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에리 북유럽80일]타박네, 상처·교회묘지 & 자연

【노르웨이=뉴시스】김에리의 '80일간의 북유럽 일주' < 39 >
플롬 캠핑 & 유스호스텔은 2010년 국제호스텔연합이 노르웨이 최고 호스텔이자 세계에서 9번째로 훌륭한 호스텔로 지명한 곳이다. 호주에서 나온 '론리 플래닛' 번역서에는 대단히 친절하다고 나와있지만, 동양인에게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각종 나무와 장미덩굴, 구석구석 꽃화분으로 단정하게 꾸며져있었고 시설도 깨끗하고 좋았다. 여러 채의 목재 집들이 늘어선 가운데 캠핑카들이 군데군데 텐트를 치고 들어차있다. 간이매점처럼 창구를 만들어놓은 리셉션 옆에는 소시지 등을 구워파는 이동차도 들어와 있다.
리셉션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기에 창구 옆쪽면 문을 두들겼다. '프라이빗'이라고 써있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인가. 장년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작은 종을 들어보이며, 종을 울리지 그랬냐며 타박을 한다. 종을 울리라는 안내도 없던데, 문화차인가 싶어 입을 다물었다.
체크인을 하려는데 개인 시트를 가지고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노르웨이에서는 덮는것, 까는것, 베갯잇까지 다 있어야한다고 강조를 하는데 경멸의 빛이 담겨있다. '풀 세트' 다 가지고 있다고 쏘아주자 "아, 풀 세트" 하고 입을 다문다. 호스텔에서는 개인 시트가 없으면 돈을 주고 대여를 해야한다. 마침 '풀 세트'라는 적절한 영어단어가 딱 떠올라 입을 막았으나, 동양인을 싫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깔끔 떨고 쌀쌀맞은 성격의 노르웨이 아줌마가 이곳을 지나간 중국인 관광객들의 무례함과 무질서함에 질리지 않았을까 싶다. 많이 접해봤으니 반감도 생기는건데,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어처구니없는 뻔뻔한 짓을 많이 하는 듯싶었다. 그러니 외모상으로 엇비슷한 한국인들까지 함께 배척당하는 일이 생기는 거다. 호주 등 해외에서 '차이니즈'냐며 린치를 당하는 일이 늘어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80년대 해외여행자유화시대가 열리면서 국제적 기준의 에티켓을 지키기 못해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워낙 중국의 인구도 엄청나니 그 파장도 큰 듯싶었다.
사실 관광안내소가 있는 건물에서 별로 달갑지 않은 장면을 목격한 차이기도 했다. 이곳 대기실에는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높은 나무 데스크와 콘센트 등을 마련해놨는데 한 중국계 파마머리 아줌마가 한 백인 대머리 중년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빌려달라고 애걸을 하는 것을 봤다. 경치가 좋아 DSRL카메라로 마구 찍다보니 메모리카드가 다 찬듯한데, 섹시한 젊은 여성도 아니고 외모적으로도 낯선 땅땅한 중년 아줌마가 서툰 영어로 느닷없이 노트북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하니 굉장히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사정은 알겠으나 상당히 개인적이고 경계심 많은 유러피언들에게는 저런 행동들까지도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상적 삶의 태도라는 것이 있어도 인간이란 외모와 인종 등에 대한 차별을 내심 하게 마련이다.
호스텔 내부도 깨끗하고 멋지기는 했다. 사슴머리 박제가 벽에 붙어있는가 하면 유리장식장에도 올빼미와 족제비과같은 작은 동물들의 박제가 전시돼있을 정도로 신경을 썼다.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는 도미터리 건물 2층에는 넓은 응접실까지 마련해놓았다. 하얀 창틀에는 붉은 꽃화분이 놓여있어 나무판자 벽과 함께 산장같은 분위기를 냈다. 내게 배정된 방은 4명이 함께 쓰는 방이었는데 샤워기가 있는 화장실이 딸려있고, 작은 나무 테이블과 의자까지 갖춰져있다. 화장실로 막혀있는 벽과 벽사이에 두꺼운 판자로 고정 나무 벤치를 설치한 것까지 마음에 든다. 하얀 창틀 바깥으로는 숲이 펼쳐져있다.
◇오래된 목조교회에서 애도의 눈물을
짐을 부려놓고 부고를 듣고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교회를 가기 위해 나섰다. 기독교국가인 유럽에는 어느 동네나 유서깊은 교회가 있게 마련. 리셉션으로 다시 가서 주인아줌마에게 길을 물었더니 지도를 내주며 '플롬교회'의 위치를 볼펜으로 표시해준다. 지도상으로 거리파악이 잘안돼 거리를 착각하고 "한 10여분이면 갈까?"했더니 심술궂은 미소를 띠며 "한 20분이면 될 거 같은데"한다. 옆에 서있던 키큰 남자직원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분명 훨씬 더 걸릴텐데 거짓말을 하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나마 볼펜으로 표시한 지도는 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도로 앗아간다. 무료로 관광객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한 장씩 뜯을 수 있도록 만든 두꺼운 지도 책이다. 저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게, 보통 심통을 부리는게 아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플롬산악철도(플롬스바나)를 타지 않는다면 하이킹밖에 할일이 없다. 조용한 교회묘지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어 일단 걸어가 보기로 했다. 양쪽 산 사이로 쭉 찢어들어간 피오르드 지형이라, 긴 골짜기 사이로 기나긴 일직선 아스팔트 도로를 내고 주변으로 인가가 들어섰다. 플롬스바나 철도와도 한동안 겹치는 길인데, 땡땡땡 하는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록색 열차가 지나갔다. 기차에 탄 관광객들과 마주보며 구경을 하며 서로 사진을 찍어댔다. 이 길을 걸어내려오는 관광객들과 종종 마주쳤는데 교회는 어지간히 먼 듯싶다. 외딴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몸도 좋지 않고 꽤 너른 강물 곁이기 때문인지 점점 오한이 든다. 오른쪽에 힘차게 흐르는 급류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꽤 걸었는데 그제서야 Brekkefossen 폭포가 나온다. 그래봤자 이게 이 길의 도입부다. 깎아지른 듯한 높은 바위산을 배경으로 짙은 녹색을 뿜어내는 침엽수림이 무성한데 좀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왜 '트롤'이라는 도깨비 전설이 이 깊은 숲속에서 탄생했는지 알 것 같다.
노르웨이 어디나 그렇듯이 이 동네도 깨끗하고 단정하기 그지없다. 자연의 혜택을 훼손하지 말자고 전국민적으로 굳게 약속들이라도 한 것 같다. 종종 푸르른 밀밭과 작은 트랙터로 가꾸는 농작물 밭이 나타나고 정원에도 과실수를 주로 심은 시골 마을이지만 정원만은 정말 기가 막히게 깔끔하게 가꿔놓았다. 여름별장으로 쓰는 곳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단출한 멋이 있다. 작은 연못이며 철망을 따라 자라는 흰 메꽃, 적갈색 벽위를 따라 자라는 청초한 연분홍 장미덩굴, 작은 보랏빛, 흰 풀꽃들 하나하나가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그러나 이 길이 관광객들에게는 예상보다 길어서 짜증이 나는건 분명했다. 한참만에 만난 관광객 노부부에게 교회의 위치를 물었는데, 아직도 많이 가야한다는 대답이다. 좀더 나이들어보이는 남편쪽은 무척 지친게 분명하다. 숨을 몰아쉬며 짜증을 내며 대답을 해주는데, 미인인 부인이 이해하라는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녀의 미소에 기분이 좋아졌다.
인적이 없어도 너무 없다. 또 한참만에 조깅을 하는 남자 한 명을 겨우 만났다. 달리기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낯선 산골동네에서 외롭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를 불러세웠다. 교회의 위치를 물어보니 방해당한 것에 화가 나는지 "없어"하고 내뱉고는 가버린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또 금세 기분이 상한다.이런 산동네에서 택시를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심히 힘들었지만 중도에 주저앉을 수도 없다.
한시간을 넘게 걸었더니 인가 사이로 드디어 검게 칠한 목조벽에 붉은 기와를 올린 교회가 나타났다. 멀찍이서도 내부의 불을 켜놓은 것이 보인다. 표지판을 확인하니 플롬에서 3.5㎞를 걸어왔다. 걸쇠만 걸려있지 잠겨있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무려 1667년에 지어진 목조교회는 내부 벽을 채색화로 꾸민 독특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나무, 포도덩굴, 각종 동물들이 그려진 벽화는 키치적이고 나이브하면서도 토속적이다. 20크로네라고 가격표가 적혀있는 브로슈어를 살짝 들춰보니 교회 예술로서도 굉장히 유니크한 것들이라는 설명이다.
신자석 제일 앞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묘지와 마을풍경과 함께 멀리 녹지않은 눈이 쌓인 설산이 보인다. 그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담담해지면서 그제서야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너무 멀리 떨어진 내 고향 서울에서 오늘 돌아가신 어른을 생각하며 한없이 울었다.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내 나름의 애도였다.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던 한 남자가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가 내가 휴지로 눈물을 닦는 것을 보더니 당황했던지 사진 한장만 찍고 다시 나가는 것 같다. 한참을 울다가 울음을 그치고 밖으로 나가려니 걸쇠가 밖에서 잠겨서 갇혔다. 다행히 얼마뒤 다른 관광객이 와서 인기척을 듣고 문을 열어줘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잔디밭 묘지로 나와 묘석 하나하나를 한참을 살펴보았다. 이름과 생몰연도들을 쭉 읽어보며 그들의 살았던 햇수를 계산하고 그들의 삶을 유추해보았다. 이곳에서 대대로 농부로 살았을 것이다. 죽은 자들의 후손들이 계속 이곳에 머무르며 묘비를 돌보나보다. 하나같이 앞에 싱싱한 꽃들이 꽂혀있다. 마을 교회 내에 함께 있어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가 별 것 아님을 보여주는 서양 묘지들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특히 오늘 같은 날 힘들게 걸어올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교회는 관광객들에게 개방했다가 오후6시면 문을 닫는다. 마침 어디선가 나타난 하얀장화 신은 검은 고양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그 고양이가 들어가는 교회옆 작은 흰 집에서 티셔츠 차림의 중년 사내가 나타나 교회문을 잠근다. 아마 교회지기같은 역할을 하나본데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인듯 싶다. 미소만은 참 푸근했다.
◇40㎏ 배낭 매고 35㎞ 걸어왔다는 미국처자
피곤에 전 몸은 무거워져 오는데 다시 한시간을 넘게 걸려 3.5㎞를 되돌아가야한다. 갑자기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가방 속에서 작은 우산을 꺼내 쓰고, 방수재킷도 찾아 입었다. 어려서부터 가방에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다 넣고 다니는 준비성 철저한 어린이었던지라, 이곳으로 걸어오면서도 가방이 무거운 것 때문에 짜증이 났었는데 이럴 땐 아주 유용하다. 가방 속에 지니고 있던 초콜릿바도 찾아먹고 나니 기운이 좀 난다. 하도 샅샅이 사진을 찍어대느라 카메라 배터리도 다 닳고 CF카드도 꽉 찼는데, 가방 속에서 여분을 찾아 갈아 끼울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싶다.
같은 길인데도 내려오는 방향에서 또다른 느낌을 준다. 비가 오고 바람이 소슬하게 부니 나무들이 울창한 가지를 우아하게 흔들어댄다. 백야현상으로 아직 밝은 저녁시간까지 플롬스바나가 오르내린다. 확실히 비가 오니 경적이 더 선명하게 울린다. 메아리처럼 산골짜기 사이로 퍼져나간다. 철로변으로 흰빛, 분홍빛의 별모양 꽃들이 무더기 져있고 무심히 쌓아놓은 낮은 돌담들도 정겹다. 그저 헛간으로 쓰는 낡은 창고조차 이국적이고 멋스럽게 느껴진다. 돌아갈 길이 멀지만 다시오지 못할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구석구석 카메라에 담느라 걸음이 더욱 늦어진다.
마침 묵직한 망원렌즈를 장착한 전문가용 카메라를 든 포토그래퍼를 한 명 만났는데,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주변을 이리저리 서성이는 것 같았다. 1초도 안되는 순간 눈이 마주치며 서로 찰나의 미소를 나눴다. 혼자 여행하는 이들끼리의 공감대다. 이런 게 걷기 여행의 묘미리라. 힘든 일이 겹치면서 감정상태가 엉망이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다보니 크게 위로가 된다.
호스텔 여주인이 오후5시 정도에 교회문을 닫을 거라고 잘못 일러줘 부지런히 교회를 향하느라 오는 길에 그저 스쳐지났던 Kvernhus라는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봤다. hus가 북유럽어에서는 집을 뜻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이럴때는 내 관찰력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작은 나무다리를 따라 들어가보니 작은 목재집이 나타나는데 들어가보니 수력을 이용한 방앗간이다. 역시나 지키는 사람은 없고 우리의 맷돌과 같은 구조의 둥글게 모서리를 깎은 돌덩이 두개가 겹쳐 놓여져있다. 나무 손잡이를 물의 힘으로 돌리는 것이다.
작은 유리병 2개에는 밀알과 밀알을 갈아 만든 밀가루가 들어있고, 종이 한장에 밀을 갈아 밀가루를 만드는 방아의 원리를 그림으로 그려 설명해놓았다. 방명록과 함께 기부금을 받는 작은 유리병이 있는데 동전들이 꽤 쌓여있다. 3명의 관광객이 나를 뒤따라 들어왔는데, 독일인인 듯한 여자가 내가 꼼꼼히 사진을 찍는 것을 보더니 방앗간 밑부분을 보라고 손짓으로 알려준다. 나무로 만든 회전모터처럼 생긴 장치가 달려있어 센 물살에 맷돌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놨다. 물이 부족해 나무 모터가 밖으로 드러나보이고 방아도 작동하지 않는거였다.
걷다보니 이제는 이용하지 않는 간이 버스정류소까지 다시 왔다. 숙소에 거의 다 온 것이다. 검은 대형 거미줄과 빨강, 파랑, 녹색의 거미 3마리, 진푸른 하늘의 배경으로한 녹색 나무와 노란 태양과 흰 구름과 비. 대여섯살 아동이 그린 듯한 그림이다. 누군가 예술적 재능을 참을 수 없어 더이상 버스가 다니지 않아 소용이 없어진 돌판으로 세워진 정거장을 원색의 키치적 페인팅으로 잔뜩 꾸며놓았나보다.
호스텔의 4인용 방은 자그마한 체구의 얌전한 일본인 아가씨와 미국인 아가씨와 함께 사용하게 됐다. 165㎝ 정도의 키에 갈색머리인 미국인 처자는 건강한 에너지를 내뿜는 균형잡힌 몸매의 미인이다. 오늘 아침 베르겐에서 출발해 뮈르달에서 플롬까지 35㎞ 정도의 산길을 무려 40㎏ 무게의 배낭을 메고 걸어왔단다. 미국 유학파들이 스테이크를 주식으로 하는 백인들의 체력에 대해 말하곤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대학 졸업반이라는 이 백인 처자의 체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인지 강한 체취를 풍기는데, 사향 냄새처럼 느껴질 정도로 싱그럽다. 신비하게 매력적인 아가씨다. 그렇게 걷고도 생생한 그녀의 젊음과 육체성이 마냥 부럽다. 여행이 주는 활기와 극한 육체활동이 뇌에 남긴 흥분 때문인지 이 아가씨의 수다는 그치지 않는다. 옷을 많이 버렸기에 내복바지를 레깅스를 대신해 입고 그 위에 무릎길이 갭 면원피스를 걸친 형편없는 내 옷차림에도 귀엽다고 칭찬의 목소리를 한껏 높인다. 내 나이가 몇살인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곧이어 노르웨이의 높은 물가에 대해 불평하며, 이번 여행에서 쓴 돈 때문에 돌아가면 친구와 살던 집을 줄여야하겠다는 얘기까지 한다. 어제가 생일이었는데 베르겐의 한 식당에서 홀로 포도주를 마시며 자축했다고 찍은 사진도 일일이 보여주며 베르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한바탕 떠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엄마에게 전화를 해 방안에 샤워실이 달렸으며, 룸메이트는 일본인과 중국인인데 정말 조용한 아가씨들이라 좋다는 사소한 얘기까지 전하며 한참을 또 떠든다.
이불을 쓰고 누우니, 오늘 들은 부고에 다시 가슴이 먹먹해오기 시작한다. 슬픔에 피로까지 겹쳐 더욱 지치는 듯싶었다. 하룻밤의 룸메이트들에게 이러한 감정을 티내기도 그래서, 일단 일찍 잠들기로 했다. 이곳 호스텔에서는 아침 제공을 하지 않는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일어날 필요가 없으니, 맘놓고 늦잠을 자보기로 했다. 아이리시 속담에 좋은 웃음과 긴 잠은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좋은 치료제가 되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 7월 13~14일 플롬 >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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