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383) 플루오린화수소

2012. 10. 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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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보다 가벼운 유독성 기체.. 노출땐 씻어내야

대량의 플루오린화수소가 공기 중으로 유출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현장에 있던 작업자 5명이 즉사하고, 18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의 작업 과정에서 일어난 기막힌 사고였다. 기체 상태의 독성 물질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지만, 사고가 일어난 지역의 피해는 심각한 모양이다.

언론 보도만으로 이번 사고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사고 원인이라는 불산(弗酸)의 정체도 불확실하고, 실제로 폭발이 있었는지도 불확실하다. 불산은 플루오르산의 일본식 이름으로 플루오린화수소(HF)를 물에 녹인 수용액을 말한다. 실제로 수용액 상태의 불산이 유출되었다면 언론 보도처럼 대규모 폭발이 일어날 수도 없고, 엄청난 규모의 흰 연기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매우 낮다. 사고 상황에 대한 보도가 부정확했던 셈이다.

아마도 이번 사고는 탱크로리에 고압으로 담겨있던 플루오린화수소 기체를 저장탱크로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로 대량의 기체가 유출되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흰 연기는 플루오린화수소 기체가 공기 중의 수증기와 결합해서 만들어진 플루오르산이었을 것이다.

불소(弗素)는 일본에서 원자번소 9번의 플루오린(F)에 사용하는 이름이다. 플루오린의 음(音)을 빌려서 만든 중국의 원소기호를 일본식으로 고쳐서 만들어낸 이름이다. 언론과 산업계에서는 아직도 일본식 이름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화학계를 대표하는 대한화학회에서는 화학 분야의 국제기구인 IUPAC가 정한 플루오린을 권장하고 있다.

플루오린화수소는 플루오린화칼슘이 주성분인 형석(螢石)을 진한 황산과 함께 가열할 때 기체 상태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인회석(燐灰石)에서 비료의 원료로 쓰는 인산(燐酸)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기도 한다. 플루오린화수소는 상온에서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공기 중으로 유출되면 쉽게 확산된다. 그러나 유출된 플루오린화수소가 공기 중의 수증기와 결합해서 플루오르산이 만들어지면 무거워져서 지표면으로 가라앉는다.

플루오린화수소는 사람, 가축, 농작물 모두에 강한 독성을 나타낸다. 플루오린화 이온이 생체 내의 칼슘 이온과 결합해서 물에 녹지 않는 플루오린화칼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플루오르산이 피부 깊숙이 스며들면 피부의 괴사가 진행되고, 폐와 각막에 심각한 손상이 생기기도 한다. 혈액 속의 칼슘 이온과 결합하기 때문에 신경계에도 문제가 생기고, 심하면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다. 플루오린화수소에 노출되면 많은 양의 물로 씻어내고, 즉시 병원으로 옮겨 글루콘산칼슘 약품으로 플루오린화 이온의 독성을 제거해야만 한다.

공기 중으로 유출된 플루오린화수소는 바람에 의해 확산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플루오린화수소가 넓게 확산되기 전이라면 수산화칼슘(소석회)을 녹인 물을 뿌려서 플루오르산을 중화시키는 노력이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소석회와 반응해서 물에 녹지 않는 플루오린화칼슘이 만들어지면 토양이나 수질 오염을 걱정할 이유도 없어진다. 플루오린화수소가 가볍고 물에 잘 녹기 때문에 고엽제처럼 장기간에 걸쳐 토양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주민, 가축, 농작물에 발생한 피해는 돌이킬 수가 없다.

플루오린화수소는 독성이 강한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의 산업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 플루오린화수소는 옥탄가가 높은 고급 휘발유 생산에 촉매로 사용되기도 하고, 플루오린이 결합된 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 용도로도 널리 사용된다. 항우울제로 쓰이는 프로작이나 고급 소재로 널리 이용되는 테플론(PTFE)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플루오르산은 반도체 산업에서도 에칭(蝕刻)이나 세척용으로 중요하게 활용된다.

이덕환(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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