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번의 결혼식과 99번의 장례식'은 이제 그만

2012. 9. 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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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르포 - 사할린 영주 귀국자들의 안산 고향마을

사할린에 강제동원됐다가영주귀국한 동포 1세대 760명대부분 70~80살, 90대가 19명젊은이래봤자 50대 후반 1명새 생명의 탄생은 전혀 없다조용한 마을이 요즘 활기를 띤다200명이 일본에서 보내주는사할린 가족방문을 하러 간다우리말과 러시아어가 어우러져노인회관 사무실을 울린다

그곳은 도심 속 '섬'이었다.

가을을 알리는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던 지난 4일, 경기도 안산 고향마을 주공아파트는 인적 없이 한밤처럼 고요했다. 안산시 상록구 사1동, 지하철 4호선 한대앞역 건너편 현란한 간판이 나붙은 유흥가 바로 옆에 자리한 이 아파트는 한눈에도 도드라지게 달라 보였다. 10층짜리 아파트 8동이 들어섰지만 이곳 주차장은 말 그대로 '텅텅' 빈 상태. 각종 고지서와 광고 전단으로 그득해야 할 우편함도 사람의 손길이 오간 흔적이 드문 듯했다. 아파트 정문 앞. '갈롯시' '매사까뺏단' 등 낯선 이름의 음식을 판다고 써붙인 '러시아 바'가 이 마을의 '정체'를 살짝 엿보게 해줄 뿐이었다. 일제강점기 사할린에 강제동원됐다가 2000년부터 영주귀국한 동포 1세대가 모여 사는 마을이다.

전순자 할머니가 파마를 한 이유

맑은 날에도 이 마을에선 아이들 뛰노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90살 이상 노인이 19명, 주민 대부분이 70~80살인데다, 가장 '젊은' 이래봤자 50대 후반(1명)인 까닭이다. 2000년 980명이었던 주민 수는 정착 12년 만에 760명으로 급감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없고 나이든 사람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는 탓이다. 정부가 주는 적은 생계지원비(53만~111만원)에 기대 사는 탓에 마을은 다른 커뮤니티들처럼 주변으로 확장되지 못한 채 홀로 섬이다. 아파트 앞뒤로 러시아 바가 2곳, 러시아 식료품 상점, 뷔페 식당이 하나씩 있을 뿐이다. 지갑 사정이 좋지 않은 노인들은 그나마도 누군가의 생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나 한번 들를 뿐이니 상점도 늘지 않는다.

조용한 섬 같던 이 마을에도 요 며칠 활기가 돌고 있다. 주민 200명이 5~13일 사할린에 남겨둔 가족들을 '역방문'하러 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양윤희(71) 노인회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이날 노인회관 사무실에서 유창한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번갈아 가며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주민들의 여권 기간 만료 여부며 항공기 편명 확인, 공항 가는 버스 배차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슬플 틈도 없어요." 양 회장이 말했다. 이 마을에서 10년 동안 2대 노인회장을 지냈던 양씨의 남편 고창남(78)씨가 열흘 전 세상을 떠난 것을 두고 한 얘기다. "일이 바쁘니 차라리 나아요. 부쩍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여기 과부가 된 사람이 저뿐만이 아닌걸요." 양씨의 눈가가 붉어질세라 전화가 또 울렸다.

오후 3시, 그가 복지관 2층 강당으로 바쁘게 발길을 옮겼다. 5~7일 하바롭스크·모스크바·사할린 쪽으로 역방문 가는 사람들을 위한 사전 모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5일 출발하시는 분들, 새벽 5시30분에 집합해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탈 거예요." 양 회장이 출발 시간을 알려주며 역방문자들의 체류 기간을 일일이 확인했다.

강당에 모인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여행가방의 무게였다. "아시아나는 25㎏까지 가능하지만, 대한항공은 23㎏까지만 가능하답니다. 그 이상 넘으면 돈을 무셔야 해요." 양 회장의 말에 곳곳에서 "아~" 하는 실망 섞인 탄식이 터져나왔다. "맨날 여름에 가더니 왜 이번엔 가을이래?" 뒤쪽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옆자리 남성에게 불만 섞인 말을 건넸다. 날이 추워져서 무거운 겨울옷을 챙겨 가야 하는데, 그러면 가족들에게 줄 선물 넣을 자리가 모자란다는 말이다. "손짐은 당신들 하기에 달렸어요. 아시죠?" 양 회장이 간단한 해결책을 준다는 듯 얘기했다. "체류 기간을 더 늘릴 수는 없느냐" "버스는 몇 시에 출발한다고 했죠?" 재차 확인하는 질문들이 몇 번 더 나왔다. "효도 많이들 받으시고 건강하게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양 회장의 마지막 말로 사전 모임이 끝났다.

전순자(79)씨가 웃는 얼굴로 노인회관 '할머니방'으로 들어섰다. 전씨는 머리에 보라색 보자기를 쓰고 있었다. "자식들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파마했구먼?" 마작을 하고 있던 동갑내기 친구 우구미씨가 그를 보고서 말을 건넸다. "아, 그럼 2년 만에 보는데 귀신바가지로 보여서야 쓰나."

남편 보살피느라 사할린 못 가는 이화자 할머니

전씨는 "아파트 앞 미용실에 가서 2만원을 주고 머리를 말았다"며 웃었다. 그는 엿새 뒤(10일)면 사할린으로 가 자녀 1남2녀와 6명의 손주를 만난다. "어찌나 설레는지 잠도 잘 안 와. 어제도 새벽 3시까지 거실에서 한참을 왔다 갔다 했어." 그는 자식·손주한테 주려고 양말과 신발, 김을 좀 샀단다. "마음으로야 다 해주고 싶지만 돈이 별로 없어서…."

106동 302호 사는 이화자(70)씨는 이런 들뜬 분위기에 되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2년에 한 번, 공짜로 보내주는 건데도 못 가니 애가 닳죠." 이씨네와 한 복도를 쓰는 이웃 다섯 집 중 세 집이 이번에 사할린에 간다. '혹시나 이번엔 갈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역시나 기대는 무너졌다. 당뇨로 5년째 병석에 누운 남편 김영군(77)씨의 병세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남편은 여전히 일주일에 3번 병원에 가서 5~6시간씩 투석을 받아야 하고, 요샌 말귀도 어두워져 불러도 잘 돌아보지도 않는다. 치매가 오려는지 방금 전 무슨 일을 했는지도 깜빡깜빡한다. 남편은 이씨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에도 못 간다. 남편이 투석하러 병원에 가는 사흘, 대여섯시간을 제외하면 이씨는 온종일 "말벗도 해주지 못하는 남편" 옆에서 멍하니 붙박이 신세다. 더러 노인병원에 남편을 맡겨두고 다녀오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쌍해서" 차마 그렇게도 못하겠단다. "나 아니면 그 까다로운 성미를 누가 맞추겠어요. 우리 아저씨 나 없으면 아마 열흘도 못 버틸 거예요. 또 나 혼자 애들 만나도 자꾸 우리 아저씨가 눈에 밟혀서 맘도 편하지 않을 텐데, 그럴 바엔 나도 안 가는 게 낫죠." 아들과 두 딸도 형편이 넉넉잖다. 두 자녀가 뒤늦게 아버지 병고를 듣고 한국에 왔던 게 벌써 3년 전, 사할린에 있는 손주들을 본 지도 8년이나 지났다.

두 노인이 침묵하는 집 안에서 시간은 더디게 간다. 방 하나, 거실 하나가 고작인 집을 "윤이 나도록 닦고 쓸어도 한 시간 남짓"이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사람 지나가는 모습을 한참 보다 들어와도 고작 몇십분이 흘렀을 뿐이다. 그나마도 이날은 비가 내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매주 화요일 아파트 마당에 서는 장 구경하는 게 즐거움인데, 오늘은 비가 내려 그나마도 취소됐네요. 난 정말 비가 오는 게 싫어요." 이씨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얘기했다.

침묵의 공간을 채우는 건 티브이 소리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틀어 잠잘 때까지 온종일 티브이를 켜놔요." 기자가 이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티브이에선 드라마 <무신>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무신>이 끝나자 뉴스와 의학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티브이 앞에 조용히 누워 있던 김씨는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딱히 보려고 틀어놓는 건 아니니까요." 이씨가 말했다. 정 답답할 땐 이씨는 베란다에서 키우는 화초들에게 말을 건다. '아, 네가 예쁘게 꽃이 피었구나.' "웃기겠지만 그렇게라도 말을 해야 속이 좀 시원해져요."

'사할린 영주귀국 특별법' 이번엔 믿어도 되나

말벗 노릇도 못하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곁에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마을에선 점점 부고가 자주 들린다. "한동네에서 온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네요. 장례야 복지관에서 잘 치러주겠지만, 누가 우리 장례식장을 지켜주려나 걱정이 되지요." 친척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는 108동 할머니(91)가 얼마 전 다리를 다쳐 병석에 누웠다. 그 뒤로는 전화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진다"고 이씨가 말했다. "밤새 안녕이라고, 연세도 있으니 어떻게 되실까봐 걱정이 많이 돼요. 차라리 연락이 없는 게 희소식이겠거니 해요."

자식 생각은 그럴 때 더 간절해진다. "날씨도 따뜻하고 시설도 편해서 한국 나와 사는 데 큰 불만은 없어요. 다만 애들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게 가장 힘들죠." 다른 영주귀국자들의 어려움은 이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사할린 영주귀국자 중 안산 고향마을 등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213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2011 영주귀국 사할린 한인 만족도 조사 결과보고')를 보면 영주귀국 뒤 가장 힘든 점으로 "사할린 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움"(47.9%)을 꼽았다. 나라에선 때만 되면 '특별법'을 만들어 2세들도 고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을 때 자식이 들어올 수 있기는 할까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광복절 <한국방송>(KBS) 라디오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일제 사할린 강제징용에 동원된 이들과 그 후손들의 귀국 및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19대 국회에서 반드시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약속은 처음이 아니다. 2005년과 2009년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및 정착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제출됐다가,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1990년 이후 사할린에서 영주귀국한 사람은 모두 4008명. 이 가운데 694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시간은 흘러간다.

안산/글·사진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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