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⑥] 강기태 조명국 송미진-충무로에 그런 영화제작자 없었다.

윤상길 편집위원 2012. 4. 24.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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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윤상길의 OLD & NEW] MBC 월화극 '빛과 그림자'(연출 이주환 이상엽 / 극본 최완규)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은 종반부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하다. 시청률에서 스타급 아이돌이 투입된 '사랑비'(KBS2)와 '패션왕'(SBS)을 멀찌감치 앞서가며 같은 시간대 월화극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사실과 허구의 미묘한 경계선을 거닐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친다는데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농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놓으며,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처럼 가상과 현실의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입담을 펼친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이 드라마가 잘 유지해오던 '허구'와 '실재'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그 시작은 극의 연예계 배경이 가요에서 영화 쪽으로 옮겨지면서부터이다. 그동안 가요계는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묘사된 반면 영화계는 전혀 사실과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극 전체의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빛과 그림자'는 기획의도에서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주요배경으로 드라마틱한 실존인물들에서 극적 모티브를 취하여 드라마의 재미와 의미를 극대화 할 것" 이라며 이 과정에서 "그 시대의 대중문화예술 세계를 집중 조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역사적 사건'과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삼았다면, 드라마의 사건과 인물은 사실을 토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적어도 개연성은 담보되어야 한다. 그것이 시청자와의 약속이다. 특히 7080 이후 세대 시청자에게 왜곡된 현대사를 학습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에 제작진은 유의해야 한다.

극중 빛나라기획 사장 강기태(안재욱)와 조폭 보스 조태수(김뢰하)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가 장철환(전광렬) 회장과의 거래로 풀려난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 제작을 서두르고 있다. 반면 태양영화사 조명국(이종원)은 그들이 풀려난 날 삼청교육대에 입소한다.

삼청(三淸)교육대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발령된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사회정화정책의 일환으로 군부대 내에 설치한 기관이다.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이루어져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 초기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꼽힌다.

1981년 1월까지 6만755명이 체포돼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삼청교육대 순화교육은 연병장 둘레에 헌병이 집총 감시하는 가운데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가혹한 방법의 훈련을 감행하였다. 1988년 국회의 국방부 국정감사 발표에 의하면 삼청교육대 현장 사망자가 52명,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 397명, 정신장애 등 상해자 2678명이 발생하였다.

충무로 영화계는 이때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영화인을 극소수로 보고 있다. 제작부서 말단에서 일하던 사람과 충무로에 기생하던 건달 비슷한 몇 명이 끌려갔지만 영화인으로 볼 수 없는 언저리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 당시 충무로에는 20개의 영화제작사가 영화를 만들었다. 이들 영화사 대표 가운데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이는 아무도 없다. 극중 빛나라기획은 조명국의 태양영화사 작품을 인수할 만큼 힘 있는 업계 1위 영화사이다. 하지만 당시 제작 상위 영화사 대표 가운데 극중 강기태의 캐릭터와 비슷한 인물은 없었다는 게 충무로의 지적이다.

드라마에서 사건이든 인물이든 근거 없이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개인에 대한 명예와 관련되고, 나아가 역사 왜곡이란 과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극중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전두환 군부가 등장하는 시점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우주흥업 송미진(이휘향) 대표가 한 연예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다. 이 연예기자가 묻는다. "태영영화사 조명국 사장은 '취권'으로 큰 재미를 보았는데 송미진 사장은 '하노버스트리트'를 들여와 실패하지 않았느냐"는 내용이다.

실재에 있어 '취권'은 당시 연방영화사가 수입, 1979년 9월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홍콩영화이다. 이때 연방영화사 대표는 지금은 고인이 된 최춘지 사장. 연방영화사는 1980년대 에로영화 붐을 일으킨 '애마부인'(감독 정인엽)의 제작사이다. 고 최춘지 사장은 연방영화사 창업자 주동진 사장의 미국 이민에 따라 회사 경영을 승계한 이 영화사 기획자 출신으로, 극중 조명국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정통 영화인이었다.

극중 태양영화사 조명국의 사무실 벽에는 '취권'과 함께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 포스터가 붙어 있는데, '죠스'는 1978년 우진필름을 통해 당시 수입영화 중 최고가인 40만 달러에 수입된 영화이다. 당시 우진필름의 대표는 현재도 이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진우 감독(현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이다. 그러니까 극중 태양영화사의 모델은 연방영화사도, 우진필름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극중 송미진의 우주흥업이 수입한 영화로 되어있는 '하노버 스트리트'는 우진필름의 정진우 감독이 1979년 12월 서울 스카라극장에서 신정프로로 개봉한 영국영화이다. '인디아나 존스'로 전 세계 슈퍼스타로 등극했던 해리슨 포드가 37살에 주연한 영화로 한국흥행에는 실패했다.

'취권'과 '하노버 스트리트' 두 영화만 보면 '빛과 그림자'의 설정은 99% 허구다. '취권'이 흥행에 성공하고, '하노버 스트리트'가 실패했다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그렇다. '허구'와 '실재'의 경계선을 잘 지키던 '빛과 그림자'가 철저하게 '허구'쪽으로 무너진 대표적 예이다.

1980년 20개 영화사가 활동할 당시, 여성으로서 송미진 같은 영화계의 거물은 없었다는 것이 충무로의 증언이다. 세경흥업의 김화식, 국제영화사의 유옥추 사장 등 여성 경영인은 두 사람뿐이었으며, 이들 역시 영화 제작 현장밖에 모르는 정통 제작자로서, 극중의 송미진처럼 권력밀착형 영화인은 아니었다.

사진=TV리포트DB

윤상길 편집위원 yoonsk4u@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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