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안 받는 병원, 한국판 '식코'의 재앙이 시작된다"

2012. 4. 2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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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미디어오늘 허완 기자]

영리병원은 소리 없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식경제부는 17일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시행령에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병원의 설립 요건 등을 명시한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구체적 허가절차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국회에 제출된 의료법 개정안 통과가 번번이 무산되자 정부가 결국 하위법령 개정이라는 '우회로'를 택한 셈이다.

정부는 "송도에 국제병원이 설립되면 연간 6만여 명의 국내외 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일보는 "법적 장애물을 10년 만에 걷어냈다는 의미가 있다"(18일자 1면)고, 중앙일보도 "2016년 문 열 방법 찾았다"(18일자 22면)며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 중앙일보 18일자 22면.

반면 보건단체들은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영리병원이 급속히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라며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보험 체계가 민간과 공공으로 양극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KTX 민영화와 지하철9호선 논란 등에 묻혀 소리 없이 다가온 영리병원, 뭐가 문제일까. 다음은 23일 이뤄진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최근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내용의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어떤 의미인가.

"총선 전까지는 잠잠하다가 총선에서 여대야소가 되니까 곧바로 KTX를 민영화 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의미다. 정부가 그동안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다가 번번이 반대여론에 가로막혔었는데, 임기 말 여대야소 국회가 되면서 바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시도라고 본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에서만 허용된 것이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인데.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가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된다.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생기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병원 제1호가 탄생하는 거다.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다. 나머지 경제자유구역이 6곳인데, 6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금도 추가로 신청해놓고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영리병원이) 들어설 수 있는 거다. 또 지자체별로 서로 경쟁적으로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있을 거다. 급속히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다."

▲ 정부의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을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23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열렸다. ⓒ보건의료노조

-일각에선 '내가 내 돈 내고 가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제일 핵심 문제다. 의료보험은 기본적으로 연대의 체제다. 미국식 의료제도의 경우, 돈 있는 사람은 최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는 반면 돈 없는 사람들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도 못하고 서비스도 못 받는다. 누구나 다 국민이면 돈이 있든 없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의료보험 체계의 기본 정신이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의료보험 체계가 민간과 공공으로 양극화되고, 국민들도 의료혜택에 있어서 양극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의료관광' 이야기를 많이 꺼내기도 한다. 외국 환자를 적극 유치해서 하나의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이야긴데.

"의료산업화라는 측면하고 영리병원 도입하고는 좀 다른 문제다. 우리나라가 의료선진국으로써 일정 정도 외국 환자를 유치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게 꼭 영리병원 도입(주장)으로 이어질 이유가 없다는 거다. 외국환자나 외국인들을 위한 전용 의료시설이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그게 왜 꼭 영리병원이어야 하나. 영리병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 외국인을 진료할 수 있는 전문 진료센터, 언어장벽 문제 같은 것들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비하면 되는 문제다. 외국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영리병원을 만들어야 한다? 그건 다른 문제다."

▲ 중앙일보 2011년 7월13일자 사설.

-한미 FTA에도 이미 영리병원 도입이 포함된 것 아닌가.

"지금 의료 문제 관련해서는 한미 FTA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일단은 선을 그어 놨다. 다만 제주도하고 경제자유구역은 예외로 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문제는 역시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이 들어오게 되면 전국적으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결국은 한미 FTA를 활용해서 나머지 지역, 전국적으로 영리병원을 확산시켜나가는 흐름이 만들어질 거라는 점이다. 그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미 FTA가 의료민영화에 미치는 다른 영향은 뭐가 있을까.

"한미 FTA는 약가가 제일 큰 문제다. 영리병원 도입은 일단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만 예외로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약가정책 관련해서는 파장이 크다. 우선 미국 거대 제약회사의 독점특허권을 강화하겠다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제약회사들이 거의 다 소규모고 영세기업이다 보니까 특허권이 있는 약을 복제해서 시판하는 구조다. 신약을 독자기술로 개발하기보다 특허 기간이 20년이라고 하면, 20년이 지나면 복제약을 파는 시스템이었던 거다. 그런데 한미 FTA가 체결되면서 특허권이 더 강화되고(기간 연장) 함부로 복제약을 못 팔도록 해버렸다. 국내 제약산업 기반이 상당히 약한 상황에서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는 거다. 복제약을 통해서 약을 싼 값에 먹었던 체계가 허물어지는 거고. 또 약가 결정 과정에서 민간 제약회사의 입김을 반영하는 구조로 가겠다는 거다. (현재까지는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가를 결정한다.)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비싼 약을 사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거다."

-일단 문이 열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일단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고 보건복지부에서 6월까지 시행세칙을 만들어서 속도를 빨리 하겠다고 한다. 6월에 인천 송도에 국제영리병원 유치하겠다고 일정까지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의료민영화 관련 법안은 다 막아냈는데, 임기 말에 마지막으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걸로 본다. 또 국회에서 법이 통과가 안 되니까 시행령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거여서 한편으로는 국회에서의 싸움보다는 정권과의 싸움으로 집중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다.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긴급하게 자체 내에서도 대책 논의를 하고 있고, 연대단체들과 같이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계속 투쟁수위를 높일 방침이다."

▲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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