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원령공주' 배경 된 삼나무 숲 계곡엔 태고의 신비가 가득

2012. 3. 30.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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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시라타니운스이쿄의 협곡트레킹 거의 막바지인 해발 900m 산중에서 만나는 '고케무스모리'라는 이름의 개울과 숲. 하늘을 가린 울창한 수풀로 주위가 어두운 데다 서로 뒤엉킨 채 자라는 나무, 개울의 돌과 바위를 온통 뒤덮은 초록 이끼로 마치 숲의 정령이 나타날 듯한 신령한 느낌을 받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숲이다.

《3주 전 규슈 최남단의 가고시마. 기온이 20도에 육박하며 봄기운이 넘쳐났다. 일본항공(JAC)의 봄바르디어 DHC-8-400기는 163km 남방의 야쿠(屋久) 섬을 향해 바다 위 6000m 상공을 날고 있었다. 좌석 68개에 프로펠러 추진의 중소형 비행기. 활주로가 짧은 섬에 운항하기 딱 좋은 중거리 기종이다. 기내엔 빈 좌석이 없었다. 일본인 수학여행단도 20여 명 보였다. 야쿠 섬이 아열대라곤 하나 겨울엔 방문객이 뜸하다. 1000m 이상 산악엔 영하 15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등 사계절이 분명해서다. 이들 역시 나처럼 봄이 오기만 기다렸다가 비로소 섬을 찾는 여행자일 것이다.》

88m 높이에서 화강암 벽을 타고 추락하는 두 줄기의 오코폭포. 일본 100대 폭포 중 하나다. 야쿠 섬 서부 해안에 있는 세이부임도의 평화로운 모습. 원숭이와 사슴이 한가로이 봄볕을 쬐고 있다.

비행기가 바닷가 활주로에 안착했다. 이륙한 지 30분 만이다. 뱃길로는 제트포일이 2시간, 페리로 4시간 40분 걸리는 이 섬. 공항은 시골 버스터미널 같다. 수하물 벨트도 없어 일일이 가방을 들어 바닥에 놓았다. 예약한 택시에 오르자 60대 운전사가 낭보를 전한다. 어제까지와 달리 오늘부터 며칠간은 맑다는 예보다.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비가 '한 달에 35일' 내린다는 야쿠 섬이니. 산정엔 연간 1만2000mm가 내리고 어지간한 곳도 4000mm 이상 내리는…. 일본 최다 강우지역이 바로 여기다.

그래도 섬에서 비를 탓하는 이는 없다. 7200년(최대 추정치) 된 조몬스기(繩文杉)를 비롯해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2000그루의 야쿠스기(屋久杉·1000년 이상 된 이 섬의 일본 삼나무 거목을 칭하는 말)' 미야자키 하야오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 각색한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신령스러운 숲의 계곡 '시라타니운스이쿄(白谷雲水峽)' 등 이 아름다운 숲과 완벽하게 보존된 태곳적 자연이 그 엄청난 비의 소산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흘 내내 빗속에서 취재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온 터였다.

섬 대부분 험준한 산악

야쿠 섬(500km²)은 울릉도(72.9km²)의 7배, 서울(600km²)과 엇비슷한 면적이다. 결코 작다 할 수 없는데도 섬인데도 평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야노우라다케(1935m)를 중심으로 험준한 산악이 섬을 덮은 형국이어서다. 섬 자체는 화산이 아니다. 근방 화산섬에서 분출할 때 해저 지각변동으로 마그마가 애초 섬의 지각을 뚫고 나와 그 위를 덮어 형성됐다. 화산암으로 구성된 해안과 달리 화강암으로 이뤄진 내륙의 산악이 그걸 말해준다. 섬 전체 모습은 둥그스름한 오각형인데 횡단도로는 없고 일주도로(100km)만 있다. 주민(1만4000명)도 주로 해안에 산다.

야쿠 섬이 세상의 관심을 끈 건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다. 물론 그 대상은 야쿠스기였다. 섬은 일본 삼나무(Cryptomeria japonica)의 남방한계선으로 이 울창한 수림은 상상을 초월한 거대 강수량의 소산이다. 그중에도 삼나무―'히노키'라는 편백나무를 포함해―특히 1000년 이상 된 노거수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큰 키다. 햇빛을 독차지하니 우점종이 될 수밖에. 둘째는 비다. 습기 많은 곳의 나무에는 나무진이 많다. 덕분에 심재가 단단해지니 병해에 강해 오래 산다. 그렇다고 이 섬 전체가 세계유산은 아니다. 1000년 이상의 남벌에도 목숨을 부지한 노거수가 집중된 고산 능선지대(섬 산지의 20%)만 등재됐다.

야쿠 섬을 찾는 이는 크게 두 부류다. 왕복 5시간의 시라타니운스이쿄와 10시간의 조몬스기 코스 트레킹에다가 섬 서부 해안의 자연유산 등재 숲길(세이부임도·西部林道)을 드라이브하는 통상의 여행자가 하나고, 산에서 야영하며 능선을 남북으로 종주(3박 4일)하는 산악 트레커가 있다. 나는 여행자 일정을 좇아 4일간 체류했다. 섬에는 산악가이드가 150명가량 활동 중이지만 한국어 가이드는 없다. 그래서 영어가 가능한 일본인을 고용했다. 산중엔 등산로 표식과 이정표가 잘 설치돼 가이드 없이 트레킹하는 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날씨가 정상적일 경우. 폭우나 짙은 안개가 끼는 등 기상이 악화될 땐 다르다. 물이 불어난 계곡을 건너다 사고를 당하거나 등산로를 벗어나 우회하다가 조난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숲 자체도 워낙 우거져 기온이 낮은 데다 날씨마저 변화무쌍해 가벼운 트레킹 코스임에도 장비만큼은 완벽하게 갖추기를 권한다. 특히 비를 막아줄 방수복과 배낭덮개, 모자, 장갑은 필수다. 가이드 중에는 아예 장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 이도 있었다.

원령공주를 찾아 숲의 계곡으로

미야노우라는 섬에서 가장 큰 마을. 가고시마와 이웃 섬을 오가는 페리와 직행 제트포일이 당도하는 항구다. 시라타니운스이쿄는 여기서 포장된 임도로 17km 떨어진 산 중턱에 숨겨진 계곡이다. 자그만 주차장 앞의 매표소(300엔)가 입구. 해발고도는 610m였다. 계곡은 해발 900m까지 4.2km 이어진다. 약한 경사에 거리도 적당해 누구나 가볍게 다녀올 만하다. 반환점은 다이코 바위(해발 1050m). 최고봉인 미야노우라다케를 위시해 주변 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전망 포인트다. 여기까지가 5km인데 오르는 데 2시간 55분, 내려오는 데 2시간 5분 걸린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초입의 계곡은 싱거웠다. 숲이 좀 더 우거진 것 외엔 우리 산 어디서고 만날 수 있는 작고 가파른 바위계곡이어서다. 하지만 500m쯤 가서 현수교를 건넌 뒤부터는 달랐다. 해발 750m에서 만난 '니다이오스기(二代大杉)'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높이 32m에 둘레가 4.4m나 되는 거대한 야쿠스기인데 고사해 썩은 삼나무(一代杉)의 갈라진 틈에 뿌리를 내렸다. 일대목과 이대목의 관계는 부모 자식과 다름없다. 죽기 전 이대목에 양분을 나눠주며 생장을 돕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해 스러지면 그걸 딛고 이대목이 생장해 일대목을 대신한다. 간혹 삼대목도 발견된다. 1000년 이상 사는 스기에서나 볼 수 있는 진기한 현상이다.

길은 걷기에 좋다. 화강암 조각이 거미줄처럼 흙 위로 노출된 뿌리 사이사이로 잘 놓여서다. 이 길은 '구수카와보도(楠川步道)'라고 불리는데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에도시대에 사쓰마 번(가고시마 현 서부) 영주는 하도 가난해 거둘 쌀이 없는 이 섬 주민들에게 삼나무를 잘라 세금 대신 바치라고 했다. 그래서 섬 남자들은 깊은 산에 들어가 거대한 야쿠스기를 베어 미야노우라 마을까지 끌고 내려와야 했는데 이 길이 그 노역로다.

야쿠 섬의 노거목은 '히라기'(궁궐 사찰 신사의 지붕을 잇는 널빤지)로 다듬어져 공납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쇼군 당시(1560년) 교토의 대찰 건축에 사용된 후 남벌이 금지된 메이지유신(1868년)까지 300년간 사찰과 신사, 궁궐 건축에 쓰일 목재로 끊임없이 남벌됐다. 몇 그루 남지 않은 노거수를 이제는 발품 팔아 찾아다니며 감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렇게 태어났다. 물론 발길 닿지 않는 능선과 절벽 등엔 아직도 1000년 이상 된 노거수 삼나무가 2000그루가량 남아 자연유산으로 등재돼 보호받고 있지만.

구수카와보도로 오르다 보면 이런 독특한 야쿠스기를 줄줄이 만난다. 뿌리가 세 갈래로 뻗은 산본아시스기(三本足杉), 세 그루가 창처럼 자라는 산본야리스기(三本槍杉), 둘레 3.1m에 키가 22m나 되는 야쿠스기의 뿌리가 터널을 형성한 구구리스기(くぐり杉), 윗가지가 7개로 뻗은 나나혼스기(七本杉)…. 이런 나무를 쳐다보며 쉬엄쉬엄 오르는 우거진 숲길. 그 숲의 주인은 노루와 원숭이인 듯했다. 섬에 포유류라고는 6종뿐. 해칠 것이라고는 사람뿐인데 사람도 건드리지 않으니 그 수가 각각 2만까지 늘었다. 원숭이는 무리 지어 나무 위에서 동백꽃을 따 꿀을 발라 먹느라 바빴다. 사슴은 가만히 서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응시하다가 깊은 숲으로 사라졌다. 어떤 사슴은 1m 앞에 다가가도 졸음 겨운 눈으로 햇볕을 쬐며 꼼짝하지 않았다.

드디어 다다랐다. 모노노케히메의 배경이 된 신령스러운 숲의 모습을 한 작은 계곡이다. 계곡은 돌은 물론이고 하늘을 덮은 나무로 온통 초록빛이다. 나무며 돌을 뒤덮은 진초록 빛의 이끼 때문이다. 햇살 강한 대낮인데도 너무도 울창한 숲의 계곡은 어두웠고 거기에 이끼에서 발산되는 초록빛과 원시성으로 인해 신비로움까지 감돌았다. 사실 이끼는 이 섬의 숲 전체를 뒤덮고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1300종 이끼 중 600종이 여기에 있을 정도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린 직후엔 이끼 낀 바위계곡으로 물이 흘러 영화 속 연못 풍경을 자아낸다고 한다. 그래서 '모노노케히메 계곡'이라고 표시했었는데 영화제작사인 지브리 스튜디오가 이의를 제기해 지금은 '고케무스모리'(苔むす森·이끼가 자라는 숲)라고 부른다.

야쿠 섬=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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