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산새소리 벗삼아 느릿느릿 걸으며 풍경 속으로

2012. 5. 3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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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규슈올레
제주올레서 벤치마킹 .. "또 만나요" 한국어 푯말 정겨워
바다에 둘러싸인 924m 원추형 휴화산 가이몬다케 장관

[세계일보]

길 위에서 길을 찾다. 길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화두다. 마음이 실타래 같이 엉킬 때, 선택의 기로에서 답을 찾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상념의 보따리를 안고 길을 떠난다. 자연에 묻혀 걷다 보면 쓸데없는 잡념들이 떨어져 나간다. 생각이 단순 명료해지고 가야 할 길이 정리된다. 깊은 상처와도 화해한다. 길이 치유의 힘을 주는 것이다. 이런 걷기의 매력을 알려 준 것이 바로 제주올레다. 그 올레가 이제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로 수출됐다. 제주올레재단(이사장 서명숙)의 '훈수'를 받은 규슈올레는 지난 2월 말 1차로 이부스키(가고시마현), 아마쿠사(구마모토현) 오쿠분고(오이타 현), 다케오(사가현) 4개 지역에 문을 열었다. 올레의 명칭과 정신, 형식을 수입했지만 '길'이라는 내용은 사뭇 다르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닮았을까. 4개 코스를 걸어봤다.

오쿠분고올레 중 오카성을 지나 성하마을로 이어지는 초록 길이 참 예쁘다.

#산촌마을·고성을 만나는 오쿠분고올레

일본의 전형적인 농촌·온천 마을과 정원, 천년 고성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오쿠분고올레 코스는 때묻지 않은 자연미와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있는 길이다. 분고오노시 무인역인 JR아사지역에서 출발, 다케다시의 성하마을(조카마치)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 11.8㎞. 아사지 마을에 들어서면 길 정비에 앞장선 주민들이 만든 인형가족이 먼저 올레꾼을 반긴다. '안녕하세요. 또 만나요'라는 한국어로 쓴 푯말도 세워져 있다. 비뚤비뚤 쓴 글씨가 정겹다.

후코지 맞은편 암벽에 새겨져 있는 높이 11m의 마애불.

마을을 지나 에도시대 고관의 별장지였던 유자쿠 공원을 지나 일명 피아노절로 알려진 후코지에 이른다. 주지 스님의 음악 사랑이 유별난지 법당에 피아노가 있다. 한 올레꾼이 '엘리제를 위하여'를 멋들어지게 연주하자 스님이 나타나 절 맞은편 암벽에 새겨진 규슈 최대 마애불(높이 11.3m)로 인도한다.

마애불 '400년의 미소'를 뒤로한 채 마을회관에 이르니 밭에 일하러 나온 주민들이 본인들의 점심으로 준비한 볶음국수를 만들어 올레꾼에게 나눠준다. 출출해서인지 꿀맛이다. "오이시이"(맛있어요)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우자 활짝 웃는다.

발길을 돌려 삼나무와 왕대나무 숲길에 들어선다. 명도와 채도가 다른 초록 길이 참 예쁘다. 다음 포인트는 9만년 전 아소산 용암 분출 때 형성된 소가와 주상절리. 암반 위로 급류가 흐른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산 위에 에도시대 난공불락이었던 오카산성이 나온다.

1185년 축조돼 400년 전 증축됐다고 한다. 지금은 성벽만 남았다. 돌 틈 사이로 이끼와 풀이 무성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종착지인 다케다의 성하마을은 에도시대 무사들이 살았던 하얀색 가옥이 눈에 띈다.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는 아이젠도 사찰이 기다리고 있다. 70계단을 올라 법당을 세 번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제주의 풍광을 빼닮은 이부스키올레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는 이부스키올레는 시작부터 제주올레를 연상케 한다. 산과 바다, 들판을 골고루 감상할 수 있다. 어디를 걸으나 '사쓰마의 후지산'으로 불리는 삼각형 모양의 가이몬다케(924m)가 따라온다.

출발점은 규슈 최남단 JR 니시오야마 무인역. 근처 관광 안내소 겸 상점에서 그림엽서를 사 최남단역 스탬프를 찍어 '인증 샷'을 남긴다.

규슈올레 4개 코스 중 제주 풍광을 가장 많이 닮은 이부스키 코스. 올레꾼들이 나가사키바나의 검은 모래 해변을 지나고 있다. 멀리 후지산을 닮은 원추형 휴화산 가이몬다케가 보인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 길은 서귀포의 풍광과 거의 비슷하다. 바다 앞 보이는 섬들의 실루엣이 조금 다를 뿐이다. 용궁신사를 지나 나가사키바나곶 하얀 등대가 마음에 점을 찍는다. 검은 모래사장 지나 해변 끝에서 작은 오솔길로 들어선다. 울창한 소나무가 바다 냄새 풍기는 올레꾼을 맞는다. 튼실한 둘레에 키가 쭉쭉 뻗은 게 하늘을 가릴 정도다. 소나무 사이로 간간이 바다가 보인다. 왼쪽엔 파도소리, 오른쪽엔 새소리가 합창한다.

숲을 빠져나가 산록 허브원을 지난다. 지난가을 떨어진 낙엽에서조차 향긋한 향이 난다. 개인 소유인 허브원엔 허브로 만든 향수와 차 방향제 등을 판다. 날씨가 맑을 땐 가이몬다케가 물속에 비친다는 가가미이케 연못도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히라키키 신사를 지나 종착지인 가이몬역에 이른다. 이부스키올레는 총 길이 20.4㎞로 가장 길다. 하지만 길이 평탄해 남녀노소 모두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트레킹을 마친 후 숙소인 료칸에서 흙모래 찜질을 할 수 있다. 유카타를 입고 얼굴만 내놓고 온몸을 흙모래로 덮는다. 모래 온도가 섭씨 40도 이상이라 10∼15분만 있어도 은근히 땀이 난다. 피로가 싹 풀린다.

규슈올레는 제주처럼 아직 많이 다듬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빠르게 지나가는 관광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규슈의 숨겨진 '민낯'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다. 길을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선 갈림길에 서 있는 간세, 나뭇가지와 전봇대에 걸린 리본, 돌과 길에 그린 화살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허투루 걷지 않는다.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마을 구석구석 시선이 오래 머문다. 그래서인지 4개 올레가 저마다 다른 풍경과 느낌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규슈=글·사진 박윤주 기자 ju@segye.com

■이곳도 걸어보세요

◆아마쿠사·이와지마올레(구마모토현)=

120개의 섬들로 구성된 아마쿠사 제도의 이와지마섬을 일주하는 코스. 일본 최대 농민혁명을 이끈 '아마쿠사 시로'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어촌마을과 감귤 밭, 선사시대의 고분군을 지나 산 정상에 서면 우리나라 남해의 한려해상국립공원 같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르락내리락 산이라 지루할 틈이 없고 산길을 걷다 불쑥 바다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총길이 12.3㎞.

◆다케오올레(사가현)=

후쿠오카에서 JR열차나 자동차로 1시간 거리로 교통이 좋다. 다케오 온천역에서 출발, 시내를 가로질러 공원·호수·기묘지 절을 지난다. 이케노우치 호수에서 상급자와 일반 코스로 나뉜다. 수령 3000년 된 녹나무 두 그루에서 좋은 기운을 받는다. 작은 불상들이 있는 공원을 지나면 종착지점인 다케오 온천의 랜드마크인 누문에 닿는다. 이곳 온천수는 알칼리 성분으로 '미인탕'이라고도 한다. 총길이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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