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르포 | 아이거 북벽(하)] 판도라 상자가 열렸고, 우리는 또다른 로망을 꿈꾼다

글·한필석 부국장 대우 2012. 10. 22. 16: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월간山 거북이 팀, 3박4일 간의 등반 끝에 아이거 북벽 완등

↑ [월간산]아이거 북벽의 정점은 설봉이었다. 그곳에 올라서자 파란 하늘 아래 묀히(맨왼쪽 봉), 융프라우(가운데) 등, 알프스 명봉들이 반짝이며 등정을 축하해주었다.

제2설원은 표고차가 200m에 이르고 폭 또한 200m가 넘는다. 그래서 아이스호스 위에서 좌측 대각선 방향을 쳐다보면 다리미처럼 생긴 플랫아이언(Flatiron)이 빤히 눈에 들어오지만 등반하는 사이 사라지고 만다. 북한산 하루재에서 인수봉을 바라보면 귀바위가 빤히 보이지만 암벽에 붙으면 잘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욱이 상단부 외에는 눈이 전혀 없어 알바위나 살얼음 덮인 벽을 등반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고, 오후 2시경 갑자기 몰려온 구름안개에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고정 확보물이 많이 있는 죽음의 비박에서 제3설원을 두 피치 가로질러 람페에 들어서면서 허욱 대장은 "이제 인수봉 '고독의 길' 수준이다. 서둘러 등반하면 계획대로 브리틀 레지까지 갈 수 있다"며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람페는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툭 하면 낙석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맘 놓고 올려칠 수 없었다.

워터폴 침니(Waterfall Chimney) 밑에 닿는 순간 상황은 더욱 암담해졌다. 한낮의 햇살을 받아 람페 상단 설원에서 녹아내린 낙수는 워터폴 침니에 이르러 이름 그대로 폭포를 연상케 할 만큼 물이 쏟아져 내리고, 낙빙과 낙석은 그야말로 총알이 빗발치듯 퍼부었다. 진명식씨는 침니 오른쪽 테레이 변형 루트로 등반했으나 확보물 설치가 곤란한 상황에서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데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다시 내려섰다.

저녁 7시. 허욱 대장은 이 상태에서 워터폴 침니를 넘어서는 것이 위험하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어둡기 전에 브리틀 레지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 낙수가 바짝 줄어드는 다음날 아침 일찍 등반하자며 그 자리에서 비박을 결정했다. 그러나 허 대장은 확보 보던 테라스는 두 사람도 겨우 앉을 정도의 넓이에 불과해 그곳에서 허 대장과 진명식, 그리고 아래쪽에서 유동진 선배와 기자 둘씩 나누어 지내자 한다.

따로따로? 이제 실전인가 싶어진다. 어쨌든 위든 아래든 두 사람이 엉덩이 걸치고 앉아 있을 만한 터가 한 군데씩밖에 없다. 유동진 선배 옆으로는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자리도 기울어 좋지 않은 상황이다. 바닥을 평평하게 다지려고 바일로 바위를 깨내 보지만 헛힘 쓰는 거나 다름없다.

자리가 나쁘다고 굶을 수는 없는 일. 비박지 바로 옆으로 흘러내리는 낙수를 코펠에 담아와 알파미 한 봉을 죽처럼 끓이고 컵라면 한 봉을 터뜨려 넣어 '꿀꿀이죽'을 만든다. 오늘 종일 먹은 것이라곤 아침에 수프 한 공기와 초콜릿 몇 조각이 전부였기에 비록 돌가루가 씹히기는 하지만 꿀맛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래도 나은 편. 허욱 대장 일행은 자일 하강해 생수병에 물을 담아 다시 등강기로 올라가야 하는 신세다.

"오늘 날씨는 어떤가?"

"어제와 비슷하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살짝 내린다고 나왔다. 천둥번개는 이 지역에선 매일 밤 일어나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비박지가 한쪽으로 기울어 수시로 자세가 흐트러지고 그럴 때마다 다리가 절벽 바깥으로 흘러내려 불안하다. 그래도 따뜻한 음식을 먹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여유도 생긴다. 그린델발트 다운타운 로지에 머물고 있는 후원조의 정정현 선배에게 무전을 통해 내일 날씨를 확인한다. 출발 직전이나 아침에 파악한 내용이나 별 차이 없다.

땅 위의 불꽃놀이와 하늘의 낙뢰, 경쟁적으로 반짝여

평지에서야 천둥번개를 별 거 아닌 일로 여길지 모르지만 벽에선 다르다. 알프스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고 중 하나가 낙뢰 사고다. 낙뢰에 맞으면 최악의 경우 사망, 최소한 중상이다. 카라비너와 캠 류는 물론 아이젠과 바일까지도 비박지를 가로지른 로프에 걸어 한쪽으로 밀어놓는다.

↑ [월간산]1 브리틀 레지에서 신들의 트래버스 등반을 준비중인 대원들.

상식적으로는 쇠붙이를 로프에 매달아 밑으로 내려놓아야 하지만 낙뢰가 장비에 내려치는 날이면 장비는 절벽 아래로 산산이 흩어져 떨어질 것이고, 그 결과는 고립이다. 그런 생각에 장비를 떨어지더라도 턱에 걸리도록 바로 옆에 걸어놓은 것이다.

오늘 8월 1일은 스위스 독립기념일. 융프라우철도 개통 100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어둠이 내리기도 전에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등 도시뿐만 아니라 협곡 절벽 위에 올라앉은 베르네 오벌란트의 대표적인 산악휴양지인 뮈렌(Mu˙˙rren·1,634m)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불꽃놀이를 한다. 밤하늘도 가만 있지 않는다. 아이거 북벽 맞은편 멀리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쉬니케플라테 상공도 번쩍번쩍한다.

"낙뢰다!"

한 곳에 머무를 듯하던 먹구름은 서서히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더니 속도를 내어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먹구름아. 제발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주문을 외워도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고, 급기야 눈앞에서 번쩍한다. 자꾸 안전벨트 확보줄이 연결된 카라비너에 손이 간다. 여기 낙뢰가 내리치는 날이면….

잔 건지 졸다 깬 건지 비몽사몽 상태지만 시간은 흘러갔고 날이 밝아왔다. 콸콸 소리도 작아지고 낙수도 가늘어졌다. 워터폴 침니를 타고 여전히 물이 흘러내리긴 해도 어제에 비하면 가늘어졌고, 위협적인 낙석은 거의 없는 상태다.

오전 7시20분, 진명식씨는 그린델발트의 마트에서 구입한 설거지용 고무장갑을 끼고 테레이 변형 루트 대신 워터폴 침니로 등반에 나선다. 조마조마. 혹 홀드가 빠지거나 떨어지는 날이면 진명식씨가 크게 다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팀 전체의 앞날이 불투명해질 터. 우려와 달리 진명식씨는 차분한 모습으로 오버행 턱을 넘어 워터폴 침니 위로 올라서고, 뒤이어 허욱 대장도 가볍게 등반을 마친다.

문제는 나였다. 바위를 왜 이리도 못하는지, 몸은 왜 이리 무거운지. "줄 당겨!" 소리를 몇 차례 외치고, 끙끙거린 다음에야 침니 위로 올라섰다. 워터폴 침니 위 오버행인 아이스 벌지(bulge)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 위에서 확보 보는 허욱 대장의 확보 상태도 불안한 상황이다 보니 마음 놓고 매달리거나 잡아당길 수도 없는 처지다.

어렵사리 람페를 빠져나가 설원을 올려치자 허욱 대장과 진명식씨가 바위 턱에 앉아 내려다본다.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다. 이제 람페 립(Rampe Rib) 트래버스 구간과 브리틀 크랙을 거쳐 브리틀 레지에 올라선다. 그러면 아이거 북벽을 상징하는 '신들의 트래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람페 상단을 지나면서 고정 확보물이 많아진다. 수직에 가까운 브리틀 크랙 초반에는 긴 슬링이 걸려 있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여기서 파워웰이든 뭐든 끓여 마시고 가지."

브리틀 레지는 서너 명이 걸터앉아 있을 만한 비박지다. 벽 한쪽에서 물이 흘러내려 식수를 구하기도 용이하다. 허 대장은 간식도 먹고, 따뜻한 물을 마셔 컨디션을 끌어올린 다음 오늘 계획대로 코르티 비박지까지 가자고 한다.

↑ [월간산]2 람페 중단부의 워터폴 침니. 진명식씨가 루트를 살피고 있다. 확보 포인트 위쪽 크랙이 테레이 변형 크랙이다.

신들의 트래버스는 절벽을 가로지른 밴드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해발 3,600m대 편마암 거벽에 눈이 살짝 얹힌 설사면이나 기왓장 끄트머리처럼 튀어나온 좁은 스탠스를 밟으면서 150m 이상 가로질러야 한다. 중간 중간 확보물이 박혀 있고 고정로프와 슬링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워낙 낡은 상태이고 수십 년 지난 하켄들은 크랙에 엉성하게 박혀 있어 추락시 충격을 견뎌 내리라는 믿음이 전혀 가지 않았다.

등반에 앞서 허욱 대장은 진명식, 허욱, 기자, 유동진 순으로 진행해 오던 것을 진명식, 기자, 유동진, 허욱 순으로 바꾸자 한다. 최고령자인 유동진 선배가 마지막에 등반하면 아무래도 부담이 많고 또한 추락 시 크게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후 2시20분, 진명식씨는 출발 직후 잠시 불안해하는 모습이다. 아무래도 경험 많고 기량이 뛰어난 허욱 대장이 아닌, 등반기량이 어중간한 기자가 확보를 봐주자 일어나는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안정을 되찾고는 간간이 눈이 덮여 있는 대암벽을 한 발 한 발 가로질러 한 피치를 끝낸다.

이제 내 차례. 아이젠 발톱으로 좁고 얄팍한 바위를 밟으면서 이동하자니 순간순간 호흡이 흐트러진다. 계속 일직선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간혹 한 스텝 내려서거나 한 스텝씩 올라야 하는 구간이 나타나면 균형이 흔들려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어느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홀드를 붙잡은 손가락이 스르르 펴졌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해발 3,600m 고도의 절벽에서 하켄이 하나씩 빠지면서 결국 네 명 모두 1,500m 아래 초원 사면으로 추락하거나, 요행히 하켄이 충격을 받아준다 하더라도 축 늘어진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릴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자력으로 제자리에 올라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결국 나로 인해 네 명 모두 구조헬기의 도움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절대, 절대로 떨어지면 안 된다' 싶어졌다. 다시 집중력을 되살려 한 피치를 끝내고, 두 번째 피치를 끝낼 즈음 10여m 앞에서 확보를 보는 진명식씨가 "아래를 내려다보라" 말한다. 초원이 내려다보였다. 물건을 떨어뜨린다면 곧장 초원으로 떨어질 듯한 허공이었다.

로프를 잡아당겨도, 소리를 질러도 반응이 없다. 죽음?

"이제 위험한 구간은 다 지났으니까, 내가 다시 두 번째로 등반할게. 하얀 거미에서 명식이 확보도 봐주어야 하고."

신들의 트래버스를 20m쯤 남겨놓은 피치 종료지점에서 등반순서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러나 한 피치 더 등반한 뒤 진명식씨가 안개 자욱한 하얀거미 설사면을 45도 각도로 등반하는 사이 마지막 등반자인 유동진 선배의 외마디 비명소리와 동시에 팽팽해진 로프는 투두둑 소리를 내며 암각에 쓸려 내려갔다.

'안 돼, 안 돼….'

↑ [월간산]하얀 거미를 오르는 사이 안개가 밀려오면서 분위기는 한결 을씨년스러워졌다.

우리가 사용한 로프는 지름 8.1mm짜리. 원정대의 원래 목표는 프랑스 샤모니가 등반 기점인 그랑드조라스 북벽, 역시 알프스 3대 북벽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지고 간 9.2mm 로프는 너무 무거워 속도를 내는 데 문제가 있겠다 싶어 샤모니에서 구입한 로프였다. 이 로프는 매뉴얼 상 두 가닥으로 사용하게 돼 있으나 체력적으로 한계가 빤한 우리로선 한 가닥으로 등반하는 '요령'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 그 대가를 지금 치르는가보다 싶었다.

"유동진 선배님~, 유 선배님!"

로프가 어느 순간 팽팽해지면서 암각에 걸렸다. 하지만 아무리 당겨보아도 로프는 반응이 없고,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다. 머릿속에서는 '죽음'이란 두 글자와 더불어 서울서 출발할 때 리무진버스 종점으로 배웅 나온 유 선배 아내와 두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어~, 움직여요!"

허욱 대장은 하얀 거미를 등반하는 진명식씨가 안전지대에 도착하자 로프가 걸린 암각으로 다가가 유동진 선배가 추락한 지점을 내려다보며 로프를 끌어당겼다. 유 선배는 처음엔 1mm, 그리고 두 번째에는 1cm쯤 움직이더니 어느 순간 1m 그리고 조금 더 지나자 당기는 로프를 따라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헬기를 불러야 할 것 같아.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되잖아…."

추락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올라온 유동진 선배의 얼굴은 다행히 콧잔등 부근에 슬쩍 긁힌 정도였지만 양 다리 허벅지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다친 부위를 살펴보려면 안전벨트를 벗어야 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참고 함께 정상에 오르자"며 유동진 선배에게 용기를 북돋는 사이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벽에서 멀어져 갔다. 어디선가 지켜보다 추락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다가온 구조 헬기였다.

신들의 트래버스를 거의 다 끝낼 즈음 밀려들기 시작한 구름안개는 이제 온 산을 감쌌다. 거미처럼 생겼다는 하얀 거미도 희끗한 설사면만 살짝 보일 뿐이다. 설사면을 대각선 방향으로 등반해 암벽과 만나는 지점에서 피치를 끊고, 두 피치 더 오르자 엑시트 크랙 입구. 이름 그대로 거대한 아이거 북벽을 벗어나는 출구다. 희망을 뜻하는 엑시트 크랙은 짙은 안개가 덮치자 가랑비 내리는 공동묘지로 들어서는 듯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오후 5시40분, 허욱 대장은 서둘러야 코르티 비박에 올라설 수 있다며 등반을 재촉하고, 진명식씨 또한 쉼 없이 등반에 몰입한다. 그렇게 두 피치를 등반하자 허욱 대장은 로프가 여러 가닥 가로지른 절벽을 가리키며 "저기가 코르티 비박(Corti Bivouac)"이라 알려주고 또 한 피치 더 등반하자 수정 크랙 밑에 도달한다. 수정 크랙은 람페의 워터폴 침니와 형태가 비슷한 데다 눈 녹은 물이 심하게 떨어져 마음이 내키지 않는 구간이었다.

↑ [월간산]정상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는데도 너무 지쳐 표정이 어둡다.

람페 워터폴 침니에 이어 또다시 나의 형편없는 바위 실력에 스스로 실망하고 온몸을 뒤틀며 안간힘 다해 어렵사리 크랙 상단 테라스에 올라서자 진명식씨는 낙수를 맞으며 지친 모습으로 기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원에서 흘러내린 낙수는 폭포수나 다름없었다. 차가운 낙수와 낙수 소리는 수정 크랙을 오르느라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는 기자를 더욱 정신 못 차리게 했다. 급히 설사면을 10m쯤 트래버스하고 3m쯤 올라 코르티 비박에서 눈을 치우고 있는 허욱 대장에게 다가가자 "명식이와 함께 유동진 선배를 끌어올리지 않고 왜 혼자 먼저 왔냐?"고 나무란다.

다시 진명식씨에게 돌아가 로프를 잡아당기는데 유동진 선배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더러 여길 어떻게 올라가란 말이야" 하는 소리만 반복될 따름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낙수에 젖어든 몸은 서서히 체온이 식어들면서 오한이 오기 시작한다. 싸락눈까지 퍼부어대니 이러다 넷 다 예서 끝장나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유 선배님~, 움직이세요, 그래야 올라올 수 있어요. 가만히 계시면 저희 모두 죽어요. 제발 좀 움직이세요!"

3일간 기록 담은 카메라와 헬멧, 하얀 거미로 사라져 버려

허욱 대장까지 가세한 다음에야 유 선배는 오버행 턱 밑에서 벗어나 테라스로 올라설 수 있었다. 자일을 사릴 겨를도 없이 비박지로 이동했으나 코르티 비박은 기대했듯이 네 사람이 발 뻗고 지낼 만큼 넉넉한 터가 아니었다. 절벽 같은 가파른 암릉 상의 턱인 코르티 비박은 두 명 넘으면 지내기 불편한 만큼 좁고 테라스를 벗어나면 낭떠러지를 이룬 위험 지대였다.

1957년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코르티는 엑스트 크랙 등반 도중 낙석에 맞아 머리에 큰 부상을 당해 이곳 대피해 구조대를 기다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르티보다 앞서 추락사고로 신들의 트래버스 위쪽 벽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동료 대원과 또 이들 두 사람의 조난장소를 구조대에게 알리기 위해 정상으로 향한 독일팀 대원 2명은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우박이 퍼부어대자 더욱 떨렸다. 우리도 코르티처럼 이곳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기온이 더 떨어지고 눈발이 날리자 온몸이 얼어붙는 듯하다. 급히 배낭에서 비박색을 꺼내 뒤집어썼다. 샤모니에 거주하는 허긍열씨에게 얻어온 비박색은 2인용. 4명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규격이었다. 그래도 냉기와 눈발을 막아주고, 작은 가스버너에서 불꽃이 피어오르자 몸이 풀리면서 이제 살았다 싶었다. 눈 녹인 물에 죽을 끓여 한 공기씩 마시자 몸이 녹아내리면서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확보 포인트에 연결된 슬링에 매달려 네 사람이 서 있는 상태에서 버너 한 대 가운데 놓으면 더 이상 공간이 없을 만큼 좁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고. 비박색이 터질 것 같아 몸을 맘껏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에서 졸다가, 비박색 바깥으로 삐져나간 다리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 잠시 깨어났다가는 다시 몸을 움츠린 뒤 졸기를 반복했다.

"어 카메라!", "어, 헬멧!"

↑ [월간산]신들의 트래버스를 등반하는 진명식 대원. 초등반에 참가했던 클라이머들의 경이로운 루트파인딩 능력에 감탄케 된 혀리길이었다.

그 사이 "등반에 몰입하지 않고 웬 촬영이냐?"는 허욱 대장의 나무람을 무릅쓰고 사흘간 아이거 북벽의 면면을 담은 카메라는 스르르 흘러내려 하얀 거미 쪽으로 사라지고, 유동진 선배의 헬멧도 절벽 아래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서운함과 안타까움도 잠시. 온몸이 떨려오자 지금 이 상황에서 카메라 기록이 다 무슨 의미가 있냐 싶어진다.

"와, 날이 밝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게 있다면 시간이 아닌가 싶다.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하듯이 코르티 비박에서도 시간은 산 아래 마을과 똑같이 흘러갔고 똑같이 밝아왔다.

밤새 추위에 시달렸는데도 허욱 대장은 "따뜻한 해가 들면 30 분쯤 몸을 녹인 다음에 출발하자"며 움츠린 몸을 펴지 않는다.

정상에 서면 피켈을 높이 치켜들고 멋진 등정사진을 찍고 싶었다

등반 나흘째. 스위스의 율리 스텍은 2시간대에 등반을 해냈고 국내 클라이머들은 짧으면 1박2일 늦더라도 2박3일에 해냈는데, 아직도 정상을 향해 등반하고 있다니. 스스로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참으로 가상타 싶어졌다.

오전 7시 반. 오늘은 정상이다. 안개 자욱한 엑시트 크랙은 을씨년스럽다 못해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는 길 같았다. 게다가 봅슬레이처럼 생긴 좁은 얼음 통로에서는 수시로 얼음조각과 돌멩이가 떨어져 긴장케 했다. 코르티 비박에서 잠결에 헬멧을 1,500m 절벽 밑으로 흘린 유동진 선배는 누구보다 더 초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

코르티 비박에서 좌측 설사면을 대각선 아래쪽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자 정상 설원으로 이어지는 쿨와르가 나온다. 어제 지나친 엑시트 크랙보다 좁고 가파르다. 안개가 부옇게 끼어 공포감도 자아낸다. 그래도 이제 서너 피치면 정상 설원이란 '희망'에 힘이 솟는다. 크랙 안 설벽을 따르던 등로는 서서히 좌측 암벽으로 올라붙더니 정상으로 이어지는 설사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명식씨가 설사면을 오르는 사이 어제 오후부터 북벽을 덮었던 짙은 구름안개가 벗겨지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그 파란 하늘에 맞닿은 정상 설릉이 반짝인다. 가파른 설사면을 세 피치 등반해 미텔레기(Mittelegi)능선에 올라서자 쉬렉호른(4,078m)과 피셔호른(4,048.8m)을 포함해 베르네 오벌란트의 명봉과 빙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형님, 다 왔습니다. 힘내세요."

이제 정상이 눈앞이다. 푹푹 주저앉는 설릉을 따라 한 발 한 발 올라선다. 지난해 올랐던 묀히(Mo˙˙nch·4,107m)가 보이고, 그 옆으로 융프라우(Jungfrau·4,158m)도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다. 정점이다.

↑ [월간산]1 허욱 대장이 서릉 하산길에서 마지막 비박을 위해 동굴에 들어앉아 북벽 등반하느라 상한 손가락을 보여주고 있다. 2 나흘간 선등을 서며 정상에 오른 진명식 대원.

기대했던 감흥은 없다. 단지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만 들 뿐이다. 허욱 대장은 그래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15분이면 충분하지? 3시에 출발한다."

정상에 도착하면 발라클라바와 헬멧을 벗어던지고 환한 웃음과 함께 바일을 하늘 높이 치켜든 채 멋진 등정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표정이 굳어 있다. 친구 회사 후배 회사 깃발을 꺼내들고 포즈를 취한 진명식씨나 산악회 깃발을 펴든 유동진 선배나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이 모든 게 머나먼 서릉 하산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산 인수봉에 바윗길을 낸 바 있는 전준수씨가 1995년 추락사한 서릉 하산로는 무척 위험했다. 상단부는 하강 포인트가 20~30m 간격으로 이어졌으나 네 번째 하강을 마친 뒤 낙석이 많아 미끄러질 위험이 높은 애매한 바위사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우측 날등으로 이어졌고, 이후에도 짤막한 절벽이 나타나 당황케 했다.

나흘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에서 등반하느라 거의 탈진 상태인 네 사람은각자 살기로 하산하면서 혹 미끄러지면서 수백m 아래 바닥까지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오후 3시가 채 못 된 시각에 하산을 시작했으나 어두워지기 직전인 8시 반까지도 아이거글레처 언덕 위의 캠프에 내려서지 못한 상태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수십 미터 높이의 절벽을 무작정 내려선다는 것은 무모하다 싶었다. 허욱대장은 북벽등반 때 그랬듯이 "해 떨어지기 전에 비박하고 내일 해가 뜨면 움직이자"고 했다. 마침 똑똑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로 옆에 둔 좁은 동굴 비박지를 발견해 또 하룻밤을 지냈다.

결국 갱도에서 등반을 시작해 아이거글레처역 맞은편 언덕배기 초원 능선에 예쁘게 텐트를 쳐놓은 캠프로 돌아가기까지 4박5일이 걸렸다. 8월 4일 오전 9시였다. 일행을 맞아주는 황원선 형과 정정현 기자의 목소리는 울컥해 있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살아 돌아와줘 고맙다는 표정이었다.

노인의 얼굴로 변해버린 진명식씨

캠프에서 짐을 정리하는 사이 유동진 선배와 진명식씨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너무도 지친 유 선배를 보면서 괜히 아이거 북벽 등반을 권하지 않았나 싶어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캠프에 도착해 내복을 벗을 때 드러난 허벅지 상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양쪽 허벅지에 새카맣게 피멍이 들어 있었고 한쪽 허벅지는 찢어진 듯 터져나가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후배들과 끝까지 동행해 준 유 선배가 너무 고마웠다(유동진 선배는 귀국 후 고관절 바이러스성염증으로 인해 한 달 이상 입원해야 했다).

정신없이 깊은 잠에 빠진 진명식씨 얼굴을 보는 순간 1953년 낭가파르바트 초등자인 독일의 헤르만 불이 떠올랐다. 물론 책에서 본 표정이다. 마지막 캠프를 출발해 단독으로 정상에 올라선 뒤 41시간 만에 돌아온 헤르만 불은 출발 당시 29세의 젊은이에서 60대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진명식씨 얼굴이 딱 그랬다. 출발 전 이제 마흔이라 해도 믿겨질 만큼 앳된 모습이었으나 캠프의 풀밭에 누워 있을 때에는 유동진 선배와 비슷한 연배로 느껴질 만큼 얼굴이 상해 있었다. 무엇보다 등반 전 장염으로 복통을 앓고 있었으나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나흘을 견뎌냈기 때문이었다.

↑ [월간산]1 칙칙한 분위기의 엑스트 크랙을 등반하는 유동진 대원.

알프스 3대 북벽 한국 초등, 바인타브락2봉과 마칼루 원정,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 한국 초등으로 이어지는 등반경력을 지닌 허욱 대장은 캠프에서나 클라이네샤이데크의 노천카페에서나 백전노장답게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에는 물론 서릉 하산길에서도 긴장도 풀지 않았다. 캠프에 도착해 캔맥주를 받아드는 순간 그제야 그는 얼굴이 펴졌고, 축하인사를 건넸다.

"이제 안전지대입니다. 등반이 모두 끝났습니다. 자, 등정을 축하합니다."

허욱 대장의 얼굴도 많이 지쳐 있었다. 대장의 책임은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대원 모두 땅바닥에 내려설 때까지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던 것이다. 허욱 대장은 아이거 북벽을 이렇게 말했다. 1979년에는 알피니스트에게 도전의 상징이었기에 오랜 세월 칼을 갈아 덤볐고, 이번에는 확인차, 추억을 더듬고 싶어 등반했다고. 그러나 세 번째 등반에 나선다면 분명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러나 덧붙여 말했다. 로망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그래서 여러분은 분명 나머지 2대 북벽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다음 단계를 또 다른 로망으로 삼고 등반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가 지나온 흔적은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아쉽게도 진명식 대원은 심한 장염 때문에 맥주도 음식도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유동진 선배 역시 너무 지친 나머지 어서 그린델발트의 게스트하우스로 갔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허욱 대장과 필자는 이 순간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500cc 맥주잔을 연거푸 마셔댔다.

클라이네샤이데크의 노천식당에 앉으면 아이거 북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맥주를 들이킬 때마다 바라보았다. 힘든 크랙, 힌터슈토이서 트래버스, 제2설원, 람페, 신들의 트래버스, 하얀 거미, 엑시트 크랙, 그리고 정상.

헤크마이어 루트가 이제야 정확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 길을 따르며 알파인 거벽 등반도 체험하고, 그와 더불어 한낮에는 알프스의 흰산과 푸른 산록을 바라보고 한밤에는 밤하늘의 별과 그린델발트의 불빛을 바라보며 낭만에 젖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별빛 대신 섬뜩케 한 낙뢰만 생각나고, 아름다운 산록 대신 아찔한 추락만 떠오를 뿐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헤크마이어 루트를 살펴보아도 내가, 우리가 지나온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불현듯 2011년 봄 친구 부친의 영결식장에서 만난 고 박영석 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 형이 아이거 간다는데 정말이야. 형 정신이 있는 거야. 그런 곳에 왜 가!"

가족 모르게 계획하고 있던 터라 바로 옆에 있는 아내가 들을까 버럭 화를 내며 박영석의 입을 막아 버렸다. '네가 위험한 등반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는 하면 안 되냐?'는 의미였다. 그해 가을 박영석은 후배 두 명과 함께 신 루트를 내겠다며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했고,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 [월간산]2 아이거 정상에 오른 대원들. 왼쪽부터 한필석, 유동진 대원, 허욱 대장. 3 아이거그레처역 맞은편 언덕에서 아이거를 떠나기 전 기념 촬영한 거북이 원정대원들.

등반을 모두 마친 뒤 그린델발트의 다운타운로지에서 만난 매그너스 원정대는 우리가 그린델발트를 떠난 8월 5일 오후 아이거글레처로 올라가 북벽 등반에 나섰다. 귀국 후인 11일 새벽 휴대폰에 문자가 날아왔다.

'현지시각 10일 오후 8시40분경 걱정과 염려 조언 덕분에 등정을 완료하였습니다.'

허욱 대장한테서도 같은 내용의 낭보가 전해졌다. 기뻤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비보가 전해졌다. 하산 길 로프를 건 고정 볼트가 빠지면서 대원 한 명이 추락사했다는 끔찍한 사고 소식이었다. 우리 대원 네 명 역시 하산 도중 우측 서릉으로 트래버스하기 위해 로프를 걸고 몸을 의지했던 볼트였다.

운명은 너무도 잔인했다.다시 한 번 고 정진현(44·열린캠프)씨 의 명복을 빈다.

▶ 4년 전 귀순한 男 "한국군, 전쟁서 못 이겨"

▶ 쿨 김성수 前부인 사망… '강남 칼부림' 대체 무슨 일?

▶ "女 팝스타들, 새벽에 4성급 호텔 사우나서 때 밀고…"

▶ '6개월 시한부' 40대, 어린 자녀들과 추억 만들고 싶다며

▶ 범죄 예방, 처벌과 교정 사이에서 길을 찾다

▶ 한 달도 안 돼 정당처럼 몸집 불린 안철수 캠프, 조만간…

▶ 北·中의 함북 무산 철광산 합작 개발, 7년 만에 중단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