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라이프 | MTB 다운힐] 바람처럼 소리 없이 스며들고,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돌진

글·송철웅 월간산 기획위원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2012. 4. 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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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현, 그가 연출하는 7~8m의 드랍, 10m가 넘는 점프를 보라!

↑ [월간산]아디다스 테렉스팀의 MTB 다운힐러 강석현이 카본보디의 애마 GT 퓨리(FURY)를 타고 유명산 정상에 올라 앞바퀴를 들고 스탠딩 윌리 포즈를 취했다. 정교한 테크니션이면서 동시에 겁 없는 질주 본능과 성실함을 두루 갖춘 대한민국 다운힐 라이더의 지존이다.

이개혈종(耳介血腫, Othematoma). 말 그대로 귓바퀴에 혈종이 생겨 부풀어 오르며 변형되는 증상으로 반복되는 기계적 자극에 의한 출혈이 원인이다. 유도나 복싱 선수들에게서도 간혹 나타나지만, 특히 격렬한 몸싸움이 숙명인 레슬링 선수들은 거의 예외 없이 겪고 있는 일종의 직업병이다. 오죽하면 이개혈종의 다른 이름은 '레슬러의 귀(wrestler's ear)'다.

일그러진 귀를 보면 금방 레슬링 선수임을 짐작할 수 있듯이 MTB 다운힐 선수들도 신체에 외형적 히스토리가 남는다. 비포장 내리막길을 자전거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내리쏘는 다운힐 경기는 부상의 위험이 극도로 높은 종목이다. 물론 풀페이스 헬멧을 쓰고 목, 무릎, 팔꿈치, 척추 등을 보호대로 겹겹이 중무장하지만 순간 최고 80km/h의 속도에서 넘어질 경우 부상을 피할 도리가 없다.

내리막의 아래를 향해 쏟아지는 경기의 특성상 특히 많이 다치는 부위가 얼굴이다. 때문에 다운힐 선수들은 대부분 앞쪽 치아가 성한 곳이 없고 턱은 프랑켄슈타인처럼 봉합자국이 어지럽게 마련이다.

아디다스 테렉스팀의 MTB 다운힐러(down hiller) 강석현을 처음 만났을 때 살짝 놀랐던 것은 뜻밖에도 얼굴이 흉터 하나 없이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2010년 다운힐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라이딩 테크닉도 정교하지만, 특히 겁 없이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로 정평이 나있다.

강석현의 라이딩은 한마디로 지형 무시. 중력과 페달링에서 얻어진 운동 에너지를 감쇄시키지 않고 최고의 속도를 유지하며 내려가는 것이 다운힐 경기지만 돌과 흙, 나무뿌리 등으로 불규칙한 노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려면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

↑ [월간산]고속 다운힐 중 커브 구간에서 뒷브레이크를 잡아 회전 반경을 줄이는 드리프트. 인공 동력을 쓰지 않는 MTB 다운힐은 과감성과 함께 다양한 라이딩 테크닉을 요구하는 익스트림 종목이다.

그러나 강석현의 질주를 지켜보면 그의 자전거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연출하는 7~8m의 드랍, 10m가 넘는 점프는 마치 아프리카 세렌게티 초원을 스프링이 튕기듯 달리는 가젤 영양을 연상케 한다.

"얼굴 속에 티타늄 볼트 14개가 박혀 있어요"

과감한 폭주가 트레이드마크인 강석현의 얼굴이 여드름 몇 개 외엔 부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의아해 묻자 스물세 살 청년은 맑게 웃으며 답한다.

"눈두덩하고 광대뼈에 티타늄 볼트 14개가 박혀 있어요. 현대 성형의학의 승리죠."

초등학교 시절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모부를 따라 자전거의 세계에 빠져든 뒤 12세 때 크로스컨트리대회에 첫 출전하고, 중학교에 막 입학한 14세 때 다운힐로 전향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해온 강석현의 곱상한 얼굴에 티타늄 볼트가 박힌 것은 다운힐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던 고교 2학년 때였다.

↑ [월간산]1 온갖 첨단소재와 하이테크닉의 결집체인 최근의 자전거는 강하고 가볍지만 그만큼 민감하다. 진흙투성이의 거친 산길을 달린 뒤 행여 문제가 있는지 휠과 브레이크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 2 맹속력으로 다운힐중인 강석현.

강원도 봉평 휘닉스파크에서 대회를 하루 앞두고 코스를 익히기 위해 달리던 중 단차가 있는 드랍 구간에서 자전거 바퀴 대신 얼굴로 착지해 버린 것이다.

"7m쯤 되는 비교적 높은 드랍이었는데 드랍 지점에 진입하는 도중 몸이 위축되면서 균형을 잃었어요. 그 다음은 기절해서 생각이 안 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더군요."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가 끝났다고 생각할 만큼 지면과의 격렬한 충돌. 목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으로 으스러진 얼굴뼈들을 티타늄 볼트로 고정하고 다시 자전거 핸들을 잡기까지 무려 8개월이 걸렸다. 이 정도 심각한 외상을 입으면 트라우마가 생겨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강석현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넘어지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사고의 원인은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었어요. 달려오던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주며 사뿐히 날아가 랜딩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드랍의 단차가 의외로 크다고 느끼는 순간 몸이 먼저 알아채고 위축된거죠."

↑ [월간산]일반적인 XC자전거에 비해 다운힐 머신은 거친 지형을 빠르게 내려오는데 적합하도록 진화했다. 점프나 드랍 후 착지 때의 엄청난 충격을 받아내기 위해 앞쪽 샥 업소버가 마치 모터바이크의 그것처럼 더블 크라운의 형태를 가졌고, 뒷바퀴의 완충을 위해 더블 서스펜션이 채택됐다.

휘닉스파크에서의 부상은 아직 어린 '고딩' 강석현에게 스포츠에서는 많은 경우 의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정신이 외부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그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인 몸 역시 자유롭게 움직이며,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동작을 수행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되자마자 다시 레이스에 뛰어든 그의 라이딩 스타일은 부상 이전보다 훨씬 더 저돌적으로 변해 있었고 그 결과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강석현은 이듬해인 고3 때 또 다시 시련을 겪는다. 일본 후지미산 파노라마리조트에서 열린 대회에 초청선수로 출전했다가 점프 후 랜딩 실패로 이번엔 갈비뼈가 부러졌다.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그야말로 피를 토했다.

하지만 이 부상 역시 자전거에 꽂힌 강석현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금쪽같은 아들이 자전거 선수를 한답시고 번번이 초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반길 부모는 세상에 없다. 부모님은 당연히 자전거 선수 따위 당장 때려치고 '보통 아이들의 정상적인 삶'을 살 것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이미 질주 본능에 불이 붙은 패기만만한 젊음을 막아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엄청난 부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불나방처럼 이 위험한 스포츠에 계속 뛰어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승부보다는 지형을 하나 하나 제압해 나가는 기쁨이 더 큰 것 같아요. 다운힐 경기가 펼쳐지는 오프로드는 같은 코스라도 날씨나 앞서 달린 선수의 영향을 받아 수시로 미묘하게 변하는데 그 변화에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달려 나갈 때의 희열이랄까, 그런 게 너무 좋아요. 온 몸에서 엔돌핀이 막 샘솟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거든요."

↑ [월간산]1 다운힐에서 점프는 필수 테크닉 중 하나로 강석현의 점프는 비거리가 길고 유연하다. 2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기 시작하며 진흙수렁이 된 유명산의 S자 임도를 질주하고 있다. 이날 라이딩 후 선수는 물론 자전거도 온통 진흙으로 칠갑을 했다.

술, 담배, 연예인, 컴퓨터 게임에도 무관심

스물셋. 아직 설익은 젊음이지만 강석현에게는 또래의 사람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구도자적 분위기가 풍긴다. 술, 담배는 입에도 못 대고, 연예인은 물론 컴퓨터 게임이나 클럽에도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자전거와 라이딩 테크닉을 연마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경기도 없고, 훈련도 없는 주말에는 뭘 하며 지내느냐고 묻자 친구들과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자전거를 정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석현은 2010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이창용 선수에 이어 2위를 기록한데 이어 같은 해 무주에서 열린 18회 삼천리자전거배 대회에서 다운힐 1위, 포-크로스(4-CROSS) 1위 등 2관왕에 오르며 절정의 경기 감각을 보이며 국가대표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다운힐은 선수들이 각각 개별 출발해서 골인지점을 통과할 때까지의 소요시간으로 순위를 가리는 것이지만 포-크로스는 같은 코스에서 4명의 선수가 동시에 출발하는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다. 몸싸움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포-크로스에서 강석현은 때로는 바람처럼 흔적 없이 스며들고 때로는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돌진하며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국내 1인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런 그가 2011년엔 두문불출 조용히 지내며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몇 개 대회에 얼굴을 내밀긴 했지만 순위권 밖. 그동안 그가 주로 시간을 보낸 곳은 치킨집이었다. 닭튀김집에서 배달과 서빙을 하며 돈을 모은 것이다.

↑ [월간산]점프 장면 촬영을 위해 잔설이 쌓인 사면을 바이크를 둘러메고 오르는 강석현. 지난 한 해 동안 조용히 지냈던 그는 태극마크를 되찾아 올 봄 시즌 대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1년간 모은 돈으로 프레임, 휠셋, 브레이크, 변속기, 샥(shock-absorber) 등을 하나씩 하나씩 마련해 지난 연말에 다운힐 전용 자전거인 트렉 세션을 정성스럽게 조립했다. 국가대표의 태극마크는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자전거 종목 중에서도 다운힐은 향유층이 극도로 적고 저변이 빈약해 경기에 출전할 자전거조차 선수가 자비로 직접 구입해야 한다. 물론 그동안 자전거전문점 메일바이크 등에서 프로시드, 춤바 등 자전거를 지원해 주기도 했지만 다운힐이란 워낙 험한 경기인지라 한두 대 갖고는 선수 생활을 계속해 나가기 어렵다.

1년간 대회를 쉬며 자전거를 마련한 그에게 지난 2월 좋은 일이 생겼다. 자전거 브랜드 GT를 수입하는 HK코퍼레이션에서 역시 다운힐계의 강자인 박준성 선수와 함께 그에게 GT 다운힐 모델 중 최상급인 퓨리(FURY)를 지원한 것이다.

GT의 자전거 제공은 지난 가을 국제적인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에서 의류와 활동비를 지원받는 아디다스 테렉스팀(adidas terex team) 합류에 이어 강석현에게는 하늘로 뛰어오르고 싶을 만큼 힘과 의욕을 솟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강석현이 지난 한 해 동안 레이싱을 포기하고 치킨집에서 시급을 받으며 일해서 모은 돈으로 자전거를 준비한 것은 2012년 올해 모든 다운힐 대회에서 우승하며 명실공히 1인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시즌 오픈 대회인 4월 창원대회에서 국가대표 태극마크를 되찾아오고 여세를 몰아 국제무대도 노크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런 그에게 아디다스와 GT는 날개를 달아줬다. 그 날개를 달고 강석현이 얼마나 높이 날아오를지 궁금해진다.

↑ [월간산]잠시 타이밍을 쉬고 있는 강석현.

(지난 호의 인물 방창석씨의 이름이 부제에 방청석으로 잘못나갔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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