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벼랑에 서다]녹두거리, 추억의 상점은 간데없고 프랜차이즈로 뒤덮여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2012. 7. 24. 21: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96년과 2012년 거리 모습 비교해 보니

녹두거리 풍경은 불과 십수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취재팀이 서울 대학동 녹두거리 상점 지도를 작성해 1990년대 지도와 비교해본 결과 골목을 지키던 개별 상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프랜차이즈 형태의 가게가 집중적으로 들어서 있었다.

녹두거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대생들이 즐겨 찾던 문화·휴식 공간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골목 상인들과 서울대 총학생회는 문화공간 유지를 위해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학생과 지역 상인들의 유대가 느슨해졌다. 이때부터 '문화공간 가꾸기' 등의 구호보다 깨끗한 거리와 상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프랜차이즈가 속속 진출했다는 게 이 지역 상인들의 전언이다.

16년 전을 보자. 서울대 교내 계간지 '관악' 1996년 가을호에 실린 녹두거리 상권은 식당, 주점 등 이른바 생계형 자영업자들로 꽉 차 있었다. 대로변엔 '백두에서 한라까지' 같은 제법 규모가 큰 주점부터 이름이 표기되지 않은 동네 음반가게를 비롯해 개량한복점인 '두껍아두껍아' '동네분식' 같은 지역 고유의 상점들까지 포진해 있었다. 프랜차이즈도 드물게 보이지만 당시 인기를 끌던 '멕시칸치킨'을 포함해 소형 업체 2~3개가 전부였다. 메인 거리에도 '태백산맥' '이화주막' '딸랑 분식' 등 주점과 식당이 대부분이었다.

인포그래픽 | 박지선 기자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T자 거리 250m 안에만 체인점 30여개 줄줄이자금력 승부 대기업 탓에 대로변 월세는 천정부지생계형 자영업 자리 잃어

하지만 최근 둘러본 녹두거리에 18년 전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우선 대로변부터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점령했다. 현 롯데리아를 기점으로 대로와 골목이 이루는 T자형이 녹두거리의 핵심부다. 중심부에 자리잡은 '롯데리아'는 7~8년 전부터 '녹두리아'라 불리며 이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엔 '미스터피자'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점포가 포진했다. 다른 쪽엔 '카페베네'를 비롯해 편의점인 'GS25' 등이 있고,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피자팩토리' '장군왕족발' '보드람치킨'도 있다.

대로변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장악했다면, 롯데리아 안쪽 골목, 이른바 '메인 스트리트'엔 다소 규모가 작은 '술 파는' 프랜차이즈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육쌈냉면' '치킨마루' '누들박스' '훌랄라바베큐' '물고기자리' '오니기리' '오징어마을' '김가네' '둘둘치킨' '종로빈대떡' '서래' '누들박스' '봉추찜닭' '벌집삼겹살' '투다리' 등이다. 물론 가맹점 수와 운영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단일 가게가 아닌 체인점 형태로 운영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T자를 이루는 2개의 거리 250m 안에만 30여개의 프랜차이즈가 들어선 셈이다.

2000년부터 녹두거리 대로변에서 복사·인쇄점 '신림문화사'를 운영해온 곽한근씨(49)는 "최근 녹두거리의 상점 종류와 학생들 분위기가 급격히 변했다"며 "2~3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프랜차이즈를 좋아하는 젊은층의 기호가 이곳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이 자금력 승부를 벌이면서 대로변 점포의 월세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프랜차이즈에 밀려 개별 상인들이 목 좋은 곳에 진출할 기회도 줄었다. 인근 상가 주인들은 "수년 전부터 급등한 전·월셋값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최근에는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 프랜차이즈가 진출하면서 지역 점포세가 기존 상인들에겐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2년 전만 해도 300만원대였던 한 삼겹살집 월세는 커피전문점이 입점하면서 500만원대로 뛴 것으로 알려졌다. 녹두거리 뒤편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상인(47)은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 이제 녹두거리는 진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귀족 거리' "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산업부), 이재덕(경제부), 이혜인(사회부) 기자

< 특별취재팀 홍재원·김보미·이재덕·이혜인 기자 >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