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딴 과일처럼 신선한 태평양의 아침

2012. 12.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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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와 아름다운 해변, 대규모 동물원 자랑하는 미국 대표 휴양지 샌디에이고

어부에게 바다는 생명줄이다. 잠수함을 운항하는 해군에게는 훈련장이고, 제품을 운반하는 상선의 선장에게는 길이다. 태평양의 동쪽, 미국 대륙의 서쪽, 캘리포니아 남서부에 길게 뻗은 샌디에이고의 주민들에게 바다는 포근한 쉼터이자 달콤한 연인이다. 파도가 물결치듯 밀려와 고운 해변을 만들었다. 모래에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처자들은 보란 듯이 풀어헤치고 당당하게 일광욕을 즐긴다. 샌디에이고의 고혹적인 민낯은 아름다운 해변이다.

지난 12월8일(현지시각)부터 4일간 찾은 샌디에이고는 플로리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연중 기온이 평균 약 섭씨 22도, 추워 봤자 1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다. 사막과 숲, 해변, 산이 1~2시간 거리에 있어 하루에도 2가지 다채로운 여행이 가능하다. 부지런을 떤다면 말이다. 패러글라이딩, 카약, 요트, 골프 등 다양한 레저의 천국이기도 하다.

라호이아·코로나도 비치포근한 날씨와 어울려현지인 사랑도 듬뿍

이곳은 본래 멕시코 땅이었다. 1848년, 미국과 멕시코 간 전쟁의 결과로 미국 땅이 됐지만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다운타운 북쪽에 위치한 올드타운은 멕시코 색채가 짙다. 멕시코 전통음식인 타코와 과카몰레(과카몰리. 으깬 아보카도, 양파, 토마토, 고추 등을 섞어 만든 멕시코 요리·사진)를 파는 음식점이 넘쳐나 이번 참에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네 밀전병을 부치듯 퉁퉁한 중년 부인들이 척척 토르티야 굽는 광경에는 지난 역사가 숨어 있다. 샌디에이고의 대표 음식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피시타코를 꼽는 것도 그 흔적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샌디에이고는 낙후된 곳이었다. 일본군이 진주만을 습격하자 미국 해군은 태평양 함대를 이곳으로 이전해 군인들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후 관광, 아이티산업, 의약과 해양 분야가 발달하면서 지금의 샌디에이고가 완성됐다. 거리에는 좀처럼 흑인을 찾아볼 수 없다. 샌디에이고관광청 홍보이사 조 팀코 씨는 "샌디에이고 전체 인구의 약 32%가 히스패닉계이고 베트남, 라오스, 중국, 일본, 한국 사람들이 일부 있지만 백인이 많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박찬호 선수가 머물렀다면서 친근함을 표시했다. 박 선수는 2005년부터 2년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샌디에이고 최북단 오션사이드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112㎞에 이르는 긴 해변에는 알베르 카뮈가 살인 동기로 불러 세운 뜨거운 태양은 없었다. 포근한 볕은 눈발이 인천공항을 점령하고 있던, 떠나올 때의 한국 날씨를 아예 기억 저편에 묻어버리게 만든다. 북쪽에서부터 오션비치, 라호이아비치, 퍼시픽비치, 미션비치, 코로나도비치 등 굴비 두름처럼 해변들이 줄줄이 사탕이다.

캘리포니아 최대규모 동물원650종 3700마리 동물 한곳에판다 커플 최고 인기

라호이아비치의 이른 아침은 포근하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나눠 먹는 파이 같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개를 끌고 걷는 중년 부부가 있는가 하면, 배우 뺨치는 몸매를 자랑하는 남정네도 있다. 해변에 붙은 폭이 좁은 도로가 이들 차지라면 그 아래 바위는 바다사자와 펠리컨이 주인이다. 유혹하는 로렐라이처럼 노래하는데, 금세 피식 웃음이 난다.

라호이아비치를 품고 있는 라호이아 지역은 격조 높고 아기자기한 동네다.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약 15㎞ 거리다. 스페인말로 '보석'이란 뜻. 잘 정돈된 모퉁이를 돌면 예쁜 모자가게가 나오고, 그 뒤 도로를 자박자박 걸으면 유명 의류매장에 40% 할인이 적혀 있어, 쇼핑이라고는 도무지 취미가 없는 이조차 문턱을 잽싸게 넘도록 꾄다. 이곳은 랜초샌타페이(란초산타페)와 함께 이른바 부촌이다. 우편물 주소를 적을 때 샌디에이고를 빼고 라호이아라고만 적어도 통한다는데, 분당을 성남시를 빼고 부르는 것과 같은 꼴이다. 부촌치곤 사람 기죽이는 권위는 없고, 초창기 가로수길처럼 걷는 맛, 보는 맛, 먹는 맛이 있다. 라호이아 인근 토리파인스골프장은 2008년 유에스오픈이 열린 곳이다. 타이거 우즈가 부상을 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공을 친 곳이다.

코로나도비치는 세계 최대 여행정보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세계 10대 해변으로 뽑았을 정도다. 해변 옆, 호텔 델 코로나도는 3가지가 유명하다. 마릴린 먼로 주연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촬영장이고, 1800년대 제작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브런치의 종류가 100가지도 넘는 뷔페가 있다. 은근슬쩍, 속없이 웃으면서 목조 엘리베이터 승차를 시도했지만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등장할 법한 벨보이가 막는다. 방 열쇠가 없는 뜨내기는 체험해 볼 기회가 없단다. 기묘한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호텔 앞에는 스케이트장이 성업이다. 따스한 날씨와 얼음은 어울리지 않는다. 특수제작한 시설 덕이란다.

travel tip

시월드 빼면 아쉽지

일본항공

은 지난 2일부터 도쿄(나리타공항)에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직항을 운행한다. 2월28일까지는 주 4회, 3월1일부터는 매일 운항한다. 출발 시 나리타공항에서 환승 대기 시간은 약 1시간10분, 샌디에이고까지 약 9시간35분. 귀국 시 나리타공항 환승 대기 시간은 약 2시간. 왕복 항공권은 약 104만~118만원.

발보아공원

샌디에이고 시민들의 문화생활의 중심지. 우아한 건축물과 17개의 박물관, 19개 정원, 갤러리 등이 모여 있다.(www.balboapark.org)

캘리포니아 울프센터

1977년 설립된 동물 보호, 연구센터. 야생과 생태학 교육 목적으로 캘리포니아 야생늑대를 관찰할 수 있다. 야생늑대는 멸종위기로 후각이 매우 발달한 동물. 총 18마리가 있다.(www.californiawolfcenter.org)

샌디에이고 시월드

1964년 3월 개장한 이래 1억3000만명 이상 다녀간 세계적인 해양공원. 동물쇼의 상연 시간 확인은 필수. 4가지 쇼가 매일 3~4회 열린다. 간판 쇼는 '원 오션'(One Ocean) 범고래 6마리의 공연.(seaworldparks.com/seaworld)

기타 문의

캘리포니아관광청 www.visitcalifornia.co.kr, (02)777-6665.

샌디에이고 볼거리는 해변만 있는 것 아니다. 해변이 신의 축복이라면 사람의 손을 거친 여행지는 제 나름대로 맛이 있다. 다운타운은 1867년 계획적으로 조성된 곳이라 도로가 질서정연하고, 그곳에 있는 가스램프쿼터(옛날 가스로 가로등을 밝혔다고 해서 붙은 이름) 거리는 낮과 밤이 완전히 다른 표정이다. 한때 우범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잘 정비해 레스토랑, 클럽, 상점, 갤러리 등이 빼곡하다. 어딘가 유럽 거리를 흉내 낸 듯한 분위기는 어색하지만 한잔 술에 흥겨워하는 이들에겐 그다지 문제 될 게 없어 보인다.

샌디에이고행 여행길에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소리는 샌디에이고 동물원(SD ZOO)에 관한 거였다. 총 100에이커에 650여종, 3700여마리 동물들을 보유한 캘리포니아주 최대 동물원이다. 가이드 투어버스를 타지 않았지만 하루를 다 투자해도 부족할 판! 동물을 눈앞에서 똑똑히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왜냐면, 동물들이 <혹성탈출>의 주인공 원숭이만큼의 인지능력이 있다면 탈출을 감행하고 남을 정도로 담이 낮다. 물론 동물의 종류에 따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한 설계다. 대략 5m 안팎이다. 최고 인기스타는 판다곰이다. 중국남부와 히말라야 동쪽이 고향인 레드판다(애기판다·너구리판다)는 길이 64㎝, 몸무게 6.2㎏. 족제비가 왜 판다곰 구역에 있나 의심할 정도로 곰처럼 보이지 않는다. '뱀부이팅 머신'(Bamboo-eating Machine)이란 별명을 단 판다 '가오가오'도 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비비고 긁는 4살배기 판다는 이름이 윤지란다. 가까운 지인의 이름과 같아 웃음이 터진다. 사람들이 곰들 재롱에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언뜻 봐도 다른 우리의 놈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러운데 인기의 비결은 청결에 있지 않나 보다.

다운타운에서 동쪽으로 1시간 차로 달리니 조용한 시골마을 줄리언이 나타났다. 늦은 밤 도착한 줄리언. 은하계의 별을 다 가져와 밤하늘을 구성했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반짝이는 하늘,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눈물이 쪼르륵 떨어진다. 곱게 화장한 도시의 불빛이 없는 이곳에는 별자리 관측소가 있다. 마을에서 약 15분 정도 산기슭을 따라 달리면 세상의 고요가 밤하늘에 납작 숙인 곳이 나타난다. 3대 망원경에서 나눠 본 목성, 금성, 화성 등이 가슴에 박힌다. 한참 넋을 잃고 있는데, 관측소 운영자가 작고 납작한 돌멩이를 주며 소원을 빌란다. 운석 조각이다. 소원은 승천했다.

샌디에이고 쿠야마카 산맥에 위치한 이 마을은 1870년대 골드러시 시대에 조성되었다. 현재는 사과나무를 키우는 등 농업이 중심이고, 낮에도 인적이 드문 그야말로 미국의 전형적인 '깡촌'이다. 강원도 깊은 골짜기 어디쯤과 닮았을까! 3층이 넘는 집이 거의 없다. 지나는 이들은 우리네 농부처럼 그저 인심 좋은 미소를 던진다. 사과농사 덕분인지 이곳 애플파이는 꽤 유명하다. 1986년부터 시작한 가업을 이어 지금도 애플파이를 만들고 있는 리처드 벨 씨는 추수감사절 그 주만 해도 7500~8000개를 팔았다고 한다. 평균 일주일에 1000개, 주말에 400~500개를 만든다. 모두 수제, 통조림 과일이나 방부제를 전혀 안 쓰고, 천연버터 사용이 비결이란다. 세상 어디든 맛의 비밀은 같다니 그저 놀랍다.

아이들과 동행한 여행객이 놓쳐서는 안 될 곳, 레고랜드. 수천 조각의 레고 블록이 성을 이룬 놀이동산이다. 60여가지 놀이기구가 있다. 환상과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는 장난감 세상! 뉴욕 등의 도시를 레고로 재현한 미니랜드에는 2400만개의 레고 조각이 사용됐다. 미치게 할 만큼 앙증맞은 레고동산 관람을 마치면 알싸한 해변의 바람이 다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샌디에이고(미국)=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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