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미의 살람, 중동〈1〉 파키스탄 훈자

2012. 7. 5.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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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로 하얗게 뒤덮인 7788m 라카포시산 장엄
베이스캠프를 바로 눈앞에 두고 길이 끊겨
더 이상 갈 수 없어 눈을 파고 텐트를 쳤다

[세계일보]

6월까지 10회에 걸쳐 연재한 '이미자 시인의 동유럽 언플러그드'에 이어 6일부터 새롭게 '강주미의 살람, 중동'을 선보인다. 강씨가 2007년부터 이듬해까지 중동지역 국가들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연재한다. 여행은 파키스탄에서 시작해 이란·오만·예멘·요르단·레바논·시리아·터키 등 순서로 이뤄진다. 아프리카의 모로코·모리타니·세네갈 등도 다뤄볼 작정이다. 강씨는 "세계일보 독자들에게 나와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겠다"고 연재 포부를 밝혔다. '살람'은 이슬람의 인사말로 평화 혹은 신의 가호를 빈다는 뜻이 담겨있다.

라카포시산 등정을 위한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풍경. 라카포시산의 만년설이 장엄하다.

파키스탄 훈자는 파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중국과의 접경지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로 유명해진 훈자는 일본인에게는 꼭 가보고 싶은 '꿈의 여행지'로 꼽힌다.

중국에서 출발하면 국경마을 소스트를 통해 갈 수 있고,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출발하면 대우건설이 닦아 놓은 고속도로를 타고 갈 수 있다. 이란에서 출발한다면 국경마을 퀘타를 통해 들어가면 되는데 여러 날 걸린다. 나는 인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슬라마바드에서 버스를 타고 3일에 걸쳐 훈자지역 카리마바드에 도착했다.

깊은 밤은 아니었는데도 해발 평균 2438m인 훈자지역은 벌써 깜깜해지고 전기 불빛이 드물게 보였다. 대신 세상을 밝혀주고 있는 건 가까이 내려앉은 밤하늘의 별빛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별빛은 바람에 실려 내려와 세상에 뿌려지고 있었다. 살구꽃잎이 훈자의 바람에 날려 빛을 발하고 있었다.

훈자지역 여행 도중 만난 어린이들. 해맑은 미소가 사랑스럽다.

훈자지역은 버스 정류장과 제법 큰 시장이 있는 알리아바드, 여행자들이 주로 머무는 카리마바드, 라카포시산(7788m) 자락에 있는 미나핀 등 거대한 산들로 둘러싸인 계곡이다. 그중에서 카리마바드에 여행자가 많이 머무는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면 알 수 있다. 만년설이 쌓인 훈자의 산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건 직접 산에 올라가지 않고 볼 수 있는 최고의 전경이다.

나는 4월에 맞춰 도착한 덕분에 살구꽃이 흩날리는 장관을 볼 수 있었고, 살구 주스부터 살구 푸딩까지 살구를 실컷 느낄 수 있었다. 4∼5월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로 기온이 섭씨 20도가 넘는 날씨가 계속된다. 트레킹을 위해서라면 5월을 넘겨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 때문에 길이 열리지 않아 산을 오르기 힘들다. 산이 아니더라도 파키스탄 북부지역은 눈으로 유실되는 길이 많아 고생하기 일쑤다.

파키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의 식사 모습. 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는 건 우리와 비슷하지만, 밥상을 사용하지 않는 점은 차이가 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잔디밭에 앉아 산을 바라보고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가 양떼를 따라 어디인지도 모르는 동네에 다다랐다. 양치기 소녀 이름은 '샤히다'란다. 17살 소녀는 남편·시아버지와 함께 외딴 곳에 살고 있다. 그녀가 끓여주는 소금차를 마시고, 함께 저녁을 만든다. 쇼트닝을 잔뜩 넣어 양파를 튀기고, 고춧가루와 독특한 향신료를 넣고 양고기를 넣어 다시 한참을 요리한다. 그 뒤 물을 넣고 끓인 다음 차파티와 함께 먹는다. 차파티는 화덕에서 구운 넓적한 빵으로 인도·파키스탄 등에서 많이 먹는다.

질긴 고기는 그래도 맛있게 먹었지만, 바로 짠 염소나 양 젖은 도저히 먹지 못했다. 물이 귀한 이곳에서는 빙하가 녹아내린 물을 길어 먹는다. 그래서 물 색깔이 뿌옇다. 샤히다네 집 천장에는 구멍이 있어 그곳으로 빛도 들어오고 살구꽃잎도 떨어진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샤히다네 집으로선 뚫린 천장이 등 역할을 하는 셈이다. 샤히다는 우르두어(파키스탄어)로만 말했지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때로는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것이 같은 언어로 얘기하는 것보다 오해가 덜 생긴다.

카리마바드에서 한 시간을 가면 미나핀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라카포시산을 오르기 위한 출발점이다. 새벽부터 오른 라카포시산은 쓸데없는 생각을 없애줬다. 힘들수록 무념무상의 상태로 빠져든다. 그냥 말없이 걷기만 한다. 힘겹게 오르는 산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는다. 만년설에 뒤덮인 라카포시산은 거대한 빙하 덩어리와 함께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장엄하다'고 했다.

베이스캠프를 바로 눈앞에 두고 길이 끊겨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자연이 여기까지만 허락한다면 따라야 한다. 눈을 파고 텐트를 쳐서 그런지 새벽에 추워 깰 수밖에 없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이 가까이 내려앉아 있다. 잠깐 자고 또다시 추워 일어났을 때에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나는 바위에 올라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 거대한 자연은 내 작은 화첩에도, 내 작은 마음에도 다 담을 수 없었다.

다시 카리마바드로 돌아온 나를 숙소 주인인 코쇼 아저씨가 반겨줬다. 코쇼는 요리를 잘하고 정이 많다. 한번은 여권까지 넣어둔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코쇼가 여권사진을 보고 내 것인 줄 알고는 잘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준 적도 있다.

또 그렇게 쉬면서 산들을 바라보고 며칠을 지낸다. 심심하면 이글네스트와 울타르에 가볼 수도 있다. 보석을 캐기 위해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울타르 가는 방향으로 가면 돌산이 있다. 돌에서 보석이 나온다는 산이다. 나는 두 시간 넘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박힌 돌들을 애써 캤는데, 보석이 아니라고 해서 힘들게 가져온 돌을 죄다 버렸다.

페리메도에서 바라본 낭가파르바트산의 모습. 초원에서 염소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훈자지역에서 또 오를 수 있는 산으로는 낭가파르바트(8125m)가 있다. 이곳을 가기 위해선 일단 카리마바드에서 길기트로 가야 한다. 길기트까지 두 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가서 라이콧브리지까지 두 시간을 더 가야 한다. 나는 히치하이크를 해서 타토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한다. 3∼4시간 걸어가면 페리메도가 나온다. 이곳에선 낭가파르바트가 한눈에 보인다. 다른 설산과 다르게 낭가파르바트는 푸르른 나무들 위로 설산이 펼쳐져 있다. 잔디 위에선 여러 동물이 풀을 뜯으며 노닐고 있었다.

영화 '인디아나존스'를 찍은 곳으로 유명해져 일명 '인디아나존스 다리'로 불리는 서스펜스 브리지가 파수에 있다. 카리마바드에서는 차를 타고 두 시간쯤 가야 하는 곳이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버스가 아니라 구름을 타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절벽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버스가 빨리 달려 그렇게 느꼈나 보다. 하늘은 파랗다 못해 내 앞에 있는 듯하고, 구름은 하얗다 못해 조갯가루를 삼킨 듯하다. 산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우뚝 솟아 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후사니 마을이다. 마을을 지나쳐 한참 걸어가면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세차게 흐르는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나온다. 말이 다리지 실은 얼기설기 나무를 엮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빙하물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추락하면 한순간에 휩쓸려 갈 것만 같다. 파수의 다리를 건너 길가로 나오면 보리호수가 있다. 거대한 호수에 설산들이 비치고, 몇가닥 남지 않은 풀은 염소와 양들이 뜯고 있다. 파수에서 보이는 설산은 그 유명한 K2(8611m)다.

다시 카리마바드로 돌아가는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KKH)에서 도로 일부가 유실됐단다. 산에서 바위가 떨어지고 빙하물이 계곡을 이루며 길을 뚝 잘라버렸다. 차는 당연히 못 지나가고 사람도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다들 차에 삽과 곡괭이 등 장비를 싣고 다닌다. 돌 징검다리를 만들고 나서야 겨우 사람만 지나갈 수 있었다.

훈자는 아름다운 산과 정이 있는 착한 사람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다. 살구꽃 향기가 훈자 바람에 실려 훈자 계곡을 감싸안고, 설산의 차가움까지 녹여주는 그런 곳이다. 나는 추억을 가방에 챙겨 넣고 파키스탄의 유일한 비이슬람 지역이자 다음 목적지인 칼라시 벨리로 향한다.

여행작가 강주미

◆강주미씨는 1979년생으로 성신여대 동양화과 재학 중 획일화된 대학교육에 실망해 중퇴하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저서로 에세이 '중동을 여행하다'(아메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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