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의 전쟁] 월 생활비 70만 원 ..'이젠 꿈도 못 꾸죠'
정부와 지방자체단체의 물가 조사가 주민들의 체감도와 크게 차이 난다는 비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달 발표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장바구니를 들고 느끼는 물가 상승과는 아무래도 괴리감이 크다. 최근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에 가계를 꾸려가는 주부들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경비즈니스는 가파르게 오른 소비자물가를 체감하기 위해 40년째 가계부를 쓰고 있는 주부 신옥자(68·서울 사당동) 씨의 가계부를 살펴봤다. 20년 전인 1992년 가계부와 2012년 가계부를 비교하며 그동안의 주요 생활비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신 씨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적은 가계부를 모두 모아 두고 있어 그동안의 지출 목록과 가격을 세세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우선 당시의 경제 상황을 살펴보면, 1992년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던 해였다. 선거가 있는 해는 그렇지 않은 해에 비해 시중 통화량이 크게 늘어 물가가 뛰었다. 1992년 통화 증가율은 5.5% 포인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5.4% 포인트 올랐다. 노태우 정부 마지막 해였던 1992년은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 실적 부진으로 수출에 먹구름이 드리웠고 건설 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1992년 경제성장률은 1980년 오일쇼크 이후 최악의 수준인 5.8%(GDP 기준)에 그친 해였다.
신 씨의 가계부에 따르면 당시 쌀은 20kg 기준으로 3만1000원이었다. 현재는 쌀 소비가 급격히 줄었지만 당시만 해도 주식으로서 쌀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2012년 이마트에서 쌀 20kg의 중간 가격이 4만8000원인 것에 비하면 20년간 54% 상승했다.
쌀과 함께 주요 식료품인 달걀(한 판 30알 기준)은 1992년 3000원이었다. 현재 5950원(상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무려 98.30%가 올랐다. 두부의 가격 상승도 가파르다. 신 씨는 1992년 두부 한 모를 500원에 구매했지만 지금은 2850원이다. 무려 470%나 올랐다.
삽겹살 600g 3800원-- > 1만5000원
고기류를 살펴보면 가장 많이 오른 것은 역시 돼지고기다. 1992년 삼겹살 600g(한 근)의 가격은 3800원이었다. 하지만 현재 1만5000에 판매돼 176.3% 올랐다. 닭고기도 만만치 않다. 1992년 생닭 한 마리 가격은 3000원에 불과했다. 현재 6900원에 마트에서 팔리고 있어 130% 상승했다. 이에 비해 쇠고기는 한우 사태 600g이 1992년 1만5400원, 현재 1만9200원이어서 24.6% 상승에 머물렀다.
신 씨의 가계부를 보며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바로 '통닭' 항목 때문이었다. 1992년은 지금과 같이 치킨 프랜차이즈가 동네마다 자리를 잡고 있지 않을 때였다. 시장이나 동네의 닭집에서 커다란 기름 솥에 치킨을 튀겨 닭 그림이 그려진 갈색 종이봉투에 담아 팔던 때다. 월급날 아버지 손에 들려온 갈색 치킨 봉투를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당시 통닭 한 마리의 가격은 6000원으로 신 씨의 가계부에 적혀 있었다. 현재 프라이드 치킨을 배달해 먹을 때 보통 1만5000원이므로 가격이 131% 올랐다. 또한 주요 외식 메뉴였던 짜장면 항목도 찾을 수 있었다. 1992년 가격은 2400원이었다. 현재는 4500원에 먹을 수 있어 87.5% 올랐다.
주식 외에 과일 가격을 살펴보면 수박 한 덩이 가격이 6000원, 사과 한 박스는 1만3500원이었다. 계절의 차이를 배제하고 현재 이마트에서 팔리는 가격은 수박이 2만 원, 사과가 3만7000원이다. 각각 233.3%. 174% 올랐다.
교통비는 큰 폭으로 상승한 항목 중 하나다. 당시 버스비는 토큰 하나 가격이 250원이었다. 올해 3월 25일 서울지역 지하철과 버스요금이 150원씩 올라 교통카드 요금 기준으로 현재 1050원이다. 320% 올랐다. 최근 민간 노선 9호선 요금이 오는 6월 500원 인상된다면 1550원이 돼 20년 전에 비해 520% 인상되는 셈이다.
한편 신씨 가족은 수십 년간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데 1992년 신문 대금은 한 달 5000원으로 적혀 있었다. 현재는 무료 서비스 등을 제외하고 한 달 1만5000원이므로 200% 올랐다. 그 외 잡비로 이발비는 4000원, 목욕비는 1700원 등이 적혀 있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항목별로 상승률이 컸지만 가계부 상에 가장 폭등한 항목은 통신비다. 1992년 통신비 항목으로 신 씨의 6인 가족 기준으로 가계부에는 단지 전화요금 2만2590원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신 씨와 같은 6인 가족을 기준으로 통신비를 계산해 보면 휴대전화 요금 각 5만 원씩 총 30만 원, 인터넷 요금 3만 원, 인터넷 전화 3000원을 더하면 통신비는 33만3000원이다. 1992년 대비 1374.1%나 오른 수치다. 통신비로 인한 가계의 경제적 부담이 바로 이와 같은 수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오른 항목은 통신비
중산층에 속하는 신 씨네는 1992년 2대의 가전제품을 구입했다. 컴퓨터와 세탁기다. 가전제품의 당시 가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년 동안 가격 상승은커녕 오히려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신 씨가 당시 중·고등학생 자녀를 위해 큰마음 먹고 장만한 컴퓨터의 가격은 228만 원이나 됐다. 현재 모니터를 포함한 일반 데스크톱의 가격이 70만 원 내외인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비쌌다. 20년 동안 컴퓨터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가격이 급격히 내린 것이다.
2년마다 칩의 성능이 두 배로 향상되고 가격 하락 속도는 빨라진다고 1965년 미 인텔사 창립자 고든 무어가 주장한 '무어의 법칙'이 실감되는 항목이다. 또한 세탁기 가격에서도 재미있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신 씨는 당시 유행하던 '공기방울 세탁기(8.5kg 용량)'를 54만 원 주고 샀다. 신 씨는 이 세탁기를 무려 20년간 사용하고 올해 세탁기를 새로 바꿨다. 새로 산 세탁기의 용량은 15kg으로 이전 것에 비해 2배 늘었지만 새 세탁기의 가격은 20년 전과 거의 같은 55만 원이었다.
신 씨 6인 가족의 1992년 한 달 지출은 얼마나 됐을까. 신 씨의 빛바랜 가계부 5월 페이지에는 저축이나 대외비 등을 제외하고 지출이 총 127만 원으로 적혀 있었다. 생활비로 70만4520원, 4자녀 교육비 57만3000원을 합친 액수다. 과소비 없이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온 주부 경력 40년 차 신 씨지만 과거에 비해 요즘엔 장 보기가 겁난다고 말한다. "수십 년 동안 장을 보면서 무얼 살 때 많이 주저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마트에 가면 가격표를 보고 흠칫 놀란다"며 "꼭 필요한 생필품 몇 개만 사도 금방 10만 원이 넘는다"고 푸념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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