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사람·문화에 중독되었다네

2012. 10. 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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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예찬론자 4명이 고백하는 '내가 홍대 앞을 떠나지 못하는 세가지 이유'

[한겨레] [매거진esc] 커버스토리

홍대 예찬론자 4명이 고백하는 '내가 홍대 앞을 떠나지 못하는 세가지 이유'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고들 푸념한다. 홍대 앞 거리의 그 분위기는 어디 갔느냐고들 한다. 변했다고 투덜댔다. 그럼에도 홍대 앞은 여전하다. 그래서 떠나지 못하겠다고들 했다. 도대체 무엇이 발길을 잡느냐고 물었다. 답은 세가지다. 사람, 문화 그리고 그 골목. 이 때문에 오래는 20년을, 짧게는 5년을 떠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때로는 권태로워진 연인처럼 여겨졌던 이곳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세가지 답을 깊이 파고들어 봤다. 한 편 한 편은 홍대 앞 그들이 털어놓은 연가이다.

항상 봄 같아요. 사람들이 끊임없이 피어난 봄!

직장인 권명훈(39)씨는 19살 적 처음 홍익대 앞에 둥지를 틀었다. 학교 앞 자취생활이 그 시작이었다. "그때는 정말 몇몇 카페와 화방, 공연장 정도였어요. 한적하고 고즈넉했다기보다는 썰렁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예요"라며 권씨는 입을 열었다. 그에게 처음에는 학창 시절의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의미였다. 주린 배를 부르게 채울 수 있었던 백반집, 그리고 싸게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던 민속주점. 커피를 마시기보다는 담배 연기를 마시기에 더 적합했던 몇몇 카페 정도가 홍대 앞 기억의 첫 장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왔는데옛날 그 클럽 그 사람들이맞아줬어요20년이 지나도 찾는 이유죠"

의미없던 공간이 점점 빼곡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 공간 속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서울 사는 동기, 선후배들보다 학교 앞을 속속들이 알게 됐죠. 얼마 없는 술집이나 밥집이었으니, 드나들다 보면 당연히 단골이 되곤 했어요. 그리고 어느새 고향 마을처럼 학교를 갈 때면 서로 인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백반집 이모가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 얹어주면 서로 말없이 씩 웃곤 했죠. 거짓말 같은 그런 시절이 이곳에도 있었다니까요." 권씨의 홍대 앞 사람들에 대한 예찬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랬던 그는 사회 초년생 시절 홍대 앞을 떠났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에 구직조차 쉽지 않았던 시기였다. 홍대 앞 이모들이 그리웠지만, 발걸음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직장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다시 이곳으로 달려왔다. 홍대 앞이 조금씩 번화가로 변화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때부터 클럽데이가 생기고, 술집이 여럿 등장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권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살짝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게 신청곡을 틀어주던 그 술집은 없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반갑게 인사하며 맞아주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어요." 그가 다시 찾은 곳은 홍대의 명물이었던 '올드락'이라는 곳이다. 올드락은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중이다.

"이곳은 여름, 가을, 겨울 다 봄 같아요. 항상 사람들이 피어나는 곳 같아요. 많이들 변했다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해요. 홍대 앞이라는 공간, 땅은 변하지 않았거든요. 거기에 심긴 꽃나무들이 달라졌을 뿐이지. 그래서 20년이 지나도 이렇게 찾게 되는 건가봐요."

이곳의 문화, 그게 시작이자 끝!

10여년 만이라고 했다. 2000년 이후 다시 홍대 앞으로 그들은 모였다. 그들은 서로 대학 친구이다. 각자 경기도 평택과 포천에서 직장엘 다니느라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금요일이나 토요일 가운데 하루는 꼭 이곳을 찾는다. 유은아(33)씨와 김지영(32)씨의 대학 1, 2학년 시절은 날마다 페스티벌에 가까웠다.

처음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홍대 앞 인디밴드 음악에 열광했던 유씨의 권유로 시작된 홍대 앞 생활이었다. 집은 이곳과 한참 떨어진 강북구와 강동구였지만, 성실한 홍대 앞 문화 마니아들은 매주 전출(전체 출석)을 하기에 이른다. "그때는 좀더 그런 분위기가 강했던 것 같아요. 자유분방한 분위기 말이에요. 치기 어리게 보일 수 있었지만, 쇠로 된 징을 박은 옷이나 군화를 신는 것도 거리낌 없었어요." 유씨가 말했다. 옆에 앉은 김지영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친구는 정말 거리에 다니면 밴드 팀원처럼 보였어요. 물론 옆에서 보고, 함께 음악을 듣는 저도 재미있었죠"라며 웃는다.

"상수동부터 당인리발전소까지색깔 다른 개인, 가게들이모여들고 있어요재미있는 일을 꾸며보려는사람들이죠"

10여년 동안 서로 어학연수, 구직 생활로 바빴던 그들은 이제 다시 모였다. 김씨는 말을 이어갔다. "재미있는 곳 많지요. 강남역, 명동 등등. 그런데 홍대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이렇게 거의 365일 음악 공연, 전시회, 독립영화 상영까지 있는 곳은 없더라고요."

유씨는 이렇게 거들었다. "이곳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예요. 인디문화요. 그게 홍대 앞 문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봐요. 인디문화가 사라진다면 홍대 앞 문화란 것도 사라지는 거라고 봐요. 그런 면에서 요즘 이 거리가 사라질까 걱정되기도 해요." 걱정된다는 말 끝에도 한마디 희망 섞인 대답은 잊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 홍대 공연장을 기웃거리다 보면 한숨 놓아요. 세상에 이렇게 실력 좋은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국내에서는 유일한 곳일 거고요."

마을과 마을 사이, 골목에 흘러들다

홍대 앞을 조금 비켜난 6호선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의 골목은 또다른 생기가 넘쳐난다. 상수역에서 당인리발전소로 가는 주택가 골목 사이사이에서 커피콩 볶는 향이 진하다. 커피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카페를 좇아 들어가보면 10여곳의 크고 작은 카페가 이어진다. 당인리발전소 정문 앞에서 가까운 복합문화공간 '무대륙'까지 이어진다.

무대륙의 공동대표인 김건아씨는 2000년대 초부터 홍대 앞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홍익대 정문 앞 놀이터 근처에서 수공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를 했다. 그리고 지금 운영하고 있는 무대륙과 이름이 같은 술집 겸 카페를 2007년부터 상수역 인근에 열었다. 그곳 문을 닫고 다시 같은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을 연 지는 이제 석달째 접어든다.

어쩌면 홍대에서 지내온 12년 내내 중심지에서 변방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은 문화 하면 한국에서 대표적인 공간이 됐잖아요. 젊은이들도 많이 모여들고. 번화가에서는 커피 전문점 같은 대형 자본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처지예요."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홍대 앞 골목 곳곳의 매력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이제 100일도 안 됐는데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죠. 앞으로 이랬으면 해요. 홍대 앞은 아니더라도, 예술인들이 모여드는 문화 교류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하 공연장에서는 금, 토요일 매주 공연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인디영화 상영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에요."

그는 이곳 골목 예찬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상수동부터 당인리발전소까지 이 골목에 서로 색깔이 다양한 개인, 가게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뭔가 재미있는 일을 꾸며보려는 사람들이 말이에요.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골목 모습이 그래서 재미있어요."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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