피해자로 오인받기도 했단다.

그로우발레만은 1952년 오르후스 서쪽 35㎞에 위치한 그라우발레 마을에서 발견됐는데, 실케보르 박물관에는 이보다 더 생생한 '톨룬드만'이라는 기원전 350년 무렵의 인간 유체가 전시돼있다고는 한다. 실케보르에는 덴마크에서 최고봉이라는 힘멜볘르가 있다. 여기까지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좀 무리다 싶어 포기했다. 재밌는 것은 국토 대부분이 평지로 이뤄진 덴마크에서 '하늘의 산'이라는 뜻의 힘멜볘르는 해발 147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고대인간이 궁금해서 발걸음을 빨리했다. 석기시대관을 지나 철기시대관으로 가면 바로 그 유명한 시신이 전시돼있다. 지상반층 정도 올라오면 아래쪽으로 뚫려있어 유리관에 담겨있는 시신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놨다. 한쪽 다리를 뻗고 옆으로 누워있는 170㎝정도 키의 육신은 새까만 색을 하고 있는데 토탄늪지의 생화학적 작용으로 흑화현상을 겪은 결과라고 한다.

지하 반층을 내려가면 유리관이 전시된 독립된 방이 있어 바로 옆에서 이 시체를 관람할 수 있다. 이 남자는 부러진 다리와 크게 잘린 목의 상처로 보아 잔인하게 살해됐는데도 불구하고 표정은 편안한 편이다. 기원전 300년경 샤머니즘의 제물로 무릎을 꿇은 채 목이 베어졌으며 바로 늪에 던져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남자와 눈이 마주치는 위치에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좀 무서운 생각도 든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시체 하나로 많은 것을 발견해낸 연구진의 성과다. X레이 촬영, CT촬영을 거쳐 나온 결과는 미드 'CSI'나 '본즈'를 보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안내문과 터치스크린 화면으로 이 남자가 마지막 먹은 식사며, 면도를 한 상태며 어떤 기구로 수염을 깎았을 것인가 부터 당시 유행했던 헤어스타일 까지 추정해 알려준다. 처음 발견됐을 때 그의 성별의 불분명했으나 CT촬영으로 남성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시신일 발굴됐을때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들에 대한 에피소드며, 2000년에 다시한번 검사를 시행해 알아낸 사실들까지 일일이 다 옮기기 힘들 정도의 세세한 정보들이 나열돼있다. 그라우발레만 외에도 톨룬드만, 영국의 리도우맨 등 모두 살해당한 채 유럽 각지에서 발견된 보그맨들의 정보도 전시돼있는데 충실한 자료와 사진들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늪지에서 화학작용으로 머리카락과 피부색이 변색된 과정이며, 본래의 얼굴을 복원해 놓은 그림 등도 볼 수 있다.

전시는 바이킹시대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바이킹 스타일 그림과 룬문자가 새겨진 다양한 바위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룬문자는 바이킹들이 사용하던 고대문자로 이를 해석해 당시 생활상을 유추해보는데,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그의 생전 업적을 적은 룬스톤이 인상적이다.

◇매해 바이킹집회가 열리는 해변목장

맞은편 건물에서는 '7명의 바이킹'이라는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휴관전 마지막 전시라 총력을 기울였는지 온갖 최첨단 시청각방법들을 활용한 전시가 정말 멋졌다. 7명의 남녀노소 바이킹 인물을 설정해 이들의 개개의 삶의 스토리를 음향, 필름, 이미지 등으로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안그래도 안내팜플렛을 보니 모에스고르 박물관 1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공사중인 새 빌딩에서 이뤄질 전시방식을 미리 맛볼 수 있도록 해놨다는 설명이다.

낮은 조명만 비추는 어두운 전시실로 들어서면 코고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잠들어있거나 앉아있는 바이킹 마네킹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수공장인, 상인, 목수, 탐험가, 농부의 아내, 노르웨이 왕자과 주교 등으로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마네킹 앞에 있는 스테이션에 전기칩이 든 도구를 가져다대면 그에 대한 음성설명이 흘러나온다.

이 마네킹 중 하나는 실제 바이킹시대를 살았던 여인의 유골을 바탕으로 실제 얼굴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갖가지 유물과 당시 건축을 알 수 있는 전시물들과 함께 바이킹들의 해외원정 항해를 스크린을 통해 배를 원격조종하며 간접체험해볼 수 있는 코너도 멋들어지게 꾸며놨다.

어린이들이 줄타기를 하고 놀 수있도록 만들어놓은 놀이터 옆에는 여름에만 여는 서머카페가 있다. 커다란 '킬링 샌드위치'와 사이다로 점심을 먹었다. 세븐업을 달라고 했더니 덴마크 메이커의 사이다가 있다며 22크로네(한화 약4200원)를 받는다. 돈의 가치가 자꾸 헷갈리지만 이 정도도 못사먹고 살순 없다.

이곳 카페도 중동인 이민자가 젊은 아내를 데리고 운영하고 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단위 방문객들, 혼자서 밥먹는게 여전히 뻘쭘하다. 박물관 건물 길건너로는 바이킹시대의 집과 교회를 복원해놓은 야외박물관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숲이 울창해 길목을 잘못 들었더니 수풀이 만발한 공터다. 평지가 대부분인 덴마크에서는 공터까지도 끝없이 널찍하다. 혹시 야외박물관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까해서 헤매이다보니 무릎까지 자란 날카로운 풀잎들이 다리에 상처를 낸다. 숲이 많은 데다가 날이 더워지다 보니 물것도 무지 탄다.

푹푹 빠지는 흙더미를 헤치고 다시 돌아나왔더니 박물관 직원들이 입은 검은 티셔츠를 입은 늙은 남자가 보인다. 그에게 길을 물었더니 옆쪽 다른 길목으로 데려다준다. 역시나 너른 풀밭에 세워진 집 두 채와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만든 임시 정자, 스타브 교회를 보러온 것은 이 시간, 나 혼자뿐이다.

각각 870년경, 900년경의 바이킹시대 집을 옮겨 재건축해놨는데, 내부의 화덕까지 바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느낌이 나도록 잘 지어놨다. 기독교가 덴마크게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965년인데 1100년대 석조교회가 대신하기전 나무로 만든 스타브 교회가 전지역에 지어졌다고 한다.

노르웨이에서 봤던 스타브 교회보다는 규모가 작은데, 처마에 용머리 모양을 장식한 것이 비슷하다. 안그래도 노르웨이 스타브교회의 그림 기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거미줄 쳐진 내부에는 단순한 나무제단이 하나 놓여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 주로 쓰이던 나무 문양과 교회에서 쓰이는 종루와 종까지 잘 복원해놓았다.

다시 도로쪽으로 나와 '선사시대 산책길'로 불리는 오솔길로 가기 위해 공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간간히 차를 몰고 도로를 지나가는 이들만 보이는데 너무 무모한 시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차비를 하고 4,5km정도 왕복을 해야 박물관에서 꾸며놓은 유적지들을 제대로 다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2㎞ 정도 편도로 걸어 해변쪽으로 나가면 도심으로 가는 31번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하니 더운 날씨지만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박물관측에서 준 지도에는 덴마크어 안내밖에 없다. 박물관에서 꾸며놓은 15군데 방문장소들에 대한 설명을 적어놨는데, 덴마크어를 알 수 없으니 대충 짐작하며 구경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물관에 딸린 공원만 해도 그 크기와 울창함이 어마어마하다. 공원 안에는 연못과 역시 대형 꽃밭이 있는데 꽃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흰나비들이 춤추며 돌아다닌다. 평화롭다. 멀리 도시락을 싸들고와 피크닉을 하는 가족이 하나 보인다.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커다랗고 아름다운 공간을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울 따름이다. 낮은 돌울타리가 쳐진 가족묘지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숲으로 들어서게 된다.

기우는 잠시, 제나름의 멋을 내며 예술적으로 뻗어오른 수백년 수령은 돼보이는 나무숲길을 걷는 것이 무척 행복해졌다. 빽빽한 숲길은 인적이 없어도 전혀 무섭지 않다. 그렇게 가다 찾은 것은 철기시대의 집. 대형 초가집이 덩그마니 하나 놓여있을 뿐이다. 문은 잠겨있어 들어가볼 수는 없다. 바로 옆은 나무 울타리를 친 목초지인데, 말을 탄 젊은 여인이 홀로 한가로이 승마를 즐기는 것이 보일 뿐이다. 이곳을 지나니 햇빛 짱짱한 날인데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울창한 대형수들이 그득한 숲이 나온다.

좀 가다가 영어로 병행된 안내문을 하나 발견했는데 3000년을 이어져내려온 너도밤나무숲이라는 설명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벼이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을만큼 평지만 이어진다. 산지형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이런 평지 숲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자연상태로 그냥 보존하는지 한아름 굵기의 고목이 자연사한듯 그냥 쓰러져있는 모습도 신기하다. 개울이 흐르는 지대, 나무다리를 하나 건넜다.

나무의 무게에 딸려 두터운 지반이 나무뿌리와 함께 바닥을 드러내고 하늘로 솟아오른 것도 처음보는 풍경이다. 끝도없이 펼쳐진 나무그늘 밑으로만 걷다보니 시원하다못해 쌀쌀한 느낌이다. 검은 짐승 하나가 휙휙 나르듯 뛰어다니길래, 무슨 들짐승인가 해서 잠시 겁을 먹었더니 사냥개였나보다. 숲속 깊은 곳에서 금발 남녀 둘이 앉아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그들이 휘파람을 부니 주인에게 달려간다.

뚫린 길을 마냥 따라 왔는데 대체 어디쯤까지 온건지 가늠을 하기 힘들다. 물어볼 사람 하나 없으니 그냥 어림짐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마침 바이킹시대 복장을 한 키작은 남녀커플이 지나가길래 길을 물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독일에서 왔다는 이들은 나더러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며 반갑게 응대를 해준다. 해변가에서 열리고 있는 바이킹 페스티벌에 참여중이라며 자기네들이 온 쪽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준다.

처음엔 그들이 박물관에서 일하는 직원인줄 알았다. 박물관에서도 그들처럼 바이킹 복장을 한 이들을 몇몇 만났기에, 박물관에서 그 시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분장시켜 놓은 것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자발적으로 바이킹시대 복장을 하고 즐기고 있는 거였다. 스킨헤드 남자는 맨발을 하고 있어 자갈투성이 산길을 걸어오는게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발바닥이 아파서 뛰는 시늉을 하면서도 자기는 마사지로 생각했다나.

그들이 알려준 길을 따라 가다보니 웅성웅성하는 사람 기척이 들리고 커다란 목장이 보인다. 오후 4시가 다돼가는 시간인데 햇빛이 여전히 짱짱하다. 삼사십마리는 될듯한 말들을 타고 모여있는 한떼의 사람들이 보인다. 목장으로 들어가는 문의 걸쇠를 열고 들어가니 매여있던 갈색말 한마리가 내 냄새를 킁킁 맡는다. 목장 내 언덕진 곳에는 흰 텐트를 잔뜩 쳐놓고들 있다. 텐트는 200여개쯤 되는데 바이킹 스타일로 나무 지지대를 세운 스타일이고 하나같이 바이킹시대의 중세풍 옷들을 입고 있는 것이 진기한 풍경이다.

그 시대 물건들을 파는 천막들도 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광경이기에 더 즐겁다. 텐트촌을 한바퀴 돌며 열심히 구경하는데 동양인은 달랑 나 하나다. 한 덴마크 노부인에게 물어보니 이는 모에스가르 박물관이 매해 이곳에서 개최하는 바이킹 캠프로 자기네들은 26년째 매년 여름 여기에 참가해오고 있단다. 이번 주말(28일, 29일)에 바이킹 마켓이 열리는데 이주 월요일부터 미리 와서 자리잡고 배틀 등을 하며 한주를 즐긴단다.

바이킹 스타일의 자잘한 장신구와 고리버들 바구니 등을 늘어놓고 파는 사람들이 있어 말을 거니 자기네들은 노르웨이에서 왔는데, 대개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등지에서 온 이들이란다. 파는 물건에 대해 물어보니 자기네들이 직접 만들어 파는 이들도 좀 있지만 대게 여기저기서 구입해 유통만 하는 것들이 다수라고 한다. 쭉 돌아보니 바이킹 스타일의 의상, 칼, 방패 등 주로 이 캠프를 즐기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판다. 불을 피워 음식을 해먹는가하면 칼과 방패로 대결을 벌이기도 하고 활쏘기를 하는 이도 있다.

다시 말무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더니 말안장을 늘어놓고 이를 대여해주는 장년 부부가 있다. 부인과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말들은 주로 덴마크산으로 일부 아일랜드에서 온 것들도 있단다. 그녀는 내가 들고 있던 모에스고르 박물관 사진이 나와있는 지도를 보더니 갑자기 감회에 젖는 표정이 된다. 이 박물관은 예전에 성이였는데, 20~30년전 그곳에서 서빙을 했다고 추억했다. 여전히 미모인 부드러운 표정의 이 덴마크 여인은 여러가지 일들을 하면서 분명 삶을 즐기고 사는 듯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들의 여유에 대한 부러움이다.

◇술병 든 덴마크인, 술취한 노인의 희롱

이 목장 건너편이 오르후스 최고의 해변으로 손꼽힌다는 모에스고르 스트란이다. 숲과 풀밭이 바로 모래사장으로 이어진다. 진분홍 꽃들과 흰꽃들이 푸른잎들과함께 한무더기 피어있는데 바닷가 모래위에 피는 해당화같은 꽃인가보다. 숲에서 흘러나온 시내도 바로 바닷물로 이어진다.

박물관에서 나눠준 지도에는 해변가에 있는 어부의 집이 안내돼있는데, '프라이비트'라고 써놓고 문을 닫아놓아 내부는 구경할 수 없다. 한창 이 강과 바다에서 물고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 1856년 강과 바다 사이에 지어졌다며 여기 살았던 가족들에 대한 안내문이 하나 서있어 읽어보았다.

하늘은 어찌나 시리게 푸른지 바다와 색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이 이렇게 많으리라 생각못했기에 깜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캐리어 속에 수영복을 싸들곤 오긴 했는데 한번도 입을 기회가 없었고, 오늘도 가져오지 않았다. 대부분 모래밭에 비치타월을 깔고 선탠중이다. 물에 들어가 첨벙거리는 이도 그리 많이 없고 요란하게 기념사진을 찍는 이도 없고 참 조용하다. 이들은 그냥 이 순간을 편안하게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동양인도 나 하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는 나밖에 없는 듯싶다. 하기야 나는 머나먼 아시아에서 생애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 마지막으로 이곳을 지나가는 것이다. 머나먼 타국땅에서 이국풍물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 아닌가. 외국 영화에서 동양인 관광객을 표현할 때 일단 큰 전문가용 카메라 하나는 목에 걸고 있는 걸로 묘사하기 마련인데 필요가 발전을 부르고, 이들도 캐논 등 일제 카메라를 애용하지 않는가.

어제 사둔 선블록을 다행히 가방에 넣고 와서 이를 팔,다리에 바르고 바다에 발을 담그며 잠시 망중한을 즐겼다. 이럴때 진한 외로움이 찾아오곤 한다. 다들 가족단위나 커플로 즐기는데 나 혼자에다가, 홀로 여행이 꽤 길어지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걷다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키오스크와 함께 대형주차장과 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오후 5시15분 출발하는 31번 노란 버스가 떠나는 것이 보인다. 다음 버스는 오후6시에 있어 다른 이들처럼 풀숲 언덕으로 가 겉옷을 깔고 누웠다. 해변 뿐 아니라 나무가 울창한 풀숲에서도 선탠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나는 나무 그늘을 찾아 누웠는데, 왜이리 물것들이 달겨드는지 다리가 물린 자리로 울긋불긋해지고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다. 단 것을 워낙 좋아하는 내피가 달게 느껴져서 그런지 유난히 나만 물것을 타는 듯싶다.

오후6시면 슬슬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라 버스을 타려는 줄이 꽤 길다. 다들 뒷문쪽으로 줄을 서서 타는데 버스 뒤쪽에 티켓자동판매기가 설치돼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니터에는 붉은색 글씨로 덴마크어와 영어로 '고장'이라고 나타나있다. 모두들 티켓을 사지 않고 그냥 타는데 버스기사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기계가 고장났더라도 버스표를 파는 일은 자기 일이 아니므로 나몰라라 하나보다.

평소 승객도 그리 많지 않은 버스를 무슨 재정으로 운영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차가 없는 가난한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공시설이라고 생각해 정부지원이라도 받는 것인지. 이 버스에 오른 이들도 대게 여기서는 저소득층에 속하는 이들일 듯싶다. 그래도 부자 나라 국민들인지라 찌든 티는 하나도 없다. 다 성장한 10대 애들 셋을 데리고 탄 엄마는 내가 판매가가 고장났다고 알려주자 "지금까지 내 동전 많이 먹었으니 그냥 둬"하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리에 가서 앉는다.

냄새가 나서 쳐다보니 맨 뒷자리 빈공간에 유모차와 함께 주저앉은 젊은 남자가 요란하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능숙하게 기저귀를 간다. 애엄마는 어디 갔는지 홀로 갓난애를 데리고 해변에 놀러나왔었나보다. 표정을 그닥 즐거워보이진 않는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아이를 잘돌봐야한다는 책임감만은 분명한 것 같다.

31번 버스는 해변가를 따라 한참 달리는데 정류장마다 피서객들이 많이들 올라탄다. 나무와 연못이 그득한 숲길을 굽이굽이 가는데 사슴농장도 보이고, 아름다운 주택이 그득한 거주지도 지난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18분만. 터미널이 숙소와도 가까워 예상보다 이른 시간 돌아오게 됐다. 내친김에 빨래를 하려고 리셉션에서 세탁기와 건조기에 사용할 드라이어를 사용할 때 쓰는 코인을 구입하러 갔다.

체크인을 해줬던 친절한 붉은머리 청년에게 물어봤더니 거의 코인을 공짜로 줄 기세다. 오전에 리셉션을 지키는 나이든 남자에게 둘 다 사용하는데 60크로네라고 들은 것 같은데, 내가 "얼마 내면 돼?"라고 거듭 물어보니 40크로네를 받는다. 청년이 졸졸 쫓아와 세탁기 사용법까지 일일이 알려주는 것이 워낙 배려심이 있는데다가 내가 맘에 드는 눈치다.

개개인을 존중하고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덴마크 자유교육의 영향일까, 편안한 천성이 배어나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의 배려가 고마워서 한국돈 천원짜리를 선물이라며 줬더니 그가 진짜 감동어린 목소리로 "고맙다"고 한다. 괜히 쑥스러워져서 얼른 그 자리를 피해 저녁을 챙겨먹으러 공동부엌으로 갔다.

근데 술을 마신 중늙은이가 앉아있다가 나한테 술주정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어로 "너 일본에서 온거 맞지?"하고 묻는데 무시하니 자꾸 반복해 물으며 목소리가 격해진다. 희롱성 다툼으로 비화할까봐 부엌에 보관해둔 내 식료품 주머니를 들고 재빨리 내 방으로 올라와 비스킷 등으로 대충 저녁을 때웠다. 노르웨이 호스텔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불법이라는데 덴마크에서는 그런 법이 따로 없나보다.

덴마크인들은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스칸디나비아 앤드 더 월드'라는 해외 유명 인터넷 만화를 보면 덴마크 캐릭터는 수염을 삐죽삐죽 기른 채 술병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술을 좀 마신다고 해도 한국인의 폭탄주 음주문화에 감히 명함이나 내밀 수 있으랴.

빨래를 모두 정리하고 피곤에 절은 몸을 뉘였는데 햇빛에 익은 몸이 화끈거리며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한국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할만큼 엄청나게 힘든 육체활동을 매일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도저히 못견디면 중간에 돌아가야 하나, 하고 시작한 여행이다. 그러나 취재약속과 숙소예약을 모두 마쳐놓은 상태에서 그건 안될 말이다. 내 인생에 또 언제 다시올 기회일지도 알 수 없다. 가끔 심각할 정도로 아프기도 했지만 금세 회복하고 버티는 내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다. < 2012년 7월25일 오르후스 모에스고르 박물관 >

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