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봄볕 든 남산 골목 산책가자

2012. 3. 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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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강북의 가로수길로 떠오르는 이태원 경리단길의 모든 것

서울서 만나기 힘든 골목문화시간이 멈춘 것처럼고즈넉하고 조용한 동네

이태원 중심가 절반 임대료

"다음주 목요일에 문 열어요. 평수요? 5평(16.5㎡)이에요. 뭐 하는 곳이냐고요? 이탈리아, 아시아의 가정식 요리 하는 곳입니다." 지난 11일 엄귀현씨는 나른한 일요일을 반납하고 뚝딱뚝딱 간판을 걸기에 바쁘다. 그는 배우 홍석천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마이첼시'(이태원1동)의 홀 매니저였다. 이른바 이태원 주류에서 '놀던 사람'이다. 그가 주류를 탈출해 간판을 건 곳은 '경리단길'이다. 행정구역상 용산구 이태원2동 회나무길이다. 초입에 육군중앙경리단이 있어 '경리단길'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까지 이어지는 약 950m 언덕길을 말한다. 6호선 녹사평역에서 남산 3호터널 방향으로 약 600m 내려가면 오른쪽에 길 입구가 나온다.

최근 2년간 이 거리는 마치 뜨기 직전 날갯짓하던 초창기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을 닮았다. 개성 강한 커피점이나 모자가게, 옷가게, 음식점이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을 연다. 33㎡도 안 되는 '한 뼘 가게'들이 많다. 지난해에 문 연 곳만 8군데가 넘는다. 오지상햄버그스테이크, 몬스터컵케이크, 미니스, 올리아, 타이누들, 무명여배우 등. 2010년에 터를 잡은 멀로니스 펍, 티드 빗, 목포홍탁, 빅 머그, 빈 모디스트, 노바, 보메, 마리아테라스와 올해 문 연 쭈쭈빠빠, 피콕, 귀(Gui) 등과 4~7년 전부터 터줏대감 노릇을 했던 예환, 비스테까(사진), 와지트, 핫토리키친 등을 합치면 25곳이 넘는다.

훤의 침실에 스며든 '해품달'의 월이처럼 이들은 남산 아래 나지막한 이 동네로 스며들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흥청대는 이태원 상권과 사람냄새 없는 프랜차이즈 커피와 술을 팔기 바빠진 홍대 유흥가, 휴일이면 어깨가 부딪치기 바쁜 삼청동 일대, 대자본에 점령돼 본래의 매력이 사라진 가로수길이 이들은 싫다. 그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서울에서 만나기 어려운" 골목문화가 살아 있고 휘파람 소리가 울릴 정도로 "고즈넉하고 조용한 동네"인데다 사통팔달 교통이 발달했지만 "마치 고립되어 있거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 이곳이라고.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이태원역 상권을 비롯해 '사람들 좀 온다'는 곳의 임대료는 어마어마하다. 이태원역 주변 상권 목 좋은 대로변의 경우, 권리금은 약 1억5000만~2억원, 보증금은 약 1억원, 월세는 약 350만~400만원이다(33㎡ 기준).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권리금이나 보증금이 7000만~8000만원으로 떨어지기도 하지만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경리단길로 들어서면 가격대는 뚝 떨어진다. 33㎡ 크기의 상점은 보증금 1500만~2000만원, 권리금은 3000만~5000만원, 월세가 약 150만원 선이다. 신누리공인중개사사무소 소장 유용수씨는 "하얏트호텔 쪽과 경리단 쪽은 차이가 있지만 다른 이태원 지역보다 50% 싸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이곳은 고개만 들면 꽃 피고 새 우는 남산이 보인다.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면 남산 아래 경사진 기슭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낭만이 깃든다. 실핏줄처럼 얽힌 골목에 녹슨 철문이 마주보고 낡은 시멘트 계단에는 상추를 키우는 화분이 있다. 이른 아침에는 금발의 외국인이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숯불에 삼겹살을 굽는다. 외국인들은 거리를 채우는 다른 색이다. 2012년 용산구청 자료를 보면, 경리단길이 있는 이태원2동에 거주하는 외국인만도 652명이다. 등록을 안 한 이방인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다. 황폐해지는 홍대 거리가 싫어 이주한 인디밴드 가수, 사진가, 판소리꾼 등 아티스트들도 살고 있다. 꽃이 있어 나비가 날아오는지, 나비가 날아와 꽃을 피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봄볕이 따스한 날 운동화끈 질근 동여매고 경리단길 여행에 나서 보자. 들머리에 있는 대성교회가 첫눈에 들어온다. 1954년에 생긴 고풍스러운 교회다. 오래된 것은 교회만이 아니다. 이태원 제일시장은 40년 역사를 자랑한다. 채소가게 주인 박금순(82) 할머니는 "여기가 다 논밭이었어. 남산에서 여우가 내려와 닭을 물고 가곤 했지. 노루도 내려왔는데…"라며 50년 전 이 동네를 회상한다.

'성지모텔'도 30년 된 곳이다. 이 여관을 가운데 두고 하얏트 호텔에서 가까운 위쪽은 고급 주택이나 평수가 넓은 레스토랑이, 아래는 작고 소박한 가게가 즐비하다. 그가 들려주는 동네 역사도 재미있다. "경리단 너머 이태원은 '뒷골', 이병철 회장이 살던 곳은 '학동', 하얏트 아래 동네는 '은골'이라고 불렀어요. 용산기지가 들어오면서 미군들이 세들어 살았는데 지금은 필리핀인이나 외국인 강사들 차지죠." 성지모텔은 80년대 초까지 주말이면 "휴가 나온 미군이나 미군 가족들"로 방이 없었다.

느리게 걷는 발길에 폴란드 그릇 가게 '노바'가 걸린다. 옷가게 '피콕'은 아직 간판을 달지 않았다. "오빠가 홍콩에서 가져오는 옷들입니다. 원피스가 4만원을 안 넘어요." 피콕의 주인장 지아씨가 에스닉 스타일의 주홍색 원피스를 보여준다. '(의류 브랜드) 자라보다 싸게'가 모토다. 한껏 세련된 가게를 여행하고 나면 뻥튀기 장사꾼이 "뻥이오" 튀긴 강냉이를 판다. 올해 73살인 '뻥튀기 아저씨' 이창섭씨는 매주 목요일마다 노점을 연다. '베일리'는 카페인가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생화와 고급스러운 화분을 파는 꽃가게다. '빈 모디스트'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모자가 걸려 있다. 얼마 전 이곳으로 이사한 가수 빽가가 주인 빈경아씨가 만든 모자를 쓰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다. 유럽의 모자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짙은 밤색의 우아한 모자를 만든다. 보석가게 '에끌라', 그래픽 등의 예술서적을 파는 '디엔북스'(DN BOOKS) 등도 가볼 만하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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