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12 개막 특집] 유럽 축구선수권대회의 역사(上)

손병하 2012. 6. 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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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일레븐)

유럽만의 월드컵이라고 불린다. 혹자는 월드컵보다 높은 수준의 축구 대회라고도 한다. 그만큼 유럽 축구선수권대회는 지구촌에서 월드컵과 비견될 정도로 높은 인기와 대단한 수준을 자랑하는 축구 축제다.

오는 9일부터 7월 2일(한국 시각)까지 동유럽의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유로 2012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동구권 국가의 첫 번째 공동 개최 대회라는 점과 향후 유럽 축구의 전체 판도를 엿볼 수 있는 대회라는 점에서 세계인의 관심이 뜨겁다.

이에 유럽이 개최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유로 2012를 보다 즐겁게 즐기기 위해 대회의 역사를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첫걸음이었던 1960년 대회부터 2008년까지 48년의 시간 동안 치러진 13번의 대회다.

▲ EURO 1960우승-소련준우승-유고슬라비아

개최국-프랑스개최 도시-파리, 마르세유대회 기간-1960년 6월 6~10일참가국-프랑스, 소련,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경기 수-4경기득점 수-17골(경기당 4.2골)최다 득점자-2골=발렌틴 이바노프·빅토르포넬델니크(이상 소련), 밀란 갈리치·드라잔 예르코비치(이상 유고슬라비아), 프랑수아 오트(프랑스)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인 1927년. 프랑스 축구협회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던 앙리 들로네는 유럽의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의 신설을 강력히 주창했다. 당시로서는 제법 획기적 발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1930년 시작된 월드컵 준비로 바쁘던 FIFA(국제축구연맹)는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54년. 들로네는 UEFA(유럽축구연맹)의 초대 사무국장에 취임했고, 이루지 못한 유럽 국가 대항전 창설을 위해 다시 동분서주했다. 이듬해인 1955년 들로네는 사망했으나,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대회 창설을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1960년 유럽 네이션스컵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대회 우승컵이 앙리 들로네라 명명된 이유, 바로 여기에 있다.

▲ EURO 1964우승-스페인준우승-소련

개최국-스페인개최 도시-마드리드, 바르셀로나대회 기간-1964년 6월 17~21일참가국-스페인, 덴마크, 헝가리, 소련경기 수-4경기득점 수-13골(경기당 3.2골)최다 득점자-2골=헤수스 마리아 페레다(스페인), 베네 페렌츠·노바크 데즈쇠(이상 헝가리)

산고 끝에 탄생한 유럽 네이션스컵은 1964년 두 번째 대회를 맞이했다. 대회는 스페인에서 열렸다. 당초 불안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대회 개최를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으나, 정치는 정치고 축구는 축구였다. 스페인·덴마크·헝가리·소련 등 참가 4개국은 맞대결을 통해 결승행 티켓을 놓고 다퉜다. 1964년 6월 21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결승전에 진출한 국가는 스페인과 소련이었다. 결과는 마르셀리노가 후반 39분 팽팽한 1-1 승부에 종지부를 찍은 스페인이 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국민은 이 대회 우승으로 큰 위안을 받았다. 당시 스페인은 유명한 독재자 프란체스코 프랑코가 종신 총통으로 나라 전체를 심하게 괴롭히고 있었는데, 그 아픔을 축구가 치유한 것이다.

▲ EURO 1968우승-이탈리아준우승-유고슬라비아

개최국-이탈리아개최 도시-로마, 나폴리, 피렌체대회 기간-1968년 6월 5~10일참가국-이탈리아, 소련, 잉글랜드, 유고슬라비아경기 수-5경기득점 수-7골(경기당 1.4골)최다 득점자-2골=드라간 자이치(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 번째 대회에서는 큰 틀에서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대회 공식 명칭이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으로 변경됐고, 비록 지역 예선에 한해서였으나 조별 라운드가 도입됐다. 대회의 전체적 초석이 다져졌다 할 수 있겠다. 1966년부터 2년 동안 치른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오른 팀은 개최국 이탈리아를 포함해 소련·잉글랜드·유고슬라비아다. 3회 대회의 가장 큰 특징은 결승전을 두 번이나 치렀다는 것이다. 결승전에서는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가 격돌했는데, 두 팀은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둬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결과는 홈의 이점을 살려 상대를 봉쇄한 이탈리아의 2-0 승리였다.

▲ EURO 1972우승-서독준우승-소련

개최국-벨기에개최 도시-브뤼셀, 리에주, 안트베르펜대회 기간-1972년 6월 14~18일참가국-벨기에, 서독, 헝가리, 소련경기 수-4경기득점 수-10골(경기당 2.5골)최다 득점자-4골=게르트 뮐러(서독)

1972년 유러피언 챔피언십은 어느덧 네 번째 대회를 맞이했다. 참가국 확대란 큰 틀에서의 발전은 쉽게 이루지 못했으나, 유럽만의 축제라는 점과 대회가 중단되지 않고 꾸준히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만했다. 물론 이미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를 향해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던 월드컵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번 대회 개최국은 벨기에였다. 대회가 열린 시기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당시는 서독이 월드컵에서 독보적 세를 과시하며 승승장구할 때다. 당연히 유러피언 챔피언십에서도 서독의 기세는 말릴 수 없었다. 게르트 뮐러와 같은 슈퍼 플레이어를 앞세운 전차 군단은 결승전에서 4회 연속으로 본선에 참가한 소련을 3-0으로 꺾고 당당히 정상에 섰다.

▲ EURO 1976우승-체코슬로바키아준우승-서독

개최국-유고슬라비아개최 도시-베오그라드, 자그레브대회 기간-1976년 6월 16~20일참가국-유고슬라비아, 서독, 네덜란드, 체코슬로바키아경기 수-4경기득점 수-19골(경기당 4.2골)최다 득점자-4골=디터 뮐러(서독)

유고슬라비아가 개최한 다섯 번째 대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이 대회가 4개국 간 맞대결을 통해 우승을 가린 마지막 대회라는 점이다. 1980년 열린 6회 대회부터는 참가국이 8개국으로 확대됐다. 출범 후 16년 동안 지속된 4강 체제가 막을 내린 셈이다. 다른 하나는 본선으로 열린 네 경기가 모두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속에서 치러졌다는 점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120분 혈투 끝에 3-1로 승리했고, 유고슬라비아는 당대 최강 독일을 상대로 잘 견뎠으나 연장전에서 무너져 2-4로 패했다. 이어 열린 3-4위전과 결승전도 모두 120분이 지나서야 승패가 갈렸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와 서독의 결승전은 승부차기까지 치러야 했다.

▲ EURO 1980우승-서독준우승-벨기에

개최국-이탈리아개최 도시-로마, 밀라노, 나폴리, 토리노대회 기간-1980년 6월 11~22일참가국-이탈리아, 네덜란드, 서독, 스페인, 그리스, 잉글랜드, 체코슬로바키아, 벨기에경기 수-14경기득점 수-27골(경기당 1.9골)최다 득점자-3골=클라우스 알로프스(서독)

이탈리아에서 열린 6회 대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회의 근간이 마련된 대회였다. 본선 출전국이 4개국에서 8개국으로 늘어났고, 본선에서는 조별 라운드의 개념이 도입됐다. 단 조별 라운드 후 각 조 1위가 결승전을 치르고, 2위가 3-4위전을 치렀다는 점은 지금과 다르다. 이전까지의 대회와 다른 점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동유럽의 약세가 심화하고 서유럽의 강세가 두드러진 시기란 점이다. 당시 유럽 축구는 경제력이 더해져 국가 간 전력 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튼튼한 자금줄을 보유한 서유럽 국가들의 약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또 서독이 결승전에서 벨기에를 꺾고 우승을 차지, 대회 역사상 최초로 두 번 우승을 기록한 국가가 됐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 EURO 1984우승-프랑스준우승-스페인

개최국-프랑스개최 도시-파리, 마르세유, 리용, 생테티엔, 랑스, 낭트, 스트라부르대회 기간-1984년 6월 12~27일참가국-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포르투갈, 루마니아,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서독경기 수-15경기득점 수-41골(경기당 2.7골)최다 득점자-9골=미셸 플라티니(프랑스)

참가국이 확대된 후 유러피언 챔피언십은 점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대회 참가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라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으나, 그런 일부의 의식은 커지는 대회 덩치에 깔려 사라졌다. 특히 유럽은 자신들이 축구 종주 대륙이라며 한창 콧대를 높이고 있었는데, 그런 유럽만이 참가하는 유러피언 챔피언십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가 대회를 존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빠르게 진보하던 대회는 불세출의 스타를 배출하며 그 속도를 더 높였다. 바로 프랑스가 낳은 '예술가' 미셸 플라티니다. 프랑스에 '아트 사커'란 닉네임을 선사하기도 한 플라티니는 결승전 결승골을 포함해 혼자서 무려 9골을 터트리며 최다 득점자로 역사에 기록됐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사진=PA(www.pressassoci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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