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사 공격하고, 자해..'쇼맨' 우탄이의 분노

2012. 5. 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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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TV스타 우탄이는 지금

사라진 살인미소, 스스로 맹수가 되어 갇히다

  동물은 자아가 없을까요? 침팬지·오랑우탄·돌고래·까치·코끼리 등 어떤 동물들은 인간처럼 자아가 있는 것으로 증명됐습니다. 거울을 본 동물들은 자신을 알아보고 거울 뒤를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거울 앞으로 먹이를 가져와 먹기도 하고요. 푸른 어린이날,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 동물과 시간을 보내신다면,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쇼를 하는 동물들이 얼마나 아픈지를 알려주세요.

2003년부터 5년간 TV쇼 출연킥보드 타고 재롱을 부리고사람 같은 행동에 관객은 환호했다

그러던 어느날 사육사를 공격수년간 철창에 갇힌 채로벽에 머리를 찧고 바닥을 긁는다그래도 쇼는 계속됐다우탄이가 오랑이로 바뀌었을 뿐

초점 잃은 눈망울은 여전히 까맣고 아득했다. 슬픔과 분노로 가득한 두 눈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 대신 창살에 매달려 사는 검은 생명체에게 영혼이란 없어 보였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고양시의 주주동물원에서 만난 수컷 오랑우탄은 1992년 무렵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서 태어났다. 우리나라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기 전인 1993년에 국내로 반입됐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랑우탄을 들이는 데 별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2001년 겨울, 개장을 앞두고 인기스타가 필요했던 동물원은 5천만원을 주고 인도네시아에서 10살 정도 된 그 오랑우탄을 다시 사들였다. 그때부터 오랑우탄은 우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파충류 전시 위주였던 테마동물원을 홍보하는 데에 우탄이의 구실이 중요했다.

우탄이는 2003년부터 티브이(TV)쇼에 출연했다. 에스비에스(SBS) <tv물농장>과 한국방송(KBS) <주주클럽>에 출연한 우탄이는 사육사가 입혀주는 대로 한복이나 운동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원래 호기심이 많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영리한 동물인 만큼 우탄이의 행동은 인간과 비슷했다. 브라운관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거나 캔 음료수를 따는 우탄이를 보면서 사람들은 환호했다. 피디와 작가들은 촬영마다 우탄이가 좋아할 과자며 음료수를 잔뜩 사왔다. 우탄이의 별명은 '먹보'였다. 우탄이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동물원도 관람객이 늘었다. 사람들은 앞다퉈 우탄이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길 원했다.

방송을 그만둔 건 2007년쯤이었다. 사육사는 우탄이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여지없이 우탄이의 귀를 잡아당겨 주의를 줬다. 티브이쇼에 출연하거나 사람들 앞에 등장하기에 우탄이의 괴로움이 너무 컸다. 박기배(51) 동물운영팀장은 그즈음 우탄이가 많이 힘들어했다고 기억했다. 2006년 청소를 하려고 우리에 들어갔을 때 우탄이가 박 팀장의 왼손을 물었다. 박 팀장이 걸레질을 하려고 엎드린 순간이었다. "무서웠던 정도가 아니죠. 죽을힘을 다해서 공격을 하더라고요. 바로 제압했어요. 내가 안에서 지른 소리를 듣고 사육사들이 달려와서 떼어냈죠." 박 팀장은 두달간 왼손을 쓰지 못했다. 쇼를 거부하는 우탄이를 성인 남자 사육사 6명이 당해내질 못했다. 성체가 된 수컷 오랑우탄의 키는 1m30㎝를 넘고, 몸무게는 80㎏에 이른다. 아이큐가 65 정도인 오랑우탄은 돌고래, 코끼리 등과 함께 자아정체성을 아는 동물이었다. 그렇게 우탄이는 스스로 스타임을 포기했다.

우탄이 대신 티브이쇼를 하고 사진 촬영에 나선 건 오랑이(9살·암컷)였다. 성탄이면 우탄이와 함께 입혀주는 빨간 옷을 입고 구세군 냄비 타종식에 참석했다. 오랑이는 불법으로 오랑우탄을 소장해오던 개인에게서 기증받은 개체였다. 몸무게 48㎏으로 우탄이 몸집에 절반밖에 되지 않는 오랑이도 이제 성체가 다 됐다. 동물원에서는 오랑이와 우탄이 사이에서 나오는 새끼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2010년에 합사를 시켰어요. 사흘 정도 지났는데 안 되겠어서 문을 열어줬더니 오랑이가 금방 나오더라고요. 오랑이 밥을 우탄이가 다 뺏어 먹어서 오랑이 살만 3㎏인가 빠졌죠." 2008년부터 오랑이와 함께 생활한 홍보정(35) 사육사가 말했다.

요즘 우탄이는 2009년부터 3평 남짓한 방에 갇혀 지낸다. 종일 방 안을 뱅뱅 돌거나 바닥을 긁거나 창살에 매달리는 게 일과다. 아침저녁으로 철문이 열리고 바닥에 놓이는 플라스틱 대접에 담긴 밥이 우탄이의 삶의 이유다. 야생에서는 무화과나무나 바나나 등 과일을 주로 먹는데 동물원에서는 닭고기죽이나 전지분유나 치즈를 섞은 쌀밥을 먹는다. 지나가는 관람객들이 주는 간식을 무조건 받아먹다 보니 설사를 자주 한다. 방에 싸놓은 용변은 아침마다 사육사들이 고압의 물로 청소를 하는데, 바쁜 날이면 우탄이도 직접 치운다. 세제를 밀어주면 바닥에 뿌리고 걸레질을 하는 건 티브이 출연할 때 다 배웠다. 동물원 쪽은 우탄이의 우리가 비좁고 빛도 들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동물원 중앙에 좀더 넓은 우리를 만들어 우탄이를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오랑우탄의 평균수명이 40살이니 우탄이는 앞으로 20년 정도를 더 전시된 채 지내야 한다.

그날도 오랑이는 우탄이 몫까지 쇼를 했다. 미군 조종사복을 수선해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오랑이가 킥보드를 타고 지나갔다. 소풍 나온 유치원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오랑이의 뒤를 졸졸 따랐다. 방금 전까지 긴팔원숭이가 쇼를 하던 무대에 오른 오랑이에게 사육사는 "살인미소!"라고 지시했다. 오랑이가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졸리입술"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입술을 두툼하게 보이려 뒤집기도 했다. 뒤돌기도 세번 했다. 오랑이를 사진기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셔터 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연장 뒤편으로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철문에 머리를 찧고 있는 건 우탄이였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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