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야왕', 여성혐오로 가려는가

2013. 1. 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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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진미의 TV톡톡

<야왕>은 성인 만화 <야왕전>을 각색한 24부작 드라마로 이달 14일에 처음 방송됐다. 특별검사의 청와대 압수수색과 영부인 총격이라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출발했지만, <야왕>은 정치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는 12년 전으로 돌아가 가난한 남녀의 과거를 비춘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하류(권상우)와 다해(수애)는 20대에 다시 만나 딸까지 낳고 함께 살지만, 다해는 재벌 아들과 결혼하기 위해 하류를 배신한다. 현재 4회까지 방송된 <야왕>은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인 '19금'으로 방송됐다. 의붓딸을 성추행해 온 아버지를 살해해 암매장하는 장면이나 호스트바 장면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도 빠지지 않는다. 하류의 쌍둥이가 변호사란 설정은 하류가 특검이 되어 청와대로 오게 해주는 복선이다.

만화를 각색한 드라마답게 극단적 설정이 난무하는 가운데, <야왕>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대목은 뒤집힌 남녀 구도이다. 호스트바 장면이나 여자를 공부시킨 남자가 배신당해 복수한다는 설정은 1970년대 호스티스물이나 드라마<청춘의 덫>의 역상이다. 이를 어찌 봐야 할까. 여성의 지위 향상을 반영한 양성 평등의 텍스트로 볼 수 있을까. 답은 오히려 반대이다.

<야왕>은 기존의 성별 억압 구도를 그대로 둔 채, 남녀의 자리를 바꿔치기해 서사를 전개한다. 성매매는 보통 남성이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이며, 접대 문화를 통해 남성들의 위계와 연대를 강화하는 장이다. 물론 호스트바가 존재한다. 그러나 영화 <비스티 보이즈>가 보여주듯, 호스트바는 대개 성 판매 여성들이 남성들에 대한 보상 심리로 이용하거나, 소수의 자영업자 여성들이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전체 성매매 시장에서 호스트바는 극히 예외적인 곳이며, 직장 여성들의 유대 강화를 위해 이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야왕>에서 신입 인턴사원 첫 회식으로 호스트바에 온 다해는 하류를 본 뒤 그를 '더럽게' 여긴다.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남성에 대한 낙인 효과가 여성에 비해 덜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다해의 감정은 납득되기 어려우며, 남녀의 치환으로 벌어진 무리수로 보인다.

다해가 '구두 한 짝을 주운' 재벌 아들을 유혹하러 5년간 키운 딸을 버리고 유학길에 오른다는 설정도 여성의 욕망을 남성의 욕망과 그대로 치환해 벌어지는 무리수이다. <청춘의 덫>에서 출세가 보장된 엘리트 남성이 자식을 버리는 건 1970년대의 보편적 남성 욕망으로 이해되지만, <야왕>에서 대졸 여성이 가능성이 희박한 신데렐라가 되기 위해 딸을 버린다는 설정은 여성의 욕망에서 모성의 비중을 무시한 상상이다. 이 모든 무리수를 덮기 위해 다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악녀'가 되어야 한다.

결국 <야왕>은 순정남이 비현실적인 욕망을 품은 악녀와 대결하여 복수와 처벌을 가하는 남성 신파가 된다. 다해에겐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며, 시청자들은 "등신"인 하류에 감정이입이 된다. 이러한 구도는 남성 노동가치의 하락으로 경쟁에서 밀린 다수의 '잉여' 남성들의 박탈감과 공명한다. 즉 돈과 여자를 독식한 소수 남성들과 웬만한 남자들보다 경제력이 앞서는 골드미스들에 대한 열패감을 여성 일반에게 투사하여, 놀고먹는 '된장녀', 성적 매력을 무기로 삼아 남자 등골을 빼먹고 '먹튀'하는 '꽃뱀' 등의 이미지를 만들어 증오를 퍼부어온 최근의 여성 혐오 정서에 맞아떨어진다. <야왕>의 뒤집힌 남녀 구도로 이면에는 양성 평등이 아닌 '등신들의 정신 승리'가 처연하게 빛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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