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소풍·교복 등 학교일상에 숨겨진 일본 군국주의 정략
▲학교사로 읽는 일본근현대사 …역사교육자협의회 지음·김한종 외 옮김 | 책과함께 | 334쪽 | 1만8000원
아이들이 자신이 배우는 교실을 스스로 청소하는 풍경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오늘날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이 모습의 기원은 청일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군은 청일전쟁과 이후 대만 점령 과정에서 전사자의 수십배가 되는 병사자를 냈다. 일본 문부성은 원인이 일본인의 체력이 약하고 위생관념이 희박한 데 있다고 봤다. 1897년부터 연 2회 신체검사와 함께 학교청결을 지시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각 학교에서는 '아동의 위생사상 발달'을 위해 방과 후 교실과 운동장 청소 규정을 만들어 시행했다.
누구나 설레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어떨까. 1886년 도쿄사범학교는 그 해 처음 실시한 소풍이 '군사교련'의 일부임을 분명히 했다. 학생들은 총기에다 외투와 모포를 꾸린 군장을 메고 몇 권의 병서와 신발, 양말, 갈아입을 셔츠를 준비해서 떠났다. 12일 동안 학생들은 공포 쏘기 연습, 병사 배치 연습을 했으며 날씨 조사, 조개류 채취 등 '학술 연구'도 병행했다. 메이지 시기(1868~1912) 효고현 호메이의숙에서는 무장을 하고 직접 숙식을 해결하면서 무장행군을 하는 것이 '수학여행'이었다.
학생들의 교실 청소뿐 아니라 수업 전후 선생님에 대한 경례, 시험과 통지표, 교복 착용에서부터 소풍이나 수학여행, 운동회 같은 행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학교의 일상생활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교육적 목적이라기보다 국가의 필요에서 비롯됐으며, 대부분 일본이 근대 학교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유래됐다. 책을 따라 일본 학교의 변천사를 살피다보면 오늘날 한국 학교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해 흠칫 놀라게 된다.
한때 수업 전 '차렷' '경례' 구호를 없애자고 하자 교실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일었지만, 사실 그 관습은 군대훈련이 일본의 학교에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전쟁은 학교의 기조 자체를 바꿨다. "교내에서는 잡담, 큰소리, 마구 뛰어다니는 것을 금한다"고 했던 일본 문부성은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체육과목을 우선시하면서 큰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는 것을 장려했다. 달리기나 오테다마(오자미) 넣기 등이 벌어졌던 학교운동회는 1930년대 들어 군국주의가 강화되자 적전 상륙, 폭탄 릴레이 등의 경기로 채워졌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군사훈련에 일본옷이 적합하지 않자, 육군 하사관 전투복을 모델로 학생복을 도입한 것이 교복의 시초라는 것도 놀랍지만은 않다. 교정에 에도막부 시기의 농촌사상가인 '긴지로' 동상을 세우고 그 정신을 본받자는 운동이 벌어진 모습은, '이승복 어린이'이나 '이순신' 동상을 연상시킨다.
고텐바소학교(御殿場小學校)창립백주년기념지에 실린 1920~30년대 일본 학생들의 수학여행 사진. 러일전쟁을 승리를 이끈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탑승했던 기함 미카사를 견학한 모습.
시험의 역사도 흥미롭다. 근대화를 서둘렀던 메이지 정부는 한시바삐 학생들이 서구의 지식과 문물을 습득하도록 하기 위한 경쟁 체제로 '시험'을 도입했다. 신분이 아니라 실력, 즉 시험성적만을 평가받는 구조는 기존의 신분질서를 타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쟁적 측면만이 강화된 획일적 시험제도는 오늘날 또 다른 차별·선별의 도구로 작용하게 됐다.
책은 한·일 강제병합 당시 학교에선 어떤 훈화를 했는지, 관동대지진 당시 학교를 중심으로 조선인을 조심하라는 유언비어가 어떻게 퍼졌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 재난으로부터 천황의 어진영(초상화)를 지키려고 순직한 교사들까지 있었지만 전후에 그 어진영은 트럭에 아무렇게나 실려왔다는 사실과, 전쟁을 찬미하는 내용이 기재된 교과서의 부분부분을 먹으로 칠한 뒤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책을 쓴 '역사교육자협의회'는 일본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를 비롯해 역사교육에 관심 있는 학자·시민·교사들의 단체다. 일본 우익의 역사교과서를 비판하고 막기 위한 운동을 벌인 양심적 지식인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책의 당초 목적은 학생들에게 자기 주변의 일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능동적인 역사학습을 이끌어내는 것이기에 다소 무미건조하다. 그럼에도 문득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다. 학교교육의 내용이나 일상적인 모습 하나하나가 정치적 목적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교육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비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되뇌는 이들의 목소리 자체가 허황된 것이며, 그 자체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반영한 것임을 입증한다.
<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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