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데스크] 하우스푸어에게 퇴로 열어줘라

2012. 7. 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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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5년 전 큰일을 저질렀다. 서울 강남에 10억원 가까운 거액을 들여 아파트를 샀다.

보유자금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은행 도움으로 해결했다. 아파트를 담보로 3억원을 대출받았다. 매월 130만여 원의 이자를 내왔지만 아파트 가격이 올라준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매월 이자를 내느라 허리띠를 졸라매기는 했지만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한때 아파트 가격이 매입가보다 올라 역시 '지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매입가 밑으로 떨어져 애가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은행으로부터 9월부터는 원금도 상환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그는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매달 200만여 원을 원리금 상환으로 지불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의 생활은 더욱 팍팍해지게 됐다. 아파트를 처분해 대출금을 갚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구입가격보다 밑돌아 팔 수도 없었다.

은행에서 퇴직하고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던 A씨는 최근 가게 문을 닫았다. 영업이 잘 안 돼 3년 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전 직장 퇴직금까지 날리게 된 A씨는 최근 카드사에서 독촉장을 받는 신세가 됐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하우스푸어(집 있는 가난한 사람)와 실패한 자영업자 이야기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피해 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우스푸어는 1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기 침체로 도산하는 자영업자도 급증세다. 이런 사람이 늘어나면서 금융권의 가계부채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11조원이 넘는 가계대출 연체율은 0.97%로 1년 전 0.72%보다 0.25%포인트 늘었다. 연체율 수준 자체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하지만 증가 속도가 문제다.

위기를 인식한 은행들은 연체율 관리에 비상이다. 대출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하지만 이제 와서 대출을 무턱대고 조였다간 화를 자초할 수 있다. 갑자기 옥죄다 보면 2003년 카드 사태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이 연체자 관리를 위해 자금줄을 차단하자 돌려막기를 하던 많은 다중채무자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연체율이 급속도로 치솟으며 급기야 뇌관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더 늘어나지 않게 관리하되 채무자들이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개인 사정에 따라 만기를 연장해 주거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등 연착륙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와 금융권이 공동으로 퇴출 프로그램 같은 것을 만드는 것도 검토해 볼 일이다. 빚 구조를 재조정하거나 공적 보증 등을 통해 길게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런 미시적인 접근만으로 가계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게다. 장기적으론 거시적인 접근이 동반돼야 한다.

경제를 회복시켜 소득이 늘도록 하고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책이 필수적이다. 한시적이겠지만 부동산 취득세나 거래세를 줄여주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통화정책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주택대출자에게 금리를 낮춰주면 좋겠지만 부동산만 보고 금리를 정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미국 금융당국의 정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당시 집값 하락으로 인해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자금을 헬리콥터로 뿌리듯 풀었다.

우리 경제는 아직까지는 미국 금융위기 때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집값이 더 추락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소득이 더 줄고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날 경우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인 가계부채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버블을 해소하기 위해 갑자기 옥죄면 거품이 빠지기 전에 풍선이 터지기 마련이다. 다중채무자 담보대출자 자영업자 등 주요 채무자들이 스스로 걸어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할 이유다.

[위정환 금융부장 sunnywi@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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