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여행]눈덮인 마곡사에서 해탈마저 해탈하기

2013. 1. 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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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근처를 지나다 문득 생각나서 찾아간 마곡사. 학창 시절, 무전여행을 하다 허기진 심신을 질질 끌고 찾아간 유랑객을 녹여주고 채워주었던 곳.하산하는 나에게 사하촌에 내려가 곡차 사먹으라며 막걸리값 보시까지 해 주셨던 이름모를 스님의 기억도 생생한 추억의 현장. 그 마곡사가 여전히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안아준다. 세상은 고요했다.

해탈이 말했다. 해탈을 해탈하라고…

마곡사 사하촌 안내 부스에서 여자 한 분이 나왔다. 풍경 사진 찍고 있는 사람을 향해 한 마디 하신다. "들어가면 미쳐요, 이건 약과야, 얼른 안으로 가셔요." 마곡사 가는 길은 적당한 오르막이고 적절히 굽어있었다. 두어 굽이 돌아서자 수묵화가 나타난다.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자 일순 눈, 물, 한 방울이 눈꼬리를 스쳐 귓전으로 흘러내린다. 또 한 굽이 돌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며 세상은 평온해진다. 고요한 아침이다. 살얼음 언 계곡은 무심히 흐르고 능선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 잠시 우는가 싶더니 푸드득 날아가 버린다. 개울 건너로 불당이 보이는데 좀처럼 입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눈 덮인 마곡사가 얼마나 아름답길래 '여긴 약과'라고 했을까. 불당을 눈 앞에 두고 두어 굽이 더 돌자 이윽고 마곡사 초입이 등장한다.

'단박에 손에 잡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 언덕 아래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남자 하나가 장대를 하늘로 향해 들고 서 있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향해 응원과 야지를 놓는다. 그는 감을 따고 있었다. 이 겨울에 무슨 감? 절 입구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에는 낑깡만한 감이 꽤 많이 달려 있다. 가까이 가서 기웃거리자 한 여자가 아기 조막만한 감 두 알을 내 손에 올려주며 "자연산 샤베트예요. 정말 맛있어, 먹어보세요" 한다. 쌓인 눈에 조심조심 씻어 한 입에 넣어본다. 딱이네! 몰랑몰랑한 마곡사 감 셔벗이야! 마곡사 앞 감나무에 과실이 그대로 있는 것은 겨울철만 되면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산속을 헤매야 하는 산새들을 위한 마곡사의 배려로, 이런 사찰 풍습은 이미 수 백년 전부터 이어온 나눔의 마음이다.

해탈문으로 들어간다. 말 그대로 속세를 벗어나 법문에 들어와 해탈하는 관문이다. 해탈이 무언가. 인간이 해탈을 한다고?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해탈이란 세속적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된다는 말인데, 속박을 누가 주었나? 타고난 업이 아니던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포함한 번뇌와 유전자가 내려준 업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라고 누가 강요했던가? 가르쳐주었던가. 가르침도 배움도 없다. 그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지. 영혼의 오장육부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것들 아니던가? 마음끼리 다투고 있을 때 작은 울림 하나 전해진다. 그니까, 해탈마저 해탈하면 되지….

해탈문 뒤로 천왕문이 있다. 묘한 대비다. 해탈문은 겹처마 팔각 지붕으로 아기자기한 모습인데 비해 불법을 지킨다는 천왕문은 겹처마 맞배 지붕으로 된 박공 지붕을 이루고 있다. 해탈문 천왕문 모두 긴 고드름이 내려와 있다. 곧장 극락교를 건너 범종각을 지나 오층석탑이 있는 뜰로 들어선다. 앞으로는 대광보전이, 그 뒤 언덕 꼭대기에는 대웅보전이 있다.

다보탑, 금탑이라고도 불리는 오층석탑은 보물 제799호로 탑의 네 면에 '사방불'이 양각되어 있고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사방불이란 동서남북을 포괄하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세상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거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계단을 오르면 대웅보전이 있다. '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바퀴나 돌았나'. 이것은 사람이 죽었을 때 염라대왕이 묻는 말이란다. 마곡사 얘기다. 싸리기둥을 많이 돌았다면 그가 극락에 갈 확률은 높아진다. 반대로 한번도 돌지 않았다면 지옥에 떨어진다. 이런, 이런!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은 이제 큰일 난 거다. 이런 설화 말고 또 하나의 민간 속설도 있다. 대웅보전 싸리나무 기동을 잡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마곡사 대웅보전의 싸리나무 기둥은 맨질맨질하다 못해 점점 허리가 잘룩해져가고 있다.

마당으로 내려오면 대광보전이 있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중심법당인데 현판 아래에 서서 천왕문을 바라보면 이 건물과 천왕문, 해탈문이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법당에는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 '비로자나불'이 모셔져있다. 처음 지은 시기는 기록에 없고 언젠가 불에 타버린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규모는 앞면 다섯 칸, 옆면 세 칸이며 옆에서 볼 때 여덟 팔자를 한 팔작 지붕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은 대충대충 구경하기에는 아까운, 아름다운 사찰 건축의 모범 사례를 관찰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실내에 들어가 사진 찍는 것은 예의법도에 어긋난 일이지만 가능한 곳은 사진으로 남기고 내부 구조는 꼭 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해 둘 만 하다. 지붕 처마를 받히기 위해 짜놓은 구조가 지붕 위 뿐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 건물 앞 면 다섯 칸에 세짝씩 달린 문짝의 꽃 문양 문살, 가운데 칸 기둥 위에 조각해 놓은 용머리 조각품, 우물 정 자 모양의 천장, 서쪽을 향한 불단, 불상의 권위를 위해 제작되곤 하는 달집의 정교한 모습 등 풍부한 구조와 장식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곡사는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고 한옥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구조 견학을 위해 즐겨찾는 곳이 되었다.

백범 김구의 인연이 담긴 향나무 한 그루

대광보전 현판 아래에 서서 마당 오른쪽에 보니 예사롭지 않아보이는 향나무 한 그루가 마음을 부른다. 이 나무는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마곡사를 찾아 수도했던 한 때의 인연을 회상하며 심은 향나무다. 백범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분노해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마곡사로 스며들어 '원정'이라는 법명으로 참시 출가, 수행했었다. 백범이 해방 후 마곡사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대광보전 기둥에 걸려있던 '각래관세간 유여몽중사'(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돌아와 세상을 보니 모든 일이 꿈만 같구나'라는 문구를 보며 감개무량해 했다고 한다.

마당에는 마곡사를 품고 있는 '태화산' 일대를 등산하고 내려온 울긋불긋한 남녀 등산객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한 사내가 말한다.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여~" 그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번뇌도 아집도 고통도 없다. 산길을 걸었으니 몸이 가벼워졌고, 하산길에 만난 눈덮인 마곡사 풍경이 아름다우니 기쁨은 증폭되었을 것이다. 이제 10여 분만 걸으면 사하촌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버섯전골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어디 온천장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몸을 지지면, 그곳이 극락이요 해탈 아닐까? 나 또한 그렇게 하고싶지만 자고 가기엔 돌아갈 길이 그닥 멀지 않고, 늘어졌다 출발하기엔 그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마곡사 마당 왼쪽에는 스님들이 일상 생활을 하는 곳인 심검당, 고방(창고) 일반 요사체 등 당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마치 속세의 풍경을 보는 듯 하다.

마곡사는 창건 당시만 해도 30여 칸의 법당과 요사체가 있던 대형 사찰이었다고 한다. 서기 640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이 창건했고 고려 명종 시절인 1172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고 범일이 재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절의 이름이 마곡사가 된 것은 신라 보철화상이 이곳에서 설법을 펼칠 때 모인 사부대중 불자들의 모습이 마치 '삼밭'의 '삼 대' 즉, 마麻 같다 해서 '마곡사麻谷寺'라 지어졌다고 한다. 마곡사의 역사가 언제나 오늘처럼 평화롭고 은은했던 것은 아니었다. 창건 후 200년 쯤 되었을 때는 절을 제대로 돌보는 주체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사라져버리고 도적떼가 주인행세를 하게 되었다. 이 도적떼를 몰아내고 다시 사찰의 모습으로 되돌린 시기가 바로 고려 명종 때다. '사찰 되찾기 작전'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곳을 점거한 주체가 무장 도적들이었고, 오랜 세월 주인으로 지내왔는데, 순순히 내놓을 터가 없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옛날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조국사와 그 제자 수우가 왕명을 받아 마곡사 중창 작업을 시작했는데, 도적들의 저항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나온 게 보조국사의 신통력. 국사는 '퇴거를 거부'하는 '무단 점거자' 앞에서 일순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때 공중에서는 "송~!방~!"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마곡사 마당과 주변과 심지어 공중에까지 수십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나 포효하며 도적들에게 공격을 가했다. 겁에 질린 도적들은 즉시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으며 마곡사는 다시 스님에 의해 접수되었다는…뭐, 그런 이야기다.

마당을 가로질러 극락교를 건너 오른쪽 계단을 오른다. 이곳에는 국사당, 명부전, 매화당, 영산전, 홍성루, 수선사 등이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을 모신 곳이다. 스님들의 요사채인 매화당에는 기둥에 커다란 목탁 하나가 걸려 있어서 눈길을 잡는다. 큰 눈이 온 뒤라 마곡사 경내 곳곳의 요사채 처마에는 고드름이 줄줄이 열려 있다. 매화당, 영산전, 흥성루도 예외가 아니다. 조금 더 둘러보고 싶지만 공사 중인 곳이 많아 포기하고 만다.

눈덮인 마곡사는 고요한 마음을 되찾으라는 몇 가지 울림을 선사한다. 살아있는 개울이 생명을 울려주고, 에둘러 들어가야 하는 구빗길이 시간을 울려주고, 오순도순 모여있는 요사체들이 인정을 울려준다.

내려가는 길…언제나 그랬듯이 몇 시간 전 올라가던 때마저 아득한 시간으로 느껴지고, 이제 다시 세상으로 들어간다.

마곡사 솔바람길

마곡사 여행은 솔바람길로 접어들면서 지속될 수 있다. '백범 명상길'로도 불리는 이 길은 마곡사를 중심으로 백련암-활인봉-나발봉-전통불교문화원을 거쳐 다시 마곡사로 돌아오는 11km의 등산 겸 산책로이다. 마곡사 솔바람길은 기본적으로 등산로다. 해발 300~400m 정도로 경사가 만만치 않아 진땀이 흐르기도 하며 게다가 지금은 땅이 꽁꽁 언 겨울이다. 제대로 된 등산복을 갖춰입어야 함은 물론 등산화와 아이젠도 준비해야 한다.

백련암은 백범이 주로 은거했던 곳인데 100m 근방에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이 '단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어서인지 곳곳에 기도의 흔적이 남아있다. 백범의 삭발식이 있었다는 '삭발바위', 마곡에서 가장 기운이 강하다는 군왕대 등을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토굴암 앞에 가면 서산대사와 백범이 제일 아껴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즐겨 전해주었다는 글귀도 마주할 수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난잡하게 가지 말게나… 오늘 내가 간 발자취는 후인들의 길잡이가 된다네."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60호(13.01.0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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