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걸음한 소비자, 전통시장 대신 옆동네 대형마트로
"아이 학교 준비물 사려고 잠깐 나왔는데 한강을 건너가게 생겼네요."
22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이마트 천호점. 가족과 함께 장을 보러 나온 양모(44)씨는 굳게 닫힌 매장 앞에서 이마트 안내직원으로부터 이날 문을 연 광진구 자양동 매장으로 가는 약도를 받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강동·송파·강서·성북구, 경기 성남·수원시, 부산 남구 등에 있는 대형마트 114곳이 이날 문을 닫았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유통매장의 의무휴업일을 조례로 정해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역 SSM(기업형 수퍼마켓)까지 문을 닫으면서 의무휴업 사실을 모르고 쇼핑을 나온 소비자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이마트는 이날 오후 3시까지 서울 지역 휴무 점포 5곳에서 도보 방문 고객 3500명, 차량 2500여대가 되돌아갔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 신월동에 사는 주부 김모(42)씨는 이날 롯데마트 첨단점 내 세탁소에 맡긴 아들의 교복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김씨는 "마트 담당자에게 사정을 설명한 끝에 세탁소 점주가 매장에 나와 교복을 꺼내줬다"고 말했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와 달리 대형마트에서 허탕을 친 소비자가 인근 전통시장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대형마트 주변 전통시장과 휴무일이 겹쳐 소비자들의 불편만 가중됐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대형마트가 문을 닫은 서울 미아동 숭인시장과 천호동 천호시장은 이날이 정기 휴무일이었다. 시장 안에는 상인도, 손님도 드물었다. 천호동에 사는 이선진(48)씨는 "시장 살린다면서 시장 노는 날에 마트 문 닫게 한 구청이나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데도 원래대로 계속 쉬는 시장이나 다 어이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인접한 현대백화점 천호점 식품관은 평소 휴일보다 고객이 더 많이 붐볐다.
대형마트 휴무에 대한 중소 상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울 성내동에서 소형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정모(61)씨는 "대형마트가 쉬면 손님이 조금은 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길음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강모(50)씨는 "애초에 무분별하게 대형마트 허가를 내줘 시장 상인 다 죽게 만들어 놓고 지금 와서 하루 문 닫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말했다.
대형마트 업계는 일요일 휴무에 앞서 전날인 토요일에 대거 할인 행사를 벌였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신선식품을 최대 80% 할인하는 '떨이행사'를 벌여 일주일 전보다 매출이 30~40% 뛰었다"고 말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역시 할인 대상 품목을 확대해 토요일 매출이 평균 10% 정도 증가했다.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농·어민들도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경기도 지역 10개 농가와 함께 대형마트에 열무·시금치 등을 납품하는 농업법인 지은 김영걸 이사는 "예전처럼 중간도매상 없이 대형마트와 직거래하는 농민들이 많다"며 "우리도 연 매출의 75%가 대형마트를 통해 발생하는데 당장 일요일 하루 납품이 안 돼 15억원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부산공동어시장 내 중매인인 박태근씨는 "일요일 대형마트 휴무로 당장 매출의 10%가 증발해 자반고등어 가공 공장에 있는 직원 인건비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안에 입점한 레스토랑·병원·미용실 등 중소상인들도 불만이다. 롯데마트 송파점 안에서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양동열 사장은 "사전에 예약을 받은 일요일 돌 잔치와 단체모임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며 "손해배상을 하라는 손님들의 불만이 폭주해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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