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 아줌마 원정대]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 알프스에서 과시한다

글·한필석 부국장 대우 2012. 10. 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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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아줌마 원정대', 독일 알프스 최고봉 도전

↑ [월간산]1 북한산경찰구조대의 도움을 받으며 숨은벽 암릉을 완등한 좌충우돌 아줌마 원정대원들이 인수봉을 등진 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30, 40, 50, 60대 여성 4명으로 구성된 '좌충우돌 아줌마 원정대'가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Zugspitze·2,962m)에 '도전'한다. 독일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추크슈피체는 독일에서 유명한 관광 트레킹 코스 중 한 곳으로 독일 알프스 최고봉으로서의 상징성이 높은 봉우리다.

좌충우돌 아줌마 원정대는 평범한 아줌마들이 산을 하나 하나 오르는 사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부산 MBC가 기획한 원정대다. 부산 MBC가 아줌마 원정대를 공모한 것은 4월 초. 140여 명의 신청자 중 90명을 면접했고, 전형적인 주부 가운데 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선발했다.

선발된 '정예 초보 대원들'은 원정대장을 맡은 양산등산교실 이상배 학감의 인솔 하에 10월 초까지 10여 차례의 훈련 산행을 거친 다음 10월 15일 원정길에 나설 계획이다. 이상배 대장은 에베레스트, 로체, 초오유, 가셔브룸2봉 등 8,000m급 4개 봉 외에 세계 5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상한 바 있는 베테랑 산악인이다."와~, 저게 인수봉이에요? 오늘 저길 올라간단 말이에요? 설마 우리를 저기에 매달아 놓으려는 건 아니죠?"

지난 9월 14일 10번째 훈련으로 북한산 암릉 산행에 나선 좌충우돌 아줌마 원정대 대원들은 도선사주차장에서 힘차게 파이팅을 외친 뒤 산행을 시작했으나 하루재에 올라서는 순간 인수봉의 웅장한 자태에 감탄하면서도 "저길 올라가는 거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인수봉 뒤편에 숨어 있는 암릉이라 하자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이상하게도 산에 오면 여자가 대접받는 세상이 됐는데 오늘은 안 됩니다. 자, 젊은 대원 두 분이 자일 한 동씩 메세요. 괜찮죠?"

"무게만큼 심란합니다!"

암릉 산행 안내를 맡은 김창곤 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 대장은 막내 김주희(32)씨와 권은영(45)씨의 배낭 위에 5kg 가까이 나가는 무거운 자일을 올려주면서 "자일을 메야 진짜 클라이머"라고 치켜세워주지만 두 대원은 갑자기 묵직해진 배낭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북한산 암릉을 오른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에요"

"우리나라 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정말 몰랐어요. 어제 도봉산 산행 때는 폭우 때문에 몰랐는데 북한산과 도봉산은 정말 멋있네요. 언니도 좋죠? 너희들도 좋고."

인수봉 자락을 가로질러 숨은벽 암릉으로 접근하는 사이 영봉과 육모정계곡 뒤로 기암괴봉을 등줄기에 얹고 있는 도봉산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오자 김미순(50)씨는 맏언니 유금순(62)씨와 두 동생을 마주보며 감탄스런 표정을 짓는다.

평소 마른 골짜기에 어제 내린 비 덕분에 맑은 물이 흐르는 등 북한산은 모처럼 서울 산 나들이에 나선 아줌마 원정대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숨은벽리지 등반기점에 오를 때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벨트를 차고 암벽화를 신는 사이 표정은 점점 굳어지고,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할 때에는 얼굴빛이 초조해졌다. 그러다 막내 김주희씨가 네 사람 중 첫 번째 등반자로 뽑히자 언니들은 짓궂게도 "축하합니다~" 하며 축가를 불러주었다.

"아니 왜 잡을 데가 없는 거야. 밀지 마~, 밀지 말란 말이에요."

↑ [월간산]2 맏언니 유금순씨가 숨은벽 암릉으로 접근하던 중 만난 암벽을 오르고 있다. 3 "50대는 무서울 게 없다"는 김미순씨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등반하고 있다.

김주희씨는 첫 피치인 40m 슬랩에 발을 올려놓기 무섭게 목소리에 울음이 섞이고 말았고, 곧 마음이 안정되면서 그럭저럭 오르다가도 자일이 조금만 늘어지면 "줄 좀 당겨 달라"며 아우성쳤다.

첫 피치를 마치면서 "무릎이 다 까졌다"며 울상 짓는 김주희씨는 원정대에 뽑히기 전까지는 산이라곤 동네 뒷산도 모를 정도의 '도시의 여인'. 그러나 지난해 첫 아이를 낳은 이후 생긴 산후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바람 쐬러 다니다가 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했는데 발탁되었다.

두 번째 등반자는 권은영씨. 고교 2학년 딸과 중 3학년 아들을 두고 있는 권씨는 김주희씨에 비하면 편안한 표정으로 슬랩을 올랐으나 피치 종료 직전 경사가 가팔라지자 확보를 보고 있는 경찰구조대원들에게 "손 좀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권은영씨는 5년 전 엄홍길 대장의 16좌 완등 기념 아웃도어 이벤트 때 산에 가본 이후 다시 산을 찾은 것은 원정대 훈련이 처음이다. 권씨는 "산에 가면 좋은데 가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싶어 그동안 찾지 않았다"며 "하지만 원정 훈련 삼아 다니는 사이 산이 친숙하게 느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구연동화지도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권은영씨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권씨는 또한 "남편은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밥하고 빨래하느라 고생이 많은데 다치지만 말라고 신신당부한다"며 "훈련 산행하는 사이 가족 사랑을 다지고 확인할 수 있었다"고 즐거워했다.

맏언니 유금순씨는 세 번째로 등반에 나섰다. 유씨는 "막판까지 남아 있다 보면 버림받을 것 같아 세 번째로 등반한다"며 "아줌마 원정대 파이팅!"을 외치며 슬랩을 거슬러 올랐다. 30대와 40대에 비해 체력은 뒤질 수밖에 없지만 맏언니로서의 당당함은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이게 뭐야, 줄이 못 따라 오잖아."

김미순씨는 "50대는 무서울 게 없다"며 대한민국 50대 아줌마 파워를 과시했다. 김씨는 등산경력 18년의 아마추어 산꾼. 아줌마 원정대 공모에 참가할 때에는 선발되고자 하는 욕심에 "산행 경험이 전혀 없다"고 심사위원들에게 말했지만, 5월 말 첫 산행을 마친 뒤 사실대로 털어놓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해오던 뷰티 숍도 두 달 전 정리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추크슈피체 원정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역 경찰관인 남편과 미혼인 딸 둘과 함께 살고 있는 김미순씨의 꿈은 전원생활. 김씨는 그에 앞서 "이렇게 북한산 암릉을 오를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훈련산행하는 사이 산후우울증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두 번째 피치를 무사히 마치고 세 번째 피치를 우회했으나, 자일 하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릉 등반 경험이 많은 사람 같으면 턱을 잡고 내려서면 되는 구간이지만 모두 초보자여서 자일하강을 택했다. 영남알프스에서 로프 하강 훈련을 했다곤 하지만 딱 한 번의 경험이 실전에서 제대로 통할 리 만무.

막내는 울상 짓다 겨우 내려서고, 둘째 김미순씨에 이어 왕언니마저도 턱을 내려서는 순간 뒤로 뒤집어지면서 수직벽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특히 유금순씨는 허리에 충격을 받아 하강을 마치자마자 드러눕고 말았다.

↑ [월간산]1 "이만하면 잘했죠?" 아줌마 원정대 대원들이 첫 피치 등반을 마친 뒤 만족감 넘친 미소를 짓고 있다. 맨 앞부터 유금순, 권은영, 김주희. 김미순씨.

"언니! 괜찮아요? 한 번 '말춤' 춰봐요. 하나둘 하나둘~."

김미순씨는 한참 드러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세운 맏언니 유금순씨에게 싸이의 '말춤'을 권하고, 유씨는 자연스럽게 손을 겹친 채 몸을 흔들며 화답해 모두를 안심시키면서 즐겁게 해주었다.

유금순씨는 우연히 아줌마 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 딸한테 부탁해 인터넷을 통해 원서를 접수했다. 유씨는 "딸이 엄마는 나이가 너무 많아 안 될 거라고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뽑혔다"며 "내 인생에 이렇게 즐거운 일은 여태껏 없었다"고 했다. 유금순씨는 "남편이 '아저씨 원정대는 왜 없는 거냐?'며 방송사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며 은근히 아저씨 원정대 탄생을 부추겼다. 부산 외곽인 기장의 외딴 숲에서 과일 농사를 짓고 염소와 오리, 닭을 키우면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어 동생 대원들을 부럽게 하고 있다.

이상배 대장은 첫 피치 종료지점에서 산노래를 불러대더니 세 번째 피치를 마친 다음 '숨은벽 찬가'를 불러댔다. 그 노래에 아줌마 대원들은 "오빠 최고"를 외쳤고, 이 대장은 "이 아줌마들이 대장을 오빠라고 부르다니, 이거 큰일 났네"하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좌충우돌 아줌마 원정대의 첫 번째 훈련산행은 5월 초 경주 남산에서 했다. 가벼운 웜업 산행이었다. 야트막한 산이라 힘들지 않았지만 비가 내리는 데다 모두 초면이다 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 10분이나 걸렸나, 금세 친해졌어요. 아줌마 특유의 친화력이 있잖아요. 각자 나이가 열 살 안팎 차이니 세대차가 날 수밖에 없지만 그럴 때면 왕언니가 다 해결해 줬어요."

경주 남산에 이어 영남알프스 신불산, 울산과 경주 경계인 치술령, 소백산, 영남알프스 등을 올랐다. 산후우울증 때문에 본인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걱정이 태산 같았던 막내 김주희씨는 그 산행들이 약이었다.

"첫 아이 낳은 다음 산후우울증을 앓는 주부들이 많아요. 저도 심했는데 훈련산행 다니는 사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이렇게 좋아지니까 남편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도 밀어주세요. 시어머니께서 두 살배기 아이를 봐주시기 때문에 산행에 참가할 수 있는 거예요. 얼마 전에 중국 태산도 다녀왔고요. 산이 약인가 봐요. 이것 보세요. 표정도 좋잖아요."

아줌마 원정대 대원들은 하강을 마친 이후로는 날등 대신 우회로를 따랐다. 하지만 우회로 역시 오르내리막이 반복되는 데다 간혹 까다로운 슬랩이나 크랙 구간이 나타나 긴장케 했다. 결국 발꿈치, 무릎, 그리고 유금순씨의 경우 허리 아래에 커다란 혹을 만든 다음에야 숨은벽 리지 종료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독일 알프스 정상에서 대한민국 아줌마 파워 보여줄 터"

"자, 한 마디씩 말씀해 보세요."

↑ [월간산]2 "잡을 데가 전혀 없는데 여길 어떻게 오르란 말이에요." 막내 김주희씨가 울상을 지으며 슬랩을 쳐다보고 있다. 김씨는 "등산이 만병통치"라고 외쳤다.

아줌마들 못지않게 등산 초보자인 이안미디어 이관재(대표 프로듀서), 안태진(프로듀서)씨는 암릉 산행 내내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마지막 컷을 촬영할 장소에 닿자 프로답게 대원들에게 한 마디씩을 요청했고.

그 요청에 아줌마들은 순간 모두 프로 연예인으로 돌변했다.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정상을 밟았습니다. 이 기를 살려 독일 알프스 최고봉 정상에 꼭 올라서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아줌마 파이팅!"

여성 아웃도어의류 전문업체인 와일드로즈와 독일관광청 후원을 받는 원정대는 방송팀과 함께 10월 15일 출국, 추크슈피체 산행과 더불어 그 일대의 관광지를 둘러본 뒤 10월 24일 귀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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