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도 못 사는 아빠" 하우스 푸어의 자화상

금원섭 기자 2012. 6. 29.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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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막아라] [3] 주택담보대출에 짓눌린 하우스 푸어 집값 하락에 부채부담 증가.. 백화점 1인 구매액 18% 감소, 과외·학원 등 교육비도 줄여 소비 위축이 성장 발목 잡아.. 경기 침체 장기화 우려 커져

금융회사 팀장 A(41)씨는 "주택담보대출 빚을 갚느라 돈에 쪼들려 씀씀이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아파트를 사면서 은행에서 2억6000만원을 대출 받았다. 이자만 매달 100만원씩 낸다. 그래도 자녀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생각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어 가며 한 달에 200만원을 지출해 왔는데, 작년 말부터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마이너스 대출이 3000만원을 넘어서 현재 소득으로는 더이상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빚을 줄이려고 집을 매물로 내놨지만 4억원에 샀던 아파트를 3억6000만원에 내놔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올해 초부터 살림살이를 비상 체제로 전환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 수학을 직접 가르치기 시작했다. 매달 10만원씩 내고 배우게 했던 축구·바이올린 과외도 끊었다. 옷은 변두리 할인점에서 80% 세일 상품만 샀다. 먹을거리를 사러 대형마트에 가는 횟수도 줄였다. 충동구매를 피하기 위해 미리 적어 간 목록에 없는 물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외식은 가족들 생일 때만 한다. A씨는 "하루 두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두 아들에게 원어민 영어 과외만은 계속 시키고 싶어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A씨 같은 '하우스 푸어(house poor)'계층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값은 떨어지고 대출금 상환 부담은 더 커지는데,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집을 팔아 빚 부담을 덜 수도 없는 사면초가 상황에 직면해 있다. 결국 이들의 선택지는 지갑을 닫는 길뿐이다. 하우스 푸어발(發) 소비 위축 현상은 이미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비 침체 심화, 백화점 1인당 구매액 18% 감소

대기업 홍보부장 B(45)씨에게 백화점은 '세일할 때만 가는 곳'이다. 대외 활동이 많아 잘 차려입고 다녀야 하지만 정가를 다 내고 옷을 살 만한 형편이 못된다. 매달 200만원을 주택담보대출금 상환에 쓰고 아들·딸 학원비를 내면 생활비가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쓰고 있다. 대출잔액이 계속 늘어 원래 1등급이던 신용등급이 작년부터 6~7등급으로 내려가 더이상 빚을 질 수도 없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백화점·대형마트 등 유통업체가 극심한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3사의 5월 중 고객 1인당 구매액은 7만3585원에 그쳐 1월에 비해 18% 감소했다. 궁지에 몰린 백화점들은 5월 말부터 일찌감치 '여름 세일'에 들어갔다. 세일 행사 덕에 5월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1% 증가하긴 했지만 "할인을 많이 한 탓에 이익은 20% 가까이 줄었다"는 게 백화점 관계자들의 고백이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도 5월 중 스포츠용품을 제외한 모든 품목의 매출이 줄었다. 특히 식품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6.5% 줄어들며 1년 4개월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5월 중 1인당 구매액도 올 1월(5만733원)에 비해 15% 줄었다.

◇어지간해선 손 안 대는 자녀 교육비까지 감축

중앙부처 공무원 C(46)씨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 한 달에 205만원씩 갚는다. 월급의 40%를 은행에 갖다 주는 셈이다. 살림이 늘 적자라 최근 장기주택마련저축·펀드를 해약해 700만원을 생활비에 보탰다. 작년 말 동생에게 빌린 1000만원은 갚을 생각도 못하고 있다. 결국 올 들어 두 자녀에게 두 과목씩 보내던 학원을 한 과목으로 줄였다. 주택대출금을 매달 150만원씩 갚는 중소기업 팀장 D(43)씨도 최근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의 학원을 모두 끊고 학습지와 EBS(교육방송)로 때우고 있다.

과도한 빚 탓에 돈 가뭄에 몰린 가계들이 소비 축소의 마지막 보루로 통하는 자녀 교육비까지 줄이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가계는 학원비로 한 달 평균 17만8000원을 지출했는데,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전년보다 2.3% 지출을 줄인 셈이다. 가계의 학원비 지출은 올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6% 줄었다.

하우스 푸어발 소비 위축은 유럽발 금융위기 및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주택대출 빚 부담이 소비의 발목을 잡고, 쪼그라든 소비가 성장의 덜미를 잡는 악순환 고리를 깨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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