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40) 인수봉 인수b길 / 낭만의 역사가 함께 하는 인수의 맏형길

2012. 9. 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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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률 기자] 9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도 30도에 이르는 무더위가 예보되고 있었다. 이 날도 예외 없이 도선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하루재를 오르는데 어느덧 35도를 넘나들던 한여름의 기세는 어느덧 많이 수그러져 있었다. 아무렴 이제 한 달만 더 있으면 등산객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엇 추워!"를 연발하게 될테니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작정하고 인수b를 등반하기로 한 날이다. 그것도 대슬랩을 출발하여 둘째 마디로 넘어가는 길이 아닌 1935년도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인수봉에 오른 김정태 씨와 그 밖의 산악인들이 함께 오른 길과 같은 코스의 바윗길을 등반하기로 했다.

오늘 인수b의 전통코스를 알려주며 선등까지 맡아주는 이는 인수봉 건양길의 개척자인 함기철 대장이다. 기자가 함 대장과 함께 등반한 것은 벌써 네 번째, 이미 40여 년 전부터 등반을 시작한 그와 등반을 하면 인수봉 바윗길마다 얽혀있는 이야기들과 어린 시절 등반할 때의 에피소드들이 끝 갈데없이 이어져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르륵 옛 추억에 잠기게 된다. 등반을 이끌면서도 큰 소리를 내는 일이 없어 함께 등반하는 이들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요즘 보기 드문 미덕이자 그 만의 매력이다.

젊은 시절 함 대장의 사진들을 보노라면 "나는 그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날은 함 대장이 국토순례회에 회원으로 몸담고 있을 무렵 직접 등반을 가르쳐 준 일이 있는 황성호 클라이머가 게스트로 초청되었다. 무려 20여 년 만에 함께 하는 등반이라는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자일은 선배와 후배를 엮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산우들과의 우정을 연결해주도 하며 시인 김기섭 님의 표현처럼 '너와 나의 심장을 연결'해주기도 하는데 이 두 사람에게는 20여년의 세월까지 뛰어넘어 끈끈한 정을 이어준 셈이다. 오래 전 선배에게 바위를 배우던 앳된 청년은 이제 40대하고도 후반이 되었고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등반경력은 인수와 선인의 바윗길들을 가리지 않고 오를 실력이 되었다. 그에게 변하지 않은 것은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할까. 바위와의 사랑이 너무 뜨거웠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비둘기샘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물통에도 가득 채운 후 인수b길이 시작되는 인수동면으로 향한다. 대슬랩을 모두 지나 남측방면으로 이동하다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건양길 출발지점 바로 오른쪽이 출발지점이다.

첫째 마디는 일별하기에 장쾌한 멋이 있는 긴 크랙길이다. 거리는 40미터, 정확히는 37미터라고 한다. 인수에서는 보기 드물게 긴 크랙길이어서 다소 주눅이 들기는 하지만 홀드가 좋은 편이라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함 대장이 출발을 해서 신중하게 확보물들을 설치하고 등반을 이어나간다. 마지막 부분에서 확보물 설치에 공을 들이곤 이내 바위를 올라타서 등반을 마무리 한다. 빌레이를 보던 황성호 씨가 거침없이 등반을 시작해서 그야말로 '날라간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신속하게 등반을 끝낸다. 드디어 기자의 차례. 이번 주에 비가 내려서인지 바위가 깨끗해서 홀드를 잡는 손맛이 좋다. 누군가는 비가 온 다음날 등반을 하면 바위에서 특유의 향까지도 맡는다는데 그 정도는 아닐 지라도 등반하기에 적합한 바위의 상태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손으로 잡을만한 홀드도 많고 발로 짚을 스탠스 또한 양호하다. 쉬지 않고 천천히 등반을 이어나가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는데 이곳이 이를테면 첫째 마디의 크럭스로 멍텅구리성 홀드다. 오른손과 왼손을 크랙 깊이 집어넣어서 주먹을 쥐듯이 하고 내 몸을 받칠만큼 지지가 되면 발을 크랙 안으로 집어넣어 재밍을 한 다음에 올려 붙여야 한다.

기자는 쉽게 오를 방법만을 찾다가 이내 그런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두 주먹으로 굳게 재밍을 하고는 오른 손을 끝까지 쭉 뻗어보니 비로소 홀드가 잡힌다. 웃고 시작해서 인상을 쓰고 끝낸 셈이다. 이렇게 해서 첫째 마디의 등반이 완료.첫째 마디의 난이도는 5.8이지만 크랙이 길고 확보물을 직접 설치해 가면서 올라야 하므로 그보다는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손재밍 구간은 경험이 없으면 온 사이트 선등시 다소 당황할 여지가 있다. 처음부터 너무 힘을 많이 쓰게 되면 확보점 가까이에 가서는 마지막 손재밍이 필요한 구간 돌파가 힘들 수가 있으니 힘의 분배를 적절히 할 필요도 있겠다.

후등자 빌레이를 보면서 등반자 얼굴들을 살펴보니 역시 마지막 재밍이 힘이 드는 모양이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자못 인상이 심각하게 찌푸려지지만 그것으로 그만일뿐 크럭스를 돌파하고 나면 '해내고 말았다'는 성취감에 금방 환한 웃음이 피어오른다.

선등자는 다시 둘째 마디를 출발한다. 난이도 5.7에 거리 30미터의 크랙길이다. 등반 초입은 오른쪽으로 누워 완만한 크랙이다. 바윗길 오른쪽으로는 생공사길로 넘어가는 말등바위가 자못 위압적으로 내려다본다. 말등바위를 넘어 치는 구간은 생공사길의 둘째 마디 출발지점으로 난이도는 5.11a에 이른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오른쪽으로 멋진 남성의 코처럼 잘생긴 의대길과 궁형길, 인수A길이 바라다 보인다.

선등자를 안정되고 여유있게 빌레이를 보는 세컨의 자세가 든든하다. 선등자는 차분하고 안정된 등반을 이어나가고 세컨은 신중한 빌레이에 이어 거침없이 치고 올라가는 모습이 마치 나비와 벌의 움직임처럼 보인다. 완만한 슬랩을 출발하여 둘째 마디의 확보지점인 소나무 아래까지 등반하는데 사방에 전망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홀드가 양호해서 등반의 즐거움이 계속된다.

그리고 이제 인수b의 하이라이트이자 크럭스라고 할 수 있는 항아리 크랙에 이른다. 인수b 코스가 개척된 후 수많은 등반자들의 등반으로 닳고 닳은 곳이다.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항아리 크랙은 선등자나 후등자 모두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항아리크랙을 붙잡고 등반을 하는 바람에 마지막 부분의 바위는 무척 미끄러워 빠지기 십상이다. 선등자라면 항아리 크랙을 넘기 전에 프렌드건 트라이캠이건 확실하게 확보물을 설치하자. 그리고 아낌없이 초크를 바르자.

2006년 11월, '아름다운 시인' 김기섭 씨가 두째마디 쌍볼트 5미터 아래지점 항아리크랙 레이백에서 날개를 뜯다가 10여 미터를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던 가슴 아픈 곳이다.

셋째 마디 출발점에 서면 두 개의 크랙길을 선택할 수 있는데 원래의 인수b길은 오른쪽 크랙길이다. 왼쪽 크랙길의 난이도 역시 비슷하다.

1950년대 인수b 항아리 크랙을 등반하는 사진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안전벨트와 헬멧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검게 물들인 군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등반자들이 줄줄이 붙어서 등반을 하고 있었다. 자일 한 동을 깔아놓고 아슬아슬한 항아리 크랙을 올라가면서도 얼굴 가득 웃음이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기자도 여유 있게 웃으며 출발했다가 항아리 크랙 마지막 부분에서 초크를 많이 칠하고 오르라는 함 대장의 충고를 옆으로 흘리고 등반하다가 손을 놓치고야 말았다. 이보다 훨씬 어려운 바윗길에서도 손을 추락한 적이 별로 없는데 열패감이라고 할까 참 어이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바위를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손이 빠지기 쉬울 만큼 충분히 미끄럽다.다시 셋째 마디가 시작된다. 이 구간에서는 발 재밍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발이 아프다. 중간 이후부터는 손으로 바위를 잡아 밀면서 등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소 수월해진다. 인내하면서 수직구간을 돌파하면 큰소나무 옆에 확보 쌍볼트가 있다. 넷째마디는 몸이 절반정도 들어가는 넓은크랙을 직상하여 15 m 오르면 왼쪽으로 가는 밴드가 나온다.

'용의 발자국'이라고도 부르듯이 발로 밟기 좋게 뚜렷한 스텝이 형성되어 있고 밴드를 트래버스로 이동하면 확보점이 나온다. 선등자는 왼쪽으로 구부러지는 구간, 즉 수직구간에서 밴드로 넘어가는 구간에 퀵드로우 설치가 필수. 후등자가 홀드를 놓칠 경우 왼쪽으로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마디가 끝나면 자일을 사려들고 걸어가는 구간을 통과한다. 다섯째 마디를 출발하는 장소는 완만한 경사의 크랙이다. 출발 지점에 확보점이 없으니 크랙에 확보물을 설치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마디는 길이가 워낙 길기 때문에 두 번에 나누어서 등반하는 것이 좋다.

이 구간은 아무래도 등반이 자주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잡초들이 군데군데 무성하게 자라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끄럽기도 하다. 기자는 이 구간에서 10.5mm자일을 달고 등반을 했는데 그 무게감이 마치 어린 아이가 다리에 매달려 오는 것처럼 힘이 들었다. 자일의 무게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일은 또 처음이다.

크랙이 길게 형성되어 있는 곳의 마지막 부분에 프렌드 2~3개 정도를 사용하여 확보할 수 있다면 한명씩 빌레이를 보면서 등반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구간을 통과해서 계속 직상코스로 등반하면 짧은 슬랩과 야트막한 오버행이 나온다. 이 부분을 옆으로 돌아 스텐볼트에 퀵도르를 걸고 우측으로 직상을 하여 굵은 노송 옆으로 올라가서 짧은 숲속길을 지나면 영자크랙이나 참기름 바위를 통과할 일이 없이 바로 인수봉 정상이 나타난다.

인수b길은 인수봉 등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바윗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5년 5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김정태, 엄흥섭, 김금봉 등이 인수봉을 처음 오른 길인 것이다. 이것이 인수b가 인수봉의 맏형이 되는 이유이다. 당시 일본사람인 이시이도 함께 등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등반에 소요된 시간은 약 5시간이었고 하산은 오늘날과 같이 남면으로 하지 않고 오른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고 한다. 다음해인 1936년 5월에는 박순만 등이 인수a코스를 등반하게 된다.

인수b길의 초등정은 주한·주일 영국부영사였던 클리프 휴 아처와 페이시, 일본인 야마나카 등 세 사람이 고독길 부근으로 인수봉을 최초로 오른 1928년 9월로부터 7년이 채 못 된 시점의 일이었다. 아처의 등반기록은 영국산악회의 연보인 '알파인 저널' 1931년호에 실렸다.

그러나 아처의 인수봉 초등은 단지 기록상 의의만 있을 뿐 아처일행은 그들의 인수봉 초등반 전에 누군가 인수봉 정상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했던 것이다. 때문에 훗날 인수봉 초등자에 대한 기록은 새롭게 씌어질 것이다. 아처는 1930년도에 선인봉 또한 초등정했다.

이제 인수봉 정상에 2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두 클라이머가 섰다. 인수의 맏형길인 인수b를 정통코스로 오른 함기철 대장과 황성호 씨. 세월은 30대와 20대의 청년기였던 두 사람을 어느덧 60과 40을 넘긴 중년의 클라이머로 변신시키고야 말았다. 그러나 자일을 함께 묶었던 두 사람의 뜨거운 등반열과 자일의 정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웃음이 묻어나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 풋풋했던 그들의 모습이 다시금 피어오른다. 영원히 변치 않는 우정과 자일의 정을 간직한 바로 그 얼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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