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옆 대나무숲 "기자들 애니팡에 미치다"

2012. 10. 5. 15: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애니팡열풍

옛 애인도 남편도 친구도 '닥치고 애니팡 하트'

무슨 빵이름인가? 싶었는데요즘 '하트'에 푹 빠져버린 나아무리 팡팡거려도 12만점100만점을 넘는 이도 있다는데능력자만 보면 질투가 난다4명 중 1명이 '팡신도''세계 3대 악마게임'만큼은중독성 없는 게임이라지만동료기자는 "중독 맞다"며제 인간성 바닥을 보았다고

▶ 1990년대 초반, 여고생이던 저는 학교 앞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친구들이 권법소녀 '춘리'(스트리트 파이터2 속 캐릭터)에 빙의돼 장풍을 쏘고, '스트라이커 1945'를 몰아 전쟁터를 누빌때, 저는 얌전히 벽돌깨기(테트리스)게임에 몰두했더랬죠. 자려고 누운 천장 속 체크무늬 벽지마저 테트리스 벽돌처럼 보이던 시절이죠. 얼마전 애니팡을 시작한 뒤, 저는 그 시절 '겜순이'로 돌아간 듯합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혹시 애니팡 삼매경이신가요?

'게임신'을 영접한 건 지난달 23일이었다.

대학 동기들과 1박2일 순천 여행을 다녀오던 나른하고 즐거운 길이었다. 최대시속 305㎞로 달리는 케이티엑스(KTX) 열차 위,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를 타고 '그분'은 내게 오셨다. 게임신을 불러낸 '무당'은 '한무'란 별명을 가진 17년지기. 한무는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을 타 하얀 아이폰4s로 그분을 불러들였다. 토끼와 돼지, 쥐 그리고 곰(혹시 개?)과 호랑이(설마 고양이는 아니겠지?)의 귀엽고 순진한 얼굴을 한 신, 그분은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똑같은 그림 3개만 보면 손이 근질근질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애니팡'이구나?""응." 한무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 성의없이 대답하면서, 짧고 굵은 손가락으로 동물들을 바삐 움직였다. 똑같은 동물 3마리를 한데 몰자 '팡!', 앗, 동물들이 사라졌다. 동글동글 귀여운 동물의 얼굴을 한 게임신이 입을 오물거리며 반짝이며 사라질 때의 그 쾌감이란! 게임 규칙까지 간단했다. '한 번에 한 칸씩 이동, 똑같은 그림 3개를 맞춰라.' 정말 쉽다. 빠져들기도 쉽다. 이런 게 전문용어로 '매치3 게임'이라는 것!

처음엔 그저 지켜만 봤다. 조금 지나니 어랏, 한무가 검지를 움찔움찔하며 헤맬 때마다 "요기 있잖느냐"며 내가 훈수를 두고 있지 않은가. 연속으로 터뜨리면 콤보, 점수가 더 높아진다는 이치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내가 하면 더 잘할 것만 같은 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뭐니. "한번 줘봐." 동물의 얼굴을 한 '애니팡신'(앞으론 '팡신'이라고 하겠다)과의 첫 접신 순간이다. 어랏, 옆에서 볼 땐 잘되더니, 내 짧은 손가락은 어째 휴대폰 액정 위에서 원만 그린다. "아~~~!" 안타까운 탄성과 함께 1분이 후딱 지나간다. "한 게임만 더"가 절로 튀어나온다. 결국 한무의 하트(일종의 가상 게임머니, 한 게임에 하트 하나가 필요하다) 5개(기본으로 준다)를 다 쓰고, 한무의 친구들이 보내준 나머지 하트 7개마저 바닥낸 뒤에야, 나는 팡신을 거부하던 마음을 모두 접었다. 휴대폰에 고이 집(앱)을 짓고(깔고) 팡신을 모셨다. 그렇게 나는 애니팡에 빠져든 4명 중 1명(지난 1일 기준, 1700만명)이 됐다. 지난 7월30일,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팡신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한겨레신문사 안에서도 그 무렵 애니팡 열풍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기자들이 알면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는 말은 진실인 듯하다.) 한겨레 안에서 애니팡 인기의 불을 댕긴 건, 김양희 기자의 칼럼(9월19일치 30면'오늘밤 그것 하십니까')이었다. 칼럼을 읽은 앞자리 최성진 팀장이 물었다. "정애씨, 애니팡 알아?" 가을에 주로 찾아온다는 '먹보신'에 빙의돼 있던 나는 답했다. "아뇨, 뭐 새로 나온 빵인가요?" 이틀 뒤 금요일 <토요판> 마감이 끝나고 삼겹살 굽는 회식 자리에서도 단연 화제는 애니팡이었다. "단순한 게임인데 묘한 중독성이 있어 빠져든다" "점수가 되게 안 오른다"는 얘기가 오갔다. 김양희 기자의 칼럼을 읽은 뒤 '팡신도'가 된 옆자리 남종영 기자는 하트를 보내준 최성진 팀장에게 "하트 감사합니다. ^^"라는 답장을 보냈다가 핀잔만 들었다. "아, 이 사람아. 답장은 왜 보내. 하트를 보내야지, 닥치고 하트!"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때만 해도 "중독성 게임은 아예 손도 대지 않는 게 상책"이라던 나였다, 는 게 지금에야 떠올랐다.

역시 팡신을 영접하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조금 과장하면, 요새 내 하루는 '팡'으로 시작해 '팡'으로 끝난다. 밤사이 친구들이 보내온 '하트'의 개수를 확인하고, 다정히 답 하트를 보내주며 하루를 열고, 남은 하트를 다 쓰고 나서야 잠자리에 든다. 때마침 누가 하트를 보내주기라도 하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그만큼 늦어진다. 엇, 그러고 보니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던 페이스북·트위터도 뒷전이다. 얼마 전 부산 출장 땐 행여나 휴대폰 배터리가 닳아버리는 건 아닐까, 일부러 맨 앞자리(케이티엑스-산천 열차 맨 앞뒤 좌석 밑에만 콘센트가 있다는 것!)를 골라 좌석을 예매한 나 아닌가.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감. '어맛, 나 혹시 게임 중독?'

그래도 게임은 계속된다. 회사로 가는 지하철, 마을버스에서도 계속 휴대폰에 머리를 박고 애니팡 삼매경이다. 슬쩍 돌아보면 옆에 선 커리어우먼도 팡, 배낭을 멘 남학생도 팡, 팡이다. 하루에 1000만명, 동시에 200만명 이상이 게임을 한다니 바야흐로 전국이 팡, 팡 들썩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에선 커뮤니티성 높은 게임이 강세"

도대체 다들 왜 이 난리냐고? 나도 궁금하다. "게임도 게임이지만 친구끼리 서로 하트를 주고받으며, 순위 경쟁을 하는 소셜 기능이 있다는 게 매력적인 요소"라는 게 애니팡을 만든 선데이토즈 쪽 얘기다. "테트리스나 헥사 등 과거에도 비슷한 게임들은 많았지만,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연결된 유저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게임 외적인 재미를 더 느끼게 된다"는 게 <게임어바웃> 이덕규 편집장의 더 상세한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게임 유저들끼리 길드를 결성해서 함께 싸우는 '리니지'처럼 커뮤니티성이 높은 게임들이 강세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리니지를 해본 적은 없지만, 듣고 보니 맞는 얘기 같다. 남종영 기자가 나보다 점수가 낮다고 약올리며 웃었던 게 떠올랐다. 최성진 팀장이 "오랜만에 했는데도 가뿐히 10만점을 넘겼다"며 으스댔던 날, 나도 내 최고 기록을 깼다. '내 안에 이렇게 드글드글 경쟁심이 들끓고 있었나?' 아, 이 깨달음!

잠재된 경쟁심을 확인했으니 다시 게임 스타~트! 한데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을 재게 움직여도 내 점수는 10만점 고지를 화끈하게 넘어서질 못한다. 최고 기록은 12만3305점이다. 이번주 아주 잠깐 1등 자리까지 치고 올라왔던 동기 남지은 기자가 "하트를 줄래도 니 이름 너무 아래 있어서 찾기도 힘들다"며 분발을 촉구한다. "지은아,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런데 '애니팡 고득점 비결'을 찾아 읽어봐도, 실전에선 맘 따로, 손 따로인 걸 어쩌겠니."

순간 불끈하고 뭔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도대체 몇 십만점을 넘는 '능력자'들은 다 뭐냐? 55만점을 너끈히 넘은 중학교 때 친구 이형래에게 물었다. "그냥 열심히 하면 돼." 쳇, 이건 뭐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도 아니고. 괜히 물어봤다. 궁금하다. 도대체 인간의 능력'만'으로 몇 점까지 달성할 수 있는 건지, 최고 기록은 몇 점인지. 선데이토즈의 허양일 경영전략팀장에게 답을 구했다. "실시간으로 변하기 때문에, 최고 기록은 알 수 없다"면서도 "버그를 쓰지 않고 사람 능력만으로 100만점 이상을 달성할 수 있지 않나 싶다"는 어머어마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실제로 100만점을 넘은 사람도 봤단다. 세상에 100만점이라니! 맙소사, 갈 길이 멀다.('그 길 꼭 가야 하나?' 이런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내 목소리에서 절망을 읽은 걸까. 허 팀장이 얘기했다. "운도 따라야죠. 애니팡 페이스북 관리하는 직원도 5만5000점밖에 안 되는걸요." 작은 위로에도 따뜻해지는 마음, 이것이 진짜 힐링이다.

'노력이 성공의 어머니' '운칠기삼'이라고 해도, 하트가 없으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팡신이 오고 나서 내 시계는 덜컥 고장이 났다. 게임을 하는 1분의 시간은 1마이크로나노초처럼 바스라지고, 싱싱한 새 하트 하나가 차오르기까지의 8분이 8시간처럼 더디 흐른다. 다행히 마냥 기다리는 것 말고도 방법이 있다. 친구로부터 하트를 수혈받거나, 토파즈 1개를 하트로 교환하면 된다! 토파즈는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10개에 미국 돈 99센트다. 대충 계산하면 하트 하나에 100원이란 얘기. 1분에 100원이면 싸진 않다. 친구의 온정이 간절해지는 이유다. "싸우고 헤어진 옛 여친에게서도 오고, 촛불집회 때 엮였던 정보과 경찰에게서도 오는 게 애니팡 하트"(트위터 @Na****)라는 데, 어째 내 사랑(하트)은 받아도 받아도 이렇게 허기지는 걸까. '친구'에게 하트를 날려줘도 회수율은 100%가 안 된다. 흥!

옛 애인과 연락 끊었던 친구들에게까지…

흥흥거리는 사람들은 아직 애니팡을 해보지 않은 카톡 친구들을 '초대'해 하트를 얻을 수도 있다. "○○○님이 당신을 초대했습니다. 지금 확인해보세요!"라는 카톡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애니팡 초대 메시지에 짜증이 난다'는 사람들의 얘길 들었던 터라 웬만해선 초대 메시지를 안 보내려고 했다. 어쩐지 다단계 같다는 느낌도 살짝 들었다고나 할까. 한데 추석 연휴, 정신줄을 놓고 애니팡 삼매경에 빠졌다가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사람 중 일부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말았다. 아뿔싸! 그 하트 중 하나가 한때 사회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문민경씨에게까지 날아갔다. 잠시 뒤 돌아온 메시지. "ㅎㅎ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근데 웬 애니팡? 담에 한 번 얼굴 봐용. ^^" 서로의 근황을 묻는 메시지를 두어번 주고받았다. '이렇게라도 서로 안부를 물으면 좋은 거 아니겠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얼굴이 자꾸 뜨~뜻해진다. 국제뉴스팀 전정윤 기자는 친구에게 초대 메시지를 3번이나 보냈다가 "혹시 니 카톡 해킹당한 거 아니냐?"는 문자를 받았단다. 앗, 창피해! "우리, 지인들에게 진작진작 연락 좀 하고 삽시다!"

나는 이제 남편 휴대폰을 호시탐탐 노린다. "이거 모르면 남들한테 무시당한다"는 말로 꼬셔 남편 휴대폰에 앱을 깔아, 하트와 토파즈까지 다 써버렸다. 어째 남편의 갤럭시S2 휴대폰으로 하면 게임이 더 잘되는 것 같다. '화면이 더 커서 그런가? 이 참에 휴대폰 바꿔?' 하는 생각마저 스멀스멀 밀려든다. 아, 그새 하트가 다 떨어졌다. 남편에게 휴대폰 좀 빌려줘,라며 두 손을 예쁘게 내밀었더니 끌끌 혀를 찬다. "중독일세, 중독이야."

아, 나는 정말 중독자가 된 걸까? 게임을 안 해도 눈앞에서 동물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니, 중독은 아니라고 셀프로 토닥토닥. 게임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트 판매 등으로 애니팡 일 매출액이 3억원가량 된다는데 나는 돈 주고 하트를 산 적도 없으니, 확실히 중독은 아니라고 다시 한번 토닥토닥 토토닥.

"1분 하면 무조건 게임이 끝나고, 새로 게임을 하려면 하트를 얻거나 사야 하기 때문에 애니팡은 그리 중독성이 문제가 되는 게임은 아니"라고 이덕규 편집장이 말해줬다. 휴~. '세계 3대 악마의 게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독성이 강한 '풋볼 매니저 온라인' '시드마이어의 문명'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같은 게임처럼 한번 시작하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며 몇 시간씩 계속하게 되는 게임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이 편집장의 얘기다.

초대장 남발 사건 이후 "내 인간성의 바닥을 본 것 같다"며 애니팡을 끊은 전정윤 기자는 "중독 맞다"며 손사래를 친다. 애니팡에서 탈출하기 위해 앱을 삭제했는데도, 카톡으로 계속 들어오는 하트에 낚여 다시 애니팡을 시작했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카톡 '연결된 앱 관리' 메뉴를 찾아 애니팡 메시지 수신 금지를 누른 뒤에야 애니팡 탈출에 성공했다며 말했다. "중독에서 벗어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중독자는 아니지만 아직 애니팡을 끊지 않은(못한 게 아닙니다) 나는 결심한다. '딱 20만점만 달성하고 팡신과 이별하자'고. 아, 그런데 이별까지 갈 길이 너무 멀다. 어랏, 그런데 이건 또 뭐냐. 보석팡, 캔디팡 하자는 초대 메시지가 자꾸 날아든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박근혜 빼고 다 바꿔야…이대로는 대선 진다"중저가 이미지 탓?…한달 700대 'K9의 굴욕'수녀원 지하에 진짜 모나리자 유해가?"파주·용인·청라·영종, 가계빚 폭탄 위험지역"누출된 불산이 사람의 피부까지 침투했다세금 낼 돈 없다던 고액체납자 집에 장승업 그림이…[화보] 귀여운 연재의 '말춤' 구경해보실래요?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