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지구 한바퀴..이해준의 '희망가족'> 빈필 선율에 귀씻고 할슈타트 호수에 눈씻고..치유란 이런 것

2012. 9. 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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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인간 · 자연 · 예술의 3중주..오스트리아서 달콤한 휴식

쉔부른 궁전의 언덕 잔디밭 뒹굴며바로크 양식 석조건물 내려다보고…뮤지크베라인 극장선 감성 충전잘츠부르크서 만난 모차르트의 흔적불꽃처럼 살다간 35년의 삶이 곳곳에높은 산·수정같은 호수·그림같은 주택할슈타트 작은마을선 게으름에 빠져

[할슈타트(오스트리아)=이해준 선임기자] 여행이란 무엇일까. 우리 가족에게는 다른 세계와의 끊임없는 대화 또는 비교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이었다. 중국에서부터 시작해 네팔ㆍ인도를 거쳐 터키ㆍ그리스ㆍ이탈리아를 6개월째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모습이 한국과 자연스럽게 비교됐고, 이들의 삶 위에 우리의 생활이 오버랩됐다.

유럽에서는 한국과 달리 농촌과 소도시가 매력적이었다. 유럽 어디를 가나 시골이 잘 정비돼 있었고, 인구 수만명의 소도시에는 깊은 역사가 주민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터키의 안탈리아, 그리스의 델피,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나 아시시 등은 잊을 수 없었다. 난개발과 대문짝만한 간판으로 뒤죽박죽돼 흉물스러운 한국의 중소도시와 극적으로 대비됐다. 한국이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지방과 소도시 사람이 잘 살아야 하고, 시골이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들의 여유있는 삶도 한국과 크게 대비됐다. 로마와 같은 대도시 사람은 각박한 환경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대도시를 벗어나면 어디에서나 여유가 넘쳤다. 잘 보존된 자연 속에서 전통적인 문화를 향유하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대학 진학과 취업, 돈에 얽매여 살아가는 한국인이 갖기 힘든 여유였다.

중부 유럽의 영세중립국 오스트리아는 이러한 유럽의 멋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와 예술,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이 조화를 이룬 곳이었다. 우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3일, 잘츠부르크와 할슈타트에서 각각 1일 등 4박5일간 머물렀다. 역사 유적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질리도록 보았기 때문에 휴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베네치아에서 빈까지는 야간 침대열차로 이동했다. 1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빈은 확실히 17~18세기 근대유럽의 중심지다운 풍모를 보여주었다. 도로는 넓직하게 쭉쭉 뻗어 있었고, 도로 양편으로는 바로크 양식의 거대한 석조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고대유적 중심인 아테네나 로마와 달리 근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활짝 꽃피었던 당시의 화려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쉔부른 궁전의 언덕 잔디밭을 뒹굴면서 빈 시가지를 내려다보던 것은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뭐니뭐니해도 빈에서 경험한 최고의 추억은 음악회였다. 빈에는 국립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해 멋진 극장이 곳곳에 있고, 거의 매일 저녁 음악회가 열린다. 우리는 세계 3대 교향악단인 빈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뮤지크베라인(Musikverein) 극장을 찾았다. 가난한 장기 배낭여행자의 입장에서 좋은 좌석은 너무 비싸 스탠딩석(입석)을 구입했지만, 그것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뮤지크베라인은 10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멋진 극장이었다. 무대 앞으로 1층 플로어 좌석이, 위쪽으로 발코니석이 각각 마련돼 있었고, 스탠딩석은 1층 플로어석 뒤에 있었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리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와 같이 스탠딩석을 끊은 여행자만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좌석엔 주로 노부부가 정장을 차려입고 앉아있었다.

극장은 만석이었다. 매일 공연이 있는데, 평일 공연장이 꽉찬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공연은 특별한 설명이나 사회 없이 연주자가 자리를 잡고, 지휘자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등장하는 것으로 장내가 자연스럽게 정리되면서 시작됐다.

은은한 선율이 울려 퍼졌다. 우리도 그 선율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평소 음악회를 자주 다니지 않아 다른 악단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최고의 지휘자와 연주자가 선사하는 최고의 화음이었다. 40명 가까운 연주자로 이뤄진 오케스트라는 젊은이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연주자까지 고루 포진돼 있었다. 신예의 패기와 베테랑의 노련함이 조화를 이루며 완벽한 화음을 연출했다.

방랑자와 같이 반 년째 세계를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우리도 모처럼 귀와 마음을 깨끗하게 씻었다. 교향악단은 악기의 화음만으로 인간의 모든 감정과 희로애락을 표현했고, 극장을 메운 관객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음악을 들으며 우리가 그동안 여행했던 그리스와 로마ㆍ피렌체ㆍ베네치아ㆍ빈의 고색창연한 건물과 아름다운 전원 풍경이 떠올랐다. 로마 바티칸과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 빈의 미술사박물관에서 보았던 세계적 거장의 명화도 떠올랐다. 그랬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건축물과 미술작품을 보았고, 이제 세계 최고의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산과 호수가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잘츠감머구트 지역의 할슈타트. 깎아지른 절벽에 아름다운 마을이 들어서 있고, 그 마을과 산이 수정처럼 맑은 호수에 그대로 반사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책에서나 보았던 것을 자신의 오감을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 그것을 통해 정서적ㆍ지적 희열을 느끼는 것이 바로 여행이었다. 한창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살아있는 현장학습이었다. 2시간 동안의 음악회는 장기여행의 피로와 온 가족이 항상 같이 붙어다녀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짜증도 확 녹여주었다.

빈에 이어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무대가 되었던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잘츠부르크엔 잘차크 강을 사이로 모차르트 탄생지와 생가 등 모차르트의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여기서 만난 모차르트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모차르트는 18세기 후반 35년의 삶을 불꽃같이 살다간 천재 음악가였다. 그는 5세 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하고 8세 때 작곡을 하는 등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보였지만, 그의 삶엔 화려함과 불운이 교차했다. 예술에 대한 천재의 열정과 신흥 부르주아의 야욕, 거기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사랑을 갈구하던 예술가의 영혼이 뒤얽혀 있었다. 35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720일간 여행을 하면서 22개의 오페라와 600여곡을 작곡했다는 박물관의 설명은 격정적이었던 그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바로 전날 교향악의 향연에 빠졌다가 모차르트의 일생과 음악을 그의 고향에서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대학 1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인 두 아도 박물관을 흥미있게 돌아보았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쳐주기 위해 자꾸 설명하려 하지 않고, 부모가 스스로 즐기는 모습을 보이니 아이들도 각자 즐기는 방법을 찾았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높은 산과 수정처럼 맑은 호수, 아름다운 주택이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잘츠감머구트의 작은 마을 할슈타트였다. 잘츠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 빈 방향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아트낭-푸츠하임 역으로 간 다음, 지역(로컬)기차로 갈아타고 다시 1시간 더 가야 하는 깊은 산중 호수마을이다.

빈에서 귀를 깨끗이 씻었듯이 이번엔 눈을 씻어내릴 차례였다. 할슈타트는 유명 카메라 회사나 항공사의 광고사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호수와 산ㆍ하늘과 같은 자연도 자연이었지만, 호수 주변의 깎아지른 언덕에 들어선 마을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마을길은 좁은 골목과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고, 기념품점과 카페ㆍ레스토랑이 곳곳에 들어서 정감이 넘쳤다. 인구라고 해봐야 10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임에도 여행자가 쉬지 않고 몰려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호수가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식사를 마치고 큰 아들은 책을 보다가 햇볕을 받으며 잠들어버리고, 둘째는 MP3로 다운받은 판타지와 소설에 몰두했다. 아내는 여행 단상을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멀리 호수와 산,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유럽인처럼 마음껏 휴식을 취하며 게으름에 빠졌다.

언제 우리 가족이 이처럼 편안한 시간을 가졌던가. 한국에선 각각의 일과 공부에 항상 쫓겨다녀야 했고,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도 역사 유적지와 박물관 등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날이었다. 이렇게 여유를 갖게 된 것은 이번의 가족여행이 가져다 준 커다란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오스트리아는 우리에게 갚진 휴식과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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