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中 조선족 자치주 60년

1989년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연변 조선족자치주 주도 연길에 갔다가 이근전 연변작가회의 주석 등 현지 문인들의 저녁 초대를 받은 일이 있다. 식당을 찾아갔더니 이미 떡 벌어진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문제는 메뉴였다. 밑반찬 몇 가지를 빼곤 주 요리가 모두 개고기를 재료로 한 것이었다. 개 갈비 수육, 개고기 무침, 개고기 전골…. 박 선생이 난감해하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이 주석 등으로선 귀한 손님 대접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반세기 가깝게 단절돼 있던 남의 나라 땅에서 우리 음식문화가 그런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시장은 온통 한글 간판 천지였다. 반찬가게는 김치와 짠지, 젓갈이 고루 갖춰져 있었고 시루떡 인절미도 눈에 띄었다. 한복을 주렁주렁 걸어놓은 옷가게도 있었다. 연변은 조선족만의 문화와 풍습이 당당히 살아있는 중국 내 별세계(別世界)였다.
▶예부터 한민족이 자리 잡고 살던 간도(間島) 지역을 중국이 '연변 조선족자치주'로 지정한 것이 1952년이다. 1992년까지 지역 행정 수반인 주장(州長)은 물론 공공기관 간부 40% 이상이 조선족이었다. 조선족을 위한 소학교가 363개, 중·고교 288개, 대학이 네 개에 이르렀다. 중국을 이루고 있는 56개 민족 가운데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는 민족은 한족과 티베트·위구르·몽골족, 조선족 5개뿐이다. 중국 내 조선족 문화의 발신기지인 연변 조선족자치주가 어제 3일로 60주년을 맞았다.
▶한때 중국에서 "전국 도시 중에 두 개의 '옌'이 뜨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을 끝낸 '옌안(延安)'이 혁명 성지로서 각광받고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조선족자치주 수도 '옌지(延吉)'가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 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특유의 근면함에다 한중 수교가 가져다준 특수가 겹쳐 연길은 중국에서 인구 비례로 따져 영업용 택시가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성장과 호황의 후유증도 있다. 너나없이 돈 벌러 중국 대도시와 한국으로 떠나면서 1953년 연변 전체 인구의 70.5%에 이르던 조선족 비율은 2010년 36.7%로 떨어졌다. 중국에서 자치주를 유지하려면 소수민족 인구가 전체의 30% 이상 돼야 한다. 2020년엔 조선족 비율이 10%대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인구가 줄면서 각급 조선족 학교의 80%가 문을 닫았다. 부모가 일자리를 찾아 멀리 떠난 후 아이들은 우리말을 잃었다. 한민족 역사상 유일한 해외의 자치주를 살리는 일이 현지 조선족만의 관심사가 돼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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