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골초 남편, 과태료 한 방에 담배 끊다

2012. 6. 11. 14:4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남편이 담배를 끊었어요. 이건 우리 가정의 기적입니다."

지난 달 초 이 모(38·영등포구)씨는 직장인 남편의 금연 선언에 잠시 몽롱해졌다. '꿈인가 생시인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 25년간 담배에 찌들었던 남편(43·직장인)이 담배를 끊겠다고 했을 때 갑자기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 듯 머리가 '띵!'했다고 한다.

직장에서 승진 보너스 점수 부여와 50만 원 포상금까지 걸었어도 끊지 못했던 담배, 그가 한방에 간 사연은 다름 아닌 과태료 10만 원에 열받은 것.

신설동역, 서울풍물시장 버스정류소에서 흡연단속반원들이 금연 홍보를 하고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꺼내 입에 물고 한입 들이키는 순간 단속반원에 걸려 승강이 끝에 과태료를 내게 된 이후부터다. 하지만 아내 이 씨는 과태료 10만 원으로 그 100배는 보상받은 것 같다고 콧노래 부르며 신바람났다.

"아이들이 남편을 꽁초라 불렀어요. 항상 재털이에 꽁초가 수북했거든요. 금연 후 제일 좋아하는 건 아이들이에요. 그 다음은 저고요. 이제 '꽁초' 대신 부를 남편의 별명을 찾고 있습니다."라며 활짝 웃어보인 이 씨는, 그간 남편의 흡연으로 간접 피해를 당한 비흡연자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고 했다.

금연구역지킴이들이 신도림역 버스정류소에서 흡연단속 및 계도를 하고 있다

25년간의 흡연 인생을 10만 원 과태료 부과 하나로 금연케 한 장본인. 그들이 지금 파란 조끼를 입고 서울 도심 곳곳에 나타났다. 다름 아닌 '금연구역 지킴이'들이다. 서울시는 이달 초 단속반원을 대거 투입해 금연구역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대표적 보행자 밀집지역인 강남대로 금연거리에서 흡연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시행 첫날인 1일 하루에만 30여 건이 적발됐다. 강남대로의 경우 과태료부과 금연구역은 지하철 강남역 9번 출구에서 신논현역 6번 출구까지 934m와 양재역 12번 출구에서 엘타워까지 315m 구간.

금연버스정류소에 부착된 마크, '금연장소에서의 금연은 이제 문화입니다'란 문구가 보인다.

'지난 6월 4일~8일까지는 중앙차로 버스정류장, 서울광장 등 총 13개소에서 야간 흡연 합동단속도 펼쳤다. 서울시 복지건강실 건강증진과 신차수 주무관은 "지난 봄 금연구역에 대한 단속 결과 단속이 실제 흡연을 저하시키는 데 효과가 있어 이번에 1주간 집중 야간단속을 실시하게 됐다."며 "야간단속은 해가 길어지면 흡연자 수가 증가할 수 있는 광장을 비롯해 유동인구가 많은 9개 중앙차로 버스정류소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야간 흡연 합동단속이 펼쳐진 둘째날인 5일 지하철 신설동역과 서울풍물시장 버스정류소는 퇴근 시간대인데도 다소 한산한 편이었다. 주위 길바닥에는 버려진 꽁초가 눈에 띄었지만 단속반원이 투입되기 전 흡연해서인지 단속 끝나는 시간을 30여 분 남겨두고, 1건의 단속 실적을 올렸다고 했다. 흡연자들이 단속반원들을 미리 알아보고 피하거나 꾹 참은 모양이다. 그러나 청량리역과 동시에 야간 단속을 벌인 이날 실적 건수는 총 10여 건이었다.

금연구역 흡연단속 요원들의 어깨띠에 '당신의 참여로 건강한 서울을 만들어 가자'는 문구가 선명하다

한편, 이곳에 단속을 나온 김 모 주무관(57)은 "30년 넘게 담배를 피웠다. 이전 직장인 모기업에서 명퇴를 하고, 새 일차리를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각오와 마음을 고쳐먹고는 금연을 하게 됐다."며,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환영하고, 무엇보다 건강에 좋아 금연하기를 백번 잘했다."고 했다.

6일은 현충일 공휴일이라 쉬고, 야간 흡연 합동단속 셋째날인 7일신도림역 1번 출구에 위치한 버스정류소를 찾았다. 퇴근 시간대여서인지 버스 승강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인파로 북적였다. 그래서인지 단속반원도 10여 명이나 투입돼 금연 홍보물 제공, 금연계도와 흡연단속을 병행했다.

신설동역, 서울풍물시장 정류소는 금연버스정류소로 지정돼 있다.

이곳에 단속 나온 건강증진과 김 모 주무관은 "단속반원이 많이 투입돼 눈에 잘 띄고, 많은 시민들이 붐벼 흡연자가 담배 피울 여건이 못 된다."며 "버스 타고 빨리 귀가해야 할 사람들이기에 담배피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합동 단속을 실시한 지 두 시간이 흘렀지만 흡연자를 볼 수 없었다. 버스정류장 승강장이나 차도의 꽁초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금천구 거주 직장인 정현주(28)씨는 "직장이나 길거리에서 간접흡연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이번 단속이 흡연자들에게는 다소 가혹할 지 모르지만 비흡연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환영"이라며 "앞으로 금연단속을 하지 않더라도 금연구역에서 만큼은 담배를 피우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다.

반면, 애연가인 한기문(37)씨는 "도시 전체가 금연구역화 되어가는 것 같아 서운한 감이 있다. 금연만 강조하지 말고 흡연자를 배려한 흡연구역을 제대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담배는 피우라고 만든 것 아닌가. 과태료도 너무 과하다."며 담배를 한 개비 꺼내들고는 불만을 토로했다.

구로구 소재 금연버스정류소에 과태료 등이 적힌 금연 표지가 부착돼 있다.

한편, 신도림역 버스정류소 맞은편 2번 출구에는 소공원이 하나 있다. 지하철 출구와 맞닿은 지근거리라 지하철 승하차 승객이나 시민들의 쉼터로 적격이다. 몇 개의 벤치가 놓여 있고 바로 옆에는 공중전화도 설치돼 있다.

쉼터에 걸맞지 않게 쉼터 위에는 관할 보건소에서 내다건 금연 현수막이 몇 달째 펄럭이고 있다. 이에 아랑곳 않고 흡연자들이 주야로 이곳에 몰린다. 특히 어린 청소년, 젊은 여성들도 두 세 명씩 모여 담대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다.

신도림역 출구와 연결된 근린공원 입구 쉼터 금연현수막 아래에서 시민들이 흡연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 공원 입구에는 전에 없던 넓다란 노상가판대가 인근에서 자리를 옮겨와 공원 입구를 막고 있어 흡연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는 꼴이 됐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연기와 퀘퀘한 냄새는 공중전화 부스와 지하철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어린이를 비롯한 지하철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는 청소년들과 젊은 여성들의 흡연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자정이 넘어 이곳의 바닥에 버려진 꽁초를 세보면 백 개가 넘는다. 이곳 흡연자들의 숫자가 하루에만 백 명이 넘는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일회용 컵, 음료캔, 과자봉지, 술병 등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다. 도심 미관을 해치고 흡연 등으로 환경오염이 심해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지만 관할구청은 끄덕하지 않고 있다. 공공구역 내 금연의지를 무색케 하는 곳이다.

더욱이 이곳 지하철 출구와 공원 앞에는 시내버스 환승센터와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이곳을 오가는 버스 운전자들의 흡연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금연 본을 보이고 승객들이 흡연하면 말려야 할 운전자들이 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꼴볼견 흡연을 하고 있으니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금천구 빌딩 내에 부착된 금연문구 '담배는 목숨을 태우는 마약이다'

한편, 서울시의 경우 지난 1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4개월간 20여 명의 흡연단속요원을 투입, 흡연단속 결과 광장 3곳에서 246건, 중앙차로 버스정류소에서 123건, 시 관리 공원 20개소에서 68건 등 총 437건의 흡연단속 실적(과태료 부과)을 올렸다고 밝혔다. 광장, 버스정류소 등에서 하루 평균 2명꼴로 단속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 총 25개 자치구 중 단속을 시작한 구는 13개(관악, 광진, 동대문, 강동, 도봉, 강서, 용산, 중구, 성동, 마포, 금천, 서초, 강남) 구다. 서초구와 강남구는 6월 1일부터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대로와 양재대로를 금연구역으로 추가 지정해 단속하며, 공원에서의 단속은 7월 1일부터 시작한다. 나머지 구는 점차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시민들이 금연구역에 대해 혼동하지 않도록 금연구역에 대한 정보제공을 위해 '금연구역 안내 앱'을 8월에 개발해 보급한다고 밝혔다.

동작구 소재 보라매공원 내에 금연구역 지정과 과태료 부과를 알리는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금연단속에 대해 일반적으로 시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이에 따른 문제점도 있다. 과태료 금액이 5만 원, 7만 원, 10만 원 등 자치구별로 제각각이다. 이에 따른 흡연자들의 볼멘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금연구역 단속으로 비금연구역 흡연이 늘어난다는 점도 문제이다. 대로변 흡연단속으로 금연구역을 벗어난 인근 지역이나 골목길 흡연이 늘고, 곳곳에 꽁초가 쌓이고 있다는 얘기이다. 단속반원 역시 단속에 애로가 많다고 토로한다. 흡연자 설득 및 과태료 부과까지는 신경전을 펼쳐야 하고 상당한 기교가 필요하다고 한다.

공원 내에 흡연자 배려로 흡연구역이 별도로 설치돼 있어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단속반에 걸려 과태료 낸 분들, 열받고 이참에 남편처럼 모두 금연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한 이 모 씨의 우스갯소리가 스쳐간다.

건강의 첫걸음인 금연, 간접흡연의 폐해와 금연의 중요성에 대해 흡연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아울러 흡연으로 도심 미관을 해치고 환경을 오염시켜서는 안 될 말이다. 또 실외 뿐만 아니라 식당 등 공공이 모이는 실내에서의 금연도 하루 빨리 정착되어야 한다. 흡연으로 인한 피해는 실외보다 실내가 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실외든 실내든 무엇보다 흡연자 스스로 금연하는 의지와 성숙된 자세가 요구된다. 김경호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앞으로도 정기적인 야간 흡연단속을 실시해 공공장소에서의 금연문화가 빠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바라건데 금연문화가 조기에 정착돼 단속반원들이 어깨에 두른 띠에 새긴대로 '간접흡연 제로 서울'을 하루빨리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 나아가 각 지자체에서도 금연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데 '금연 대한민국'의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정책기자 박동현(회사원) qlove153@hanmail.net

Copyright © 정책브리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