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제왕', 왜 관계자 열광하고 시청자 외면할까

2012. 12. 1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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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모의 테마토크] 일주일에 20편이 방송되고 그중 6편의 월화, 수목 미니시리즈는 2달반 간격으로 새로운 작품이 투입되니 1년에 약 50편 내외의 드라마가 안방 시청자들과 만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참으로 치열해도 한참 치열하다. 한마디로 전쟁이다.

현행 방송법 시행규칙은 지상파 방송사들에게 외주 제작 프로그램을 40% 이상 편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 접어들면서부터 방송사들은 비용 절감 등의 위험 부담 덜기 차원에서 드라마 외주제작 비율을 늘려 지금은 70~80%로 웬만한 것은 거의 외주제작사에게 떠넘기는 '배급사' 수준으로 체질개선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주제작사 간의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드라마 제작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편성확보부터 투자 캐스팅 그리고 다양한 인력관리 등도 힘든데 막상 방송을 시작하고 나더라도 시청률 경쟁이라는 지상 최고의 미션으로 하루하루 피를 말릴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돈'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방송사에서 제작사에 지급하는 회당 제작지원비는 1억원 정도. 많아야 그보다 50% 더 줄 뿐이다. 즉 미니시리즈 한 편당 지원받을 수 있는 제작비는 20~30억원 정도인데 뉴스를 보면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낯설지 않고 40~50억원은 보통이다. 사실 주연배우 2명 개런티로만 20억원 안팎의 돈이 지급돼야 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50억원 밑으로 미니시리즈 한 편을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면 질의 저하가 불을 보듯 뻔하다.

시청자들은 월 몇천원에 불과한 TV수신료 외에 따로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마음껏 수편의 드라마를 무차별 시청할 수 있으니 이런 내막을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들지도 않겠지만 제작 일선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모든 일들이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이런 드라마계의 현실을 날것 그대로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게 바로 SBS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극본 장항준 이지효 연출 홍성창)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지난 주 8.9%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정상 MBC '마의'의 17.8%에 비해 형편 없이 뒤져있다. 이제 3회를 내보낸 KBS2 '학교'의 8.2%에조차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학교'가 내용상 청소년들은 관심을 가질지 몰라도 다수의 시청자들이 외면할만한 설정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참담한 수치다.

게다가 주인공은 '연기본좌' '흥행의 보증수표'라는 김명민에 역시 흥행에 있어서 어느 정도 안정된 바탕을 유지하는 정려원이니 참으로 낯뜨거운 시청률이다.

반면에 관계자들은 빼놓지 않고 재방송이라도 꼬박꼬박 챙겨보는 드라마가 바로 '드라마의 제왕'이다. 그 이유는 역시 드라마계의 현실을 아주 적확하게 꼬집어내고 있어서 마치 자신의 얘기 같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반 시청자들은 마냥 화려한 꿈의 공장만 같은 연예계와 방송계의 살을 에이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그다지 피부에 깊게 와닿지도,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은 모양이다.

올해 방송된 드라마 중 '시청률의 제왕'은 평균시청률 33%대의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MBC '해를 품은 달'이다. 반면 치욕의 꼴찌는 5%대의 KBS2 '난폭한 로맨스' '사랑비' SBS '아름다운 그대에게'다. 일반인들이야 수치를 비교해가며 냉정하게 평가하겠지만 제작사로서는 이런 우울한 성적표와 더불어 빨간색 대차대조표를 들고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됐든 '드라마의 제왕'은 다수 시청자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역사 속에서는 빛날 것이 확실하다. 그만큼 현재 드라마 제작계의 현실을 가감 없이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 방송사 연예기획사들이 감추고 싶은 이면의 각종 비리와 부조리조차 까발리고 있다. 그래서 관계자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크게 앤서니 김(김명민)의 월드프로덕션, 오진완(정만식)의 제국프로덕션, 지상파 방송사 SBC로 나뉜다. 앤서니는 한때 제국프로덕션의 대표이사로서 잘 나가는 드라마 제작자였지만 회장에게 해고당한 뒤 3년간의 와신상담을 거쳐 월드를 차리고 회심의 재기작 '경성의 아침'을 제작중에 있다.

앤서니가 제국 대표이사 시절 그 밑에서 온갖 설움을 다 겪은 뒤 제국의 새 대표이사 자리에 앉은 오진완은 앤서니가 컴백하자 오로지 그를 무너뜨릴 일념 하나로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매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위기 요소가 투입된다. 그 첫 번째는 편성이었다.

앤서니는 천신만고 끝에 신인작가 이고은(정려원)이 쓴 '경성의 아침'이란 대본으로 재일교포 사업가 와타나베로부터 100억원 투자를 이끌어내고 S 방송사에 편성을 받아내려 애쓰지만 번번이 오진완의 훼방에 부딪힌다.

이 과정에서 S 방송사 편성국장에게 거액의 촌지를 건네고 결국 편성권을 따내지만 오진완이 검찰 쪽에 제보해 국장이 구속되고 새로운 국장이 임명되면서 모든 게 백지화되지만 종국에는 뚝심으로 밀어부쳐 제 자리에 돌려놓는데 성공한다.

다음은 캐스팅.

앤서니는 오로지 돈 밖에 모르고 출세지향적이고 안하무인이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어서 업계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왔던 터. 그런 그가 3년간의 공백을 깨고 나타나자 톱스타 강현민(최시원)은 경계심부터 갖지만 업계 최고의 회당 1억원씩 총 20억원의 개런티를 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혹해 넘어온다.

그는 겉으로는 겸손하고 인간적이며 솔직한 척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방지축 골치남이다. 무식할 뿐 아니라 무지하고 철이 없다. 오로지 자신이 돋보이게 만드는 것과 돈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런 그를 마지막으로 무너뜨리는 사람은 바로 이고은이다. 그녀의 진정성과 뛰어난 대본이 승리한 것.

남자 주인공이 있으니 여주인공도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캐스팅할 수 없는 여배우를 후보자 명단에서 지우다보니 심지어는 '상대 배우가 강현민이어서 절대 못 하겠다'는 여배우까지 나온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역시 당대 최고의 톱여배우 성민아(오지은).

그런데 알고 보니 성민아는 그녀가 신인이었고 앤서니가 한참 잘 나가던 당시 연인 사이였지만 앤서니에게 차인 관계. 그럼에도 앤서니는 프로 정신을 발휘해 그녀를 캐스팅한다. 성민아는 아직도 연정이 남아있어 그의 손을 잡지만, 드라마를 위해서라면 가족도 버린다는 신념을 가진 앤서니의 감정 속에는 사랑 같은 게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제는 감독이다. 모든 감독들이 앤서니라면 치를 떨고 있는 상황이고 심지어 SBC PD들은 연대해서 앤서니 반대운동의 집단움직임까지 보인다. 그래서 앤서니는 연출력은 뛰어나지만 괴팍한 성격으로 제도권을 떠나 산속에서 은둔중인 SBC 출신의 실력자 감독을 어렵게 섭외한다.

오진완이 앤서니의 행보를 가로막는데 번번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제국의 회장(박근형)이 직접 나선다. 그는 와타나베의 죽음 뒤 새롭게 그 자리를 이어받은 아들에게 접근해 앤서니로 하여금 선투자금 34억원을 토해내도록 만든다.

이제 앤서니는 이 돈을 못 구해오면 '경성의 아침'을 제국에 넘기든가 아니면 자신의 팔목을 내놓아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럴 때 그는 제국 회장이 스튜디오 건립을 위해 서을 근교의 대규모 땅을 매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땅주인과 작전을 짜서 거액으로 땅을 판 뒤 그 땅주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아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위기를 탈출한다.

현재 '드라마의 제왕'에서 다루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표절 문제. 한 소설작가(김보연)가 이고은의 대본이 자신이 5년전 발표한 소설과 똑같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

그 외에도 중소규모급 갈등과 위기 요소들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틈틈이 등장한다. 이고은이 신인작가라서 위험하다며 편성국장이 안정된 작가로의 교체를 요구하는 점, 집안형편 때문에 제국의 정보원 역할을 하는 월드 말단직원, 여주인공으로 원수지간인 제국 소속 여배우 성민아를 월드에서 캐스팅하는 일, 한겨울에 바닷가에 뛰어드는 상황을 대본에 적은 이고은과 그걸 수정해달라는 강현민의 대립 등이 그렇다.

특히 주연배우 강현민과 성민아의 갈등은 아주 현실적이어서 마치 외줄타기를 보는 듯 아슬아슬하다. 처음 만남부터 제 시간 맞춰 미팅장소에 등장하는 것과 약간 늦게 등장하는 것을 놓고 경쟁하는 심리 묘사를 시작으로 대본에 적힌 자신의 분량, 언론에 얼마나 자신이 더 돋보이게 노출되는가 등을 놓고 무언의 경쟁을 벌이는 내용 등은 실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며 잦은 다툼을 벌였다는 스타들의 제작 뒷얘기에 다름 아니다.

아주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 '보디 가드'의 주인공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이와 비근한 예. 두 사람은 작품 속에서는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키스신 촬영 뒤 '입냄새가 심해서 역겨웠다'는 등의 무성한 뒷말을 남기며 촬영현장이 얼마나 어려웠나를 알려줬다.

그렇다면 '드라마의 제왕', 이렇게 실감나고 절절한데 왜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할까? 극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10회까지 멜로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주인공 앤서니와 이고은의 멜로라인이 형성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고 오히려 서로 반목하고 대립했었다.

또한 코미디도 없다. 이런 특수 직업군을 다룬 전문직 드라마에서 멜로는 물론 코미디까지 없다면 관련 업계 외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다. 꼭대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뒤 다시 정상에 오르기 위해 터지고 깨지는 앤서니의 성공스토리나 생면부지의 신인 초짜 작가에서 유명작가로 발돋움하는 이고은의 부화스토리만으로는 업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힘들다.

전형적인 성공신화를 기둥줄거리로 한 '마의'는 '드라마의 제왕'과는 달리 자신의 신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양반집 규수(강지녕)와 청상(서은서)은 물론 왕의 여동생(숙휘공주)까지 반하게 만든 마의 출신 의생 백광현(조승우)을 둘러싼 멜로부터 시작해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조승우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까지 더해주기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맞추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이 시각에도 편성 투자 캐스팅을 위해 '드라마의 제왕' 자리를 노리는 관계자들은 불철주야 뛰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알고 보면 조금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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