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만,차마고도를 가다] (상) 차마고도의 심장 시저우(喜州)

2012. 12. 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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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를 누르자 천년 전 풍경들이 숨쉬기 시작했다

김중만, 2012년 '시저우의 노을'

사진작가 김중만이 차마고도(茶馬古道)를 품고 있는 중국 윈난성을 다녀왔다. 중국 남서부 오지인 윈난성은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이 이상향으로 묘사했던 곳으로, 김중만은 그곳 사람들의 삶과 자연 풍광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부산파이낸셜뉴스 창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특별기획에는 중국 전문가인 박현 난징사범대 명예교수가 동행해 글을 썼다. 총 3회에 걸쳐 게재될 '김중만, 차마고도를 가다'는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과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촬영된 김중만 작가의 사진작품은 내년 초 서울 강남구 신사동 fnart SPACE에 전시될 예정이다. < 편집자주 >

많은 사람들은 차마고도를 일러 중국 윈난성 남쪽에서 시작해 히말라야를 넘어 서역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나는 자연은 사람의 눈을 맑게 하고 가슴을 시원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풍광이라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영상매체와 화면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고, 어떤 이들은 직접 다녀온 다음 정말 그렇더라고 말하기도 한다.

틀린 생각도 아니고 잘못된 이야기도 아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계절 봄과 같은 고산풍광은 참으로 세외도원(世外桃源)의 그것이기도 하다. 하나 차마고도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인류가 아주 이른 시기에 닦아낸 경제적 목적의 고속도로이며 수많은 민족들이 그 길을 통해 문화를 나누고 섞어온 문화대동맥이기도 하니 말이다.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종족, 서로 다른 종교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이 길 위에서 공존과 공생의 방도를 찾아냈고, 서로 다른 음률과 서로 다른 종족의 악기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마당도 이 길 위에서 만들어냈다. 손님이 오면 쓴맛의 차와 단맛의 차에다 복잡하게 섞인 맛의 차를 차례대로 내놓고서 인생의 쓴맛과 단맛 및 복잡한 맛을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바이족(白族)의 삼도차(三道茶)도 윈난성의 남부 아열대 지역에서 차를 만들어온 타이족(泰族)과 부랑족(布朗族) 등의 물건이 이 길을 타고 흘러들었기에 독특한 풍속으로 될 수 있었다. 바이족이 좋아하는 민물고기 뚝배기잡탕도 그 길목에서 도자기를 빚던 하니족(哈尼族)의 뚝배기가 흘러들었기에 그들만의 토속음식이 될 수 있었다. 티베트의 짱족(藏族)이 좋아하는 방짜유기도 바이족의 솜씨 좋은 장인들이 만들어 이 길에 얹었기에 그들의 라마불교사원이 구릿빛으로 빛날 수 있었다.

김중만 사진작가가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차마고도의 중심도로는 좁고 험난한 길이라기보다 곳곳에서 열리던 이레장과 보름장을 이어가는 넓고 번잡한 길이었다. 영상매체에서 만나는 비탈 지고 험난한 길들은 차마고도의 모세혈관에 견줄 수 있는 작은 지선일 따름이다. 큰 길목마다 자리잡은 크고 작은 마을들은 차마고도의 주요 거점이었고, 여러 종족들이 다양한 언어를 쓰면서 공존하던 이런 마을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방으로 끝없이 이어진 넓은 마을광장이 있었다. 흔히 쓰팡제(四方街)라 불리는 이 마을광장은 다양한 언어의 전시장이자 수십여 종족들의 혈통 박물관이며 문화와 생산물의 교류 박람회장이었다.

차마고도가 문화대동맥이라면 차마고도를 오고가던 교류주체인 마방은 그 혈액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물건을 실어나르는 상업의 주체이자 문화교류를 가르치는 이동 학교이며 종족들의 공존을 위한 조정자이자 주민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정보동력이기도 했다. 그들의 역할은 반세기 전까지 이어져왔으며 아직도 이 지역의 문화를 이야기하는 데서 차마고도를 들어내긴 어렵다.

이런 길목들 가운데서 차마고도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곳을 들라면 필자는 시저우(喜州)를 꼽고 싶다. 그곳은 차마고도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마방의 근거지 가운데 하나이자, 공존과 화해 및 융합의 문화를 가장 잘 꽃피운 곳이며, 가장 수준 높은 건축문화와 가장 안정된 주민생활이 향유된 곳이고, 기나긴 차마고도의 중간지역에 있었다. 아울러 이곳은 차마고도를 기반으로 세워져서 차마고도를 더욱 발전시켰던 옛왕국인 다리국(大理國)의 중심 영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저우는 동양의 운율과 서양의 운율이 만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 곳이며, 여러 종족의 악기들이 만나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루어낸 곳이고,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다양한 종족들의 구성원들이 제 특산물을 갖고 찾아들어 서로 웃으면서 거래를 하던 곳이었다.

그런 시저우를 김중만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안고 찾아갔다. 아프리카의 야생을 담던 가슴과 도시의 감성을 담던 눈빛으로, 산수를 그려내던 호방함과 수많은 인물을 그려내던 섬세함으로 차마고도의 심장을 만나기 위해 시저우를 찾았던 것이다. 차마고도의 공간을 평면에 담아 새로 한 줌의 숨을 불어넣기 위해서!

시저우를 찾아 가는 길에는 대한항공의 도움이 컸다. 차마고도의 대동맥을 담아보려는 뜻에 기꺼이 동참하여 김중만 작가와 그의 팀을 윈난성 쿤밍으로 옮겨주었던 것이다. 물론 쿤밍에서부터는 만만찮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육상교통, 그 길을 달려 시저우의 코앞이나 다름없는 다리 고성에 도착한 작가는 곧바로 시저우로 가지 않았다. 다리의 숨결을 느끼면서 자신의 숨길을 돌리고 있었다. 채널을 맞추려는 듯, 아니 시저우의 숨결과 작가의 숨결이 어우러질 때 밀리지 않기라도 하려는 듯, 그렇게 한 뜸을 들이고 시저우에 도착한 작가는 천년 차마고도의 길고도 느린 시간을 초고속으로 모두 담아내기라도 하려는지 셔터 누르기에 가속을 붙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눈은 시저우의 마을 광장인 쓰팡제를 중심으로 시간의 그림자를 찾아내고 있었다. 좁은 골목과 넓은 길, 두레 우물과 고색찬연한 집, 천년 세월을 누려온 나무와 홀치기로 쪽염색을 한 천조각, 특이한 음식과 전통복색을 걸친 사람들, 작가의 카메라가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여행자의 시야가 놓치고 있는 풍경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짧게는 수백년, 길게는 천년을 넘겼을 차마고도의 그림자들이 다시 숨을 쉬면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코앞에서 아프리카 사자의 눈썹을 담아내던 그의 카메라엔, 뺏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주지 못해 안달하는 시저우 노인들의 선량한 모습이 그들의 얼굴 주름과 함께 담기고 있었다. 도시의 빌딩과 감성을 담던 눈빛에는 시저우의 늙은 건물들이 햇살을 받으며 밀려 들어갔다. 수많은 인물을 그려내던 자리엔 골목과 벽돌에 담긴 세월의 흔적이 스며들었으며, 산수를 그려내던 호방함은 옛 마을의 얼룩진 담벽에서도 진경산수를 찾아내고 있었다. 차마고도의 심장은 그렇게 작가와 첫만남을 하고 있었다. 작가는 이제 차마고도의 원형을 담고 있는 더 아름다운 마을을 찾고 싶을 것이다.

aragaby@hanmail.net 박현 난징사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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