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밥 일기] 짜장면연가(炸醬麵戀歌)

2012. 11. 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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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짜장면은 없다

된장과 고추장 등 장류를 유통하는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짜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먹을거리와 식당에 관한 정보를 비교적 많이 아는 나도 맛있는 짜장면집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소문을 듣고 먼 길까지 갔다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짜장면의 원재료인 '춘장'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모 시사월간지에 '짜장면 맛의 비밀'이라는 기사에 필자의 짧은 인터뷰가 나왔는데 그 때도 춘장과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했다. 16000원에 판매하는 고급호텔의 짜장면이나 동네 중식당의 짜장면이나 춘장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이것으로는 맛있는 짜장면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 중식당 짜장면도 시판 춘장으로는 한계가 있어 일부 된장을 섞어서 쓴다는 소문도 있다. 또 일부 의식 있는 중식당에서는 춘장에 콩을 넣어서 짜장면을 만든다. 짜장면의 하향평준화에는 카라멜과 단맛, 과도한 화학조미료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현재 중식당에서 사용하는 춘장이 콩보다는 밀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데 있다.

짜장면을 먹는다는 것은 마치 밀가루면 위에 밀가루를 올려서 먹는 격이다. 따라서 짜장면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측면이 있다. 아무리 조리를 잘해도 식재료 자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맛있고 구수한 짜장면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인 것은 음식과 중식에 일가견 있는 사람은 다 아는 팩트다.

그러나 이런 춘장으로 만든 짜장면이 하루에도 수백만 그릇 이상 소비되는 것은 춘장을 제조하는 식품회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정도 수준의 가격과 품질을 원하는 많은 중식당의 니즈의 문제다. 중식당에서 짜장면 한 그릇에 들어가는 춘장에 단 100원만 더 투자해도 현재 우리가 먹는 짜장면보다 더 구수하고 영양학적으로 풍부한 짜장면이 가능할 것이다. 장류를 유통하는 지인에게 콩의 함유량이 충분한 옛날식 춘장을 한 번 제조해보라고 진정으로 권유까지 했다.

한국인의 추억인자 짜장면

요즘은 한 달에 한 두 번이 안 넘을 정도로 거의 드물게 짜장면을 먹지만 그래도 짜장면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 중년 이상의 한국인에게는 소울푸드와 진배없다.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기성세대 중 많은 사람은 예전에 짜장면을 최고의 음식으로 생각했고 중동 등 해외에 파견을 간 근로자들이 가장 그리워한 음식 중 짜장면은 제법 윗 순위에 있었다는 정설도 있다.

특히 길을 걷다가 중국집에서 볶는 춘장 냄새 때문에 회가 동했던 것은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는 추억이자 본능을 자극하는 내옴이다. 이런 짜장면은 한국의 100대 민족문화상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70년대풍 중국집 개화식당

비가 오는 화요일 직원과 평택 외곽에 갔다가 평택시내 통북시장에 있는 개화식당에서 짜장면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바로 삼일 전 이곳에서 짜장면을 먹은 기억은 다시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삼일 만에 일부러 짜장면을 두 번이나 먹는 희귀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개화식당(開化食堂)은 이름과 달리 화교 상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이다. 허름하고 협소하다. 마치 70년대 중식당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실제 주소와 다르다. 복고풍을 좋아하는 이 중년남자에게는 그 허름함이 오히려 정감으로 다가선다.

그러나 깔끔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로일 것이다. 물잔도 옛날 엽차잔을 사용하고 있다. 간만에 보고 간만에 듣는 엽차잔이다. 21세기가 아닌 20세기에서 시계가 멈춘 느낌이다. 화교인 주인 할머니와 아드님도 20세기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한 번 대화를 나누어 보시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3대가 약 80년 이상 중식당으로 대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자리에서는 1960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인터넷 블로그 설이 있다. 81세 되는 2세대 주인장 王本東옹은 현재 다리를 다쳐 가게에 없고 둘째아들 王德씨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잠시 쉬고 있는 큰 아들도 주방을 도와주고 있다.

우리가 주문한 옛날짜장면과 유니짜장면은 강력한 중화 렌지에 그 때마다 즉석에서 만들어 준다. 그럴싸하게 표현하자면 홈메이드 짜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 중식당에서는 간짜장도 미리 만든다는 소문과 비교하면 신속성과 효율성은 상당히 떨어질 것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식당아이템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옛날짜장면과 유니짜장면 6000원, 일반 짜장면은 4000원. 그러나 가급적이면 6000원짜리 짜장면을 꼭 추천한다. 즉석에서 조리하기 때문에 짜장면이 뜨거운 상태로 제공된다. 딱 마음에 든다. 짜장면에 관한 필자의 지론은 식은 짜장면은 짜장면이 아니라는 명제다. 왠지는 모르지만 개화식당 짜장면은 일반 중식당 짜장면에 비해 구수한 맛이 좀 더 강력하다.

옛날에 먹었던 짜장면과 비교적 근사치에 가깝다. 즉석에서 조리를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춘장은 유명한 00표 춘장이 아니고 다른 춘장을 쓰는데 좀 더 콩의 함유량이 높은 것 같다. 그러나 확실치는 않다. 유니짜장면은 특이하게 짜장에 고춧가루를 섞어서 조리하는데 같이 간 입맛만 까다로운 부하직원은 매운 맛 때문에 춘장 고유의 맛을 잘 못느낀다고 하지만 필자의 입맛에는 칼칼한 것이 별미였다. 양도 곱빼기만큼 푸짐하고 단맛과 조미료 맛도 상대적으로 현저하게 덜하다. 짜장면이 6000원이지만 인건비와 재료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주인할머니에 따르면 80년대 초반만 해도 직접 식당에서 춘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콩과 밀의 비율이 각각 반반으로 춘장을 만들었는데 보건소에서 식당에서 춘장을 만드는 식품제조 행위를 단속해서 춘장을 담그는 일을 중단했다고. 위생은 향상했지만 짜장면의 하향평준화가 이런 이유로 형성되었나 보다. 당시는 콩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아 최소 콩의 함유량이 50% 정도 섞은 춘장으로 만든 짜장면은 지금의 짜장면에 비해 영양학적이나 미각적으로 훨씬 우월했다.

볶음밥도 요즘 중식당답지 않게 즉석에서 볶아준다. 6000원. 간만에 밥을 볶는 소리가 주방 저 멀리서 들려온다. 볶음밥도 라드는 아니지만 돼지비계와 식용유를 반 반 섞어서 조리하기 때문에 옛날에 먹었던 그 볶음밥의 풍미가 남아 있다.

주방이 그다지 쾌적하지는 않지만 반오픈으로 공개되어 주방에서 불로 짜장면과 볶음밥을 즉석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추억의 편린이다. 큰아들이 어머니(할머니)가 중식 왕만두를 아주 잘 만든다고 한다. 요즘에는 맛있는 중화만두를 접하기가 힘들다. 혹 기회가 되면 그 왕만두를 한 번 먹어볼 수 있을런지.... 좋은 춘장이 생산되어 옛날의 맛을 재현할 수 있는 복고풍 짜장면을 먹었으면 좋겠다. 짜장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고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이자 영혼의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추신-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을 나서니 시장통에서 모찌(찹쌀떡)를 파는 간판도 없는 아주 작은 가게가 있다. 아침부터 수능을 이틀 앞둔 딸내미에게 찹쌀떡을 사다줄라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잘 됐다. 유명 베이커리와 달리 이것도 즉석에서 일일이 만드는 수제표 찹쌀떡이다. 부부가 방부제 없이 만든다고 자랑한다. 6개에 4000원, 4세트를 샀다. 전화도 없는 소박한 가게다. (김영선 수제팥이 통통 왕모찌, 010-6657-2414) 수능 때문에 사주는 찹쌀떡이 공장제품이 아니고 수제인 것이 어째 예감이 좋다.

<개화식당> 경기도 평택시 통복동 85-17, 031-655-2225

글,사진 제공 /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 tabula@naver.com)(※ 외부필자의 원고는 chosun.com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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