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기보다 지키는 시기..일단 빚부터 갚아라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부터 본격화한 유럽발 재정위기까지,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금방이라도 한국 경제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로 밀려오고 있다.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부동산과 주식 등 주요 자산가치가 하락하는 데다 성장률 전망치마저 낮아지면서 개인도 심한 위기감을 느낀다. 당장 다니는 회사의 매출이 줄고 수익이 크게 감소하면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직장인도 많다. 6월 12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기본 전망치 3.5%보다 약 0.25%포인트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외에 드리운 암울한 경제 전망을 뚫고 살아가야 하는 개인 처지에서도 유럽발 금융위기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어느새 우리 문제, 내 문제로 바싹 다가온 것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준말이라고도 한다. 금융위기시대에 위험을 기회로 바꾸려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 빚부터 갚아라
미국도 유럽도 모두 빚이 문제였다. 빚이 많은 나라는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고, 그 때문에 신용도가 하락해 높은 이자를 물고 빚을 얻어야 하는 '부채의 덫'에 걸리고 만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빚을 줄이려면 돈을 더 벌거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저성장시대에 돈을 더 벌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집과 차를 줄이고 사교육비를 아끼는 등 씀씀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런데도 부동산 대세 상승기에 막대한 부채를 안고 부동산을 구매한 사람 대부분이 '자산가치 상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양철승 부동산가치투자연구소장은 '하우스 푸어'를 '겨울이 왔는데도 반팔 옷을 입은 사람'에 비유했다. 그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에 반팔 옷을 입으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면서 "외부환경 변화에 하루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은 수성(守成)이 중요한 시대"라며 "자금과 심리, 리스크 등 3가지 요소를 잘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상무는 "이제는 빚잔치만 남았다. 지난 10년간 빚내서 집 사고 차 바꾸고 흥청망청해왔다. 이제는 빚을 갚은 뒤 소득에 맞춰 아껴 쓰고 저축하는 일만 남았다"며 "빚을 안고 사는 사람이 소득을 늘릴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만큼, 씀씀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저성장시대에 접어든 만큼 그에 맞춰 투자 패러다임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황 여파로 부동산 부문에서도 매매차익보다 매달 수입을 내는 수익형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
# 기대 수익률을 낮춰라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곧 극복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전까지 약 8년간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사서 들고만 있으면 가격이 오르는 자산 상승기를 경험했다. 짧은 기간에 자산가격 폭등을 경험한 사람은 여전히 '고수익'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안고 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시대가 바뀌었다. 자산가치가 단숨에 오르는 고성장, 고수익 시대는 다시 오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은 물론 우리 경제까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고,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환경이 지속될 개연성이 낮기 때문에 자산가치의 큰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오히려 버블에 따른 대가를 치를 위험성이 높다. 문제는 그 대가를 빨리 치를 것인지, 아니면 서서히 치를 것인지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주가가 횡보하면서 저점과 고점을 오가는 오르락내리락 장세가 이어질 공산이 커 투자 타이밍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왔다"고 덧붙였다.
이상건 상무도 "저성장시대에는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은행 정기예금보다 수익을 좀 더 얻는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는 등 우리 사회가 이미 초고령사회에 근접했다는 점도 개개인이 투자를 결정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즉 50대 중반에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도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50년 가까이 생존한다는 점을 감안해 투자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변화는 부동산투자의 패턴 변화로 이어진다.
양철승 소장은 "부동산투자자 사이에서 고기소를 키우기보다 젖소를 키우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매매차익(고기소)을 얻으려는 투자는 장기투자여야 하는데, 최근 들어 매매차익보다 오피스텔 등 매달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수익형(젖소)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0대부터 50대 초반까지는 매매차익 투자를 선호하고, 50대 이후부터 60, 70대까지는 수익형 부동산투자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같은 투자 패턴이 바뀌어 30, 40대 같은 저연령층에서도 수익형 부동산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양 소장은 "과거 부동산투자의 패턴은 대체로 매매차익을 노리는 시간투자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치투자시대로 바뀌었다"면서 "부동산이라는 하드웨어 자체에 대한 투자만으로는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리모델링과 증축 등을 통해 부동산가치를 상승시키려는 노력이 필수인 시대"라고 말했다.
# 해외로 눈 돌려라
한국 경제가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국내투자 기회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내투자보자 해외투자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상건 상무는 "투자 지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해외 주식형펀드 가운데 여러 국가에 분산투자하거나, 콘셉트가 분명한 펀드에 길게 보고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하며 "특히 소비재 관련주에 투자하는 해외 채권형펀드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제안했다.
전민규 이코노미스트도 "세계 경제흐름을 주도할 나라로 중국이 부상했다"며 "미국이 소비하면 세계경제가 좋아지는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중국 소비 패턴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에는 중화학과 기계 분야가 유망했지만, 앞으로는 소비재 산업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두가 위기를 얘기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을 위로 삼아 위험한 상황에서도 기회를 포착하려는 지혜를 발휘해 '생존'을 도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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