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색다른 나들이법] 왕릉 낮잠

2012. 8. 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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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자연과 건축, 그리고 유물의 조화가 아름다운 공간이다. 지난 주 서울시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 경계에 있는 서오릉에 갔었다. 그저 숲을 걸어볼 생각이었는데, 그곳에 피서의 신공들이 모여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조선의 왕릉은 모두 18곳이다.

서오릉에서 본 세가지 풍경

왕릉이 산책 여행지로 좋은 것은 첫째 그곳에 울울창창한 숲이 있기 때문이다. 서오릉이 처음 조성된 것은 1469년이다. 왕릉 주변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방문객을 위해 조성한 산책로에는 서어나무 등이 빼곡하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들어가서 제일 먼저 목격한 장면은 개울가 그늘에 돗자리를 펼쳐놓고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었다. 숲을 벗어나면 해가 쨍쨍 내리꽂히는 날이었지만 이곳에는 햇살 한 조각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왕릉 야산에서 개울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무더위를 밀어내고 있으니 비록 가뭄에 물은 부족했지만 숲, 맨땅, 개울, 솔바람 등 낮잠 한 숨 청하기엔 더없이 편안한 날이요 풍경이었다. 서오릉을 산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두 시간 정도. 그 두 시간 동안 낮잠을 자고있는 사람들을 본 것만 서너 번으로 기억된다. 부부가 나란히 누워 있거나 남편이나 아내는 잠들어 있고, 깨어있는 아내나 남편이 부채로 날벌레 접근을 막아주면서 편안한 잠자리를 지켜주는 모습들이었다.

서오릉은 1457년 세조 3년 세조의 장자인 의경세자(덕종)의 묘를 처음 만든 이후, 훗날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면서 경릉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덕종비 소혜왕후가 사후에 같이 안장되었다. 그 뒤로 즉위 2년만인 나이 스무 살에 승하한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창릉, 19대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익릉,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 21대 영조의 원비인 정성왕후의 홍릉이 차례로 조영되었다. 대부분의 왕릉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처럼 서오릉 역시 왕이나 왕비 이외 인물도 제각각 자신의 신문에 맞는 명칭의 묘에 묻혀있다. 조선왕실의 무덤은 묻힌 사람의 신분에 따라 명칭도 달라진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왕의 생모, 왕세자, 왕세자비의 무덤은 원, 대군, 공주 등의 무덤은 묘로 구분된다. 서오릉에는 위에서 열거한 5기의 능 외에 조선왕조 최초의 '원(園)으로 기록된 명종의 장자 순회세자의 묘 '순창원', 21대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의 묘 '수경원', 19대 숙종의 빈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로 툭하면 역사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하는 희빈 장씨(장희빈)의 묘(墓) 대빈묘가 있다. 희빈 장씨의 아들이 왕(경종)이 되었지만 자신은 폐비가 된 까닭에 무덤이 '원'이 아닌 '묘'로 칭해졌다. 묘의 규모 또한 조선 시대 사대부의 묘만도 못한 규모여서 이곳에 궁녀로 입궐,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아들 또한 왕이 된 사람의 묘인지, 권력의 무상함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서오릉 북쪽 출입문으로 들어서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묘는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이씨의 묘인 '수경원'이다. 터는 널찍하지만 왕릉터에 있다는 것 말고는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 묘였다. 조금 더 들어가면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익릉'이 예쁜 모습으로 서 있다. 인경왕후는 16세에 왕비가 되어 공주 둘을 낳았지만 모두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진다. 그녀 역시 슬픈 나날을 보내다 본인 또한 천연두에 걸려 스무살의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일찍 세상을 뜬 것도 원통할 일인데, 남편인 숙종과 나란히 묻히지 못한 것 또한 애달파 보인다.

서오릉에서의 두번째 '목격'은 익릉 정자각 앞에서 이루어졌다. 정자각 남쪽으로는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소나무숲이 있는데, 그 소나무숲 그늘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두 가족이 역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쉬고 있었다. 여자들은 한쪽 그늘에서 담소 중이었고 한 남자와 그의 아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색이 오를대로 오른 푸른 잔디와 붉은색 피부의 적송, 그리고 편안한 차림의 나들이 가족의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풍경화였다. 돗자리 위에는 도시락과 물, 간식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소박한 그늘 나들이로 보이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그림 만큼은 명작 그 자체였다. 익릉 입구에도 멋진 소나무숲이 있는데, 이곳 역시 많은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나와 쉬고 있었다. 익릉에서 순창원으로 가는 길가에는 넓은 숲이 있는데, 이곳에 가장 많은 돗자리족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서오릉 입구와 가깝고 공간이 넓은데다 급수대 설치되어 있어서 왕릉 그늘 나들이 장소로는 최적으로 보였다. 그늘 곳곳에 돗자리족들이 쉬고 있었지만 서오릉 전체는 비교적 고요함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다들 소담 수준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고 묘역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잔잔한 편이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역사에 대한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부채와 돗자리, 가벼운 책 한권으로 즐기는 여름 오후순창원은 명종의 장자로 7세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요절한 순회세자와 세자빈을 모신 곳이다. 일찍 세상을 뜬 세자의 운명도 안됐지만 세자빈 윤씨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세자빈 윤씨는 원래 순회세자와 인연이 없을 뻔 했던 사람이다. 순회세자는 윤씨를 빈으로 맞기 전에 윤원형의 인척인 황대임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 책빈례(빈을 책봉하는 왕궁 의식)까지 마쳤으나 세자빈에게 숨어있는 병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녀를 양제(세자의 후궁)로 강등시키고 다시 윤옥의 딸 공회빈 윤씨와 가례를 올린다. 그러나 공회빈 윤씨의 영광도 잠시, 순회세자가 13세의 어린 나이로 숨지자 윤씨는 30여 년을 홀로 살다 세상을 떴다. 그녀는 죽음도 고요하지 못했다. 윤씨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창경궁 통명전에서 숨을 거두었다. 왕실은 창경궁에 빈소를 설치하고 시신을 안치, 장례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전쟁이 터진 것이다. 선조와 신하들은 세자빈의 장례를 수습하기는커녕 부랴부랴 의주로 달아나기에 바빴다. 1593년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윤씨의 시신을 수습하려 했을 때는 이미 그녀의 주검도 사라지고 만 뒤였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사평 이충이 윤씨의 시신을 함춘원(창경궁 내 시설)에 묻었다고 해서 시신을 찾으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선조는 윤씨의 신주만 봉안, 순창원에 합장했으나 그 신주마저 병자호란 때 분실, 윤씨는 자신의 주검마저 잃어버린 채 빈 관으로만 묻히게 되는 비운이 여인으로 남고 말았다.

경릉은 추존왕 덕종과 그의 비 소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덕종은 세조의 아들로 세자(의경세자)가 되었으나 월산대군과 자산군(성종)을 낳고 그만 세상을 떠버렸다. 그러나 동생인 해양대군이 왕위(예종)에 올랐고, 그마저 스무살의 나이에 죽어버리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산군이 9대 임금 성종으로 즉위했고, 성종이 훗날 자기 아버지인 의경세자를 추존왕으로 모시게 되었다. 경릉 옆에는 대빈묘가 있다. 궁녀로 입궁해서 숙종의 눈에 들어 왕비까지 올랐던 그녀는 인현왕후를 무고하고 저주한 죄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 폐비 장씨는 죽음과 동시에 궁궐에서 쫓겨나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서 장사지냈는데 훗날 그녀의 아들이 왕(경종)이 되어 자신의 어머니를 '옥산부대빈'으로 추존했다. 장희빈의 묘는 1969년에 서오릉으로 이장되었다.

대빈묘에서 홍릉(영조왕비 정성왕후릉)과 창릉으로 넘어가는 언덕길은 흙을 밟는 발바닥의 촉감과 숲의 향기가 고소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날벌레가 많은 편이다. 왕릉에 갈 때 부채를 꼭 지참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날벌레들이다. 서오릉에서 세번째 목격한 '괜찮은 풍경'은 바로 창릉 아래에서였다. 그것은 그늘에 앉아 독서하는 모습이었다. 본인의 요구에 의해 사진 촬영은 하지 못했으나 그녀들의 말에 의하면 '고궁이나 왕릉 벤치에 앉아 책 한 권 읽어내는 일요일의 행복'은 그 어떤 시간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사실 평일 고궁에 나가보면 궁궐 툇마루에 앉아 독서삼매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때로 그들은 툇마루에 비스듬이 누워 잠들기도 하는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왕릉이나 궁궐에서의 독서를 한번쯤 경험해 볼만 하다.

왕릉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 명릉

서오릉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왕릉을 걷다 보면 능 바로 앞까지 올라갈 수 없다는 점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서오릉의 명릉에서 그 갈증을 풀어버릴 수 있다. 명릉은 서오릉 주차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먼저 돌았다면 출입문을 나와 반대 방향 출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입장권을 버리거나 분실하면 곤란해질 수 있다. 명릉은 숙종과 그의 첫번째 계비인 인현왕후, 두번째 계비인 인원왕후를 모셔놓은 능이다. 숙종와 인현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나란히 조영되어 있고, 인원왕후의 능은 바로 옆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인원왕후는 인현왕후가 승하한 뒤에 계비가 되었는데, 살아 생전 숙종을 매우 사랑했고 죽어서도 부군의 근처에 묻히기를 소원, 숙종의 능지 근처에 자신의 능지를 손수 지정해두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인원왕후가 죽자 당시 왕이었던 영조는 인원왕후가 점지한 곳에 능을 만들려면 멀쩡한 소나무숲을 벌채하고 인력과 국고 낭비도 심할 것을 우려, 비교적 비용이 덜 들어가는 지금의 자리에 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원왕후의 능은 숙종의 능보다 조금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데, 살아생전 사랑했던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분을 외면한 채 살짝 흘겨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쨌든 인원왕후는 자신이 꼽았던 능지보다 더 가깝고 편안한 곳에서 숙종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서오릉을 다 걷고 나면 이곳이 여인천하라는 결론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복이 많았던 숙종과 그를 사랑했던 세 여인, 그리고 장희빈까지 숙종을 둘러싼 주요 여인 네 사람이 이곳에 묻혀있고, 그 누구도 경험할 수도 없고, 경험해서도 안될 비운의 삶과 죽음을 겪은 공회빈 윤씨의 이야기를 생각을 그쪽으로 이끄는 것 같다.

이 여름이 가기 전 서오릉이 되었든 어디가 되었든 집과 가까운 왕릉에 돋자리와 부채, 도시락과 물을 싸가지고 가 역사의 향기와 조선 왕조의 복잡하지만 재미있는 가계도를 들여다 보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늘어진 낮잠 한번 자 볼 것을 살며시 권한다.

서오릉 이용 안내

관람시간

06:00~18:00(매표는 오후 5시30분 마감) 관람 요금어른 1000원 시간제 관람권(오전 6~9시, 낮 12~1시) 3만원/1년 점심시간 관람권(낮 12~1시) 3000원/3개월 상시관람권(자유관람) 1만원/1개월 관람규칙음주가무 금지 / 인화물질, 취사도구, 애완동물, 체육 또는 놀이기구, 확성기 반입 금지, 몰래 반입 시 관람 중지 또는 입장 제한 조치.

교통편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92 버스 일반 702A, 좌석 9701 지하철 3호선 녹번역 4번 출구에서 7021, 9701 환승 지하철 6호선 구산역 1번 출구 9701 서울 수도권 주요 조선왕릉동구릉태조 건원릉 / 문종 현릉 / 선조 목릉 / 인조왕비(장렬왕후) 휘릉 / 현종 숭릉 / 경종왕비(단의왕후) 혜릉 / 영조 원릉 / 추존 문조 수릉 / 헌종 경릉 / 명빈묘.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홍유릉고종황제 흥릉 / 순종황제 유릉.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사릉단종왕비(정순왕후) 사릉 / 광해군 묘 / 안빈묘 / 성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산65 광릉세조 광릉.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47 태강릉중종왕비(문정왕후) 태릉 / 명종 강릉.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산223-19 정릉태조왕비(신덕왕후). 서울시 성북구 정능동 산87-16 의릉경종 의릉 / 영휘원 / 숭인원.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산1-5 선정릉성종 선릉 / 중종 정릉.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131 현인릉태종 헌릉 / 순조 인릉.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 42 온릉중종 왕비(단경왕후) 온릉.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서삼릉중종 왕비(장경왕후) 희릉 / 인종 효릉 / 철종 예릉 / 소경원 / 의령원 / 효창원 / 희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200-5 삼릉예종 왕비(장순왕후) 공릉 / 성종 왕비(공혜왕후) 순릉 / 추존 진종 영릉.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장릉추존 원종 장릉. 경기도 김포시 깁포읍 풍무리 윤건릉사도세자(추존 장조) 융릉 / 정조 건릉.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산1-1 [글•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자료사진 문화재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41호(12.08.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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